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새 김밥을 다 먹은 조 사장이 입가를 닦아내고는 웃었다.
“제가 원래 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데…… 가게가 편해서 그런지 아니면 사장님 말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이상하게 오늘은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군요.”
“편하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요즘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야길 하다 보니 치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행입니다. 꼭 치매를 정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꼭 그러고 싶습니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말을 하던 강진이 문득 말했다.
“아까 통화하시던 걸 들으니 오늘 회식하신다고 하시던데요?”
“같이 고생하던 연구원들이니 가기 전에 밥이라도 한 끼 같이하고 보내야죠.”
“혹시 막걸리 좋아하세요?”
“대학교 때 조금 마시기는 했지요.”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주류 냉장고 옆에 있는 큰 통을 들고 왔다.
일명 말통이라 불리는 묵직한 통을 들고 오는 강진의 모습에 조 사장이 뭐냐는 듯 보았다.
“오 대째 막걸리를 만드는 곳에서 받아온 잣 막걸리입니다.”
“잣 막걸리요?”
“오늘 회식할 때 가져다 드세요.”
“이걸요?”
“황민성 씨가 오만 원이나 주시고 가셔서, 아무래도 계속 양심에 걸립니다.”
“그냥 받으셔도 되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생긴 지론이기도 했고, JS에 대해 알고 더 강해진 지론이기도 했다.
강진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조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맛이 좋으시면 연락해 주세요. 여기가 소량만 만드는 곳이라 미리 예약을 해야 받아 올 수 있거든요.”
강진이 명함을 꺼내 내밀자 조 사장이 그것을 받아 보고는 웃으며 자신의 명함도 꺼내 내밀었다.
“그럼 잘 먹고 갑니다.”
조 사장이 막걸리 통을 들고는 가게를 나가자 강진이 그를 배웅해 주었다.
“연구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강진의 말에 조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아! 그리고 아는 분들한테 저희 가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맛있고 좋은 가게라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기분 좋게 웃으며 조 사장이 강진에게 말했다.
“황 사장 다음에 오면 쫄면 해 주세요.”
“쫄면요?”
“황 사장이 그걸 좋아합니다.”
그러고는 조 사장이 오만 원짜리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오면 해 주세요.”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돈을 받았다.
“잘 뒀다가 오시면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조 사장이 가게를 한 번 보았다.
“좋은 가게입니다.”
조 사장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조 사장이 마주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막걸리 통을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그릇들을 정리하다가 비어 있는 김밥 접시를 보았다.
“우리 엄마도 김치 김밥 먹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 엄마가 혼자 밥 먹기 귀찮을 때, 김치 김밥을 만들어서 TV를 보며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도 하나 먹을래?
그렇게 묻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강진이 그릇들을 치웠다.
“그때 하나 먹을 걸 그랬네.”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그릇들을 치우고는, 김치 김밥을 하나 싸서는 자르지 않고 입으로 물어뜯었다.
김치가 길게 비어져 나오는 것을 이로 물어 자른 강진이 아삭 소리가 나게 김밥을 씹었다.
“맛있네.”
***
강진은 인턴 마지막 주의 월요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삼 일만 더 일하면, 목요일에는 인턴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상섭이 커피를 한잔하자고 해서 강진은 그와 함께 탕비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삼 일 남았네?”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웃으며 그를 보았다.
“상섭하시죠?”
“뭐?”
“높을 상에 섭섭함을 합쳐서 상섭요. 많이 섭섭하시냐는 거죠.”
강진의 농담에 이상섭이 눈을 찡그렸다.
“죄송합니다.”
그에 강진이 바로 사과를 하자 이상섭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농담 어디 가서 하지 마라. 욕먹는다.”
그러다가 이상섭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선배님 소리도 안 붙이네?”
“제가 군대로 따지면 제대 삼 일 남은 말년 병장 아니겠습니까?”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네가 군대를 아냐?”
강진은 군대를 가지 않았다. 몸이 어디가 나빠서는 아니었고, 환경이 있다 보니 면제가 된 것이다.
