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29
◈ 629화 마지막 핏방울 (3)
루드거의 살기에 반응을 한 것은 렘리아를 따라온 호위 성기사였다.
“감히!”
성기사들은 목깃까지 지퍼를 걸어 잠근 새하얀 백색 코트를 입었고, 그 위에 어깨와 팔뚝, 정강이에 은색 갑주를 덧댔다.
이때다 싶어 허리춤의 검을 뽑은 그들은 속으로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제사장님께서 직접 볼 일이 있다고 하셔서 따라 나오기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상대가 알아서 날을 세워서 명분을 만들어 주니, 그들로서는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사장님께 무슨 망발이냐! 네놈의 혀를 잘라서 참회의 뜻을 새겨 주겠다!”
“참회의 뜻? 지금 내 앞에서 참회를 입에 담았나?”
루드거가 큰 목소리를 낸 성기사를 응시했다.
그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성기사는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뭐, 뭐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검을 쥔 손바닥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루드거의 살기를 마주하는 순간 그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증유의 존재와 맞닥뜨린 기분이 들었다.
신을 섬기며 제사장을 지키는 검이어야 할 자신이, 고작 이런 인간에게 겁을 집어먹는다고?
일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빠드득.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어떻게든 기세를 떨쳐 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성기사는 진창에 잠기는 것 같았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궈지고, 눈의 흰자가 붉은 실핏줄로 뒤덮이려는 그때.
“거기까지만 해 주시겠어요?”
“…….”
숨통을 조이던 살기가 탁 하고 풀렸다.
루드거는 렘리아 제사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렘리아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를 위해서 나서 주신 분인데,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어서요.”
“레, 렘리아 제사장님.”
“두 분은 제가 괜찮다고 말하기 전까지 가만히 있어 주세요. 여기서 날뛰는 것은 원치 않거든요.”
“그건…….”
“아, 제 말은 그거예요. 어차피 두분이서 무슨 수를 써도 눈앞의 저분께는 안 되거든요.”
그 말에 호위 성기사가 입술을 짓씹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렇다고 대꾸하지 못했다.
조금 전의 기세 싸움만으로 루드거와 그들의 실력 차가 현저하게 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방금 이야기를 계속할게요. 성물의 출입이 허락되었고, 이미 본국을 떠나 수송 중이에요. 아마 곧 목적지에 도착하겠죠.”
“그래서, 지금 날 더러 내 스승님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걸 가만히 들으라 이건가?”
“그럴 리가요?”
렘리아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제가 말했잖아요. 도움이 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요.”
“도움. 도움이라.”
그렇게 읊조린 루드거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쿠웅!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배로 무거워지며 렘리아의 어깨를 짓눌렀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의 몸이 비틀거리며 휘청였다.
항상 웃는 얼굴로 굴던 렘리아의 표정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루드거는 싸늘한 시선으로 렘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렘리아를 지켜야 할 호위 성기사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들 또한 루드거의 기세에 짓눌려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내가 언제 도움을 바란다고 했지?”
“그, 그건…….”
“나에게 무언가 잘 보일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나 본데, 의도와 다르게 목이 상당히 뻣뻣하기 그지없군.”
렘리아는 떨리는 입술을 어떻게든 끌어 올려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찾아왔다면, 간절하게 부탁했어야지. 도움이 되고 싶으니, 부디 말을 들어 달라고 말이야.”
오만한 말이다.
루드거의 기세에 짓눌린 성기사는 루드거가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감히 브레투스 성국의 제사장에게 저런 망발이라니?
뒷감당이 두렵지 않기라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죄, 송……합니다.”
렘리아가.
브레투스 성국의 제사장이자 성녀의 자매가.
루드거에게 사죄의 말을 입에 담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
렘리아가 진심을 담아 사과하자 루드거는 그제야 자신의 기세를 거두었다.
겨우 안정을 되찾은 렘리아는 한층 창백해진 얼굴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루드거는 그런 렘리아를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말해라. 너희가 대체 뭘 하려는지.”
* * *
그란데르는 산의 꼭대기에 섰다.
