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43
244화
“왕 대인!”
강진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자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올 것을 그랬군.”
기분 좋게 웃으며 다가오는 왕강신의 모습을 보던 강진이 그 뒤를 보았다.
왕강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왕강신의 뒤로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강진이 그들을 보자 왕강신이 말했다.
“내 가족이네.”
“대가족이시네요.”
가족들에게 향해 있던 강진의 시선이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가족들 사이로 여자 귀신이 한 명 있었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귀신이었다. 사고로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이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수호령 같은데…… 왕 대인은 올 때마다 귀신과 함께 오시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왕강신이 웃으며 말했다.
“다 왔으면 더 많았지.”
“가족이 더 있으세요?”
“그럼. 더 있지. 근데 어디 회사 일 두고 다 올 수 있나.”
싱긋 웃는 왕강신의 모습에 강진이 사람들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정말 좋으시겠어요.”
가족이 없는 강진으로서는 대가족을 이룬 왕강신이 무척 부러웠다.
“한국에는 언제 오신 거예요?”
“방금 도착했어.”
“방금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왕강신이 웃으며 가게를 보았다.
“그런데…… 서둘러 온다고 하기는 했는데 영업이 끝난 건가?”
가게를 둘러보는 왕강신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식사 아직 안 하셨어요?”
“그러니 왔지 않겠나?”
“그럼 식사하셔야죠.”
“영업시간 끝난 것 같은데?”
“손님 있으면 그게 영업시간이죠.”
한끼식당 영업 규칙 중 하나가 ‘손님을 내쫓지 않는다.’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왕강신을 보니 반갑기도 했다. 가게 손님이 아니라 자신의 손님으로라도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앉으세요.”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향했다. 그런 왕강신의 뒤를 따르는 왕강신의 아들 왕대문이 강진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강진도 마주 인사를 나눴다.
자리에 앉은 왕강신 가족들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식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잘하는 음식으로 여러 개 내와 주게.”
“어떻게, 한식으로 해 드릴까요? 아니면 중식으로 해 드릴까요?”
“자네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좋지.”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는 이미 배용수가 재료들을 꺼내고 있었다.
“영감님 갑자기 왔네.”
“밥집이 굳이 연락하고 올 곳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말을 하며 재료들을 계속 꺼내는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뭐 하려는 거야?”
“마파두부하고 매운 요리 두 개 정도 내고, 전에 잡채 잘 드시던데 잡채로 마무리하지, 뭐.”
말을 하며 배용수가 고기를 자르고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밥부터 좀 해.”
“밥?”
“지금 있는 걸로는 모자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밥통을 열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밥이 모자라기는 했다.
그에 강진이 밥을 새로 해서 올리고는 배용수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음식들이 준비되어 가자 강진이 국수와 계란을 꺼냈다.
“황제면 만들려고?”
“어르신이 여기 오신 이유가 이것 말고 더 있겠어?”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식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스무 명가량의 손님이 한 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음식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메뉴가 여럿이 아니라서 한 번에 많이 만들면 되니 말이다.
어쨌든 배용수가 요리를 마무리하는 사이, 강진은 황제면을 만들고는 그릇에 옮겨 담았다.
주르륵! 주르륵!
계란 소스가 흘러내리는 면을 그릇에 담은 강진이 배용수가 만든 음식들도 쟁반에 담아 홀로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냄새가 좋아.”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릇들을 탁자에 놓기 시작하자 왕강신이 미소를 지었다.
“황제면이군.”
“아무래도 이것이 드시고 싶을 것 같아서요.”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이 음식들을 챙겨 다른 테이블에도 서빙을 마저 했다.
“이 형제, 여기 앉게.”
왕강신이 비워 놓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자, 강진이 사양할까 하다가 웃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강진이 앉자 왕강신이 그릇에 황제면을 조금 덜어 입에 가져갔다. 몇 번 우물거리다 삼킨 왕강신이 웃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왕강신이 고개를 저었다.
“이 맛대가리 없는 것이 왜 맛있는지 모르겠어. 하하하!”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맛보다는 추억이지요.”
“맞는 말이야.”
연신 웃으며 황제면을 먹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오신 겁니까?”
“내일모레면 새해지 않나.”
“그렇죠.”
말 그대로 내일모레가 새해였다. 마침 잘 됐다는 듯 왕강신이 강진을 보았다.
“소제(小弟), 1월 1일에 영업하나?”
자신을 작은 형제라 친근하게 부르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해야죠.”
빨간 날이기는 하지만 일요일에만 가게를 쉬기로 했으니 영업을 할 것이다.
“그럼…… 그날 하루 내가 가게 전세를 내도 되겠나?”
“1월 1일에요?”
강진의 물음에 왕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중국인들은 새해를 가장 큰 명절로 생각을 하지.”
“중국은 새해 음력으로 지내지 않나요?”
“맞아.”
고개를 끄덕인 왕강신이 말했다.
“그래도 새해는 새해이니…… 형 제사를 지낼까 해. 그리고 음력설에도 미리 예약을 했으면 하는데, 혹시 음력설에 쉬나?”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의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대인께서 예약을 하신다면 영업을 하겠지만…… 음력설에도 오시려고요?”
“형님 제사를 이때까지 못 챙겨 드렸으니 지금이라도 꾸준히 그리고 많이 챙겨 드려야지.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나?”
왕강신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그를 보았다.
‘승천을 하셔서 제사를 지내도 못 드시지 않나?’
왕강준이 승천을 했기에 제사를 지내도 그가 밥을 먹으러 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사라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한 것도 있지만, 산 자가 죽은 자를 기리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있기에 강진은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럼 제사를 여기에서 지내시려고요?”
