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38
239화
강진은 벽에다 족자를 걸고 있었다. 허연욱의 제안대로 김소희가 쓴 글과 그림을 족자로 만들어서 가져온 것이다.
의자를 밟고 올라간 강진이 벽에 족자를 대 보이고는 말했다.
“어때?”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것을 보다가 말했다.
“조금 왼쪽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어?”
“왼쪽?”
“조금 더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위치를 바꿨다.
“됐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전동 드릴을 꺼내 벽에 나사를 박았다.
드르르륵!
벽에 박힌 나사를 손으로 흔들어 본 강진이 족자를 걸고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족자를 잠시 보던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운치 있고 좋네.”
“확실히 족자 하나 달았을 뿐인데 분위기 사는 것 같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족자를 보다가 배용수를 보았다.
“그런데 뭐라고 써져 있는 줄 알겠어?”
족자에는 난이 멋지게 그려져 있고 한문이 쓰여 있었다.
“너는 귀신이면 한문하고 친할 거라고 생각하냐?”
“운암정 숙수면 어느 정도 한문하고 친할 거라 생각했지.”
“너는 대학생이잖아.”
“나는 그래도 몇 자는 뭔지 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말을 하던 배용수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됐다. 이런 이야기 하면 우리만 무식해 보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탁자에 놓은 족자들을 정리했다.
족자들을 카운터 밑에 가져다 놓은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해 지나기 전에 운암정에 인사나 드리러 가자.”
“나야 좋지. 내일 갈 거야?”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틀 후면 연말이잖아.”
“혼자 가지 말고 민성 형하고 같이 가라.”
“민성 형하고?”
“두 명은 가야 음식을 제대로 맛을 보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생각을 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운암정 음식 중 대부분이 2인분 이상 주문을 할 수 있는 요리들이 많다.
그래서 혼자 가면 먹을 수 있는 것이 몇 개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단품으로 나오는 음식도 맛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는 것도 강진에게는 공부가 될 것이니 말이다.
“근데 운암정 요리 너도 다 할 수 있지 않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맛은 같겠지만, 그래도 운암정 음식은 운암정에서 먹어야 제맛이지.”
배용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문득 눈을 찡그렸다.
“흠…… 근데 밥 먹으러 가면 여기 장사는 어떻게 해. 일요일도 아니잖아.”
“아…….”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밥 먹는 건 안 되겠다.”
김봉남도 음식 장사는 영업시간을 어기면 안 된다고 했었다. 밥 먹으러 온 손님이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것 보고 돌아서게 하는 것만큼 안 좋은 일은 없다 했으니 말이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도 가서 인사는 드리자.”
“아쉽다. 운암정 음식들 맛있는 것 많은데.”
“다음에 민성 형하고 한 번 가 보지, 뭐.”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배용수가 슬며시 말했다.
“저녁 장사하고 갔다 올까?”
“오늘?”
“연말이라 저녁에 손님도 얼마 없잖아. 일곱 시까지 영업하고 갔다 오면 좋지 않을까?”
“왜, 오늘 가고 싶어?”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너한테 운암정 저녁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지.”
“저녁은 뭐 달라?”
“다르지. 아침과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진 것이 운암정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11시까지만 돌아오면 되니 그렇게 하자.”
“오케이!”
웃으며 배용수가 귀신들을 데리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이제 곧 영업시간이니 손님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밖에 나가 있는 것이다.
가게 문을 열은 강진이 문득 옆에 있는 핸드폰 가게를 보았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핸드폰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단정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는 그녀를 보던 강진이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강진의 말에 그녀가 강진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그녀의 반응에 강진의 얼굴에 살짝 당황감이 어렸다.
‘이거 너무 정중하시네.’
영업점이니 사람이 들어오면 반갑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영업점은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리 앉으시지요.”
그녀가 한쪽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핸드폰 사러 온 것은 아닙니다.”
강진의 말에 그녀가 몸을 돌려 커피 머신으로 다가갔다.
우우우웅! 우웅!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강진을 보았다.
“앉으시지요.”
그녀의 말에 강진이 일단 자리에 앉았다. 강진이 자리에 앉자 그녀가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가지고 왔다.
스윽! 스윽!
소리 없이 유리 탁자에 컵을 내려놓은 그녀가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을 보는 그녀의 모습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저는 옆에 있는 한끼식당을 하고 있는 이강진입니다.”
강진의 말에 그녀가 말없이 그를 보다가 커피를 가리켰다.
“한잔 드시지요.”
그녀의 말에 강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지만 향이 좋았다.
“맛 좋네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유리 탁자에 있는 명함 케이스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소월향이라 합니다.”
여자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은 강진이 문득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나른함이 어려 있었다.
‘이름 특이하네.’
월향이라는 이름이 다른 한자를 쓸 수도 있지만, 달의 향기라는 뜻이기도 하니 특이한 이름이었다.
강진의 시선에 소월향이 입을 열었다.
“김복래 여사님께는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다가 물었다.
“김복래 여사님을 아세요?”
