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30
◈ 630화 마지막 핏방울 (4)
루드거가 떠났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오웬즈 멤버들은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하아. 돌아 버리겠구려. 이렇게 될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한스는 골이 아프다는 듯 미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정말 오너를 혼자 보내도 괜찮은 건가요? 저희라도 도와야죠.”
비올레타는 루드거가 혼자 떠났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조바심이 났다.
루드거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이 자리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은 사지였다.
대륙의 강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선포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했다.
루드거가 그런 곳에서 대화로 좋게 마무리하자고 갔을까?
그럴 의도로 갔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필시 싸움으로 번지겠지.
“본인이 내린 선택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어.”
평소 과묵하게 사태를 관망하기만 하던 판토스가 루드거를 두둔하며 나섰다.
그 말에 동의한 것은 알렉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따라가겠다고 한다고 한들, 리더가 그걸 좋아하겠어? 차라리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 주는 게 맞아.”
“그러다 오너께서 다치기라도 한다면요?”
“다쳐?”
비올레타의 걱정에 반응한 것은 판토스였다.
그는 평소에 보여 주지 않던 코웃음을 쳤다.
“이 자리의 모두가 힘을 합쳐서 공격한다고 한들, 그 남자가 꿈쩍이기라도 할 것 같나?”
“그게 무슨…….”
“너는 모른다.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겠지. 우리가 봐 온 그 남자의 힘은, 그가 지닌 것의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심해 깊은 곳에 잠긴 빙산처럼 말이지.”
판토스는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처음 사냥감을 노리고 루드거와 마주하게 됐을 때.
그리고 그와 싸우면서 그가 펼치는 힘의 일부를 보았을 때.
이 남자를 넘어서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이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혈통에 구애받는 수인족이면서, 거의 돌연변이에 가까운 영웅의 재능을 타고난 판토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짐승의 감과 무인으로서의 직감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내뱉었다.
지금 루드거는 죽으러 가는 길이 아니라고.
“우리는 그저, 앞으로 있을 계획을 열심히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그가 돌아왔을 때, 곧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판토스의 말에 한스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어차피 여기서 떠들어 봤자 지금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오. 우리는 형님을 믿고서, 우리의 맡은 일을 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니 믿을 수밖에.
오웬즈의 모두가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 * *
밤이 되었다.
그란데르는 분화구의 중심에 홀로 섰다.
성녀와 대악마가 싸우면서 생겨 버린 여파로, 생명체가 자라나지 않는 땅.
하지만 그란데르는 안다.
이 땅에 생명이 자라지 못한 것은 대악마 수르나의 탓이 아니라, 지독할 정도로 깊게 내려앉은 ‘신력’ 때문이라는 걸.
그날, 이 격전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는 않다.
세간에 알려진 악마와 성녀의 싸움은 그저 브레투스 성국에 의해 수정된 역사일 뿐.
진실은 따로 있을 터였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마지막이 돼서 그런지 괜히 감상적으로 변해 버린 모양이다.
그란데르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분화구 바깥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대륙 전체로 놓고 봐도 상당한 힘과 명성을 지닌 자들.
그들은 시간이 되는 순간 그녀를 향해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의미가 없는 행동이거늘.’
저런 놈들의 공격으로 그녀를 죽일 수 없다.
그럼에도 자정에 공격을 퍼부으려는 것은 일종의 보여 주기였다.
브레투스 성국을 오랫동안 위협해 온 진조의 흡혈귀를, 성국의 토벌대가 마침내 사냥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쇼.
그란데르는 굳이 그런 짓을 할 바에 깔끔하게 성물로 죽음을 받길 원했지만, 교활한 파트라치오는 이 모든 과정을 골수까지 빨아먹을 작정이었다.
‘녀석은 어차피 보여 주기일 뿐이고, 금방 끝난다고 말했지만.’
그란데르는 알 수 있었다.
파트라치오는 자신을 죽이는 것 외에도, 다른 무언가 목적이 있어 보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자한 미소로 그 속내를 감추고 있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란데르의 통찰력은 그런 가면을 손쉽게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그란데르는 굳이 파트라치오의 속내를 지적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다. 놈이 무슨 계획을 세우든 그건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죽음만 얻으면 돼.’
죽음.
그녀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란데르는 그것을 안식, 혹은 위안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절대로 얻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서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리는 그것.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토록 원하던 것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정작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이 제자 놈의 얼굴이라니.’
의도치 않은 이별이라는 것은 안다.
멋대로 약속하고, 멋대로 약속을 파기하고.
아마 루드거는 고마움보다도 당혹스러움이 앞서지 않을까.
전부 말해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함이 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전부 끝이다. 미련은 전부 버려 두기로 했다.
자신은 영생의 괴물.
녀석은 유한한 인간.
지금 순간은 자신에게 실망감을 느끼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겠지.
그란데르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판단이었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어차피 자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마침내 자정이 되었다.
그란데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밤하늘 위로 별빛이 가루를 뿌린 듯 잔뜩 박혀 있었고, 달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면서도 처량하게 보였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솟구치는 불빛들이 있었다.
신성 주문과 마법, 현대 화기.
그 숫자는 수천이 넘었고, 그 대상이 향하는 곳은 분화구의 중심.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 이것도 마지막이니, 모처럼 가는 길에 어울려 주도록 할까.”