산골짜기 저 너머로 거대한 분화구 같은 것이 보였다.
주변은 숲으로 무성한데, 저 분화구에만 마치 결계가 처져 있기라도 한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잡초나 벌레도 말이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란데르의 곁에 한 남성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파트리치오 추기경.
그는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저 분화구에는 생명이 태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저곳에만 죽음이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당신이 그토록 바라는 결말을 맞이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 말에 그란데르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저런 죽음의 땅조차도 내게 안식을 주지 못했다.”
“예. 저것만으로는 그렇겠죠. 하지만 본국의 성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신의 말뚝.
그랬다. 그란데르가 파트리치오의 저런 낯짝을 마주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은, 그 성물의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과거 저곳은 방대한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죠. 이 주변에 우거진 숲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대악마 수르나를 상대로 아르케니스 성녀님이 최후의 결전을 벌이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성녀님의 희생 끝에 대악마 수르나를 물리쳤지만, 악마의 기운 때문에 저곳은 죽음만이 남게 됐죠.”
“하. 물리쳤다라.”
“왜 웃으시는 거죠?”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도 상관없지.”
“후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죽음은 저희 본국에서도 바라는 것. 루멘시스 님께 기도를 드려 담금질한 성물, 신의 말뚝이라면 충분히 죽음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그걸 위해 저런 잡것들을 끌어모은 건가?”
분화구에서 떨어진 그란데르의 시선이 뒤편의 능선 아래로 향했다.
산 아래에 펼쳐진 곳에 막사가 지어져 있었으며, 그곳에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루멘시스 교단의 부름에 응해서 모인 자들.
하나하나가 정예에 가까운 사람들이며, 그중에는 색의 칭호를 지닌 마법사가 무려 둘이나 있었다.
그런 자들을 잡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란데르가 아마 유일할 것이다.
그녀야말로 살아 있는 마법사들의 전설이자 우상, 모든 마도의 길을 걷는 자들의 정점인 8위계 마법사였으니까.
“저런 것들을 얼마나 모은다고 한들 내게는 소용없는 일이다.”
“압니다. 그럼에도 모은 것은 저희에게도 나름의 명분과 실리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아무것도 없이 말뚝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름의 치열한 전투가 있는 것이 그림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걸 빌미로 너희 교단의 위업을 더욱 공고히 할 생각이고.”
그란데르의 지적에 파트리치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기왕 하는 거면 서로에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
그란데르로서는 자신의 죽음이, 루멘시스 교단의 성장세와 맞물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죽음이다.
그걸 위해서 세상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녔다.
‘그 바보 제자 놈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본래라면 그녀는 루드거의 손에 죽었어야 했다.
그걸 위해 루드거를 가르쳤고,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루드거와 함께 지내는 날이 점차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새벽의 안개가 서서히 옷 위로 스며들 듯.
정신을 차려 보니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발견한 그란데르는 심장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독이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키운 제자에게 정을 줘 버리다니.
혼자 영원의 세월을 사는 그녀는 다른 사람과 절대로 인연을 맺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에겐 인간은 물론이고, 엘프 또한 그저 스러질 목숨이 지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죽고, 그 자식이 태어나 죽고, 후손이 태어나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란데르는 언제나 혼자였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신의 그릇이 될 루드거를 비수로 삼아 자신을 죽게 만들려던 그란데르였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루드거를 키우면서 그 아이가 성장하고, 마법을 배우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그란데르는 루드거에게 전에 없던 따스한 감정을 품게 됐다.
모성애.
웃긴 일이다.
오래 살아온 진조의 흡혈귀가, 성황의 핏줄에게 모성애를 느끼다니.
괴물이 신의 자식을 키우는 꼴이 아닌가.
이것이 단지 일방적인 마음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못난 제자 놈 또한 여린 심정의 소유자였던 것이 문제겠지.
죽이고 죽어야 할 사이에서 정을 품어 버리다니.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는 안 됐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이 어찌나 제멋대로에 추측할 수 없는 건지.
