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6
227화
11시가 되자 귀신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놀란 듯 그들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텅 비어 있던 가게가 한순간에 꽉 들어차니 말이다.
“단체 예약이 있었어?”
한 번에 우르르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니 단체 예약인가 싶은 것이다.
“그건 아닌데…… 저희 가게가 저녁 장사 이후에는 11시부터 술장사를 해서요. 그래서 기다렸다가 손님들이 들어오세요.”
웃으며 강진이 입구를 보았다. 귀신들과 함께 배용수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배용수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들이 들어오기 전, 강진은 배용수에게 귀신들의 입단속을 부탁했었다.
황민성이 있으니 귀신이나 저승 관련한 이야기는 좀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용수야.”
반갑게 손을 드는 황민성의 모습에 배용수가 그에게 다가갔다.
“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바람처럼 왔습니다.”
“형이 저번에 약속 못 지켜서 미안했다.”
“괜찮아요. 어머니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래. 이해해 주니 고맙네. 아! 형이 양주 좀 가져왔는데, 양주 좋아해?”
“없어서 못 먹죠.”
환하게 웃는 배용수를 보던 황민성이 웃으며 그 어깨를 툭 쳤다.
그런 황민성을 보며 강진이 귀신들을 보았다. 귀신들은 강진이 만든 케이크를 보고 있었다.
“케이크 이쁘네.”
“하긴,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가 어울리지. 나도 크리스마스 때는 애들하고 먹으려고 케이크 샀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때 크림 케이크하고 바나나 사온 것 생각나네.”
“여기서 케이크는 처음인 것 같아.”
귀신이 돼서 케이크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아니, 길거리에서 파는 케이크를 보기는 했을 것이다.
다만,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저승식당 케이크를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귀신들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케이크를 좀 준비했습니다. 혹시 ‘내 종교와 맞지 않아’ 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기독교라고 석가탄신일 날 안 쉬는 것은 아니니까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다. 불교라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모처럼 손님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기려고 케이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다른 음식 못 먹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크리스마스 하면 또 맛있는 음식 아니겠습니까?”
강진이 주방을 가리켰다.
“대신 오늘은 따로 음식 주문은 받지 않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들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저도 오늘은 여러분들과 크리스마스 기분 좀 내고 싶어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주방에서 커다란 반찬 통들을 홀과 주방 사이의 칸에 올려놓았다.
“베스트 메뉴로만 만들어 놨으니 마음에 드실 겁니다.”
반찬 통에는 그동안 귀신들이 와서 주문한 음식들 중 베스트 메뉴라고 할 만한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계란말이, 매운 닭발볶음, 김치찌개와 육개장, 계란찜 등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괜찮으시죠?”
“이 정도면 훌륭하지요.”
귀신들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초를 가져왔다.
“촌스럽기는 하지만 케이크 하면 또 초 아니겠어요? 하나씩 드릴 테니까, 마음에 드는 케이크에 꽂으세요. 그리고 소원 같은 것도 하나씩 빌어 보시고요.”
그러고는 강진이 초들을 뭉텅이로 귀신들에게 나눠 주었다. 초들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케이크에 초를 하나 놓고는 불을 밝혔다.
“불은 이걸로 붙이세요.”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에게도 초를 하나 내밀었다.
“형도 하나 꽂으세요.”
그러자 황민성이 어색하게 초를 받았다.
“이런 거…… 정말 안 하는데.”
“누구는 하나요? 저도 정말 오랜만이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시고는 케이크가 있는 곳을 보았다.
곧 황민성이 얼굴에 살짝 놀람이 어렸다. 사람들이 초에 불을 붙이고는 소중하게 그것을 쥔 채 눈을 감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술집에서 하는 이벤트에 뭘 저렇게…….’
너무 진지한 사람들의 모습에 황민성이 슬며시 초에 불을 붙였다.
‘소원이라…….’
잠시 중얼거린 황민성이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건강…… 아니,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속으로 소원을 빈 그는 눈을 뜨곤 조심스레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초를 다 꽂은 황민성이 뒤로 물러나자 어느새 케이크에는 초가 여럿 꽂힌 채 빛나고 있었다.
“자!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후 하면서 끄기로 해요. 하나! 둘! 셋!”
강진이 크게 후 하고 부는 것과 함께 귀신들도 크게 바람을 불었다.
그리고 황민성도 주위 분위기에 조금은 어색하게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촛불이 꺼지는 것과 함께 강진이 초를 케이크에서 뽑아내고는 말했다.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고 음식과 케이크는 알아서 가져다 드시면 됩니다. 오늘은 저도 주인 말고 손님처럼 좀 즐기겠습니다.”
“고마워요.”
한 귀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같이 즐기는 거죠.”
그러고는 강진이 황민성이 가져온 양주병을 가리켰다.
“그리고 여기 있는 황민성 씨가 오늘 모임에 양주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드시면 됩니다.”
강진의 말에 양주를 좋아하는 귀신들이 양주병에 다가가다가 놀란 듯 말했다.
“이야! 이거 좋은 건데…….”
“이거 이백만 원도 넘는 건데…….”
“로얄…… 이게 몇 살짜리야? 아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네.”
귀신들이 놀란 얼굴로 양주를 구경하는 것을 보던 강진이 안주들을 담아서는 황민성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형, 술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용수 먹고 싶은 걸로 가져와.”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양주를 하나 들고 왔다.
