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28
◈ 628화 마지막 핏방울 (2)
“스승님이 놈과 만난 이후에 행동이 바뀌셨다고 하였으니, 놈들을 쫓으면 스승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있겠군.”
“그렇소. 다만…….”
한스는 말끝을 흐렸다.
“그게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소. 레더벨크를 떠나 움직인 성기사들의 무장이 심상치 않은 것도 있지만…….”
“또 뭐가 있나.”
“……그 추기경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소.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자들이, 어느 한 지점으로 합류하고 있다는 소리요.”
루드거의 눈썹이 꿈틀였다.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루드거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정확히는 나도 모르오. 다만, 파트리치오 추기경이 루멘시스 교단의 권한으로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거고, 그에 응하는 자들이 꽤 상당하다는 거요. 머릿수도, 실력도 할 것 없이.”
브레투스 성국이 문을 걸어 잠갔다고 하더라도 루멘시스 교단이 종교로서 지닌 영향력은 상당했다.
심지어 이번 악마 사태가 널리 퍼지면서 루멘시스 교단이 더욱 세계 정세에서 발언권을 얻게 된 상황.
이전까지 꾸준하게 루멘시스교를 숭상하던 자들이 부름에 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네 반응을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대단한 작자들이 모인 모양이군.”
“……그렇소. 이름을 대면 형님들도 충분히 알 만한 자들이오.”
“누구냐. 이번 일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우선, 제국 내부에서 호응하는 사람 중에서 가장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루모스 가문이오.”
“루모스…….”
루드거는 루모스를 떠올렸다.
제국의 3대 가문 중 하나이며 신실한 루멘시스 교단의 신자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현직 가주 케이든 루모스는 냉철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내로 유명했다.
비록 원치 않은 사생아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피를 타고난 플로라에게 대한 태도만 봐도 그랬다.
냉정한 신앙인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루모스 가문이, 제국의 명령보다도 추기경의 말을 듣고 있다는 건가?”
“원래 루모스 가문의 위세는 황실에서도 함부로 못하지 않았소. 게다가 이번에 악마 사태로 확실의 이미지는 추락하고, 반대로 루멘시스 교단의 세가 늘었으니 그들로서는 눈치를 보지 않고 움직일 명분을 얻은 거요.”
“가문의 주 병력이 다 움직인다는 소리겠군.”
“그뿐만이 아니오. 무려 그 파블로 가문에서도 움직이고 있소.”
“파블로 가문이라. 매우 익숙한 이름이군. 유명한 마도명가가 루멘시스 교단의 뜻에 따르는가.”
파블로 가문은 루드거와도 인연이 있었다.
그리 좋은 인연은 아니었는데, 바로 파블로 가문의 망나니인 알베르트 파블로가 로열 스트리트에서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파블로 가문은 자식을 이렇게 만든 로열 스트리트에 보복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지만, 도시에 흐르는 강에 떠내려가는 시체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사람을 더는 보내지 않았지만, 은근하게 로열 스트리트를 압박하는 입장을 꾸준히 취해 왔다.
“그 망나니는 신경 쓸 필요 없소. 가장 위험한 건 그 형이라는 작자요.”
“알지. 알론 파블로.”
루드거도 알고 있다.
알베르트 파블로의 형이자, 파블로 가문의 아주 젊은 가주.
대대손손 마법사로서 가문의 명성을 쌓아 온 파블로 가문에 본격적으로 ‘마도명가’라는 칭호를 안겨 준 위인이자 살아 있는 가문의 전설.
알론 파블로.
다른 이름으로 말하기를.
─적색(赤色)의 마법사.
“색의 칭호를 지닌 마법사라. 설마 젊은 나이에 가주나 오른 자가, 그렇게 독실한 교단의 사람인 줄 몰랐는데.”
“그래도 그 하나면 차라리 나았을 수도 있소. 하나로 끝나지 않으니까 문제인 거지.”
“또 누가 있지?”
