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72
173화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미소를 가득 품은 채 아저씨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에 문득 아저씨가 그녀가 있는 곳을 보았다.
“아들.”
자신을 보는 아저씨의 시선에 할머니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아저씨는 할머니가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뭔가 그리운 감각이 느껴지는 것에 그녀가 있는 곳을 볼 뿐이었다.
그런 아저씨를 할머니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살아서 더 많이 쓰다듬어 줄 것을…….’
아저씨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모습에 강진이 최호철을 보았다.
“저렇게 만져도 되는 거예요?”
“귀신이 사람 만지면 해가 되지만, 수호령은 괜찮지.”
이야기를 나눌 때 강진의 머리 위에 뭔가가 부딪히고는 떨어졌다.
스르륵! 스르륵!
툭!
그러고 싱크대에 내려앉은 것을 강진이 보았다. 그건 두 장의 종이였다.
‘설마? 승천도 안 했는데?’
그에 강진이 종이를 집어 들었다.
‘천오백만 원?’
놀란 눈으로 수표를 보던 강진이 다른 종이를 보았다.
‘도현수가 남편인가 보네.’
강진은 살짝 놀랐다. 도현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천오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쏴 줄 정도라면 JS 금융 VIP일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수표와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는 홀을 보았다.
홀에서는 가족이 웃으며 오징어 볶음을 먹고 있었다. 다만 아저씨만 커다랗게 많이 먹고 아줌마와 도영민은 조금 먹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슬쩍 프라이팬에 남아 있는 오징어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단맛이 확 느껴지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맛있어?”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맛이 없지는 않은데 좀 많이 달아서 제 입에는 그리 맞지 않네요.”
“저 아저씨는 잘 먹는구만.”
“사람마다 입맛은 다 다르니까요. 그리고 입맛이라는 것이 어머니 식성을 따라가는 법이니까요.”
그러고는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오징어 볶음을 보다가 플라스틱 통을 하나 꺼냈다.
남은 오징어 볶음을 그 안에 모두 더는 강진의 모습에 최호철이 물었다.
“싸주게?”
“제 입에는 아니지만 저분 입에는 맞잖아요. 필요한 사람 주는 거죠. 그리고 음식 버리면 죄 받아요.”
플라스틱 통에 오징어를 담을 때, 도영민이 다가왔다.
“잘 먹었습니다.”
도영민의 말에 강진이 플라스틱 통을 들고는 홀로 나왔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웃는 도영민을 보며 강진이 힐끗 할머니 귀신을 보았다. 할머니 귀신은 어느새 아저씨의 옆에 붙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음식 남은 것을 좀 쌌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면 저기 남아 있는 음식들도 좀 싸 드리고 싶은데…… 아! 불편하시면 안 가져가도 되십니다. 다만 맛있게 드시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저희 아버지가 여기 음식을 참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
“알겠습니다.”
도영민의 말에 강진이 플라스틱 통을 하나 더 가져다가 콩나물 삼겹살을 포장하고, 오징어 볶음도 담았다.
“냉장고에 넣으셨다가 드실 때 한 번 데워 드시면 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계산해 주시겠어요.”
도영민의 말에 강진이 테이블을 보고는 칠만 원을 결제해서 받았다.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도영민이 명함을 건네주자 강진이 그것을 받았다.
자신의 명함을 받아 든 강진을 보며 도영민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도영민이 몸을 돌려 나가자 강진이 명함 번호를 저장했다.
오늘 분위기 보니 앞으로 단골이 될 사람일 테니 말이다.
번호를 저장하고 명함을 카운터 서랍에 넣은 강진이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앞에는 어느새 귀신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귀신들이 모여 있으니 도영민 가족들이 나간 것이고 말이다.
“주문 말하세요.”
귀신들이 하나둘씩 먹고 싶은 메뉴들을 말하자 강진이 그것을 듣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가게 뒷문을 열어 배용수와 귀신들을 들어오게 했다.
“우삼겹 된장찌개 칼칼하게. 돼지 소금구이, 김치찌개…….”
