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31
◈ 631화 신의 말뚝 (1)
그란데르는 크레이터의 중심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주위에서 신성 마법과 마법, 현대 화기가 비처럼 쏟아졌지만, 그녀가 주위에 두른 붉은 보호막을 뚫기는커녕 흠집도 내지 못했다.
이쪽이 반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약이라도 오르는지 더욱 공세를 강화하지만, 그란데르가 보기에는 의미 없는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기력이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토록 원하는 죽음이 다가오는데, 기쁨과 만족감보다는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그란데르는 자신이 왜 이런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부 그 못난 제자 놈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어딜 가서 속이나 썩이고 다니는 녀석과 헤어진다는 사실을,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없으면 그 녀석은 항상 무리하겠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 멀리, 이슬라 마키나라는 섬에서 또 괴악한 놈과 싸우지 않았던가.
루드거가 흘린 피의 냄새를 맡고 위치를 특정해서 마법으로 지원을 해 줬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제자 놈의 목숨은 위태로웠을 것이다.
그런 경우가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전에는 드림랜드에서의 일도 있었고, 또 그전에는 자신이 잠든 사이에 자신의 피를 사용하기까지 하지 않았나.
어떤 시약보다도 뛰어난 힘을 발휘하는 자신의 피를 사용했을 정도라면 제자 놈이 보통 난적을 만난 것이 아니었을 터.
그란데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자 놈을 위해서라도 남아 주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그란데르는 고개를 저었다.
죽으러 가는 와중에 산 사람을 걱정하다니.
그 녀석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
주위에 그가 직접 모은 동료들도 있지 않던가. 그란데르의 눈에 차지는 않았지만, 다들 특이한 점을 하나씩 지니고 있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곧 떠날 몸.
굳이 미련을 남겨 둬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짜증이 일어났기에, 그란데르는 붉은 막 바깥을 향해 가볍게 마법을 쏘았다.
꽈르릉!
귀청을 찢어 버릴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대기를 가르고, 공간을 찢는 마법이 펼쳐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평범한 혈마법이었지만, 토벌대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온다! 방어해!”
“신성 주문을 펼쳐라!”
“가진 걸 모두 쏟아부어!”
토벌대는 그냥 당하고 있지 않았다.
언제 갑자기 반격이 날아올지 모르기에 상시 대비 중이던 그들은 이때구나 싶어서 준비한 방어진을 발동했다.
성국의 사제들이 읊는 기도문과 함께 황금색으로 빛나는 벽이 생성되었다. 마법사들의 마력이 담긴 방어 마법까지 덧대어졌다.
그 위에 그란데르의 마법이 떨어졌다.
콰칭!
다중으로 펼쳐진 방어진이, 그란데르가 가볍게 뿌린 일격에 산산조각이 났다.
성스러운 기운을 두른 성기사들이 방패를 들고 나서며 신성력을 방출했다.
“루멘시스시여! 우리에게 가호를!”
“빛의 축복을!”
방패에 신성력이 깃들고, 그들의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펼쳐졌다.
상급 팔라딘부터 사용할 수 있다는 가장 뛰어난 방어 기술이었다.
여러 명의 성기사가 동시에 방패를 들고 마법을 받아 냈다.
다중 방벽을 뚫으며 약화된 혈마법은 성기사들의 방패까진 뚫지 못했다.
하지만 막아 낸 성기사들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성기사는 뒤로 멀리 튕겨 나가 피를 토했고, 다른 성기사도 자리에 주저앉아 방패를 든 팔을 부르르 떨었다.
신성력으로 육체가 배로 강화되었고, 교단의 성법도 몸에 둘렀는데, 팔이 부러지고 전신에 탈력감이 들었다.
가볍게 쏜 마법이 저 위력이었다.
그녀가 진심을 보였다면, 아무리 뛰어난 성법이라 하더라도 가루조차 남기지 않았을 터.
그 사실을 모르는 토벌대는 그란데르의 마법에 몸을 떨면서도, 저 괴물의 공격을 막아 냈다는 사실에 고양감을 느꼈다.
그 순간 멀리서 신호가 날아왔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새하얀 신성력의 기운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추기경님의 신호다.”
“드디어 신의 말뚝을 사용하는 건가.”
마침내 기다리던 것이 왔다는 소식에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교단의 성물을 사용한다는 소식에 마법사들과 용병, 사냥꾼들 또한 화색이 돌았다.
