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18
◈ 618화 거신의 창조물 (1)
기계 장치의 신은 지금까지 감정을 보여 주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하는 자에게도 적대감보다는, 그저 공격받았으니 당연히 반격해야 한다는 의식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가 만들어 낸 파괴도, 누군가를 죽이려는 행동도 악의는 없었다.
신이라는 거만한 이름답게, 자신보다 하찮은 존재를 죽이고 청소하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만 같았다.
유일하게 녀석이 감정이라고 할 것을 드러낸 것은 조금 전 루드거에 의해서 마탑의 실드와 불상의 손바닥 사이에 끼었을 때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생존 본능.
그것도 감정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미묘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계 장치의 신은 명백히 분노하고 있었다.
분노의 화살은 루드거를 향했지만, 보다 명확한 대상은 루드거의 머리 위에 뚫린 검은 구멍을 향해서였다.
루드거는 옷 아래의 피부가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등 뒤에 새겨진 낙인이 욱신거리는 기분.
‘적의가 나를 직접적으로 향하지 않은데도 이 정도라니. 그만큼 위의 존재에게 품은 감정이 강렬하다는 거겠지.’
그 감정을 발현하는 것은 기계 장치의 신.
그러니까 녀석의 핵심을 구성하는 신로의 렐릭이었다.
‘렐릭 자체에 나름의 의지가 있으리라고 막연히 추측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격정적으로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렐릭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루드거는 봉인술식의 1단계를 개방했고,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자그마한 창구를 열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력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창구에 가장 가까이 머리를 들이밀고 상황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신.
루멘시스의 배신으로 인해 직위를 빼앗기고 자격을 박탈당한, 이제는 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영락해 버린 존재.
상고를 넘어 더욱더 먼 창세 시절, 6개의 팔로 땅을 끌어모아 대륙과 산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존재.
거신(巨神) 테라론.
“네가 만든 물건이었나.”
테라론. 아니, 이제는 그런 이름도 박탈당한 신은 루드거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걸 넘어 생명체를 사랑하는 여신이 있다면, 반대로 만들어진 기계를 사랑하는 신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테라론이었다.
루드거는 테라론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잘 알지 못했다.
녀석은 다른 신들과 다르게, 루드거에게 흥미를 품었을지언정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니까.
이야기를 들어 달라 하거나 힘을 빌려 달라고 하거나, 혹은 자기 신도가 되라 하거나.
많은 신들은 루드거에게 온갖 요구를 했지만, 오직 테라론만이 구석에서 얌전히 있었을 뿐이었다.
얌전하고 묵묵한 존재.
루드거가 느낀 테라론이라는 신의 인상이었다.
그런 테라론이 지금 열린 창구를 통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저 기계 장치의 신을 구성하는 코어에 들어간 렐릭을 테라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평소였다면 열린 창구를 통해 시끄럽게 떠들었어야 할 다른 신들도, 테라론이 이렇게 나서자 한발 양보해서 조용히 있는 상황.
[───.]인간의 언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루어진 정보의 집합체가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루드거에게로 흘러들어 왔다.
정보 자체가 뇌로 고스란히 꽂히는 감각은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어서 루드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덕분에 루드거는 테라론이 왜 관심을 보이는지, 그리고 기계 장치의 신이 왜 저토록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버린 창조주를 향한 분노인가.”
기신(機神)은 거신(巨神)을 향해 원망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자아를 가진 렐릭이라니.
신이 만든 물건인 만큼 자아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지만, 동시에 거신 정도 되는 존재니까 렐릭에 자아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신 테라론은 무언가를 만드는 데 특화된 신.
지금의 건축, 공학의 모든 기원을 뿌리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테라론이 있었다.
신들이 자신의 파편, 혹은 장난감이라 할 수 있는 렐릭을 만든 것도 테라론이 가장 먼저 시작했고, 다른 신들은 그걸 따라 했던 것이었다.
테라론이 알려 준 정보에 의하면 그랬다.
지금까지 묵묵하던 녀석이 갑자기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틀림없는 진실이겠지.
만드는 것을 좋아한 테라론은 끝내 재료가 떨어지자 자기 육체마저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대륙 동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인 [거인의 등뼈]는 이런 테라론이 자신의 뼈를 꺼내서 만든 지형 중 하나였다.
손재주가 뛰어나도 만드는 것에 환장을 하는 드워프 또한, 테라론이 애착을 갖고 흙을 빚어서 탄생한 종족.