“제가 군대는 안 갔지만 친구들하고 후배들한테 들은 군대 이야기만 합치면 육군, 공군, 해군, 거기에 수색대, 공병, 포병, 헌병에 운전병까지 모르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 들어 보니까 말년 되면 간부들하고도 형 동생 한다고 하던데요?”
“그냥 편하게 말 정도는 해도, 형 동생까지는 아니지.”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문득 말했다.
“중고차 사업, 지금도 추진 중이시죠?”
“왜?”
“중고차 한 대 사려고요.”
“차?”
“인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장사해야 하는데, 차가 있어야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아서요.”
“하긴 음식 장사면 식재료도 많이 사야 할 텐데 걸어서 다니기는 힘들겠네.”
“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아프리카 쪽으로 가는 중고차는 거의 폐차 직전이라 여기저기 손볼 게 많아.”
“그래요?”
“여기서 팔 만하면 여기서 팔았지, 왜 아프리카까지 보내겠어? 거기까지 가는 건 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들이야.”
“그건 그렇네요.”
강진의 답에 이상섭이 그를 보았다.
“얼마 생각하는데?”
“제가 차 쪽으로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어느 정도 사야 탈 만할까요?”
“차마다 다르기는 하지. 차 종류는 상관없지?”
“상관없죠.”
“그럼 오백 정도면 타고 다닐 만한 걸 살 수 있을 거야.”
“오백요?”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강진이 눈을 찡그리자 이상섭이 말했다.
“싼 것이 비지떡이라는 말 알지?”
“알죠.”
“네 몸 태우고 다닐 차인데 너무 싼 것 사려고 하면 문제 생긴다.”
“그건…… 그렇죠.”
“그리고 싸고 좋은 차는 없어. 싼 차는 싼 만큼 차에 문제가 있는 거야. 중요한 건 차를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차를 제대로 된 가격에 사는 거야.”
“호구만 안 되면 되는 거군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상섭이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있는데, 알아봐 줘?”
“그럼 저야 감사하죠.”
“대신…… 문제 생겨도 나는 모른다.”
“문제 안 생길 차를 알려 주셔야죠.”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문제 안 생길 차가 어디에 있냐? 타다가 문제 생기면 해결하면서 타는 거지.”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컴퓨터하고 비슷하네요.”
“컴퓨터?”
“예전에 학교 후배가 컴퓨터 좀 알아봐 달라고 해서 맞춰 준 적이 있었거든요.”
“문제가 있었나 보네?”
“쓰다가 문제가 생기면 귀찮게 하더라고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다가 문제가 생기면 네가 알아서 해결해야 해. 그러면 내가 소개시켜 줄게.”
“그럼 소개해 주세요.”
“그럼…… 점심시간에 다녀오자.”
“그 시간이 될까요?”
“시간 좀 지나면 외근으로 빼지 뭐.”
중고차를 어디로 보러 가는지는 몰라도, 차를 보고 어쩌고 하다 보면 점심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일과 시간에 가시게요?”
“원래 직장인들 개인 일은 일과 시간에 해야 꿀인 거야.”
“그건…… 그렇죠.”
농담 삼아 똥도 회사에서 싼다는 사람도 있다. 집에서 싸면 물 값과 휴지 값이 나가지만, 회사에서 싸면 싸는 동안에도 월급은 들어오니 말이다.
“그리고 차는 해 있는 날 봐야지. 저녁에 보면 흠집이 안 보여.”
“아…….”
그건 몰랐던 것이라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상섭이 말했다.
“그럼 점심 먹고 가는 걸로.”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이상섭이 탕비실을 나섰다. 탕비실에서 나온 이상섭이 임호진에게 말했다.
“점심 때 강진이하고 중고 자동차 매매 센터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거기는 왜?”
“한국 중고차 시세 좀 확인하려고요.”
“그런 거면 지원팀에 연락하면 되잖아?”
국내외 필요한 시세나 정보들은 회사 내 지원팀에 협조 요청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로는 직접 가서 봐야죠. 그리고 강진이가 중고차 산다고 해서 겸사겸사 다녀오려고요.”
이상섭의 말에 임호진이 강진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이상섭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가자 임호진이 강진을 보았다.
