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강진과 신수호 형제들은 마을 뒤에 위치한 동굴에 김치가 담긴 통들을 옮기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한끼식당에서 사용하는 김치와 장들을 보관하는 동굴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김치 통들을 동굴 안으로 끌어다 넣은 강진이 동굴 안을 보았다. 동굴 안은 길게 길이 나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통들이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져 있었다.
“안 힘들어?”
할머니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산삼 국물을 여러 사발 먹었더니 괜찮습니다.”
산삼을 넣고 만든 수육을 먹고, 그 육수에 된장을 풀어서 국으로도 먹었다.
국물 한 방울도 아깝다는 생각에 최대한 다 먹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 삼십 년 묵은 도라지까지 먹었다.
허연욱이 돼지고기와 도라지는 궁합이 좋지 않아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했지만…… 귀신들이야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고, 강진은 삼십 년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좋다는 말에 혹해서 그냥 먹었다.
다행히 허연욱의 우려와는 달리 딱히 부작용이 생기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냥 느낌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물론 반복적인 일에 허리가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가끔씩 와.”
“그럼요. 자주 와야죠.”
“그럴 거야?”
“와서 요리도 배우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죠.”
“그럼 우리야 좋지.”
환하게 웃는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저, 메주 쑤실 줄 아세요?”
“우리 때는 다 집집마다 장도 담그면서 살았는데, 그걸 모르겠어?”
“그럼 혹시 다음 주에 저 메주 쑤러 와도 될까요?”
강진의 말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메주 쑤는 건 어렵지 않은데…… 여기서는 띄우기가 어려워.”
“왜요?”
“메주는 따뜻해야 하는데, 여기는 따뜻하지가 않잖아.”
“아…….”
할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메주는 여기서 안 만들었나 보구나.’
원래는 김장할 때 메주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수용이 메주는 다음에 쑤라면서 콩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는 메주를 쑤기 어려운 것을 알고 안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에 잠시 생각을 하는 강진에게 신수용이 말했다.
“나가시죠.”
“네.”
신수용 형제들과 동굴을 나온 강진은 어느새 환하게 밝아진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어?”
하늘을 보는 순간 강진의 얼굴에 순간 당황이 어렸다. 동굴 안에 김치 통들을 넣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오른 것이다.
그에 강진이 급히 핸드폰을 보았다.
“허억!”
8시 53분.
시간을 본 강진이 주위를 급히 두리번거리고는 강두치를 찾았다.
강두치는 양손에 김치 통을 든 채 웃으며 신수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두치 씨.”
“네?”
강진의 부름에 강두치가 그를 보자 강진이 말했다.
“저 여기서 서울까지 갈 수 있죠?”
“차가 있는데 못 갈 이유가 없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출근 시간에 늦어서요. JS 금융을 통해서 갈 수 있을까 해서요.”
JS 금융을 통하면, 문 하나를 지나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이동할 수 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말과 함께 강두치가 신수호를 보았다.
“다음에 또 보자고.”
“그렇게 하지.”
그러고는 강두치가 동굴의 문에 다가갔다.
“가시죠.”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신수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먼저 가겠습니다.”
“김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수호가 차에서 김치 통을 가리켰다. 김장을 하고 나서 강진도 김치 통을 미리 하나 따로 챙겨 놓은 것이다.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런 것까지 가져다주라고 하기 미안한 강진이 트럭에서 김치 통을 꺼내 손으로 쥐고는 귀신들을 보았다.
“김장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와 줘서 우리가 더 고맙지.”
“아닙니다. 제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한쪽에 있는 만복을 향해 말했다.
“형! 또 올게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뒷짐 지고 있던 손을 꺼내 봉지를 하나 던졌다.
툭!
강진이 봉지를 잡았다.
꽤 두툼하고 묵직한 것에 강진이 만복을 보았다.
“좋아하는 것 같더라.”
만복의 말에 강진이 봉지를 열었다. 봉지 안에는 도라지가 여럿 들어 있었다. 그것도 무척 크고 두툼한 것이 말이다.