“제가 여기에 자리를 잡은 지 10년입니다. 요즘 세상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해도 옆에서 10년을 같이 영업을 했는데 모를 수가 없지요.”
“그러네요.”
그리고는 강진이 소월향을 잠시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혹시 저희 가게에 대해 아시는지요.”
뭔가 분위기가 이쪽 세계에 대해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이 말했다.
“식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강진의 의문이 담긴 시선에 소월향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묻고자 하는 것이 저녁 장사에 관한 것입니까?”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십니까?”
“무엇을 아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이 사장님이 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어떻게?”
“옆 가게로 10년이니 보이는 것이 있지요. 그리고 여사님께서 저를 아껴 주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소월향을 보던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혹시 신수 형제와도…….”
“저희 가게에서 핸드폰을 개통해 주시는 고객들이고, 조와는 친합니다.”
소월향이 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손님이 올 시간입니다.”
“손님요?”
“예약 손님이 계십니다.”
소월향의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하러 저희 가게에도 와 주세요.”
강진의 말에 소월향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기에는 어렵습니다.”
“여사님은 없으시지만, 제 손맛이 괜찮습니다.”
혹시 김복래 여사님이 안 계셔서 그런가 싶어 하는 강진의 말에 소월향이 고개를 저었다.
“식당의 기운이 강해서 저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식당의 기운요?”
강진이 의아한 듯 묻자 소월향이 명함을 가리켰다. 그에 강진이 명함을 보았다.
하얀색 바탕에 깔끔하게 적힌 글씨를 볼 때 소월향이 손으로 명함을 집어서는 뒤집었다.
뒤에는 검은색 바탕에 은색으로 글이 적혀 있었다.
앞면과 다른 뒷면의 명함 내용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무당을 하고 있습니다.”
“무당요?”
강진이 핸드폰 가게를 둘러보자 소월향이 고개를 저었다.
“무당이라고 꼭 신당을 차릴 필요는 없지요.”
“그게 아니라, 무당이면 귀신하고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심심한 곳에 있으면 그분들도 심심하십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실 때만 모십니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물었다.
“그럼 저희 가게에 못 오신다는 이유가?”
“여러 귀신 분들이 오시니 기운이 강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탁한 분들도 오셔서 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탁한 분들요?”
“식당에 오시는 분들이 착한 분만 있겠습니까. 착하든 나쁘든 배는 다 고픈 법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강진은 소월향의 말투와 행동이 좀 특이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무당이라 말투가 이런 거였나 보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문득 소월향에게 물었다.
“그럼 사주 같은 것도 보시는 건가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옆에 무당이 있으니 사주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이 일어나서는 책상에서 뭔가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유리 테이블에 놓고는 손을 움직였다.
스르륵!
테이블에 깔린 것은 카드였다.
“저는 타로를 주로 봅니다.”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무당이…… 타로를 보시나요?”
“사주는 공부를 해야 해서요.”
소월향의 답에 강진이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아…… 공부를 해야 하는군요.”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소월향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타로 한 번 보러 오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소월향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소월향에게 고개를 마주 숙인 강진이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는 힐끗 핸드폰 가게를 보았다.
‘타로를 보는 무당…… 특이하네.’
점을 본 적은 없지만, 타로로 점을 봐 주는 무당이라니 특이했다. TV에서 본 것처럼 방울 같은 것 흔들거나 쌀 같은 것 던질 것 같은데 말이다.
게다가 소월향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무당이었다. 귀신에 대해 아는 그런 진짜 무당 말이다.
잠시 핸드폰 가게를 보던 강진이 한끼식당으로 돌아왔다.
한끼식당에 들어온 강진이 뒷문으로 나가 배용수를 만났다.
“너 옆 핸드폰 가게 가 봤어?”
“가 봤지.”
“가 봤어?”
“너하고 친해지기 전에는 거기서 TV 보고 그랬어.”
“아…….”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 무당이던데?”
“맞아. 우리 보더라.”
“알고 있었어?”
“너 몰랐어?”
“난 몰랐지.”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안 가 봤고 우리가 말을 해 주지 않았으니 몰랐겠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띠링! 하는 풍경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강진이 서둘러 몸을 돌려서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서둘러 홀로 나온 강진은 손님들을 맞이했다.
***
두 테이블 정도 손님들을 받던 강진은 띠링!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강상식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건가?’
다시 가게에 들어오는 강상식의 모습에 강진이 눈을 찡그릴 때, 강상식이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주문 안 받습니까?”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다가갔다.
“아침에 오셨을 때 하고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시네요.”
강진의 물음에 강상식이 피식 웃었다.
“아침에는 볼 일이 있었는데…… 그 볼 일은 사라졌고, 지금은 그냥 밥 먹으러 온 손님이니까요.”
잘 보일 이유가 없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듯 강상식은 편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었다.
“그럼 지금은 밥만 드시러 오신 겁니까?”
“밥집에 밥 먹으러 오는 것 허락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손님으로만 오셨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 귀신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