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374
375화
“냉장고 앞쪽에 소주가 있으면 한잔하자고 해 주세요.”
“소주요?”
“김충호 씨도 일하다 보면 한잔하고 싶을 때 있지요?”
“그야 물론입니다.”
실은 꽤 많은 편이다. 사건 사고가 많은 한국에서 기자로 사는 이상, 슬프거나 화가 나는 사연들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효정이가 술을 즐기지는 않은데, 힘든 날엔 한 잔씩 합니다. 그런데 애들한테 그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많이 망설입니다. 그래서 꺼냈다가 넣고 꺼냈다가 넣고…….”
잠시 말을 멈춘 김진배가 홀을 보고는 말했다.
“결국엔 안 마시고 냉장고에 넣습니다. 그러니 냉장고 앞쪽에 소주가 있으면 먼저 한잔하자고 하세요. 효정이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이니까요.”
“그럼 공원 가서 걷다가 한잔하는 건…….”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좋아하겠네요.”
“알겠습니다.”
김충호를 보던 김진배가 말했다.
“음식 만드세요. 효정이가 기대 많이 했습니다.”
“네.”
그에 김충호가 계란을 깨서는 볼에 넣기 시작했다.
김충호가 하기로 한 음식 중에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은 계란말이와 계란 소시지뿐이었다.
그 두 가지는 만들자마자 바로 먹어야 맛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전에 만든 계란말이는 여럿 실패했다.
물론 실패한 계란말이들은 다 반찬 통에 잘 담아 놓았다. 음식 버리면 저승에서 죄를 물으니 강진이 김충호에게 다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촤촤촥!
계란을 풀은 김충호가 소시지를 잘라 넣고는 그것을 프라이팬에 부었다.
“다른 이야기는 해 줄 것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김진배가 잠시 프라이팬을 보다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효정이는 꼭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야 한국 사람이면 그렇죠.”
“고기를 먹어도 꼭 밥이 있어야 하고 라면을 먹어도 밥이 있어야 합니다. 밥을 못 먹으면 먹은 것 같지 않아 해요. 다른 걸 아무리 많이 먹어도 꼭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 어디를 가더라도 꼭 밥을 준비해 주세요.”
김진배의 말에 김충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준비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진이 냉장고에서 약과를 꺼내 홀로 나왔다.
“이것 좀 드시고 계세요.”
“고맙습니다.”
이효정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자, 강진이 웃으며 살며시 말했다.
“김충호 씨가 김치찌개를 맛있게 잘 끓이세요.”
“충호 씨 음식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전에 세 분이 맛있게 드시는 것 보고 레시피 배우고 가셨거든요. 열심히 연습하신 모양입니다.”
“아…… 연습을 했군요.”
“네. 그러니 맛있게 드세요.”
웃으며 고개를 숙인 강진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에서는 김충호가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었다.
치이익! 치이익!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김충호가 계란을 접었다.
스윽! 스윽!
젓가락과 뒤집개를 이용해 조금은 어색하고 힘들게 계란을 말은 김충호가 계란물을 다시 부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하는 김충호를 김진배가 지그시 보았다.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집중한 김충호는 계란말이를 조심히 옆으로 세웠다.
그리고 속으로 20을 센 김충호가 계란말이를 반대로 세웠다.
이렇게 구워야 네 면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것이다.
김충호가 다 구운 계란말이를 조심히 도마로 올렸다. 도마 위에 잘 안착한 계란말이를 보던 김충호가 문득 김진배를 보았다.
“혹시 효정 씨가 싫어하는 행위가 있나요?”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가 그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습니다.”
김진배의 말에 김충호가 재차 물었다.
“효정 씨가 좋아하는 건 들었는데, 싫어하는 건 못 들어서요. 무엇을 싫어합니까?”
김충호의 물음에 그를 보던 김진배가 계란말이를 보았다.
“계란말이 잘 만들었습니다.”
“계란말이요?”
갑자기 계란말이를 말하는 것에 김충호가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김충호를 마주 보는 김진배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효정이를 위해서 이렇게 계란말이를 정성껏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김진배가 김충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계란말이가 쉬워 보여도 가끔 옆구리가 터지고 한쪽이 탈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성을 들이면 예쁘고 맛있는 계란말이가 됩니다. 앞으로도 계란말이를 만드는 지금처럼 효정이와 아이들을 아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진배가 김충호를 향해 내민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에 김충호가 그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길에 김충호가 살짝 놀랄 때, 김진배가 강하게 그 손을 쥐었다.
우두둑!
“끄응!”
김진배가 강하게 손을 쥐자 김충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팠다.
마치 남자들 기싸움을 하는 것처럼 김진배가 자신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는 것이다.
하지만 김충호는 애써 신음을 삼키며 마주 힘을 주었다. 죽은 사람과 자존심 대결하기는 싫지만, 한 명의 남자로서는 달랐다.
그리고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김충호의 악력을 느끼듯 잠시 손에 힘을 주고 있던 김진배가 말했다.
“운동하세요.”
“아…… 네.”
김진배가 손을 놓자, 김충호가 손을 주물렀다. 손바닥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중에 정아와 수아 남자 친구 데리고 오면 술도 드세요. 남자 친구 주사를 알아보는 것도 아빠의 역할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술 잘 먹습니다.”
기자 생활 20년이다. 그의 몸을 이루는 수분 중 반은 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술 잘 먹습니까?”
“그럼요. 제가 또 저희 기자들 사이에서는 술고래로…….”
말을 하던 김충호는 김진배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에 입맛을 다셨다.
