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12
1013화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 날 밤.
저승식당 오픈하기 한 시간 전, 강진은 커다란 대야를 주방에서 들고 나오고 있었다.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식탁 위에 대야가 놓였다.
“후우!”
강진이 한숨을 쉬며 팔을 휘젓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이게 뭐가 무겁다고 그러냐?”
“무거워.”
강진은 대야에 들어있는 하얀 반죽을 보았다. 다름 아닌 쌀가루 반죽이었다.
“꽤 양이 많네?”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는 좀 부족했잖아요.”
“그랬어?”
“그랬어요.”
강진이 하얀 쌀 반죽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 가게 오시는 손님들하고 보육원 애들 줄 것까지 생각하면 이것도 끝이 아니죠. 그리고 저승식당 손님들도 먹어야 하고.”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콩보다는 깨로 만든 것이 맛있던데.”
최호철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콩이 좀 퍽퍽해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고소하고 맛있어요.”
“어쨌든 잘 만드세요. 내가 고른 송편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것도 재미니까. 표시 나게 하면 안 됩니다.”
강진의 말에 최호철과 허연욱, 그리고 직원들이 반죽을 조금씩 떼서는 조몰락거리며 펼쳤다.
그리고 옆에 놓인 콩과 깨를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과 배용수는 반죽을 조금 크게 잘라 식탁에 놓고는 조금 두껍지만 길쭉하게 해서 줄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반죽을 떼어내기 쉬우니 말이다.
“손으로 펴지 말고요. 여기 소주병으로 이렇게 만두피 만드는 것처럼 미세요.”
줄처럼 된 반죽을 손으로 끊어 낸 강진이 그것을 식탁에 놓고는 소주병으로 밀었다. 그러자 손으로 펼친 것보다 깔끔하게 펼쳐졌다.
“소주병을 왜 이렇게 놨나 했더니.”
최호철이 옆에 놓인 소주병을 들었다. 겉에 붙어 있는 상표를 깨끗이 뜯어내고 세척까지 한 병을 든 최호철이 그걸로 반죽을 밀었다.
“잘 되네.”
“작년에는 밀대를 생각 못 해서 손으로 하거나 밥그릇으로 했는데 TV 보니 병으로도 하더라고요.”
강진이 웃으며 적당히 펼쳐진 반죽에 깨를 넣었다.
배용수가 콩도 맛있다고 했지만, 사실 강진도 깨가 들어간 꿀송편을 더 좋아했다.
오늘 한끼식당 식구들과 친한 귀신들은 추석을 맞이해서 같이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작년에는 한끼식당 식구들끼리만 같이 송편을 만들고 전을 만들었다. 귀신들도 명절 기분을 내자는 취지로 말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이것도 재미일 수도 있어서 이번엔 다른 귀신들에게도 같이 만들자고 한 것이다.
물론 만들기 싫으면 먹기만 해도 된다. 원래 명절 음식이라는 것이 만드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튼 추석 기분을 내려고 미리 재료들을 준비해 뒀다가 저승식당 영업시간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시작을 한 것이다.
송편을 만드는 이 테이블 말고 다른 테이블에는 전을 만드는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송편 만들 사람은 송편 만들고, 전 만들 사람은 전을 만들게 말이다.
그렇게 송편을 만들던 강진은 한 오십 개 정도 만들어지자 그것을 쟁반에 담아서는 일어났다.
“일단 이건 찌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시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찌면 영업 시작할 때 맛들은 볼 수 있겠다.”
“일하기 전에 맛은 보여야지.”
“처녀귀신들도 부를 거지?”
“아가씨한테 부탁드렸어. 그러니 다 데리고 오실 거야.”
주방에 들어간 강진은 찜통 바닥에 솔잎을 깔고는 그 위에 송편을 하나씩 가지런히 놓았다. 그러고는 뚜껑을 닫은 뒤 불을 켜고는 다시 홀로 나왔다.
