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65
38화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요리하는 걸 보여줘?”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 주방에서 도마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 국이 끓어오르는 보글보글 소리, 그리고 음식을 굽는 기름 소리…… 이 소리와 분위기를 생각해 봐.”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눈을 감고 잠시 있다가 미소를 지었다.
“밥 먹을 시간이 기다려지네.”
“맞아. 그 평론가도 숙수님 음식 만드는 걸 옆에서 보다가 침을 꿀꺽! 꿀꺽! 넘기다가 맛있게 먹었어. 입맛은 변했어도 기억과 추억 속에 남아 있는 맛은 그대로니까.”
“더 미화가 되기도 하지.”
“맞아. 그리고 자신이 한 평론을 사과하셨지.”
그리고는 배용수가 식재를 보다가 메흐메트를 보았다.
“어르신은 식욕이 없는 사람에게 식욕을 가지게 하고 싶으신 거야.”
잠시 말을 멈춘 배용수가 메흐메트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어르신도 그런 생각이시군요. 음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즐거웠던 식사 시간을 떠올리게요.”
강진의 말에 메흐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따스하고 정이 느껴지지.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들 때 행복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
메흐메트가 주위를 보며 말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런 평온함이 필요하네.”
메흐메트의 말에 배용수가 미소를 지었다.
“저승식당 사장님들은 참 대단하십니다. 음식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배려해서 음식을 하시니…… 정말 참된 요리인이십니다.”
“음식은 먹는 것이네. 그리고 먹는 행위는 즐겁고 행복하지.”
메흐메트가 주위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의 눈에는 황폐한 도시와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다른 모습도 보였다. 그들이 한때 행복하게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웃는 모습이 말이다.
“나는 요리를 만들지. 그러니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네.”
그리고는 메흐메트가 발을 움직였다.
“가세.”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중년인을 다시 한번 보았다.
멍하니 앉아서 허공을 보고 있는 중년인과 그 옆에서 물끄러미 손을 잡고 있는 소녀 귀신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있던 소녀 귀신이 문득 강진을 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에 강진이 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소녀 귀신이 웃으며 그를 보다가 아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시무룩한 얼굴로 발로 땅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왜 아빠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소녀 귀신이 안쓰럽지만…… 지금 주위에 있는 귀신들 모두가 다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남편의 옆에, 누군가는 형제의 옆에…….
그런 귀신들과 사람들을 보는 강진의 어깨를 메흐메트가 잡았다.
“저들을 안타깝게 생각할 시간은 우리에게 없네. 가세.”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강진과 메흐메트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하란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물품을 정리하고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근처에 메흐메트가 수레를 멈추고는 실려 있는 물건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벌써 오셨습니까.”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자 메흐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고생하는데 나도 일찍 나와야지.”
“감사합니다.”
“자네가 감사할 일이 있나. 가서 일 보게.”
메흐메트의 말에 남성이 몸을 돌리려다가 강진을 보았다.
“이 친구는?”
“하란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돕겠다고 온 친구네.”
“아…….”
남성이 강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기 봉사 활동하는 쿠제이입니다.”
“헬로, 강진.”
강진이 짧게 답을 하며 손을 잡자 쿠제이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그에 메흐메트가 말했다.
“이 친구가 우리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을 할 줄은 모르네. 그러니 편하게 말을 하면 되네.”
메흐메트의 설명에 쿠제이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과 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쿠제이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켰다.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쿠제이가 주위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보았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작은 힘을 믿고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건물이 어디 벽돌 하나로 지어집니까.”
쿠제이가 강진의 손을 잡아 흔들고는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런 쿠제이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좋은 분이네요.”
“좋은 사람이지.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지.”
말을 하며 메흐메트가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식재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메흐메트가 음식을 만들 준비를 하자 강진이 그 옆에서 보조를 했다.
“우리 하란과 한국은 다른 나라지만 식성은 비슷한 면이 많아. 우리도 매운맛을 좋아하고 쌀을 좋아하지.”
“검색해 보니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하던데요?”
“좋아하지. 어디 가정이든 달달한 디저트를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하니까.”
메흐메트가 네모난 상자를 들어 열었다. 그러자 갈색의 빵처럼 보이는 것이 보였다.
작게 잘려져 있는 빵을 메흐메트가 내밀었다.
“바클라바라는 디저트네. 우리 사람들이 좋아하지. 한 조각 먹어보게. 그럼 우리 하란 사람들의 디저트 식성을 알 것이네.”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손으로 바클라바를 집었다. 손으로 쥐는 순간 살짝 진득한 느낌과 바스락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강진이 그것을 배용수에게 내밀었다. 배용수가 손을 내밀어 바클라바를 집었다.
스르륵!
강진의 손에 쥔 바클라바에서 반투명한 바클라바가 떼어졌다.
배용수가 먹는다고 바클라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 나눠 먹으려는 것이다.
“촉감이 진득한 약과하고 비슷하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촉만으로도 달달함이 느껴진다.”
“그러게.”
배용수의 답에 강진이 바클라바 두 조각을 더 떼어 이혜미와 강선영에게도 내밀었다.