그란데르의 주위로 핏빛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붉은 기운이.
* * *
“시작했나.”
분화구에서 멀리 떨어진 능선 아래의 막사에 홀로 앉아 있던 클린턴 로트쉴트가 바깥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브레투스 성국의 오랜 적이자 영생을 사는 존재, 흡혈귀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클린턴은 그 토벌대의 자리에 참석했지만, 그렇다고 싸움에 직접 끼지는 않았다.
그에겐 흡혈귀니 성국의 적이니 하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단지, 그 상대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8위계인 [그란데르] 등급의 마법사라는 점만이 신경 쓰일 뿐.
‘위계에서 이름을 딴다고는 했지만, 설마 여전히 살아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클린턴은 그란데르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 보았다.
-인간치고는 제법이구나.
겉모습은 영락없는 인형같이 귀여운 소녀가, 다 늙어 버린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 이거라니.
인간으로서 7위계인 [임페라] 등급에 오른 그에게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상대와의 마법 실력을 생각하면 클린턴은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8위계 마법사에게 제법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뿌듯함마저도 있었다.
단지 클린턴이 몰랐던 것은 그녀가 흡혈귀이며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는 점이리라.
역사는 그녀를 성국의 적이자 끔찍한 흡혈귀라 말하겠지만.
클린턴은 적어도 마법사로서의 그란데르를 높게 평가했고, 그녀의 죽음은 이 대륙의 마법의 퇴보를 불러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막기에는 7위계라는 이름조차 부족했고, 클린턴은 결국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산등성이 너머에서 폭발음이 들려온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천막 너머로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일 정도다.
분화구 쪽에 가까이 다가가면 폭발과 섬광으로 눈과 귀가 멀어 버릴지도 모르리라.
무수한 기운이 한 점을 향해 집중되며 파괴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지금까지 느껴 본 적이 없는 거대한 힘이 고치를 감싸듯 웅크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중간중간 붉은 번개 같은 것을 뿌리며 저항하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량의 공격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클린턴은 안다.
그녀가 진심을 발휘하면, 저곳에 모인 사람들은 삽시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걸.
그란데르가 이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동참의 뜻을 밝혔기에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서커스야.’
클린턴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마법사가 바라는 이상의 경지.
그것을 지닌 존재가 비록 인간이 아닌, 흡혈귀일지라도 클린턴은 마법사로서 그란데르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런 그란데르가, 8위계라는 명성에 맞지 않게 이런 최후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마법이, 결국 이런 것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서.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나서서 뭘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인간 중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며 한때 최연소 현자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의 발언권은 마법사 업계에서 매우 거대했으며, 그 여파는 국가에도 미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클린턴이 깨달은 사실은, 7위계에 도달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현실이었다.
6위계일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최고라 생각했다.
그것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닫게 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 세상의 일그러짐을 알게 되고, 그것을 자신은 도저히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클린턴은 그저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옳으니까.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가 최후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야.”
클린턴은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막사 밖으로 나왔다.
말릴 수도, 그렇다고 끼어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마음속으로 모든 일이 잘 끝나길 비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클린턴은 막사를 떠나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 장소에 있으면 괜히 기분이 더 더러워질 것 같아서.
그렇게 움직이려던 클린턴은 저 멀리서 느껴지는 어떠한 기운에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저건, 뭐지?”
* * *
파트리치오 추기경은 분화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서서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무대라 할 수 있는 죽음의 분지에 불빛이 번쩍이며 폭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눈이 아프고 귀가 따가울 정도.
분화구 안쪽은 그야말로 용광로나 다름없었다.
어떠한 쇳덩어리를 넣더라도 순식간에 녹아서 끓어 버리는 용광로.
저 안에서라면 대륙의 어지간한 강자도 세포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소멸할 터.
하지만 저런 환경에서도 살아 있는 존재는 있었다.
정확히는 ‘죽을 수 없는’ 존재였다.
“추기경님.”
파트리치오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는 상급 사제가 다가오며 물었다.
“신의 말뚝 사용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다만 사용은 조금 나중으로 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거든요.”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당장이라도 저희 교단의 주적을 없애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하하. 멜빈 상급 사제님께서 궁금함이 드셨나 보군요. 맞습니다. 신의 말뚝은 저희 교단의 주적을 제거하기 위해 가져온 특급 성물이죠. 그걸 당장 사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멜빈 사제. 이 일은 단순히 주적의 제거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저것은 사실 진짜 목표를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거든요.”
멜빈 상급 사제는 파트리치오의 고백과도 같은 말에 화들짝 놀랐다.
파트리치오가 말한 미끼가 교단에서 오랫동안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진조 흡혈귀가 아니었던가?
순수 무력만 놓고 보면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런 괴물을 고작 미끼로 사용한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대체, 그 진짜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벌써 말하면 재미가 없죠. 하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파트리치오는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었지만, 멜빈 사제는 그의 미소가 어딘가 소름이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오지 않는다면요?”
“물론 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거대로 어차피 교단의 주적을 없앨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때 멀리서 한 성기사가 다가와 파트리치오를 향해 귓속말을 전했다.
말을 전해 들은 파트리치오의 입가에 호선이 더욱 길고 짙어졌다.
“준비하세요.”
“네, 네?”
“신의 말뚝을 사용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