홀로 나온 강진은 귀신들이 모두 가게 밖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찍들…… 오시나 보네?”
살짝 떨리는 배용수의 목소리를 들은 강진이 향수를 챙겨서는 급히 가게를 나섰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먼 곳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처녀귀신들을 볼 수 있었다. 저 일행이 오니 식당 식구들이 겁을 먹은 것이다.
김소희를 필두로 이지선과 처녀귀신들이 오는 것에 강진이 자세를 바로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양팔을 벌렸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에게 향수를 뿌려 주었다.
“그런데 일찍 오셨네요?”
저승식당을 오픈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았던 것이다.
“작년에 자네들이 만드는 송편을 보니 내가 좀 일찍 와야겠다 싶더군.”
그러고는 김소희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웃으며 이지선에게 향수를 내밀었다. 그에 이지선이 슬며시 손목을 내밀자 강진이 그녀의 손목에 향수를 뿌려 주었다.
치이익!
“잘 지내시죠?”
이지선은 말없이 향수를 귀 밑에 바르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김소희가 속은 부드럽고 겉은 냉랭한 스타일이라면 이지선은 속도 겉도 다 차가운 스타일이었다.
이런 반응이 익숙한 강진은 기죽지 않고 다른 처녀귀신들에게 다가가 향수를 뿌려 주었다.
강한나와 조명희 차례가 오자 강진이 그녀들을 보았다.
우울해하던 일전과 달리, 지금의 두 여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둘은 이혜선이 가고 얼마 동안은 자주 한끼식당에 찾아와서 머물다 갔었다.
아무래도 서울에 연고를 둔 두 사람이라 다른 저승식당보다는 한끼식당이 편하기도 하고 이혜선과도 자주 왔으니 말이다.
가게에 올 때마다 둘은 꽤 많이 침울한 상태였다. 자신들을 엄마처럼 살펴 주던 큰언니가 승천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혜선이 가고 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인지 지금은 그 우울함을 많이 버리고 예전의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어떠세요?”
“잘 지내요. 아! 이번에 저희 둘 한강에서 연예인 데이트하는 거 봤는데 누군지 알려 줄까요?”
강한나의 말에 조명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 둘이 사귈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러니까. 전혀 안 어울려.”
두 여자 귀신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의 은밀한 사생활 그렇게 구경하시고 하면 안 돼요.”
“구경한 게 아니고 보인 거거든요?”
조명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조명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보았다.
“아가씨가 오늘 송편 만드는 거 되게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요?”
“아가씨가 오는 길에 이야기하셨는데, 어렸을 때 송편을 정말 잘 만드셨대요. 그래서 오늘 잘 보고 배우라고 하셨어요.”
조명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가게를 보았다.
“아가씨가 오늘 기대를 하시고 오실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조명희가 가게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그동안 저승식당 여럿 다녔지만, 명절에 명절 음식 주는 식당은 있었어도 명절 음식 같이 만들자고 하는 식당은 사장님네가 처음이에요.”
조명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귀찮다는 말은 아니겠죠?”
“그럼요. 명절에는 역시 음식 같이 하면서 기름 냄새 맡아야 재밌죠.”
조명희의 말에 강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희 언니들도 기대 많이 해요.”
말을 하던 두 귀신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처녀귀신들은 안에서 송편 재료들과 전 재료들을 보고 있었다.
송편 재료들을 보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꿀은 없는 겐가?”
“꿀요?”
“나는 꿀떡을 좋아하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볼 때,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깨에 설탕을 넣어서 만들면 그게 꿀떡이죠.”
“꿀을 넣어야 꿀떡인 게지.”
김소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보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꿀을 넣어 드릴게요.”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꿀 넣어도 되잖아.”
“안 될 건 없지.”
안 될 건 없다. 꿀을 넣으면 말 그대로 꿀떡이니 말이다. 굳이 문제를 따지자면 단가가 오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저승식당은 단가를 생각하며 장사하는 그런 곳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한끼식당에는 무료로 가져오는 꿀도 있었다.