그런 스케일을 지닌 테라론이 공을 들여서 만든 렐릭이 지금 루드거의 눈앞에 있는 기계 장치의 신이었다.
물론 렐릭만 테라론이 만들었고, 그 외에 재료로 들어간 것은 전부 니콜라이의 짓이었지만.
“녀석은 너를 적대하는 모양이다만,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테라론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루드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날 더러 네가 만든 저것을 폐기 처분해 달라는 건가?”
테라론은 기신을 향해 안쓰러움과 동정, 애착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의지가 루드거를 향해 고스란히 들어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테라론은 루드거가 저걸 부숴 주길 바라고 있었다.
저 렐릭은 고장이 나 버렸다.
자신이 만들었던 것은 순수한 렐릭이었지만, 지금의 렐릭은 현대의 오물들을 잔뜩 뒤집어쓴 상태.
주인을 잃고서 현대 인간들의 손에 쥐어져 그들이 바라는 기계 장치의 원동력으로 살아왔다.
의지가 깃든 물건이니 망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테라론은 자신이 직접 안식을 선사해 주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직위를 빼앗기고, 이름마저 사라진 그는 예전과 같은 권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걸 감안해도 테라론이 지닌 힘은 초월적인 것이었지만, 그 힘을 건네 줄 창구가 이렇게 좁아서야 보낼 수 있는 힘도 한정적이었다.
[────.]테라론이 루드거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공교로운 점이 있다면, 기신 또한 테라론의 의지를 전해 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으, 아.”
기신의 바이저 헬멧 안쪽에서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드거는 아차 싶었다.
녀석은 거신 테라론에 의해서 탄생한 존재.
당연히 테라론이 하는 말은, 신에 대한 감응이 뛰어난 루드거뿐만 아니라 놈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아아아아!”
기계 장치의 신의 얼굴을 가린 짙은 갈색의 바이저 헬멧 안쪽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이윽고 바이저 헬멧의 입 부분이 쩌적 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적.
매끄럽던 바이저 헬멧의 턱이 갈라지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
금이 가며 생긴 균열이 벌어진 터라 마치 날카로운 이빨을 벌린 것처럼 보였다.
“아아아아악!!!”
헬멧 안쪽에서 드러난 입이 고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창조주가 자신을 죽이라고 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아닌, 웬 인간 하나를 통해서 말이다.
본디 자신을 버린 신을 향한 원망과 증오를 품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기신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자각해 버렸다.
“빌어먹을.”
기신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을 마주한 루드거는 짜증을 느꼈다.
기신의 바이저 헬멧 안쪽에서 황금색 눈동자가 루드거를 빤히 응시했다.
“죽, 인다.”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였지만, 명확한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자신을 귀찮게 만드는 인간이 아닌, 자신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일종의 숙적(Nemesis)으로 인정한 것이다.
“제길. 하여튼 신이라는 놈들은…….”
루드거가 테라론에게 무어라 따지기도 전에 기신이 움직였다.
“죽, 어어어!!!”
살의를 품은 외침과 함께 날아오는 것은 기계 팔이었다.
길이 6m에 폭은 1m가 넘으며, 관절 손가락 끝은 황금색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계 팔이 주먹을 쥐고서 날아왔다.
그것도 음속을 돌파하는 속도로.
루드거의 등 뒤에 있는 불상 또한 그게 대응하듯 손을 내밀었다.
쭉 뻗은 손바닥으로 내지르는 일장.
권(拳)과 장(掌).
그러나 품고 있는 힘은 기적에 가까운 두 힘이 충돌하자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렁였다.
기신이 나머지 3개의 팔을 이용해 루드거를 노리려는 그때.
멀리서 날아온 형형색색의 마법이 기신의 몸을 뒤덮었다.
기신의 나머지 팔이 가드를 하듯 마법으로부터 기신의 몸을 보호했고, 그 위를 마법들이 꽂히며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저놈이다! 저 녀석을 노려!”
신 마탑의 마법사들이 기신을 노리고 요격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기신이라 하더라도, 마탑의 마법사들 전체가 한꺼번에 쏟아 내는 마법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마탑에서 쏘아지는 마법들이 섬광처럼 쏟아지며 기신의 주위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
멀리서 보면 마탑을 중심으로 불꽃놀이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전혀 그러지 않았다.
온갖 화력과 마력이 뒤섞여 밀도 높은 파괴가 이루어지는 그곳은 죽음의 공간이라 봐도 무방했다.
