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그나저나 아쉽네요.”
어느새 얼큰하게 취한 임호진이 주조장을 보았다.
“아쉽기는…….”
“말은 그렇게 하셔도 아쉬우실 것 같은데요.”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며 막걸리를 마셨다.
꿀꺽! 꿀꺽!
단숨에 막걸리를 들이켠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안 아쉽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저걸로 자식들 키우고, 학교 보내고 다 했으니까.”
말을 하며 할아버지의 젓가락이 김치 통으로 향했다.
“그거 말고 이거 드시죠.”
할아버지가 손을 댄 김치는 그가 양조장에서 가지고 나온 김치였다.
그리고…… 임호진이 먹어 보니 맛이 없었다.
그래서 강진이 가지고 온 김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 할아버지도 두말없이 강진이 가져온 김치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아삭! 아삭!
김치를 씹는 할아버지를 보며 임호진이 통에 담긴 김치를 보았다.
“김치를 사서 드시는 겁니까?”
“둘째가 담가온 거야.”
“아! 며느님이 담가 오신 거군요.”
임호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며 김치를 보았다.
“담갔다고 가져 오기는 했는데…… 맛은 자네도 먹어봐서 알 테고…… 어디서 사 온 거겠지.”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쓰게 웃었다. 사실 김치가 별로 맛이 없었다.
쉽게 생각하면…… 시중에 저렴하게 파는 김치 같다고 할까?
사 먹는 김치는 바로 먹을 때는 먹을 만한데, 익거나 시간이 지나면 뻣뻣하고 양념이 겉돌아서 맛이 이상해져 버린다.
그래서 산 김치는 시간이 지나면 볶아서나 먹지, 생으로 먹기에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김치도 그랬다. 게다가 쓴맛도 도는 것이 딱히 좋은 김치도 아니었다.
“그 애도 지금 김장할 정신이 없지. 집이 쫄딱 망했는데 어떻게 김장을 하겠어.”
말을 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기특하지. 이렇게라도 신경을 쓰니까 말이야.”
웃으며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마시는 것을 보며 임호진이 슬쩍 김치를 보았다.
‘김치 사서 보낼 거면 좋은 김치도 많은데…….’
요즘 시중 김치 중에도 조금 고가의 것은 집에서 담근 것보다도 더 맛있는 것도 많다.
싸면서 맛있는 것은 사실…… 사람의 욕심일 뿐, 음식이 싸면 대체로 그 가격대의 맛일 뿐이다.
임호진은 쓰게 웃으며 막걸리를 할아버지에게 따라주었다.
“그럼 언제 파시는 겁니까?”
“팔고 싶다고 마음먹어도 그게 쉽지는 않아. 이런 주조장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제가 한 번 알아봐드릴까요?”
양조장 쪽으로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한국에서야 몇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회다.
알아보면 도움이 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됐어.”
웃으며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켠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콤한 냄새 안 나나?”
할아버지의 말에 임호진이 숨을 들이마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냄새가 좋네요.”
“그러게…… 이거…… 흡!”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신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마누라가 해 주던, 꽁치 넣고 끓인 김치찌개하고 냄새가 비슷하군.”
“강진이가 요리를 참 잘합니다.”
“냄새만 맡아도 기분이 좋구먼.”
말을 하며 할아버지가 주조장 쪽을 보았다.
“맛있겠군.”
입맛을 다시며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마시자 임호진도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맛있는 냄새였다.
보글보글!
맛있는 냄새를 내며 끓고 있는 꽁치 김치찌개를 보며 강진이 맛을 보았다.
“크윽! 좋다.”
칼칼하면서도 푹 숙성이 된 김치의 신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거기에 꽁치의 기름에서 나온 고소한 단맛이 느껴지니 밥 한 그릇 정도는 금세 뚝딱할 것 같았다.
“확실히 김치찌개는 김치가 반이네.”
입맛을 다시는 강진을 보며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이거 몇 년 된 김치예요?”
강진의 물음에 할머니가 웃으며 손가락 네 개를 펼쳤다.
‘사 년 묵은 김치? 대박이네.’
김치가 오래됐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김치는 맛이 좋았다.
아마도 할머니만 아는 장소에 계속 묻어 두고 있다 보니, 누가 열어 보지도 않고 해서 숙성이 잘 된 것 같았다.
“조금 더 끓이기로 하고…….”