“형.”
“맛있게 먹고, 지각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 있으면 그거라도 하나 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와! 산삼 캐 줄게.”
“꼭 오겠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강진이 신수호의 트럭 앞자리에서 봉지를 두 개 더 꺼냈다.
만복이 먹으라고 챙겨 준 산삼과 석청 남은 것이었다.
“형, 잘 먹을게요.”
강진의 말에 만복이 그를 보다가 훌쩍거리며 몸을 돌렸다. 마치 설날에 친척 형을 만난 동생이, 헤어질 때 아쉬워서 우는 것 같았다.
“형!”
“가! 그리고 빨리 와.”
만복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보육원 동생들이 떠올랐다. 보육원 동생들도 가끔 봉사를 하러 온 대학생 형들이나 누나들한테 정을 많이 주고는 했다.
하루밖에 안 되는 봉사 시간에도 정이 들어서 형과 누나들이 가면 눈물 펑펑 쏟았던 것이다.
그리고 만복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정이 그리운 것은 만복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보육원…… 밥이라도 해 주러 한 번 가봐야겠네.’
“다음에 올 때는 더 맛있는 것 해 줄게요.”
훌쩍!
“그……러든가.”
만복의 말에 웃는 강진에게 강두치가 말했다.
“56분이에요.”
“아! 그럼 다음에…… 아니 다음 주에 또 올게요.”
그러고는 강진이 서둘러 강두치에게 가자, 그가 동굴 문을 열었다.
강진하고 강두치가 사라지는 것을 보던 배용수가 놀라 말했다.
“야! 우리는!”
하지만 이미 강진은 문 사이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
덜컥!
문을 열고 나온 강진은 회사 지하 1층에 있었다. 문을 사이로 두고 강두치가 말했다.
“다음부터도 거기 갈 때는 JS 금융 통해서 가세요.”
“그래도 될까요?”
“시간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이용합니다. 그럼 김치 잘 먹을게요.”
강두치가 김치 통을 들어 보이고는 문을 닫았다.
덜컥!
문이 닫히자 강진이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거 혼나겠는데?’
복장은 청바지에 가벼운 남방, 거기에 김치 통과 검은 봉지까지 들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출근 도장 찍고 집에 금방 다녀오겠다고 해야겠다. 그리고…….’
지금껏 어떠한 아르바이트를 하든 강진은 지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은 신용을 어기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강진과 일을 한 사람들은 그를 좋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신용이 좋으니 말이다.
스윽!
강진이 봉지를 보았다.
‘도라지로 뇌물을…….’
만복도 혼날 것 같으면 도라지로 뇌물을 주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탄 강진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보며 슬며시 벽으로 몸을 붙였다.
“이강진 씨, 복장이 왜 그래요?”
그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진이 고개를 돌리니 해외사업 2팀 오성실 부장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그러고 출근한 겁니까?”
의아한 듯 자신을 보는 오성실 부장의 말에 강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원도에서 김장을 하고 오느라…….”
“그래도 옷은 갈아입고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출근하고 양해 구한 후에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오려고요.”
“음…….”
오성실이 작게 침음을 토하는 것에 강진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무역이란 사람을 만나고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일이다. 복장부터가 비즈니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가게의 첫 손님이라 할 수 있고,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오성실이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복장이 확실히 문제기는 한 모양이었다.
‘지각 안 하는 것만 걱정을 했는데…….’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힐끗 봉지를 잡고는 슬며시 도라지 한 뿌리를 빼냈다.
“부장님.”
오성실이 그를 보자 강진이 슬며시 도라지를 내밀었다.
“팀원분들하고 드십시오.”
“이건 뭡니까?”
도라지를 본 오성실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이 말했다.
“도라지입니다.”
“도라지?”
도라지라는 말에 오성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도라지를 주다니?
그것도 포장을 한 것도 아니고,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채로 말이다.