“시바스 리갈 좋아해?”
“전 이게 맛있더라고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것밖에는 안 마셔 봐서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바스 리갈을 상자에서 꺼내며 말했다.
“냉수하고 미온수 좀 가져다줄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물 컵에 냉수와 미지근한 물을 따라왔다. 그 사이 시바스 리갈 뚜껑을 열은 황민성이 잔을 세 개 놓고는 그 안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쪼르륵!
“술 마시는 방법 알아?”
“그냥 마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방법이 따로 있는 것 아니에요?”
“그것도 정답.”
“정답이 많네요.”
웃으며 말하는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말했다.
“요리하는 사람들이니 음식이 개인 취향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
“내가 맛있어도 상대의 취향과 다르면 맛은 다르게 느껴지는 거니까요.”
“술도 마찬가지야. 스트레이트로 먹거나 얼음, 냉수, 미온수 뭘 섞어 먹냐는 것에 따라 맛이 조금씩 변하거든. 그냥 먹어보고, 냉수, 미온수 이렇게 먹어봐서 자신한테 가장 맞는 맛으로 먹어 보는 거야.”
“형, 술 잘 아시네요.”
“사업하다 보면 술이 빠지기도 어렵거든. 그래서 조금이라도 맛있게 마셔 보려고 하다 보니 알게 된 거지. 참고로 나는 미온수 살짝 타 마시는 게 좋더라.”
“보통 얼음 아니에요?”
“내가 맛있으면 그것이 정답 아니겠어?”
“그것도 그러네요.”
웃으며 강진이 잔을 들었다. 가게에 양주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술이 따라진 것은 소주잔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황민성이 잔을 들고 내밀자, 배용수와 강진도 잔을 들고는 내밀었다.
“메리 크리스마스요.”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세 사람이 웃으며 술을 마셨다.
셋이 술을 마시는 동안, 혜원이 건자두가 올라간 케이크 조각을 보고 있었다.
“혜원 씨, 드세요.”
최호철의 말에 혜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포크로 건자두를 살짝 찍어서는 입에 넣었다.
곧 그녀의 눈이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깔라만시 소스의 상큼함이 입에 차는 것이다.
그에 눈을 찡그리고 있던 혜원이 몇 번 더 씹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최호철의 말에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감이 조금 다르기는 한데 맛은 자두하고 비슷해요.”
“많이 먹어요.”
최호철이 자신의 케이크에 있는 건자두를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그 모습에 혜원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자두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네요.”
아팠을 때는 몸을 위로해 주는 맛이었다면…… 지금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맛 같았다.
‘엄마…….’
아픈 자신을 업고 시장을 걷던 엄마가 사 주던 자두의 맛이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보고 싶다.’
***
12시가 넘어가면서 귀신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런 귀신들 사이에서 황민성과 강진도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술은 어느새 소주와 맥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삼아 양주를 마셨지만 역시 소주와 맥주가 좋다는 강진의 말에 주종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황민성도 딱히 양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양주를 좋아했다면 이렇게 많은 양주가 집에 남아 있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렇게 마음 편히 있는 것도 처음이네.”
“앞으로는 같이 보내요. 아! 아니지. 다음에는 형수님하고도 같이 오세요.”
물론 이 시간 말고 저녁 장사 때 말이다.
“하! 그러고 싶지만 나도 바쁜 사람이야.”
“안 바쁘실 때 오면 되죠.”
“그건 그렇지.”
말을 하며 황민성이 배용수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배용수가 잔을 들자, 황민성이 말했다.
“요즘 일은 어때?”
“일요?”
“아직도 쉬는 중이야?”
배용수가 쉬고 있다는 말이 아직도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아…… 가끔 강진이 일 도와주고 있어요.”
“도와주는 것과 일하는 것은 다르지.”
“그건…… 그렇죠.”
“형이 너 좋게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네가 만든 음식들 맛도 좋고 센스가 있더라.”
“감사합니다.”
“아니야. 진짜로 어지간한 호텔 한정식집 음식보다 간이나 맛이 좋아.”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제가 또 요리를 잘하기도 하고 잘 배우기도 했습니다.”
배용수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리고 운암정에서 음식을 배웠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겸손하지는 않았다. 배용수가 자신 있게 하는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기 귀찮아지면 이야기해. 자리 하나 알아봐 줄게. 아니면…….”
황민성이 강진을 보고는 가게를 보다가 말했다.
“형이 투자할 테니까 너희 둘이 가게 좀 넓혀 보던가.”
“가게를 넓혀요?”
“형이 좋은 곳에서 음식들 많이 먹어봤는데 너희 음식처럼 괜찮은 곳은 운암정 정도뿐이었어.”
“에이! 어디 저희 음식을 운암정에 비교해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어떤 면에서는 운암정보다 여기 음식이 더 괜찮아.”
“그럴 리가요. 운암정 음식은 최고예요.”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며 하는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운암정에 아는 사람 있어?”
“그건…… 아니고, 그냥 운암정 하면 한국 요리사들의 자존심 같은 거니까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 한정식 하면 운암정이니까. 하지만 너희는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잖아. 손님이 원하는 음식과 취향대로 말이야.”
황민성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운암정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손님 하나하나의 취향은 맞출 수가 없다.
“그리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음식…… 너희 가게는 좋은 가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