“그나저나 유대성 어르신한테 연락 왔는데, 너한테 고맙다고 하시더라.”
유대성이면 막걸리 장인 할아버지다.
“아드님과 일하기로 하셨나 보네요.”
“어제 새벽에 내려와서 일 시작했다네.”
“잘 됐네요.”
“잘 됐지. 그래서 내일쯤 가 보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저야 좋죠.”
“그럼 내일 세 시쯤에 가기로 하자고.”
임호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문득 그와 이상섭을 번갈아 보았다.
‘성실하게 일하는 줄만 알았더니…… 땡땡이도 가끔씩 치시기는 하네.’
전에 주조장에 간 것도 어떻게 보면 땡땡이를 친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상섭의 외근도 그다지 필요한 일도 아니니…… 직원들도 때로는 외근을 핑계로 이런저런 잡일들을 일과 시간에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이상섭의 차를 타고, 강진은 중고차 매매 센터에 들어서고 있었다. 길게 늘어서 있는 차들을 보며 강진이 차에서 내리자 이상섭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나 왔는데…… 알겠어.”
차에서 내린 이상섭이 강진을 보았다.
“온다니까, 기다리자.”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브로커가 형하고 친하세요?”
“나하고는 그냥 일 때문에 좀 알고 지낸 사이기는 한데…… 앞으로 나하고 일하려면 눈탱이는 안 치겠지.”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고차를 외국에 대량으로 매매해 주는 무역 회사의 직원인 이상섭이다 보니, 중고차 매매를 하는 브로커로서는 그와 긴밀한 것이 좋을 것이다.
굴러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팔리는 것이 아프리카 시장이니 말이다.
“차 구경이나 하자.”
차를 세워 둔 이상섭이 주차되어 있는 중고차들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중고차들의 외형은 깔끔했다. 차들을 구경하던 강진의 눈에 자동차 한 대가 들어왔다.
일명 ‘국민 차’라고 불리는 아반뜨였는데 깔끔하게 보였다. 다만…… 귀신만 없다면 말이다.
‘무슨…… 귀신이 저렇게 붙어 있어?’
차에는 귀신 둘이 이미 타고 있었다.
‘사고로 죽은 건가?’
강진이 차에 붙어 있는 귀신들을 볼 때, 이상섭이 차를 보고는 눈을 찡그렸다.
“아반뜨네.”
“많이 타고 다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근데…… 차가 좀 안 예쁜데.”
외형도 멀쩡한데 안 예쁘다고 하는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며 물었다.
“이상해요?”
“깔끔해 보이기는 한데…… 그냥 안 예쁘네.”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차를 보았다.
‘귀신 때문인가 보네.’
뒷좌석에 타고 있는 두 귀신 때문에 일반인도 뭔가 꺼림칙한 기운을 느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차를 보고 있을 때 한 청년이 다가왔다.
“형님!”
형님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청년의 모습에 이상섭이 그를 보며 웃었다.
“잘 지냈지?”
“저야 잘 지냈죠.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중고차 센터에 왜 왔겠어?”
“차 사시게요?”
“응.”
“하긴 형님도 이제 차 바꾸실 때가 되기는 했죠.”
“차 산 지 삼 년밖에 안 됐는데 무슨 소리야?”
“에이! 대기업 다니시는 분이 삼 년이면 많이 타셨죠. 차 어떤 걸로 보시겠어요? 요즘 좋은 매물 많습니다.”
청년이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것에 이상섭이 피식 웃으며 강진을 가리켰다.
“나 말고 이 친구가 살 거야.”
“이분도 태광무역 다니시나 보죠?”
“그렇지.”
“그럼 좋은 걸로 소개해 드려야겠네요.”
그러고는 청년이 강진에게 명함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고대훈입니다.”
청년의 명함에 강진도 태광무역에서 받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이강진입니다.”
서로 명함을 나눈 뒤, 강진에게 고대훈이 말했다.
“이 차 보고 계시던데, 마음에 드세요?”
강진이 보던 차를 보며 고대훈이 웃으며 차에 다가갔다. 오는 길에 강진이 차를 유심히 보던 것을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