“안 되겠나?”
“안 될 것은 없지만…… 제사를 지낼 물건들도 없고 제가 제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그에 맞게 준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저 간단하게 형님의 이름을 적은 명패와 음식들로 할 생각이니 그건 걱정하지 말게.”
“그럼 알겠습니다.”
“가게 장사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
“휴일에는 손님들이 많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한끼식당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주변 직장인들이니 쉬는 날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럼 시간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점심부터 저녁까지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저녁 10시까지는 괜찮습니다.”
“그 후에는 안 되나?”
“죄송한데…… 11시에는 단골손님들이 오십니다.”
“돈이라면…….”
말을 하던 왕강신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실수를 할 뻔했군. 미안하네.”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의아해하는 왕강신을 보며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를 난처하게 하지 않으셨고, 어르신을 생각하는 제 마음을 지켜 주셨으니 제가 감사합니다.”
강진의 말에 왕강신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할 뻔했어.”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미안하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자네와의 콴시를 내가 돈으로 치르려 하였군.”
왕강신의 사과에 강진이 웃을 때, 그가 말했다.
“그럼 점심부터 8시까지만 내가 전세를 내겠네. 그건 괜찮겠나?”
“10시까지 해도 괜찮습니다.”
“11시 손님들 받으려면 자네도 쉬어야 하지 않겠나.”
왕강신의 배려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말했다.
“그럼 음식은 어떻게 준비할까요?”
“딱히 예를 차릴 생각은 없네. 그저 형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한 상 차려 놓고 가족끼리 밥이나 먹으며 쉴 생각이네.”
“그럼 황제면을 준비하면 되겠군요.”
“황제면하고 만토우와 공심채 볶음이면 될 것 같네.”
“만토우면 소 없는 찐빵 같은 거죠?”
“맞네.”
생긴 것은 왕만두 같지만, 안에 소가 없이 밀가루로만 되어 있는 것이 만토우였다.
“그럼 가족 분들은?”
“형님을 기리는 날이니 우리도 그렇게 먹을 것이네.”
왕강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을 핸드폰에 저장을 하던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제사는 고향에서 지내시지, 왜 여기에서 하시는지요?”
“고향이라고 해도 형과 나한테는 즐거운 기억보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많네. 하지만 여기에는 형과 내 추억이 담긴 음식이 있으니 고향보다 이곳이 더 나을 것 같더군.”
스윽!
왕강신이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형을 떠올린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고향보다 이곳이 더 형과 나에게 좋을 것 같아서 온 것이야.”
“하긴, 정 주면 고향이라고 하니까요.”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왕강신이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중국어가 늘었군.”
왕강신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전에 하신 말씀도 있고 해서 중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잘했군. 이야기 나누기가 한결 편해.”
이야기를 나눌 때, 띠링!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에 고개를 든 강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수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김봉남이었다. 김봉남이 들어오는 것에 왕강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따거(大哥), 오셨습니까.”
“동생이 부르는데 와야지.”
“하하하! 이거 제가 가서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이곳으로 청했습니다.”
한국에서 김봉남과 연을 맺은 왕강신은 그와 가끔 연락을 하며 연을 이어갔다.
“괜찮네, 괜찮아. 누가 부르면 어떤가? 이렇게 보면 좋은 것이지.”
왕강신과 인사를 나눈 김봉남이 강진을 보았다.
“잘 지냈나?”
“저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네가 하도 오지 않아서 어디 아픈가 싶었는데……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군.”
“죄송합니다. 제가 가게 자리 잡느라…….”
“후! 농담일세.”
김봉남이 웃으며 손에 들고 온 쇼핑백을 왕강신에게 내밀었다.
“술을 좀 가져왔네.”
“감사합니다.”
웃으며 왕강신이 쇼핑백을 열자 그 안에 청백로와 감홍로가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따거의 이 술이 생각이 났는데 좋군요.”
왕강신이 술병을 식탁에 놓고는 자신의 가족들을 가리켰다.
“제 가족입니다.”
왕강신이 가족들을 소개해 주는 것을 보며 강진이 주방에서 새로운 그릇을 챙겨 나왔다.
“숙수님, 여기 앉으세요.”
강진이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자, 김봉남이 자리에 앉다가 문득 벽에 걸린 족자를 보고는 다시 일어났다.
“족자가 좋군.”
족자에 다가가는 김봉남의 모습에 왕강신도 그 뒤를 따랐다.
“난과 글이 좋습니다.”
“필체를 보니 여인이 쓴 것 같은데…….”
글을 보던 김봉남이 감탄이 어린 눈으로 말했다.
“마치 장군이 쓴 것처럼 기세가 강하군.”
“한겨울 절벽에 피어난 난 같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절벽의 바위를 뚫고 나오는 난이라…… 그렇군.”
두 사람이 족자를 보며 감탄을 토하는 것에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좋은가요?”
“좋지. 그런데 돈 주고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난 건가?”
김봉남의 물음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께서 얼마 전에 써 주신 것입니다.”
“여성 손님이시지?”
“맞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는 것에 김봉남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한번 뵙고 싶군.”
김봉남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자주 뵙지 못하는 분이라…….”
“그래도 다음에 오시면 운암정에 한 번 들러 달라 말해 주게나. 이런 필력을 가진 문인이시라면 인사라도 하고 교류를 하고 싶군.”
글을 마음에 들어 하는 김봉남의 모습에 강진이 카운터 밑에서 족자들을 꺼냈다.
“여기 더 있는데 더 보시겠어요?”
“호오! 그분이 더 쓰고 가신 것이 있나?”
“네.”
강진이 족자들을 빈 탁자에 놓고 펼치자 김봉남과 왕강신이 그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