“그럼 깨에 꿀 섞어서 만들자.”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에 들어가 꿀통을 들고 나왔다.
“강원도 석청이라 맛이 더 좋을 겁니다.”
무료로 가져오는 꿀의 정체가 이것이었다. 강원도에서 배용수가 벌집이 있는 바위 속으로 들어가 캐 오는 석청이 있었던 것이다.
강진이 들어가면 벌에 쏘여 죽을 수도 있으니 석청 채취는 늘 배용수의 몫이었다.
배용수는 깨가 담긴 그릇에 꿀을 붓고는 잘 버무렸다.
“송편에 넣고 찌면 맛있는 꿀떡 완성입니다.”
배용수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송편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전 재료들이 있었다.
“전은 언제 시작하는 건가?”
물음이지만, 전이 먹고 싶다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는 김소희의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되는데 시작할까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게.”
김소희가 자리에 앉자, 강진이 맞은편에 앉으며 꼬치를 꽂기 시작했다.
꼬치에 파와 맛살, 햄, 그리고 버섯을 차례로 꽂는 강진을 보던 김소희가 주위를 보다가 말했다.
“동그랑땡은 지금 안 하나?”
“그거 드시고 싶으세요?”
“작년에는 미리 만들어서 좀 식었더군.”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재료들을 마저 꽂고는 그것을 옆으로 치우자, 김소희가 처녀귀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들도 멍하니 있지 말고 이거라도 같이 꽂게나.”
“네, 아가씨.”
이지선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이혜미를 보자, 그녀가 비닐장갑을 가져다주었다.
먼저 비닐장갑을 낀 이지선이 다른 귀신들에게 비닐장갑을 건네자, 그녀들도 장갑을 끼고는 자리에 앉아 꼬치를 꽂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는 저희 식구들만 해서 손이 많이 갔는데, 오늘은 이렇게 도와주시니 좀 수월하겠습니다.”
“명절은 다 같이 하는 것이 좋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저 보고만 있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오늘 송편 만들 거라고 하시더니…….’
처녀귀신들에게 송편 만드는 것을 알려주겠다고 했던 김소희다. 하지만 바로 손을 대지 않는 것은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게 어색해서일 것이다.
중이 자기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이럴 때는…….
“그나저나 저희 세대는 송편을 많이 만들어 보지를 않아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를 않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작년에 보니 그렇더군.”
“아가씨 시대에는 많이들 송편 만드셨죠?”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라 송편은 귀한 음식이었지.”
“그렇겠네요. 조선시대는 먹고살기 참 어려운 시대였으니까요.”
조선시대는 정말 먹고살기 힘든 시대였다. 쌀로 만드는 떡은 양반들이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고, 평민들은 쌀은커녕 보리도 먹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아가씨께서 조금 도와주시죠.”
“내가 말인가?”
눈을 반짝이는 김소희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손이 막손이라 그런지 송편이 예쁘게 안 나오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어쩔 수 없군. 가져오게나.”
“이왕이면 같이 하시죠.”
“같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명절엔 다 같이 일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러네만…….”
“그러니 같이 하시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서서 송편 반죽을 떼고 있는 한끼식당 식구들을 보았다. 그런 김소희를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서 혼자 만드시면 저희 직원들이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앞에서 직접 만드는 것을 보여주셔야 우리 직원들이 예쁘게 만드는 방법을 잘 배우죠.”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말이 맞군. 직접 보고 배워야 저 친구들도 빠르게 익히겠지. 그리고 잘못 만들면 내가 가르쳐 줄 수도 있고.”
말을 하던 김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우고 가르치는 건 자고로 좋은 일이니, 거절하는 것은 예가 아니겠지.”
“그럼요. 배우고 가르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죠.”
말을 하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희가 한 말이고 당연한 말인데…… 정말 좋은 말이고 옳은 말이었다.
‘배우고 가르치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로 꼭 들어가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