강진이 냉장고를 열어서는 반찬통들을 몇 개 꺼냈다. 반찬거리라도 몇 개 더 내놓으려는 것이다.
달칵!
뚜껑을 연 순간 강진이 급히 고개를 돌리며 뚜껑을 도로 덮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안에서 썩은 내가 터져 나온 것이다.
“우웩!”
강진이 헛구역질까지 하며 급히 반찬통을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이걸 왜 안 버리시고…….”
고개를 저은 강진이 다른 반찬통들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열 때마다 지뢰였다.
꺼낸 반찬들은 다 썩거나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
눈을 찡그린 강진이 반찬들을 모두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니 냉장고에서 먹을 만한 반찬은 커다란 김치 통에 들어 있는 김치뿐이었다.
“식사를 안 하시나?”
강진이 반찬통 뚜껑을 열어 쏟으려는 순간, 할머니가 급히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응?”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손도 흔드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이거 썩은 것 같은데…….”
그래도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통들을 가리키고는 다시 냉장고를 가리켰다.
다시 집어넣으라는 할머니의 몸짓에 강진이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냉장고에 반찬통들을 집어넣었다.
사실 음식 쓰레기보다도 더 냄새가 나는 것들을 치우려고 하니 썩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도 있고 하니 치우려고 한 것인데, 하지 말라고 하니 오히려 감사할 뿐이었다.
다만…….
‘왜 이러시지?’
할아버지를 챙기는 할머니가 왜 이걸 버리지 못하게 하는지 모를 뿐이었다.
어쨌든 그 사이 꽁치 김치찌개가 완성이 되자 강진이 한쪽에 있는 쟁반에 찌개를 올리고는 반찬을 놓았다.
반찬은 간단했다. 고추 장아찌를 다져서 놓은 것과 고추, 그리고 고추장이 끝이었다.
거기에…… 죽처럼 질디질은 밥도 있었다.
‘은근 어울리네.’
처음에는 밥이 너무 질어서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놓으니 괜찮아 보였다.
새콤하고 매운 고추 장아찌와 질은 밥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음식들을 챙긴 강진이 그것을 들고 주조장을 나왔다.
강진이 쟁반을 들고 나오자 최동해가 급히 일어나 그것을 받았다.
옛날 같으면 그냥 앉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눈치라는 것이 생겨서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형, 주세요.”
“그래.”
강진이 쟁반을 주자 최동해가 그것을 들고 평상으로 왔다.
“맛있겠…….”
말을 하며 쟁반을 보던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맛있겠네요.”
그런 할아버지를 눈치채지 못한 임호진이 웃으며 음식을 보다가 의아한 듯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밥이 왜 이래?”
밥이 너무 질어서 임호진도 놀란 것이다.
“제가 물을 좀 못 맞췄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호진이 웃었다.
“이런 밥으로 어떻게 음식 장사를 하려고 해? 지금이라도 정직원을 노려보지그래.”
“지금 제가 노린다고 되겠어요?”
“지금이라도 노리면 내가 팍팍 밀어 줄 수 있지. 그리고 오 부장님도 자네 무척 좋아하잖아.”
“그럼 저 대신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잖아요.”
“그게 그렇게 되나?”
임호진의 말에 가볍게 웃은 강진이 할아버지를 보았다.
“밥이 질기는 하지만 맛이 괜찮으실 겁니다.”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밥상을 보았다.
“우리 마누라가 나 일할 때 차려 주던 밥상하고…… 너무 비슷하군.”
“그런가요?”
“내가 일하고 있으면 늘 이렇게 밥상을 차려서 여기서 먹고는 했지.”
말을 하던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보니 우리 마누라가 만든 밥상 같고만…….”
“드셔 보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어서는 김치찌개를 떠먹었다.
그러고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맛있어.”
“그래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할아버지가 젓가락으로 꽁치를 밥 위에 놓고는 김치도 한 조각을 집었다.
김치에 꽁치를 둘둘 말아 할아버지가 입에 넣었다.
우걱우걱!
맛은 묻지 알아도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어려 있으니 말이다.
웃으며 꽁치와 김치를 같이 씹던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죽 같은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는 고추 장아찌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그대로 입에 넣은 할아버지가 재차 미소를 지었다.
“우리 마누라가 이렇게 자주 해 줬지.”
