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13
1014화
김소희가 송편 반죽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자 귀신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내 자네들 일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니 편히들 하게나.”
그러고는 김소희가 손을 내밀자 어느새 다가온 이지선이 비닐장갑을 씌워 주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나. 그냥 주면 될 것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한쪽 손에 비닐장갑을 끼워 준 이지선이 다른 손에도 끼워 주자 김소희가 그녀를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자네와 나도 거의 백 년이니…… 편히 하게나.”
“저는 이것이 편합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공손히 비닐장갑을 끼워 주고 물러나는 이지선을 보며 고개를 저은 김소희가 이미 만들어진 송편을 보다가 재차 고개를 저었다.
“쯔쯔쯔! 모양이 이래서야…… 이건 주먹 떡인가?”
조금 뭉툭한 모양의 송편을 가리키자, 최호철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송편을 만든 것이 몇 번 안 되어서요.”
“이렇게 두툼하게 만들어서야 안까지 익겠는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호철 형이 알아서 다 먹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그럼 이걸 형수님 먹이게요?”
강진이 이혜미를 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저렇게 못생긴 송편은 먹기 싫은 듯했다. 그에 최호철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도 안에 깨 많이 들어가서 맛은 있을 텐데…….”
“쯔쯔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세.”
최호철의 말에 작게 혀를 찬 김소희가 반죽을 적당히 떼어내고는 말했다.
“밀대는 어디에 있는가?”
“밀대를 일일이 사기 힘들어서 소주병으로 밀고 있습니다.”
이혜미가 웃으며 먼저 소주병으로 반죽을 밀어 시범을 보이자, 김소희가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송편은 두께가 적당해야 하네. 너무 두꺼우면 속이 안 익고, 얇으면 속이 터지니 만두와 비슷하다 할 수 있지.”
김소희가 반죽을 식탁에 두고는 소주병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단아하시네.’
쌀 반죽을 소주병으로 미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단아했다. 물론 외모 자체는 피를 뚝뚝 흘리는 상태라 무척 무서웠지만 말이다.
스윽! 스윽!
김소희의 손에서 반죽이 조금씩 모양이 잡혔다. 어느 정도 펼쳐진 반죽을 든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정도 두께가 아주 좋지.”
김소희는 꿀과 깨를 섞은 소를 수저로 떴다. 그것을 반죽 안에 넣은 뒤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주름을 만들며 접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송편 하나를 만든 김소희가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어떤가?”
“어쩜 너무 예쁘게 만드셨어요.”
“너무 잘 만드셨습니다.”
귀신들의 말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어릴 적 어머님께서 송편을 만드실 때 나도 옆에서 자주 만들었지. 우리 어머니께서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셨네.”
미소를 지으며 송편을 보던 김소희가 손을 내밀어 반죽을 쥐고는 소주병으로 밀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반죽을 밀던 김소희가 문득 다른 귀신들을 보았다. 처녀귀신들과 한끼식당 귀신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에 김소희가 말했다.
“손이 놀면 송편은 누가 만드나?”
“아, 알겠습니다.”
“손은 움직이면서 눈으론 내가 하는 걸 보게나.”
김소희의 말에 귀신들이 웃으며 송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신들이 조용히 송편을 만들고 있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라도 하면서 하게나.”
“괜찮습니다.”
“아니야. 이런 일 하면서 이야기도 없으면 몸이 힘든 법이네.”
물론 귀신이 몸이 힘들 일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 편하게 하게나.”
“그럼 아가씨께 말을 걸어도 되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나에게?”
“네.”
김소희는 강진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했는데 말 걸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희의 허락에 강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께서 검을 배우실 때 어머니께서 싫어하지 않으시던가요?”
송편을 만들다 보니 김소희의 어머니에 대한 궁금함이 생긴 것이다.
뜬금없는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물론…… 오백 년도 더 전이라 이제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흐리지만 말이다.
“좋아하지 않으셨지. 그때 검을 수련하는 여인은 거의 없었으니…….”
“하긴, 조선시대는 그런 여인이 없었겠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검을 익힌 여자 무인이 없었던 건 아니야. 반가 규수를 호위하는 무인 중에는 여인들도 꽤 있었으니까. 다만…….”
김소희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반가의 규수가 검을 익힌 경우는 없었지.”
“그럼 아버님은요? 아버님도 싫어하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웃었다. 그 웃음에 강진과 처녀귀신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김소희가 사람들 앞에서 웃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투희의 앞에서나 무장 해제가 되어서 웃음을 많이 보이지, 평소에는 늘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웃음을 보인다는 건 무척 기분이 좋다는 증거였다.
송편을 손에 쥔 채 잠시 미소를 짓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는 내가 연무장에 드나드는 것을 싫어하셨지.”
“싫어하셨어요?”
“그럼. 싫어하셨지. 내가 연무장에 오고 가면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하셨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좋아하신 듯해.”
“그러셨어요?”
“그러니 나에게 몰래 검을 가르쳐 주신 게 아니겠는가.”
“아버님에게 무술을 배우셨어요?”
“정확히는…… 아니네.”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검을 가르쳐 준 것은 오라버니였네.”
“아…….”
오라버니라는 말에 강진이 탄식을 내뱉었다.
김소희와 전생의 황민성은 애증 관계이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던 오라버니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으니…….
“내가 검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오라버니가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검을 가르쳐 줬지. 하지만 아버님께서 하지 말라 하셨으면 오라버니는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 것이야.”
