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37
10화
“무슨 생각을 하세요?”
황민성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웃으며 막걸리 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신 황민성은 김치전을 먹으며 말했다.
“비도 오고 김치전도 있고…… 거기에 막걸리까지 마시니 사람이 감성적이 되네.”
황민성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빗소리가 사람 감성을 자극하죠. 그 비 내릴 때 들으면 좋은 노래도 있잖아요.”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강상식이 번개처럼 말을 하자, 이혜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노래는 비가 오는 날에는 필수죠.”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핸드폰으로 노래를 검색하고는 틀었다.
[비가 내리고…….]핸드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사람과 귀신들이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막걸리와 김치전을 즐기기 시작했다.
강진도 음악을 들으며 김치전을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분위기 좋은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에 술잔을 기울이는 것…… 말 그대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 강진이 눈을 감고는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좋구나.’
***
저승식당 영업시간, 귀신 손님들은 문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김치전과 국수, 그리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좋구나.”
“그러게. 비 내리는 소리와 김치전…… 그리고 국수.”
말을 하며 귀신 한 명이 잔치국수를 후루룩 면치기를 하며 먹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내리는 비를 보며 말했다.
“빗소리와 참 잘 어울리죠?”
“그러게 말이에요.”
손님이 웃으며 문밖을 보다가 말했다.
“음식하고 날씨가 참 잘 어울립니다.”
손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아서 음식을 김치전하고 잔치국수로 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딱히 영업을 안 해도 되지만, 강진은 일부러 저승식당을 오픈했다.
귀신 손님들에게도 이런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손님이 원하는 음식보다는 해 드리고 싶은 음식으로 준비를 했다.
“김치전 더 드실 분?”
손님들 몇이 손을 들자, 이혜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할게요.”
강진의 말에 이혜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김치전 정도는 부칠 수 있어요.”
이혜미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강진은 다시 김치전을 먹으며 귀신들을 보았다. 그럴 때 주방에서 이혜미가 급히 고개를 내밀었다.
“냉장고 고장 났나 봐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그 사이 배용수가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냉장고가요?”
“냉기가 약한 게 고장 났나 봐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냉장고를 열었다가 급히 닫았다.
“그러네.”
“아까는 괜찮았는데.”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냉장고를 보다가 다른 냉장고들을 열었다.
주방에는 대형 업소용 냉장고가 하나, 냉동고가 하나, 그리고 일반 가정용 냉장고가 두 개 있었다.
그중 고장 난 건 편하게 재료들 넣었다 빼서 쓰는 일반 냉장고였다.
“일단 재료들 다 다른 곳에 넣어야겠어.”
요리사에게 식재란 목숨과 같은 것이니,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는 건 목숨을 위협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배용수는 서둘러 고장 난 냉장고에서 식재들을 꺼내 다른 냉장고에 넣었다.
멀쩡한 냉장고에 식재들을 다 옮긴 강진과 배용수가 홀로 나왔다.
다시 자리에 앉은 배용수가 김치전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냉장고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고칠 건지 새로 살 건지 말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주방을 보았다.
“고칠 수 있으면 고치는 것이 좋지 않아?”
“그렇기는 한데…… 이거 너무 오래됐어.”
“그래?”
“대충 봐도 십 년은 넘은 것 같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델이 딱 십일 년 된 거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전에 중고 가전 가게에서 일했잖아. 거기서 팔아 봤던 제품이야.”
“십일 년 됐으면 바꾸자. 냉장고 오래된 건 전기세 더 많이 먹어.”
배용수는 냉장고를 바꾸고 싶은 모양이었다. 가정주부들이 좋은 냉장고를 쓰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배용수도 좋은 가전제품에 욕심이 있었다.
물론 멀쩡한 거 버리고 새로 살 정도는 아니지만, 고장이 났다면 바꾸고 싶었다.
“냉기가 약한 것을 보면 냉매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고치게?”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근데 네 말대로 냉장고 오래된 건 전기를 많이 먹어. 그 전기세 일 년만 아껴도 새 냉장고 살 돈 나오기는 하지.”
“그럼 바꿀 거야?”
배용수가 환하게 웃는 것에 강진도 웃었다.
‘단순한 놈.’
강진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일단 신수 형제분들한테 물어보고 결정하자.”
“왜?”
“고장이 나기는 했지만, 그분들한테는 추억이 있는 냉장고 아니겠어?”
“추억?”
“그 노래도 있잖아.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고등어가 있네.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를 먹을 수 있네.”
“아…….”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말을 이었다.
“신수 형제들도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지 않았겠어? 그게 아니더라도 냉장고에서 어머니가 해 준 음식 꺼내서 먹었을 테고.”
강진은 주방을 보며 말했다.
“신수호 씨가 가게를 나에게 전적으로 맡긴다고 했지만…… 그런 추억까지 내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수 있겠다.”
“생각난 김에…….”
강진은 시간을 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니 남에게 전화를 하기에는 무척 늦은 시간이기는 했다.
하지만 신수호는 이 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할 사람이니 혹시나 하고 걸어 보는 것이었다.
그 점 외에도 식재와 직결되는 냉장고 문제라 빨리 연락을 해서 그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보조로 쓰는 냉장고이기는 해도 거기에 넣어야 할 식재도, 음식도 있으니 말이다.
강진이 전화를 거는 사이, 배용수도 태블릿을 가져다가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신형 냉장고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낡은 냉장고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여보세요.]연결음이 얼마 이어지지도 않았는데 바로 전화를 받는 신수호에게 강진이 말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잘 있었습니다.]단답 외엔 이렇다 할 말이 없자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삼 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도 여전하시네.’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신수호는 정을 주지 않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고시원 앞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가장 친절했었던 것 같을 지경이니 말이다.