안 그래도 언제 저 괴물이 쓰러지는지 기약이 없어서 지치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이 싸움에 끼어든 것은 루멘시스 교단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들이 준비했다는 특급 성물의 힘을.
신의 말뚝.
비장의 병기라 할 수 있는 그걸 사용한다는 소식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리고 저 멀리서 빛무리와 함께 무언가가 산등성이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오. 저것이 신의 말뚝인가.”
“척 봐도 비범해 보이는군.”
신의 말뚝은 십자가처럼 생겼다.
다만, 말뚝이라는 이름답게 아랫부분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으며,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성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런 말뚝을 들고 있던 성기사들이 말뚝을 자리에 세웠다.
저걸로 대체 뭘 어쩌려지 하는 순간.
새하얀 말뚝이 그보다 더 눈부신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하늘을 향해 치솟는 새하얀 빛의 기둥이 저 구름 너머로 빨려들어 가듯 사라졌다.
“교단의 특급 성물이 발동했다.”
그 광경을 크레이터 근처에서 지켜보던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기적을 목도한 사람처럼 감격에 몸을 떨었다.
십자가를 흡수한 밤하늘의 구름이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주변만 낮이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새하얀 색으로 물든 구름의 중심에 광량이 점차 집중되었다.
온다.
모두가 그렇게 동시에 생각했다.
“오는 건가.”
분화구 속
에서 그 광경을 올려다보는 그란데르도 마찬가지였다.
“저것이, 나의 죽음이로구나.”
그 중얼거림이 끝나기 무섭게.
구름을 뚫고 새하얀 빛의 기둥이 크레이터의 중심을 꿰뚫듯 떨어졌다.
───!!!
소리가 없는 눈부신 폭발이 일어났다.
빛의 기둥은 정확하게 핏빛 보호막을 두른 그란데르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가해진 모든 공격을 막았던 그란데르의 핏빛 보호막이 신의 말뚝 앞에서 너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뚫렸다.
이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란데르는 자신의 힘을 의도적으로 풀지 않았다.
정말로 저것이 자신의 죽음이라면, 이쪽이 마련한 방어 마법 정도는 쉽게 뚫을 수 있어야만 했다.
신의 말뚝은 교단이 오랫동안 준비한 특급 성물답게, 그란데르의 방어막을 뚫고 그녀의 심장에 정확히 박혔다.
푸욱!
“아아.”
그란데르는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심장에 박힌 신의 말뚝이 그녀의 몸에 신성력을 주입했다.
그란데르의 몸 주위로 꾸물거리며 새하얀 무언가가 일어났다.
그것은 누에나방의 고치처럼 그란데르의 몸을 완벽하게 둘러싸며 커다란 구체로 만들었다.
빛이 가라앉으며 크레이터의 중심에 놓인 것은 직경 20m 정도의 커다란 흰색 구체.
어떤 거대한 존재의 알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전율했다.
“성공인 건가?”
그 괴물의 강대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의 말뚝이 제대로 발동한 것을 넘어,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인 것이다.
산꼭대기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멜빈 사제가 파트리치오에게 물었다.
“추기경님! 저희가 마침내 저 괴물을 쓰러뜨린 겁니까? 그 전설로만 전해지는 불로불사의 괴물을?”
“예. 제대로 발동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쓰러뜨렸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를 수 있겠군요.”
파트리치오 추기경의 묘한 말에 멜빈 사제가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다르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신의 말뚝. 교단이 문을 걸어 잠근 기간 동안 준비해 온 특급 성물. 저것의 정확한 효과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야, 불로불사의 존재를 죽이기 위한…….”
“불사(不死)를 죽인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모든 것을 뚫는 창처럼 말이죠.”
“그 말인즉슨, 실제로는 불사를 죽이지는 못한다는 겁니까?”
“멜빈 사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네? 그건…….”
멜빈은 고민하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답했다.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숨을 쉬며 생각하는 그 모든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오감으로 모든것을 느끼고 사고하며 동시에 생명으로서 활동을 한다. 정신과 육체. 그 모든 것이 다 어우러지는 것이 바로 ‘산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두 개가 어우러지지 못한다면 어떨 거 같습니까?”
“어우러지지 못한다면…….”
“가령, 육체는 멀쩡하게 숨을 쉬고 심장이 뛰며 살아 있지만, 오감을 상실하고, 사고하지 못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걸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멜빈은 입을 헤 벌렸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야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설마 신의 말뚝이 지닌 효과가 바로…….”