말을 하던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겉으로는 반대하셨지만 속으로는 반대를 하지 않으신 것이지. 후! 게다가 나중에는 아버님께서 오라버니를 통해 가르침을 주시기도 하셨네.”
“아가씨께서 수련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나 보네요.”
“내가 검을 꽤 잘 다뤘거든.”
김소희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목검이 바뀌었네.”
“목검요?”
김소희가 손을 내밀어 귀검을 잡았다.
우우웅!
주인의 손길에 귀검이 작게 울었다. 그런 귀검을 쓰다듬은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검이 있네. 그 사람의 손 크기나 팔 길이 같은 신체의 크기에 따라 검의 크기도, 날의 두께도 다 변하지.”
“맞춤 정장처럼요?”
이혜미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봐야겠지.”
김소희는 반죽을 떼어 소주병으로 천천히 밀며 말했다.
“내가 사용하던 목검은 오라버니가 사용하던 것이었네. 그런데 어느 날 오라버니가 나에게 새 목검을 주었네.”
“혹시 아버님께서?”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가 슬며시 이야기를 해 주었지. 아버님께서 내가 오라버니 목검으로 연습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이 직접 나무를 고르고 다듬어서 만드셨다고.”
웃으며 김소희가 귀검의 손잡이를 가리켰다.
“손잡이에는 소가죽 끈도 꼼꼼하게 묶여 있어 땀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되어 있었지. 정말 좋은 목검이었어. 무게도, 균형도, 길이도…… 딱 나를 위해 맞춰져 있었으니까.”
우웅! 우웅!
김소희의 말에 귀검이 작게 울었다. 마치 나는 마음에 안 드느냐는 듯 말이다.
그런 귀검의 모습에 김소희가 웃으며 검을 손으로 훑었다.
스으윽!
김소희의 손길에 기분이 좋은 듯 다시 귀검이 울었다. 그것으로 답을 대신한 김소희가 귀검을 놓았다.
스르륵!
그러자 귀검이 알아서 두둥실 떠서는 그녀의 옆에 마치 호위무사처럼 떠다녔다.
다시 송편을 빚기 시작하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피식 웃었다.
‘꿀 송편만 만드시네.’
꿀 송편을 좋아하는지 김소희는 꿀만 송편에 넣고 있었다.
‘취향 참 확실하셔.’
웃으며 고개를 저은 강진이 만든 송편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그럼 송편은 아가씨께 맡기고 저는 전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전 만드는 곳으로 가자, 강한나와 조명희가 슬며시 다가왔다.
“저희도 전 만드는 거 할래요.”
“그러세요.”
말을 하던 강진이 김소희를 힐끗 보고는 웃었다.
“아가씨가 동그랑땡을 먹고 싶어 하는 듯하시니 그것부터 만들게요.”
“네.”
강진이 한쪽에 놓인 동그랑땡 반죽을 뚝 떼어 손바닥 안에서 굴리며 말했다.
“팬 좀 켜 주실래요?”
강진의 말에 강한나가 팬에 전기를 켜고는 온도를 올렸다.
그리고 조명희가 기름을 두르는 사이, 강진은 동그랑땡에 밀가루를 입히고 계란 옷을 입혔다.
“이제 온도 올라온 것 같아요.”
강한나가 계란을 살짝 비닐장갑에 묻히고 팬에 툭 하고 떨어뜨리자 계란이 익어갔다.
그에 강진이 온도 적당하다 생각을 하고는 동그랑땡을 올리자, 조명희가 뒤집개로 하나씩 뒤집으며 살짝살짝 눌렀다.
이렇게 해야 모양이 잡히니 말이다.
“잘 하시네요.”
“명절에 전 한 번 안 만들어 본 사람이 있나요.”
조명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남자 여자 안 가리고 전 정도는 같이 만드니 말이다.
강진은 반죽을 적당히 집어서는 모양을 잡고 팬 위에 올렸다.
촤아악!
기분 좋은 기름 튀는 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뒤집개로 슬며시 모양을 잡자, 조명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누구 주시려고요?”
“누구겠어요.”
강진이 웃으며 김소희를 한 번 보자, 조명희가 웃으며 강진이 넣은 동그랑땡을 보았다.
동그랑땡은 조금 어설픈 하트 모양이었다. 틀에 찍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하트 모양을 잘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하트 모양이라 할 정도는 되어서 강진은 만족스러웠다.
동그랑땡이 익어가며 특유의 맛있는 냄새가 퍼지자 귀신들이 웃으며 이쪽을 보았다.
“역시 명절에는 전 만드는 냄새지.”
“맞아. 이 고소한 기름 냄새.”
“빨리 저승식당 오픈 시간 됐으면 좋겠다.”
처녀귀신들도 웃으며 말을 하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드시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하나씩 드셔 보시지 그러세요. 전 만들 때 바로 옆에서 하나씩 집어먹는 것이 맛있는데.”
배용수의 말에 처녀귀신들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기다렸다가 현신해서 먹을래요. 그게 더 맛있어요.”
“하긴, 먹고 싶은 거 기다렸다가 먹으면 더 맛있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귀신도 있었다. 바로 김소희였다.
김소희는 기름 냄새와 고기 익는 냄새에 작게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 않아도 동그랑땡이 먹고 싶었는데 바로 옆에서 익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김소희는 만들던 송편을 마지막으로 꾸욱 눌러 완성을 하고는 접시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