마법 위계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자신할 수 있는 자신이, 이런 사소한 마음 하나에 휘둘려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이별은 두렵지 않았다.
진정 두려운 것은, 이제는 자식과도 같은 제자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일이리라.
아마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루드거가 자신의 손으로 리네의 어머니를 죽인 일 때문이겠지.
‘성국의 공포이자 영생의 괴물인 내가, 고작 인간 하나를 걱정해서 조마조마해하는 꼴이라니. 실로 우습기 짝이 없어.’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그녀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신의 힘을 벼린 성물의 힘이라면, 이 세계의 틀 안에서 갖춰진 불로불사라 하더라도 없앨 수 있을 테니까.
‘제자 놈도 자신이 목표로 한 렐릭을 모았으니, 내게 신경을 쓰지 못할 터. 이 주위에 모인 잡것들의 병력을 생각하면, 그 녀석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오지 않겠지.’
그러니 됐다.
이걸로 충분했다.
그란데르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 *
루드거는 그란데르의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란데르의 외양에 맞춰서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이었지만, 정작 방의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어딘가 중요한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허전하다.
‘스승님께서는 떠나셨다.’
그란데르의 목적은 이 영원한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
그것을 위해서 그란데르는 성국에 찾아왔었고, 버려진 루드거를 거둬다가 대신 키웠다.
자신을 죽일 비수로 만들기 위해서.
루드거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란데르는 자신의 목적을 애초에 숨긴 적이 없었고, 루드거에게 항상 같은 말을 하곤 했다.
‘그분은 자신의 끝을 맞이하러 가셨다.’
그런 그란데르가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떠나 버렸다.
마음이 바뀌었나?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죽음을 바랐다. 이 지옥 같은 삶이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녀가 약속을 취하한 것은 새로운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가족같이 지내며 정이 들어 버린 제자의 손이 피를 묻히지 않아도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길을.
루드거는 눈을 감고 그란데르와의 과거를 회상했다.
-이 아둔한 녀석. 술식을 그렇게 그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느냐?
-시약의 조합은 정량이 생명이다. 어긋나는 순간 다시 하게 될 줄 알아라.
-움직이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마라. 네놈은 굼벵이라도 되는 거냐? 차라리 그게 더 낫겠구나.
-자만하지 마라. 세상천지에 너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는 얼마든지 있다. 너는 잘 쳐줘도 중간에 불과해.
그란데르에게 마법을 가르침 받던 기억은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
그란데르는 제대로 된 칭찬의 말을 해 주지 않았다.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지고 와도 루드거가 들은 것은 질책과 힐난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루드거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 이 녀석.
어처구니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그 눈빛에 아른거리는 뿌듯함과 따스함을.
입으로는 잔소리와 험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 목소리에 깃든 자상함을.
언제나 밥을 차려 달라고 제멋대로 굴던 그란데르가.
루드거가 처음으로 아파서 고열에 시달렸을 때, 곁에서 간호해 주고 직접 죽을 끓여 줬던 일을.
그 사실이 부끄러운지 루드거가 낫기 무섭게 뭘 하냐고 다그쳐 하던 그 모습까지.
루드거는 말없이 그란데르의 방에서 나왔다.
문 옆에서 등을 기댄 채 대기하고 있던 알렉스가 물었다.
“뭐야. 가는 거야?”
“한스가 막으라고 하던가?”
“그럴 리가. 오히려 녀석은 리더가 갈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더라고.”
“그러는 너는 어떻지? 내가 가지 못하게 막을 건가?”
“뭐, 리더가 세운 계획이 이제 코앞까지 다가오고, 슬슬 끝이 눈에 들어오기는 하는데…….”
알렉스는 피식 웃었다.
“거기서 너무 정론만 따라가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야. 리더 마음대로 해도 좋아.”
“빈말로라도 따라가겠다는 말은 안 하는군.”
“어차피 허락 안 해 줄 거잖아?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대신, 다시 돌아올 거지?”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단한 자신감이네.”
알렉스는 천천히 멀어지는 루드거의 등에다 대고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루드거는 돌아보지 않은 채 답했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