“영혼의 분쇄. 저것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일반적인 봉인이 아닙니다. 저 새하얀 고치 안에 갇힌 존재는, 그 영혼이 순환의 굴레에서 떨어져 완전히 세상에서 소실해 버리죠.”
“맙소사…….”
멜빈은 신의 말뚝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깨닫고 경악성을 흘렸다.
영혼을 죽이는 성물이라니.
영혼이 소실된다는 것은 즉, 죽은 후에 그 영혼은 어떠한 구원도 없이 사후세계에도 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지만, 그들의 영혼이나 잔류사념은 영적인 힘으로 세상에 남기도 한다.
주신 루멘시스 께서 죽은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끝없는 순환의 고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말뚝은 달랐다.
저것은 목표로 한 영혼을 그러한 ‘규칙’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렸다.
말 그대로 세계라는 짜인 틀에서, 영구히 쫓아내 버린다는 소리였다.
“숨을 쉬어도, 심장이 뛰어도, 혈류가 돌아도, 영혼이 없는 육체란 결국엔 빈 껍데기에 불과하죠.”
영혼의 소멸.
파트리치오가 그란데르에게 선사하겠다고 약속한 죽음이 바로 이것이었다.
물론, 그란데르에게는 이 사실을 굳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안식이다.
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길 원했기에, 영혼 자체를 소멸시킨다고 하더라도 굳이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거래를했고, 파트리치오는 그란데르의 토벌 자체가 틀어질 거라고 걱정하지 않았다.
“저, 추기경님.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이 쉽게 끝날 일인데, 저것이 미끼라는 것은 진짜 목표는 대체 무엇인 겁니까?”
멜빈의 질문에 파트리치오가 싱긋 웃었다.
“멜빈 사제. 지금 성황께서 누구십니까?”
“그야…… 선대 성황인 베네틱트 반 브레투스님께 정당한 승계권을 위임받은 살레신 반 브레투스 아닙니까.”
현 성황 살레신 반 브레투스.
베네틱트의 장자이며, 다른 성황의 자식들을 모조리 몰아내고서 성황의 자리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
“맞습니다. 살레신 성황폐하 께서 본격적으로 즉위하시며 저희 성국은 굳게 걸어 잠궜던 문을 마침내 개방할 수 있게 됐죠. 물론 그 과정에서 원치 않은 희생도 있었습니다.”
원치 않은 희생.
살레신 반 브레투스가 성황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다른 형제자매들을 축출한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자애로운 루멘시스 님의 인도에 따라, 일부 핏줄분께는 마땅한 직위를 선사해서 형제자매들이 모두 사이좋게 힘을 합치게끔 즉위는 평화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예. 인류 역사를 비교해 보면, 이건 기적이라 봐도 무방한 일이죠.”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그런데 여기에 의도치 않은 불순물이 하나 끼어들게 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
멜빈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파트리치오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했으면, 멜빈도 더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설마, 아직 남아 있는 겁니까? 전대 성황 폐하의 핏줄이?”
“그것도 아주 끔찍한 형태로 말이죠.”
파트리치오의 웃는 눈동자가 분화구 중심의 새하얀 고치를 향했다.
“저 괴물이 멋대로 가져가고 멋대로 키워 버린, 그래서 본래의 목적에서 한없이 벗어나 버린 본국의 소중한 인재죠.”
“그 말인즉슨, 그분의 핏줄이 이곳에 온다는 겁니까?”
멜빈의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이 분화구로 향했다.
“본국의 주적인, 저 괴물을 구하기 위해서?”
“그래서 제가 미끼라고 한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매혹적인 미끼.”
“만일 그 말씀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대륙 곳곳의 국가에서 이름을 떨친 자들이 모였다.
본국의 정예병력부터 해서 색의 마법사까지.
그 숫자는 또 어떠한가.
그런 모든 병력이 만전의 상태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부상자가 몇 명 생겼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극히 미비한 수준.
그런 장소에 온다고?
사실상 잡아가 달라는 말이 아닌가.
“추기경님. 상대가 생각이 있다면 이런 곳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겁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성황 폐하의 핏줄.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만한 병력이 있는 곳에 어찌…….”
멜빈은 그 순간 뭔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뭐지?
그의 떨리는 눈동자가 분화구의 반대, 저 아래 산등성이의 너머를 향했다.
사람들이 머물러 있던 막사.
그곳 너머에서 사이하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힘이 썰물처럼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느낀 것은 파트리치오 추기경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항상 미소가 가득하던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