“저희 가게 냉장고가 고장이 났습니다.”
[냉장고요?]“그래서 고치거나 새로 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게에 오래 있던 물건이라 여러분들한테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요.”
강진의 말에 잠시 조용하던 신수호가 뒤늦게 말했다.
[일단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여사님이 쓰시던 물건이니까요.”
[고장이 난 냉장고는 어떤 겁니까?]“일반 냉장고 중에 하얀색 냉장고입니다.”
물론 지금은 세월의 때도 타고, 음식점 주방에서 쓰던 것이라 하얀색이라기보다는 회색에 가까웠다.
[하얀색이라…… 알겠습니다. 조한테 연락해서 결정하겠습니다.]“신수조 씨요?”
[조가 돈 벌고 바꿔 드린 게 그 냉장고였습니다. 그러니 조가 결정할 겁니다.]“아! 신수조 씨가 사 드린 거였군요.”
[조가 일 시작하고 돈 모아서 바꿔드린 거였습니다.]“큰 선물 하셨네요.”
십 년 전 모델인 냉장고이니 그걸 샀을 당시 신수조는 사회 초년생일 것이었다. 그런데 냉장고를 샀다니 정말 거금을 쓴 것이다.
냉장고는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니 말이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알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그거 그만 봐라.”
태블릿으로 냉장고를 보던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왜? 안 된대?”
“신수조 씨가 어머니 사 드린 거래.”
“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한숨을 쉬며 태블릿에 떠 있는 냉장고를 보았다.
“신선 칸이 습도를 조절해서 야채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해 준다는데…….”
아쉽다는 듯 냉장고를 보며 중얼거리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우리야 야채들 오늘 들여와서 오늘 쓰고, 이틀을 안 넘기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래도…… 신선하게 유지를 해 준다는데…….”
정말 아쉬운 듯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배용수를 보고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우리는 그날 재료 사서 그날 쓰자. 그게 제일 신선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막걸리를 입에 가져갔다.
***
다음 날 아침 공원에서 아이들 밥을 챙겨 주고 가게로 들어오던 강진은 안에서 북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 강진이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자, 이혜미가 말했다.
“신수조 씨 오셨어요.”
이혜미의 말에 주방에서 신수조가 머리를 내밀었다.
“왔어요?”
“냉장고 보러 오셨군요.”
강진의 말에 신수조가 다시 머리를 주방으로 들이며 말했다.
“냉장고 고장 났다면서요.”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주방에 들어갔다. 신수조는 냉장고를 앞으로 끄집어내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이걸 혼자 꺼내셨어요?”
“안에 다 비워서 꺼내기 안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 무거운 걸.”
“이걸 힘으로 드나요. 요령으로 드는 거지. 냉매 보충해서 이제 잘 될 거예요.”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 뒤에 있는 신수조를 보았다. 그녀는 냉장고에 냉매를 보충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할 줄 아세요?”
“이게 뭐 어렵나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은 신수조가 냉매 통을 들고는 냉장고를 열었다. 그러고는 냉장고에 달린 달칵거리는 버튼을 눌렀다.
뒤이어 냉기가 나오는 곳에 손을 댄 신수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냉기가 나오기 시작하네요.”
신수조는 냉장고 문을 닫고는 말했다.
“냉매를 갈았으니 새것처럼 잘 될 거예요.”
신수조의 말에 강진이 냉장고를 보았다.
“이거 신수조 씨가 여사님한테 사 주신 거라면서요?”
강진의 말에 신수조가 웃으며 냉장고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첫 월급 받아서 샀는데…… 생각보다 비싸더라고요.”
“월급요?”
강진의 물음에 신수조가 웃으며 말했다.
“나라고 처음부터 사장이었겠어요? 처음에는 다른 분 밑에서 일하면서 일 배우고 그러다가 독립을 한 거죠. 이거 사는 데 첫 월급이 통으로 들어갔어요.”
“냉장고가 비싸기는 하죠.”
강진의 말에 신수조가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양문형으로 이것보다 더 큰 거 사 드리고 싶었는데…… 엄마가 이거면 된다고 이걸로 고르더라고요.”
말을 하던 신수조가 쓰게 웃었다.
“근데 우리 엄마가 내 월급을 알고 있었나 봐요.”
“왜요?”
“내 월급에 딱 맞게 이걸 고르더라고요. 그래서 용돈 받고 한 달 더 살았다니까요.”
웃는 신수조를 보며 배용수가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왜 하얀색으로 고르셨어요?”
“왜요?”
“고춧가루 같은 거 튀면 바로 티가 나잖아요. 그래서 보통 이런 주방에는 은색이나 잘 닦이는 재질로 하는데.”
배용수의 말에 신수조가 미소를 지으며 냉장고를 보았다.
“엄마가 이 색이 좋다고 했어요. 딸이 사 주는 것이니…… 예쁜 걸로 고르고 싶다고.”
신수조가 웃으며 냉장고를 쓰다듬었다.
“딸이 사 주는 거니까 예쁜 걸로, 자기 마음에 드는 걸로 두고 싶다고…….”
-우리 딸이 사 주는 건데 정말 좋고 예쁜 걸로 살 거야. 그래서 나는 이 하얀색이 좋구나.
엄마가 해 준 말을 떠올리며 신수조가 냉장고를 쓰다듬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