“술 줄이겠습니다.”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술은 줄이세요. 효정이보다 먼저 오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김진배가 주먹을 들어 보이자 김충호가 그를 보다가 웃었다.
“운동 열심히 하고 담배도 끊겠습니다.”
“담배를…… 폈습니까?”
“아…… 모르셨구나.”
“끊으세요.”
우두둑!
주먹을 움켜쥐는 김진배의 모습에 김충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끊겠습…… 아니, 끊었습니다.”
김충호의 말에 김진배가 몸을 돌렸다.
“음식 식습니다.”
김진배가 몸을 돌려 홀로 나가자, 김충호가 음식을 쟁반에 올리다가 강진을 보았다.
“멋진…… 분이네요.”
김충호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가족들과 있는 김진배를 보았다.
‘너무 멋져서…… 짠하네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다른 남자에게 넘기는 남자…… 짠했다.
‘그래서 사람은 오래 살아야 하는 거지.’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지키려면 일단 자기부터 지켜야 하는 것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으니 말이다.
강진은 홀에서 김충호와 가족들이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란말이 맛있다. 먹어 봐.”
이효정이 김정아의 밥에 계란말이를 올려주자 그것을 보던 김정아가 김충호를 보았다.
“아저씨가 만들었어요?”
“응? 응.”
김충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정아가 계란말이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몇 번 씹다가 말했다.
“다음에는 우유를 좀 넣으세요.”
“다음에?”
“우유를 넣고 하면 부드러워요. 그리고 계란 풀 때 계란 실 있거든요?”
“계란 실?”
“보면 있어요. 그거 떼고 해야 부드러워요.”
그러고는 계란말이를 우물거리는 김정아를 보며 김충호가 웃었다.
다음에라는 말…… 다음에 또 이렇게 밥을 먹자는 말이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라는 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이었나?’
“그래. 다음에 내가 또 해 줄게.”
“그러세요.”
김정아의 말에 김충호가 웃다가 문득 앞에 놓인 나물을 가리켰다.
“냉이 나물인데 이것도 내가 했거든? 먹어 봐.”
김충호의 말에 김정아가 냉이 나물을 집어 입에 넣고는 씹다가 눈을 찡그렸다.
“뻣뻣해요.”
“아!”
김정아의 말에 김충호가 강진이 있는 주방 쪽을 보았다. 냉이 나물은 생으로 만들었다.
한 번 삶아서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했는데, 생으로 해야 향이 좋다고 해서 삶지 않고 버무린 것이다.
그리고 강진이 알려준 대로 손질하고 양념을 하니 말 그대로 향도 좋고 맛도 좋았다.
다만 너무 어른 취향인 듯했다. 어른 입맛에는 맞지만, 애들 입맛에는 조금 뻣뻣한?
김충호가 주방을 보자, 강진이 슬며시 가림막을 쳤다.
드르륵!
‘자기도 맛있다고 엄지 척 했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이 다시 가림막을 슬며시 열었다. 김충호와 가족들은 다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편, 김진배는 이효정과 두 딸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 사랑하는 자신의 딸……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들을 앞으로 지켜줄 남자.
테이블을 지그시 보던 김진배가 김충호를 보았다.
김정아와 김수아가 밥을 먹는 것을 보던 김충호가 김진배의 시선에 그를 보았다.
김충호와 잠시 시선을 마주하던 김진배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내 아내와 딸을 잘 부탁합니다.”
김진배가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것에 김충호가 그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김진배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김충호가 속으로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김진배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화아악!
김진배의 몸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김충호는 한참을 숙이고 있다가 허리를 폈다.
그리고 김진배가 사라진 것에 김충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그래요?”
그런 김충호의 모습에 이효정이 의아한 듯 보았다.
“아니, 괜찮아요.”
김충호의 말에 이효정이 재차 의아해할 때, 김정아가 말했다.
“어디 아픈 것 아니에요?”
“응? 아니? 나 아픈 데 없는데?”
김충호의 답에 김정아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다가 말했다.
“건강검진하세요.”
“건강검진? 나 작년에 했는데?”
“우리 엄마 만나려면 건강검진 매년 하세요.”
김정아의 말에 이효정이 그녀를 보았다.
“얘는…… 충호 씨 건강해.”
“그럼…….”
자신을 두둔하는 이효정을 보며 웃던 김충호의 얼굴에 순간 웃음기가 살짝 사라졌다.
“요?”
이효정의 얼굴에 어린 불안함을 본 것이다.
“제가 비타민을 좀 챙겨 드릴게요.”
이효정의 말에 김충호가 웃었다.
“건강검진 내일 받겠습니다.”
“정말 받으시게요?”
“그럼요. 정아가 받으라고 하는데 받아야죠.”
김충호의 말에 이효정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저희 약국 앞에 있는 병원에 아는 의사분들 있으니까 내일 예약해 놓을게요. 그리고 검사받을 때 8시간 금식이신 것은 아시죠?”
이효정의 말에 김충호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잘 압니다.”
홀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을 때, 주방에서 강진은 종이를 보고 있었다. 김진배가 가고 떨어진 종이였다.
김진배가 쓴 편지를 읽던 강진이 손에 들린 수표를 보았다.
그리고 수표 밑에는 작은 글씨로 글이 적혀 있었다.
강진이 홀을 보았다.
“당신…… 행복하세요, 라.”
화환 문구에 적어 달라는 문구를 작게 중얼거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사랑합니다…… 라고 쓰고 싶었을 텐데.”
김진배가 정말 적고 싶었을 문구를 떠올리며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개꽃 접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