강진이 메뉴들을 말하자 배용수가 알아서 주방으로 들어가 준비를 시작했고, 강진은 도영민 가족이 먹던 것을 치우기 시작했다.
***
월요일 아침 강진은 눈을 떴다.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던 강진이 문득 멈췄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인턴 끝났지.”
평소처럼 일어나고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 평소에는 인턴이 끝났다는 것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았다.
습관의 무서움을 떠올린 강진이 소파에 털썩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러고 잠시 있던 강진이 TV를 틀었다.
[오늘의 날씨…….] [그 애 사실은 오빠 애야.] [어린이 여러분 안녕! 난 고래예요! 투명 고래!]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강진이 TV를 끄고는 몸을 일으켰다.
강진은 잘 때 빼고는 뭐를 안 하던 시기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때에도 남는 시간에는 공부라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멍하니 TV를 보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이 일층으로 내려왔다.
일층에서는 배용수와 지박령들 그리고 최호철과 여자 귀신들이 TV를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배용수와 지박령만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강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형, 일찍 오셨네요?”
평소 최호철은 이 시간에 가게에 있지 않는데 어쩐 일로 이른 시간에 있는 것이다.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TV를 가리켰다.
“애들이 TV 보겠다고 해서.”
“TV요?”
“전에는 TV 채널 못 돌렸는데 지금은 보고 싶은 것 볼 수 있잖아.”
최호철이 여자 귀신을 보았다. 여자 귀신 중 한 명이 비닐장갑을 손에 낀 채 리모컨을 쥐고 있었다.
그 말에 강진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틀어 놓은 채널만 주구장창 봐야 하는데 지금은 보고 싶은 채널을 리모컨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TV 보러 온 거예요?”
“그렇지.”
말을 하던 최호철에게 여자 귀신 한 명이 살짝 눈짓을 주었다. 그 눈짓에 최호철이 강진을 보았다.
“TV 요금제 좀 바꿔주라.”
“요금제요?”
“채널이 기본만 나와. 재방송도 좀 보고 영화도 좀 보게.”
최호철의 말에 강진이 여자 귀신을 보자 그녀들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호철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자 귀신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긴 요금제 바꾸기는 해야겠네요. 인터넷도 깔아야 하고.”
“인터넷도 안 깔려 있었어?”
“안 깔려 있더라고요.”
할머니만 사시던 곳이라 그런지 한끼식당에는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았다.
물론 컴퓨터도 없고 말이다.
그동안은 핸드폰으로 잠깐 인터넷 검색만 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여기가 정식으로 일하고 사는 곳이니 나름 편의 시설은 갖추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귀신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되면 좋을 것이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힘들게 산 귀신들에게 이 정도 편의는 봐 줄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출근하던 버릇이 무섭다.”
“늦잠이나 자지 그랬어?”
“버릇이 무서운 거지.”
그러고는 강진이 자리에 앉았다.
“나 밥이나 줘라.”
“뭐 먹을 건데?”
배용수의 물음에 강진이 식탁에 머리를 대고는 말했다.
“딱 보면 몰라?”
“돌았냐?”
“알아서 해 주라고. 메뉴 정하는 것도 귀찮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칫국에 계란 프라이 한다.”
“네가 최고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중지를 세워주고는 김칫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배용수가 끓여준 칼칼한 김칫국과 계란 프라이로 아침을 해결한 강진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아직 아침 여덟 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 잠시 있던 강진이 몸을 일으켰다.
“가게 잘 봐라.”
“어디 가게?”
“동네 좀 돌아보려고.”
“동네?”
“여기 몇 달 살았는데 우리 집 뒤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잖아.”
“그럼 같이 가자. 내가 너보다는 여기 동네에는 더 익숙해.”
“그러던가.”
가게를 나선 강진이 가게 문을 잠그고는 길을 보았다. 길에는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것을 잠시 보던 강진이 몸을 돌렸다.
평소 회사로 가던 길이 아닌 반대로 걸어가 보려는 것이다.
걸음을 옮기며 강진은 자신이 그동안 정말 쳇바퀴처럼 같은 곳만을 다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방향만 바꿨을 뿐인데도 전혀 다른 곳처럼 보였다.