두 여자도 그것을 받아 들고는 바로 입에 넣었다. 디저트라고 해서 이미 어떤 맛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입에 넣은 두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 이런 말 하면 죄짓는 것 같은데…… 행복한 맛이에요.”
“맞아요. 정말…… 맛있다.”
그에 배용수도 바클라바를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맛있네요. 그런데 너무 단 것 같은데? 이빨이 시릴 정도인데?”
“그게 바클라바의 매력이네. 악마의 단맛이라고 하지.”
메흐메트가 웃으며 이혜미와 강선영을 보았다.
“입에 맞는 듯하니 좋군.”
“아주 맛이 좋습니다.”
귀신들의 말에 강진도 바클라바를 입에 넣었다. 배용수의 말대로 이가 시릴 정도로 단맛이 입에 가득 찼다.
게다가 바클라바에 들어 있는 견과류가 고소하면서 단맛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식감도 아주 좋았다.
“견과류가 단맛과 잘 어울리네요.”
강진의 말에 메흐메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바클라바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귀신이 먹은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금방 맛이 가 버린다. 그래서 새것이 아닌 강진이 든 것을 먹은 것이다.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지. 먹으면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으니까.”
메흐메트의 말에 강진이 손에 남은 바클라바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한국 약과 드셔 보셨어요?”
“먹어봤지.”
“약과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메흐메트가 식재들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약과도 맛이 있지만, 지금은 익숙한 음식이 좋지 않을까 싶네. 여기는…… 새로운 맛에 호기심을 느끼기보다는 익숙한 맛에 안도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 그렇겠군요.”
약과가 맛은 있겠지만, 지금 여기 사람들은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래도 만들어 보게. 구조대 사람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 되어 줄 것이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강진은 상자에서 고기를 꺼내다가 물었다.
“이 고기는?”
“양고기네.”
“아…… 이게 양고기군요.”
강진의 말에 메흐메트가 그를 보았다.
“양고기를 처음 보나?”
“한국은 양고기가 대중적인 식재가 아니거든요.”
“그래? 이 맛있는 걸 안 먹는다고?”
“안 먹지는 않아요. 대신 전문점에서만 다루죠.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먹어봤습니다.”
강진의 말에 메흐메트가 고개를 저었다.
“익숙한 식재만 쓰면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없네. 나중에 안 쓰는 식재들을 구해서 먹어보게. 그래야 나중에 외국 귀신이 와도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지 않겠나.”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메흐메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물었다.
“그럼 무슨 요리를 하실 생각이세요?”
“날씨가 추우니 얼큰한 양고기 국을 끓일 생각이네.”
“베이란?”
“베이란을 아나?”
“아까 음식을 나눠 줄 때 베이란 같은 것을 참고해서 음식을 만들면 좋을 거라고 어떤 분이 알려 주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메흐메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가 쌀쌀한 날에 베이란을 먹고 디저트로 바클라바를 먹으면 기분이 아주 좋지.”
“한국하고 비슷하네요.”
매운 것을 먹고 달달한 것을 먹으면 입도 편해지고 좋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메흐메트가 한쪽에 고추와 고수를 놓으며 말했다.
“다만 베이란은 얼큰한 만큼 느끼하기도 해서 고추나 고수와 같이 먹으면 맛이 더 좋네.”
그리고는 메흐메트가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시작하지.”
“저는 뭘 할까요?”
“자네가 모르는 문화의 음식이니 이번에는 지켜만 보게.”
메흐메트가 손질한 고기를 냄비에 담고 불을 켰다. 그리고 메흐메트가 요리하는 것을 보던 배용수가 말했다.
“재료만 좀 다르다 뿐이지, 김치찌개 끓이는 것하고 비슷하네.”
“맛있는 음식의 요리 방법은 비슷하겠지.”
말을 한 강진이 메흐메트가 만드는 베이란 조리 방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여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맛있고 좋아하는 음식보다, 여기 있는 분들이 좋아하고 맛있는 것을 해야 했다.
음식은 먹는 사람을 생각해서 만들어야 했다.
***
강진과 한끼식당 식구들은 사람과 귀신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강진이 국과 동그란 빵을 나누어 주었다. 아까 구조대들도 먹던 빵이었다.
그리고 강진은 몰랐는데 이 동그란 빵이 하란 사람들이 주식처럼 먹는 시미트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음식을 받아 간 사람들이 감사 인사를 하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많이 드세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배식을 해 주던 강진이 슬쩍 한쪽을 보았다.
한쪽에는 멍하니 허공을 보거나 무너진 건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옆에는…… 귀신이 같이 멍하니 서 있거나 울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정신 좀 차려…….”
“나는 괜찮아.”
오히려 귀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 가족, 형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정작 죽은 것은 자신인데도 말이다.
그런 귀신들을 보던 강진의 눈에 한 중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귀신이 중년 여인의 어깨를 쓰다듬는 것이 보였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나를 두고 나간 건…… 엄마 잘못이 아니야. 엄마는 그냥…… 일을 하러 간 거였잖아.”
여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중학생이 그녀를 안았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그냥…….”
잠시 말을 멈춘 중학생이 여인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소년은 따로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자신도 뭔지 모르는 일들이었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