“번개를 다루는 자색(紫色)의 마법사, 미치광이 코일와트. 세계 2위의 용병단 황금률 부대. 피의 악몽의 밤에서 살아남은 사냥꾼 협회까지.”
거기에 더해, 브레투스 성국의 최강 방패라 할 수 있는 빛의 수호 성기사단.
대륙 곳곳에서 암암리에 일을 처리하는 비밀부대 특무 11과.
신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추기경 다음으로 권한과 신성력을 지닌 대주교들까지.
그야말로 쟁쟁하다 못해 뛰어난 실력자들.
국가와 전쟁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승산이 있다 못해 넘치는 병력이었다.
“그들이 지금 어디로 모이고 있는 거지?”
“그 흔적을 지금 열심히 쫓고 있소. 아마, 이른 시일 내에 답이 나올 거요.”
“최대한 빨리 알려 줬으면 좋겠군.”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말끝을 흐린 한스는 루드거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일 알게 된다면, 형님은 어쩔 거요? 설마 스승님을 구하기 위해서 그 사지로 뛰어들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그건…….”
“물론, 형님의 마음은 이해하오. 하지만 상대방의 전력이 만만치 않소. 스승님을 구하겠다고 그놈들과 싸우려면, 형님 혼자가 아니라 우리 오웬즈 모두가 나가야 할 거요.”
과연 오웬즈가 모두 나서도 될지도 의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형님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소.”
“…….”
“준비는 모두 끝났소. 오랜 세월 동안 모아둔 돈을 모두 써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지. 형님이 그토록 찾던 물건도 다 찾았고 말이오. 그런데 여기서 전부 끝내겠다는 거요?”
한스의 지적은 정당했다.
루드거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루드거가 여기서 그란데르를 찾으러 간다면, 그때는 그의 모든 계획이 허물어지고 만다.
“나는 아직도 형님이 뭘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건지 모르오. 하지만 이것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은 알 수 있소. 그것을 코앞에 두고 전부 포기하겠다고? 그러면, 그걸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온 우리는 뭐가 되는 거요?”
“그래도 내 스승님이다.”
“……형님의 스승님께 이야기를 들었소.”
이야기라는 말에 루드거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분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다닌다고 하시더구려. 그리고 형님과도 약속했다고 하지 않았소. 언젠가, 때가 되면 형님이 스승님의 삶을 끝내 주기로 했다고.”
“그건…….”
루드거는 이슬라 마키나에서 그란데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더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 말에 루드거는 왜 그런지 의문을 품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렴풋이 안도감을 품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나 다름없는 그란데르를 죽이지 않아도 됐으니까.
또다시 자기 손으로 소중한 사람을, 죽음의 안식을 안겨 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안다.
그란데르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것은 죽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이다.
루드거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이, 그토록 원하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아마 지금 모이는 병력은, 추기경이 부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형님의 스승님이 끌어모은 인원일 것이오. 반대로 그 정도가 모였으니, 형님의 스승님 정도 되시는 분이 죽을 수 있다는 거겠지.”
“…….”
“그것은 형님의 스승님이 원하는 것이었소. 형님도 그걸 알고 있지 않소. 그런데 그분의 위치를 알면? 형님은 구하러 갈 거요?”
그것이 그란데르 스승님이 바라지 않는 일인데도?
한스의 지적에 루드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루드거는 모든 렐릭의 파편을 다 모았다.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모두 모은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했다.
굳이 따지면, 진정한 목표를 위해 준비해 둔 일을 시작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최선을 다해 준비를 갖췄다고 한들, 사소한 실수 하나 때문에 전부 망칠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나는…….”
“……형님의 심경이 복잡하다는 건 알겠소. 일단 당장에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 레더벨크로 돌아간 뒤에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도록 합시다.”
한스는 루드거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를 거세게 다그치기는 했지만, 이 또한 한스의 본심은 아니었다.
루드거가 자기 일을 잘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반대로 그란데르를 구하기 위해 나서 주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루드거에게 무어라 말을 한 것은, 그란데르가 한스에게 전했던 말 때문이었다.
