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11
1012화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렸다. 오태산이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계단에 서 있는 강진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여기 계셨네요.”
일부러 자리를 비켜 준 것을 아는 오태산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는 잘 했어?”
강진의 물음에 오태산이 집안을 슥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뭘 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말을 해서 마음은 편하네요.”
텅 빈 방에서 허공에 대고 말을 하고 눈물을 흘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물을 흘려서인지 속마음을 말해서인지 마음이 편했다.
민망한 듯 머리를 긁은 오태산이 말했다.
“다음에 형 가게 한 번 갈게요.”
“그래. 형이 밑에까지…….”
배웅을 해 주려는 강진의 말에 오태산이 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좀 민망해서……. 저 갈게요.”
오태산이 서둘러 빌라를 내려가자 강진이 그 뒷모습을 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채송화는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문을 보고 있었다. 아마도 오태산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표정이 왜 그래?”
배용수가 의아한 듯 하는 말에 채송화가 말했다.
“태산이 갔어?”
“응.”
배용수의 말에 채송화가 급히 몸을 돌려 창가로 가서는 밖을 내다보았다. 때마침 빌라에서 나오는 오태산의 뒷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가는 오태산을 채송화가 보았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작게 중얼거리던 채송화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바보…….”
돌연 멈춰 선 오태산이 고개를 돌려 빌라를 올려다본 것이다.
그런 오태산을 보던 채송화가 손을 들어 작게 흔들었다. 물론 오태산은 보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잠시 창문을 보던 오태산은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끝까지 보던 채송화가 오태산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입을 열었다.
“여자 만날 거래.”
“응?”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채송화가 미소를 지었다.
“바보처럼 나한테 미안하대. 나한테 뭐가 미안해…….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혼자 평생 살 것 아니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자 만나서 연애도 하고…….”
잠시 말을 멈췄던 채송화가 웃었다.
“결혼도 하지.”
씁쓸한 얼굴로 창밖을 가만히 보던 채송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이미 죽었는데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오태산이 사라진 골목을 보던 채송화가 입을 열었다.
“우리 태산이 좋은 애야.”
“너도 좋은 애야.”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작게 웃으며 그를 보았다.
“나 옛날에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어.”
“나쁜 애들이네.”
강진의 말에 채송화가 쓰게 웃었다.
“그때 나 괴롭힌 애들 중에 나하고 정말 친했던 애도 있었어.”
“그 애는 더 나쁘네. 친한 친구 괴롭히고.”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상대가 나쁘다 말하며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강진의 모습에 채송화가 웃었다.
“고마워.”
채송화는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이후로 친구를 만드는 것이 무서웠어. 내가 좋아하는 친구한테 또 상처받을까 봐. 그런데…… 밀어내기만 하고 피하기만 하면 살 수 없잖아. 나도 결국은 태산이 마음 받아서 행복했으니까.”
“그렇지.”
“그러니 태산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해. 그래야 또 살지.”
채송화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괜찮아?”
“왜? 전 남자친구 새 여자 생겼다고 내가 우울할까 봐?”
“그런 건 아닌데…….”
강진이 말끝을 흐리자 채송화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기분이 아주 좋지는 않아. 마치 내 소중한 것을 남이 가져간 것 같아서.”
채송화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방금 전 웃음은 조금 씁쓸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무척 밝았다.
“그런데 반대로 기분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말이야.”
몸을 돌린 채송화는 서랍장 위에 놓여 있는 연필을 집었다. 저승에서 가져온 연필이라 귀신도 집을 수 있었다.
채송화는 밥상 위에 놓여 있는 노트를 연필 끝으로 펼치곤 슥슥 넘기기 시작했다.
스륵! 스륵!
그렇게 빈장을 찾은 채송화가 글을 적기 시작했다. 조금은 길게 쓰는 듯 계속 글을 적던 채송화가 연필로 노트를 덮고는 강진을 보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웃으며 채송화가 손을 내밀자 강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행복해라.”
“너도 행복해. 그리고 나처럼 좋은 여자 만나.”
환하게 웃는 것과 동시에 채송화의 몸이 희미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화아악!
채송화가 사라지는 것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잘 가세요.”
채송화를 떠나보낸 강진이 노트를 보았다.
“아까 뭐라고 쓰는 것 같던데?”
말을 하며 배용수가 연필을 집어 노트를 펼치려 하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마 광현 형한테…….”
말을 하던 강진이 허공으로 손을 내밀었다. 천장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진 것이다.
탓!