딱히 어딘가를 가야 할 생각은 아니기에 강진은 발길 가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 사장, 어디 가?”
걸음을 옮기던 강진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귀신들과 인사를 나눴다.
“산책요.”
“회사 그만뒀다고 여유 있네.”
“여유라고 하기보다는 주변 상권 분석하는 겁니다.”
웃으며 말을 한 강진이 자신에게 말을 건 귀신을 보았다. 사십 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귀신에게 강진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세요?”
“햇볕 쫴.”
“귀신도 햇볕을 쫴요?”
“그럼 귀신이라고 음침한 곳에만 있겠어?”
웃는 귀신과 인사를 나눈 강진이 다시 걸음을 옮길 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진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앞을 본 강진은 황민성이 차에서 고개를 내민 채 그를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형.”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뒷좌석에서 내렸다.
“이렇게 길거리에서 보니 반갑네.”
“출근하세요?”
“그렇지. 너는?”
“아침 산책도 할 겸 주변에 뭐가 있나 둘러보고 있었어요.”
“그래? 산책을 할 거면 저기 공원이나 가야지, 무슨 도로에서 산책을 해.”
“공원요?”
“저쪽으로 가면 공원 있는데 잘 되어 있어. 걸어가면 십 분 정도 걸릴걸?”
“좋아요?”
“좋지.”
웃으며 말을 하던 황민성의 뒤에 중년 남자가 다가와 섰다.
“사장님.”
중년 남자의 말에 방금 전까지 웃던 황민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남자가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차 옆으로 가서 섰다.
“형 바쁘신 것 같은데 어서 가세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회사 사장들 보면 일 편히 하던데…… 난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다.”
“한가한 것보다는 바쁜 것이 좋죠.”
“그렇기는 하지. 어쨌든 공원 가 봐. 삭막한 서울에서 그런 공원이 옆에 있다는 건 행운이다.”
웃으며 황민성이 차에 다가가자 남자가 뒷좌석을 열어주었다. 곧 황민성이 차에 타자 문을 닫은 남자가 강진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차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부자는 부자네. 비서도 데리고 다니고.”
“기사도 있던데.”
“기사?”
“비서가 조수석에서 나왔잖아. 그럼 운전자도 따로 있을 것 아냐.”
“아…… 그렇구나.”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걸음을 옮겼다.
‘죄인이고 불쌍한 사람이라…… 뭔지 모르겠네.’
김소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강진이 동네 산책을 이어나갔다.
***
걸음을 옮기다 보니 강진은 황민성이 말을 한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원은 좋았다.
“봄에 오면 좋겠는데.”
겨울이라 푸르름은 없었지만 공원에는 나무도 많고 조경이 잘 조성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벤치와 흔들의자 같은 것도 있어서 쉬어가기 좋았다.
추운 겨울 아침인데도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이는 것을 보면 사랑받는 공원인 것 같았다.
공원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기던 강진은 한쪽에 있는 정자로 걸음을 옮겼다.
“눈 오는 날 저기서 라면 끓여 먹으면 좋겠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정자를 보다가 말했다.
“더럽게 추울걸?”
“눈 오는 날 밖에서 라면 안 먹어 봤냐?”
“안 먹어봤는데?”
“군대에서 혹한기 때 더럽게 춥거든. 천막 치고 밖에서 야영하는데 그때 라면 끓여 먹으면 그게 또 꿀이지. 엄청 맛있어.”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듣고 보니 맛있을 것 같았다.
눈 오는 날 라면을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추운 겨울 공사 현장에서 컵라면은 먹어봤다.
‘확실히 추운 날에 먹는 라면이 맛있기는 하지.’
“이놈은 아직도 이러고 있네.”
생각을 하던 강진의 귀에 배용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배용수를 보니 그가 정자 밑을 턱으로 가리켰다.
배용수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포메네?”
관리 안 된 지 꽤 오래돼 보이는 강아지는 작은 포메라니안이었다.
그것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귀신 포메라니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