─내 바보 같은 제자 놈은 언젠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나약한 생각 때문에 제 발목이 잡힐 거다. 그러니 그때를 대비해서, 네가 직접 제자 놈에게 한마디 따끔하게 해 주거라.
그때의 한스는 ‘제가 어떻게 형님에게 뭐라고 말합니까?’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란데르도 그 말을 끝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유독 그란데르가 했던 그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 이유는.
‘제길. 나더러 뭐 어쩌라는 거요.’
한스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구름을 가로지르는 비행선은 빠르게 레더벨크로 향했다.
* * *
루드거는 마침내 레더벨크로 돌아왔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루드거는 곧바로 일에 들어갔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레더벨크가 어떻게 됐는지, 정세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올라오는 보고를 계속 확인했다.
세오른에는 가지 않았다.
현재 세오른은 기한이 없는 휴교 상태다.
당장에 뭐라도 해서 이 복잡한 머리를 가라앉혀야 하는 루드거에게는, 오히려 가면 손해였다.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는 루드거에게 비올레타가 커피를 한 잔 가져와 그의 책상 위에 놓았다.
“드세요. 오너.”
“비올레타인가. 고맙군.”
얼굴에서 무테안경을 벗은 루드거는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가볍게 주물렀다.
“돌아오시고 나서 쉬지도 않으시고, 너무 일을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에요?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이제 곧 막바지니까.”
비올레타는 루드거가 말한 막바지라는 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루드거가 걱정되었다.
그는 마치 일부러 자신을 혹사하려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바깥의 추이는 어떻지?”
“최근 들어 비슷해요. 루멘시스 교단을 믿고 섬기는 신도들의 숫자가 날이 다르게 늘어나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점이겠죠.”
“로열 스트리트에도 상당수 빠져나간 모양이더군.”
“그렇죠. 꿈의 악마 사태 이후에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가족이,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니 누구라도 슬퍼하는 게 당연해요.”
그 슬픔의 도피처가 되어 주는 것이 지금의 루멘시스 교단이었다.
루드거는 그 사람들을 탓할 수 없었다.
커피를 한잔 홀짝이려는 그때, 문을 열고 한스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평소의 한스였다면 노크부터 했을 텐데,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사태가 긴박하다는 소리리라.
루드거는 어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동자를 떠는 한스를 보며 차분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형님. 그,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소.”
“……손님인가. 알겠다.”
“누구인지 묻지는 않으시는 거요?”
“대략 짐작이 가거든.”
루드거는 커피 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게 됐군. 느긋하게 티타임이라도 가져 볼까 했는데 말이야.”
어쩌면 조금 전 커피를 마실 수 있던 찰나의 시간이,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의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드거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만나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전에 보았던 것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는 여인을 보는 순간 루드거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오랜만이군.”
“네, 오랜만이에요.”
눈을 가리는 티아라를 쓴 렘리아 제사장이 루드거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루드거의 반말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이것이 자연스럽다는 듯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군. 루멘시스 교단의 제사장이 다짜고짜 도움이 되겠다고 찾아오다니. 그 말을 믿을 것 같나?”
“브레투스 본국에서 성물의 사용신청에 대해 허가가 났어요.”
갑자기 성물의 이야기가 나오자 루드거가 눈동자를 좁혔다.
성물(聖物).
이름 그대로 성스러운 물건으로서, 신성력으로 작동하는 아티팩트라 볼 수 있었다.
특히 브레투스 성국의 성물은 일반적인 아티팩트를 넘어 유물에 준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성물에 한해서 그렇지, 성국에서 특별하게 관리를 하는 성물의 경우에는 유물을 넘어 렐릭에 준하는 힘을 지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소문이 으레 부풀어지기 마련이라지만, 그렇다고 근거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이번에 허가가 나온 성물은 본국에서도 아주 극비리에 다뤄지는 물건이에요. 신의 말뚝이라고 부르죠.”
“신의 말뚝…….”
말뚝이라는 말에 불안감을 느낀 루드거를 향해, 렘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뚝으로, 교단의 오랜 적을 영원히 없애 버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드거로부터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