가볍게 종이를 잡은 강진이 그것을 보았다. 쪽지였다.
채송화가 보낸 쪽지를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다 나 연애하기를 바라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옆에서 쪽지 내용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연애를 해.”
“나 연애했으면 좋겠어?”
“그래야지. 언제까지 홀아비처럼 그렇게 있을래?”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송화 씨가 그랬는데.”
“무슨 말? 자기처럼 좋은 여자 만나라고?”
채송화가 가면서 한 말을 떠올리며 배용수가 말하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그거 말고 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을 다른 사람이 좋아해 줘서 기분이 좋다고.”
강진이 자신을 지그시 보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무슨 말인지 이제야 눈치를 챈 것이다.
잠시 강진을 보던 배용수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가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먹다 남은 햄버거를 정리하고는 그 위에 노트를 잘 놓았다.
채송화가 보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그 말이 아니더라도 강진은 볼 생각이 없었다.
이건 최광현에게 남긴 글이니 말이다.
밥상 정리를 한 강진이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광현 형은 송화 씨 떠난 것을 편하게 생각하려나? 아니면 서운해하려나?’
원해서 같이 살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달 동안 같이 살던 채송화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니 말이다.
***
덜컥!
닫힌 문을 열고 들어온 최광현이 어두운 집의 불을 켰다.
달칵!
불이 들어오자 최광현이 가만히 거실을 보았다. 밤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요즘 날씨는 밤이라고 사정을 봐 주지 않기에 조금은 후덥지근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더웠나?”
생각을 해 보니 덥기는 해도 이렇게까지 덥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송화가 있어서 그랬나?’
강진의 가게도 귀신들이 있어서 시원했으니 말이다.
거실을 둘러보던 최광현이 창문을 열었다.
방 온도보다는 살짝 시원한 밤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자, 최광현이 몸을 돌려 거실을 보았다.
“나 왔는데 말이야…….”
작게 중얼거린 최광현이 소파를 보았다. 늘 그 자리에 있던 채송화가 없었다.
잠시 소파를 보던 최광현이 들고 온 쇼핑백을 소파 앞에 가져다 놓고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하니 꼭 제사상 같네.”
작게 중얼거린 최광현은 쇼핑백을 벌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냈다.
안에서 나온 것은 햄버거와 빵들이었다.
“출장 간 곳에 전국 무슨 팔 대 빵집인가 뭔가가 있더라고. 거기 유명한 것이 소보루 튀김빵이래. 그리고 햄버거는 너 좋아해서 사 왔다.”
말을 한 최광현이 밥상에 햄버거와 소보루 튀김빵을 놓았다.
최광현은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범죄에 투입되는 특수 팀 소속이라 출장을 갈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채송화는 그 지역 맛집 음식을 사 오라고 했었다.
안 사 오고 맨손으로 오는 날에는 그렇게 잔소리를 해서 못 사갈 때에는 근처에서 뭐라도 하나 사서 들어오고는 했었다.
오늘도 채송화가 거기 지역에 맛있는 거 사 오라고 해서 사 온 것이다.
빵을 놓은 최광현이 밥상에 놓인 노트를 보았다. 노트 위에는 연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던 최광현이 피식 웃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음식을 놓으면 연필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며 노트를 펼치고 글을 적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글이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연필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연필을 보던 최광현이 소파에 앉았다.
“아이고야.”
기차 타고 움직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출장은 피곤한 일이었다.
작게 신음을 흘리며 최광현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웃었다.
“내가 사 놓고 내가 앉아 본 건 이번이 처음인가?”
늘 채송화가 여기에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TV를 볼 때도 감히 소파에 올라가지 못하고 소파 밑 바닥에 앉아서 보고는 했었다.
그런 소파에 편하게 앉게 된 최광현이 웃으며 옆으로 몸을 눕혔다. 그러고는 잠시 집안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정말 갔나 보네.”
입맛을 다시며 거실을 둘러보던 최광현이 천장을 보았다.
“거기 가서는 성질 죽이고 살아라. 괜히 미움받지 말고.”
천장을 보던 최광현이 밥상 위에 놓여 있는 노트로 손을 내밀었다.
“글을 쓰고 갔다고 했는데…….”
최광현은 한 장씩 종이를 넘기며 내용을 확인하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
편지의 끝자락을 본 최광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반말만 꼬박꼬박 하더니 승천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빠라고 부른 것이다.
“그래. 네 말대로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웃으며 최광현이 노트를 덮었다.
“너도 거기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라.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