루드거 또한 불상을 뒤로 물리며 거리를 벌렸다.
거대한 황금빛 불상이 움직이는 것은 마탑에서도 확연히 보일 텐데, 누구도 루드거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신이 조금 전 루드거를 향해 내비친 살의.
그리고 바깥의 파괴 행각에 의해 이슬라 마키나 전역에 울리는 비상 방송까지.
마탑을 습격한 적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를 도와서 누구를 쓰러뜨려야 할지.
신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걸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선생!”
때마침 휘론과 로테론, 베롬도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루드거가 소환한 거대한 불상의 모습에 순간 넋을 잃으면서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마탑이 총력을 내며 공격하고 있군요.”
마탑의 요격 시스템이 오직 하나의 존재만을 말살하기 위해 발동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마탑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자들까지 나서며 마법을 쏘아 대니, 그 대상은 누구라 하더라도 가루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이거라면 저 괴물도 쓰러질지도…….”
“아니.”
로테론의 희망에 찬 목소리를 끊은 것은 휘론이었다.
휘론은 허공에서 번지는 섬광의 자국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확히는 눈을 떼지 못했다.
“놈은 쓰러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위험해지고 있다.”
휘론은 자기 근육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자기 근육이 이렇게까지 떨려 본 적이 대체 얼마나 있던가.
없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겠지.
“온다.”
루드거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형형색색 폭발의 사이로 파장이 퍼졌다.
우우웅.
기묘한 힘을 지닌 파장은 폭발 자체를 밀어내며 날아오는 마법들을 허공에서 폭발시켰다.
파동은 주변 공간 일대를 모조리 훑고 지나갔다.
쩌저적.
그 충격이 얼마나 거대한지 주변 땅에 금이 갔다.
파장이 훑고 지나간 신 마탑도 마찬가지였다.
쿠구구궁.
신 마탑 전체가 크게 떨렸다.
루드거가 기신을 날려서 실드에 충돌시켰을 때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충격이었다.
“마, 마탑이 흔들린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신 마탑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단순히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그 외벽에 설치된 요격 장치들부터가 하나둘씩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뜯겨 나가고 있었다.
“……이거 돌아 버리겠군.”
베롬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을 잃었다.
신 마탑이 기울고 있었다.
단순한 착각, 혹은 착시에 의한 현상이 아니다.
저 거대한 건축물이 외부의 물리력에 의해서 정말로 쓰러지려는 것이다.
해일이 밀려와도, 태풍이 몰아쳐도, 천둥 벼락이 꽂혀도 멀쩡한 것이 신 마탑이다.
그런 신 마탑이 지금 방어 시스템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는데도 밀리고 있다니.
니콜라이가 이 신을 통해 바벨탑을 쌓는다는 말은 단순히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기계 장치의 신에게는 기존의 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탑을 쌓을 수 있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힘이 있었다.
“저걸 잡으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베롬을 비롯한 일행들은 본능적인 확신을 얻었다.
기계 장치의 신은 자신을 귀찮게 하는 신 마탑을 먼저 공격하고 있었다. 그것도 4개의 기계 팔을 모두 써 가면서 말이다.
기계 팔 하나하나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녀석에게도 그만한 여력은 없다는 소리.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베롬이 검을 쥐고 힘차게 휘둘렀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검붉은 참격이 무방비한 기계 장치의 신을 때렸다.
놈의 고개가 베롬이 있는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바이저 헬멧 안쪽에서는 전에 없던 황금색 안광과 함께, 쩍 벌어진 입이 보였다.
베롬이 잽싸게 몸을 빼려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주먹이 녀석의 턱을 후려쳤다.
콰앙!
“날 잊으면 곤란하지!”
휘론이 날아와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놈의 고개가 옆으로 휙 꺾이며, 황금 안광의 척력이 애꿎은 하늘로 향했다.
퍼엉!
하늘 위에 있는 구름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평소 증기로 인한 공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이슬라 마키나의 하늘에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할 틈도 없이, 등 뒤에 위대한 혼을 동반한 로테론이 기계 장치의 신을 향해 다리를 내리찍었다.
그러나 분노한 기신은 그런 알량한 공격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듯 강한 적대감을 불태우며 로테론을 응시했다.
이런.
로테론이 미처 피할 타이밍을 놓친 그 순간.
[물러나라]로테론은 누군가 자기 몸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감각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