“김장하는 곳에서 몇 뿌리 캤습니다. 그리고…… 삼십 년 된 겁니다.”
강진이 슬며시 뒷말을 붙이자 오성실이 그를 보았다.
“도라지도 삼십 년 된 것이 있습니까?”
처음 들어 본다는 듯 의아해하는 오성실의 말에 강진이 뭐라 말을 하려 할 때, 한쪽에 있던 남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삼십 년 된 도라지?”
놀람에 찬 말에 오성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 부장님.”
“오 부장.”
고 부장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밀치며 다가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임원 바로 밑이 부장이다. 즉 일반 사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니 좁아도 길을 터주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와 오성실의 손에 들린 도라지를 보자 고 부장의 눈에 놀람이 어렸다.
“엄청 크군.”
“큰 겁니까?”
“자네는 도라지도 안 먹어 봤나?”
“먹어 보기는 했지만 반찬으로나 먹었지. 이런 날것은 처음입니다.”
“이거 참…… 산삼을 눈앞에 두고도 모르면 못 캔다고 하더니…….”
말을 하던 고 부장이 강진을 보았다.
“자네가 캔 건가?”
“네.”
“그…… 우리 잠시만 내리세.”
그러고는 고 부장이 내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먼저 내리자 강진이 급히 말했다.
“저 출근해야 하는데요.”
강진의 말에 고 부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디 부서지?”
“수출 대행 2팀입니다.”
“그럼 내가 말해 줄 테니까. 잠시만 이야기하자고.”
고 부장의 말에 오성실 부장이 강진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잠깐이면 될 거야.”
오성실도 조금 어려워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고 부장이 손수건을 꺼내고는 말했다.
“그…… 조금만 보세.”
“그러십시오.”
오성실이 도라지를 내밀자 고 부장이 조심스럽게 손수건 위에 그것을 올리려 했다.
“손수건이 더러워지실 텐데요?”
“자네 손에 도라지가 더럽혀지고 있네.”
고 부장이 조심히 손수건 위에 도라지를 올리는 것을 보며 오성실이 물었다.
“도라지가 귀한 겁니까?”
“이렇게 큰 도라지는 귀하지.”
그러고는 고 부장이 도라지를 스윽 보다가 머리 쪽을 보았다.
“둘, 넷, 여섯, 여덟…… 서른…… 서른셋? 삼십삼 년…….”
꿀꺽!
침을 삼키는 고 부장의 모습에 오성실이 말했다.
“좋은 겁니까?”
“이건 산도라지야. 그것도 33년이 된 거지.”
“일반 도라지와는 다릅니까?”
“일반 도라지가 소형 경차라고 하면 산도라지는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지.”
그러고는 고 부장이 오성실을 보았다.
“게다가 이건 33년산이야.”
“오래됐네요.”
“이 정도면 그냥 산삼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오래 묵은 도라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산삼이라는 말에는 오성실이 놀란 듯했다.
“산삼?”
“자네는 이런 쪽에는 잘 모르는군.”
“고 부장님이 잘 아시는 거죠.”
“내가 산을 좋아하기는 하지.”
두 사람의 말에 강진이 말했다.
“저…… 저희 과장님한테 전화라도 한 통 해 주십시오.”
강진의 말에 오성실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임 과장, 다른 것이 아니라 이강진 씨 잠깐 나하고 어디 좀 갔다 올 데가 있어. 응, 미안해. 내가 잠깐 뭐 좀 시키고 30분까지 보낼게. 고마워.”
그걸로 통화를 끝낸 오성실이 강진을 보았다.
“30분이면 집에서 옷 갈아입고 오기 충분하겠죠?”
오성실의 배려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고 부장은 연신 도라지를 보고 있었다.
“좋군. 좋아…….”
고 부장이 웃으며 도라지를 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슬쩍 강진이 들고 있는 봉지를 보았다.
“더 있나?”
“있기는 한데요…….”
“팔 생각 없나?”
고 부장의 눈에는 갖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