“그러세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진밥을 크게 떠서 고추 장아찌를 먹었다.
아삭! 아삭!
“우리 마누라가 밥을 참 못해.”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눈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르는 할아버지가 밥을 보며 말했다.
“우리 마누라도 밥을 이렇게 죽처럼 질게 했어. 오십 년 넘게 밥을 했는데도 어떻게 밥을 이렇게 하는지. 쯧쯧쯧!”
혀를 차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강진이 의아한 듯 할머니를 힐끗 보았다.
할머니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밥을 가리키고 할아버지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당신이 진밥을 좋아해서 이렇게 밥을 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에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처음부터 밥을 이렇게 하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웃었다. 옛 기억을 떠올리니 즐거운 모양이었다.
“시집와서 처음 짓는 밥을 그렇게 했더라고. 그때는 밥이 귀한 시기라, 우리 어머니한테 크게 혼도 났었는데도 밥을 여전히 못해.”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향해 계속 손짓을 하는 것에 강진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혹시 그때 진밥 좋아하신다고 하셨어요?”
“내가? 나는 진밥 안 좋아해.”
“그냥 그때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밥을 망쳤다고 혼내고 마누라는 울고, 그래서 안쓰럽고 해서 내가 진밥을 좋아한다고, 그렇게 지으라고 했다고 했던가?”
“그럼 그 다음에는 진밥 싫다고 하셨어요?”
“…….”
잠시 말이 없던 할아버지가 웃었다.
“생각을 해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군.”
“그럼 아마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진밥을 정말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밥을 그렇게 지으신 것이 아닐까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는 순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에 강진이 할머니를 힐끗 보자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정말 그래서 진밥을 지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어. 그 사람이 순진한 구석이 있거든.”
할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에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황당함이 어린 눈으로 할아버지를 보던 할머니의 얼굴에 곧 미소가 어렸다.
아마도 ‘그럼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그걸 오십 년 넘게 먹었어요?’ 하는 것 같았다.
스윽!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보던 강진이 음식을 가리켰다.
“식사하세요.”
“그래. 오랜만에 우리 마누라가 해 주던 음식 맛을…….”
말을 하던 할아버지가 문득 주조장 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강진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반찬을 보았다.
스윽!
고추 장아찌를 집어 입에 넣고 맛을 보던 할아버지가 강진을 보았다.
“이거 자네가 한 건가?”
“저기 나무 밑 장독대에 있던 걸로 한 건데요.”
“나무 밑 장독대?”
“거기에 김치하고 장아찌하고, 장들이 있었습니다.”
“정말인가?”
“냉장고에 뭐가 없어서, 주변에 뭐라도 있나 돌아보다가 찾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없이 써서 죄송하네요.”
강진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에 있나?”
“저기 주조장 뒤에 있던데요.”
“그…… 같이 가세.”
할아버지가 서둘러 평상에서 내려오자 강진이 두말하지 않고 앞장섰다.
김치가 숙성된 정도를 보면 할아버지도 거기에 김치가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알려주려는 것이다.
주조장 뒤에 있는 나무 밑에 가서, 거적을 들추고 항아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할아버지가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든 김치와 장아찌들을 본 할아버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김치를 어디에 뒀나 했더니…….”
“여기에 김치 있는 걸 모르셨어요?”
“집안일은 마누라가 해서 난 잘 몰라.”
“김장 같이 안 하셨어요?”
“남자가 무슨 이런 일을 해? 그냥 담가 주는 김치에 막걸리나 한잔하는 거지.”
말을 하며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손으로 쓰다듬고는 하나를 열었다.
시큼한 김치 냄새가 나자 할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김치를 잡아 찢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김치를 입에 넣고 씹은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항아리를 보았다.
“마누라.”
작게 할머니를 부른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냉장고에 자네가 만든 반찬들이 그대로 있어.”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사실 저도 그 반찬들을 봤는데…… 왜 안 버리세요?”
“마누라 죽고……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꺼냈는데…… 못 먹겠더라고.”
“왜요?”
“그걸 보면 마누라 기억이 났거든. 그래서 먹을 수가 없더라고…… 다 먹으면…….”
말을 하던 할아버지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어렸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까 걱정이 되셨던 건가?’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에 대한 기억이고, 누군가에 관한 추억이 담겨 있다.
썩어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끼어 있어도, 할아버지에게는 아내가 해 준 음식이었고 추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