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41
442화
귀신들로 북적거리는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강진은 김소희와 마주 앉아 있었다.
김소희는 차달자가 만든 두부를 김치와 같이 먹으며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차달자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두부를 만든 보람이 있게도, 김소희가 오늘 온 것이다.
미소를 지으며 두부를 씹던 김소희가 강진과 같이 앉아 있는 차달자를 보았다.
“자네 손맛은 여전하군.”
“감사합니다.”
차달자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걸리를 마셨다.
한 잔 쭉 들이켜는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힐끗 고개를 돌렸다.
식당 구석 자리에서 할아버지 귀신이 순두부찌개에 밥을 먹는 것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 귀신을 보던 강진에게 김소희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았다.
“오늘…….”
강진이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네가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뭔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강진이 쳐다보자 김소희가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들을 잃은 것은 오기봉이니…… 저 사람을 용서하든, 계속 미워하든 그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용서하라, 하지 말라는 것은 그저 타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스윽!
김소희가 할아버지 귀신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고라 해도 그로 인해 벌어진 일……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자 시간이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김소희가 다시 강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다면 신경을 쓰지 말거라. 귀신 중에 사연 하나 없는 이가 어디 있던가. 그 사연을 일일이 마음에 담아두면…….”
한 호흡 멈춘 김소희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 일 하기 어려우니.”
“알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늘 알겠다는 말을 하지만…… 언제나 귀신들의 사연을 가슴에 담아두는군.”
김소희는 강진에게 귀신의 사연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몇 번 했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강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귀신들의 사연 중에는 신경이 쓰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으니 말이다.
강진이 한숨을 쉬는 것을 차가운 얼굴로 보는 김소희에게 차달자가 살며시 말했다.
“마음이 착해서 그런 것입니다.”
차달자의 말에 김소희가 강진을 보았다.
“착하다라…….”
말을 하던 김소희가 슬며시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강진과 첫 만남에서 그에게 맞았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이마를 쓰다듬는 김소희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에 강진이 급히 막걸리 주전자를 들어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전자를 공손히 내밀었다.
“첫날 제가 아가씨의 옥체에 손을 댄 것은 지금도 크게 반성하고 있고 죄송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이마를 쓰다듬다가 양은그릇을 들었다.
쪼르륵!
그녀는 강진이 따라주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어리다 해도 쉽게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이네.”
“아가씨께서 너무 동안이시라 미성년자인 줄 알고…….”
말을 하던 강진은 김소희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앉게.”
그에 강진이 슬며시 앉았다. 그런 강진을 보던 김소희가 슬쩍 자신의 가슴께에 달린 노리개를 만졌다.
“노리개가 참 어울리십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살짝 웃다가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는 귀신을 돕는 것이 좋은가?”
“좋은 것도 있지만…… 안쓰러워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승천하도록 말인가?”
“승천을 하면 가장 좋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계시는 동안은 마음이 좀 편했으면 합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그를 지그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귀신들을 돕고 싶으면 돕게나. 하지만 그 사연에 너무 많은 마음을 쓰지는 말게. 때로는 자네가 도울 수 없는 귀신도 있고 사연도 있음이니.”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고 표정 변화도 없었지만, 그녀가 하는 말에는 우려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강진의 답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주전자를 들었다. 그에 강진이 남은 것을 마시고는 잔을 내밀었다.
쪼르륵!
“학생 하나가 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막걸리를 받으며 그녀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와 형이 수호령으로 붙어 있네.”
“어머니와 형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병으로 죽고, 형은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죽었네.”
“아…….”
강진이 안타까움에 작게 신음을 토하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병원에 있지.”
“아버님도 아프세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이 가끔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 곧 죽을 것 같더군.”
“혼?”
“사람의 몸이 약해지고 의식이 흐려지면 혼과 몸을 연결하는 끈이 약해지네. 끈이 약해지면 사람이 살아 있어도 혼이 가끔 빠져나가지.”
“혼이 빠져나가면 죽는 것 아닌가요?”
“오래 빠져나가 있다면 그리 되겠지.”
“그럼…… 아버님도 죽는 겁니까?”
엄마는 병으로 죽고, 형은 교통사고로 죽고…… 이제 아버지까지 죽는다니 강진은 안타까웠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늙어 죽는 것도 아니고 단명하는 것이 아닌가.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남은 아들이 걱정돼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것 같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곧 그리 되겠지.”
“그럼 혼자 남는군요.”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이 물었다.
“저에게 이야기하신 것은 제가 그 학생을 도와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까?”
“착한 아이일세.”
“잘 아시는 아이입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아침에 우유와 신문 배달을 하고, 끝나면 병원에 가서 아버지 얼굴을 보고 학교에 가네. 그리고 훈련을 하고 저녁에는 다시 일을 하지. 열심히 살고 효심도 깊은 아이라네.”
“훈련요?”
강진이 묻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도 선수네.”
“아…… 유도.”
중얼거리던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동은 돈이 좀 들 텐데?”
보육원에서 힘들게 축구를 한 장희섭을 보면, 재능과 실력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하기 힘든 것이 운동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원에 있고 아침에 아르바이트까지 할 사정이라면 운동할 돈이 있을까 싶었다.
강진의 물음에 차갑기만 하던 김소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담임이 좋은 사람이더군.”
“그래요?”
“자기 돈 들여 훈련 시켜주는 듯해.”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분이고 좋은 스승이시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산적하기에 좋을 인상인 자가 마음은 천상 교육자더군.”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떠올리는 김소희의 얼굴에 조금 더 짙은 미소가 어렸다. 그런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도 웃었다.
“그 산적 같은 분이 마음에 드시나 보네요.”
평소 미소를 잘 짓지 않는 김소희가 그 담임 선생님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으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스승이 선생이라는 직업이 되었지만, 나 때만 해도 부모와 스승은 하나라 여기며 존경하고 공경했네.”
“군사부일체요?”
“아는군.”
김소희가 살짝 놀란 듯이 보는 것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 정도 지식은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식하지 않아서 다행일세.”
“아…… 네.”
강진이 재차 입맛을 다시자, 김소희가 말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의 마음가짐과 인생이 변하게 되네. 좋은 스승은 한 학생의 인생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그 부모와 그 자식들의 인생도 바꾸는 것이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낳아준 분이 부모라면 인생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은 스승이라 할 수 있죠.”
“그 말이 맞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강진을 보며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옛날에는 좋은 스승이 많았네. 도시락 못 싸 오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 먹던 이도 있었고, 제자의 고민에 같이 고민하고 대화를 해 주는 이들도 있었네.”
옛날 자신이 봤던 참 스승이라 할 이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은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산적, 아니 스승이라 부를 만한 이를 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네. 사실 그 학생도 그 산적을 보다가 알게 된 아이일세.”
김소희의 말에 강진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명공고 백현덕 감독과 달리 학생을 위해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제가 그 학생을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다.
“좋은 아이고 착한 아이일세.”
그러고는 잠시 막걸리를 보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누군가 잡아줘야 할 아이일세.”
“잡아줘요?”
“알겠지만 나는 처녀귀신이자 무신일세.”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김소희가 허공에 손을 내밀자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들고 다니던 왜도였다.
갑자기 검을 꺼내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침을 삼켰다. 그녀가 갑자기 검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검을 꺼낸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변하는 것이다.
“이 검은 왜란 당시 적의 손에 있던 것이네.”
강진이 검을 보았다.
“왜병의 것이었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잠시 답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적이었네.”
그러고는 김소희가 검을 잠시 매만지다가 말했다.
“적의 손에 들렸을 때는 조선의 백성을 해하던 검이지만, 내 손에서는 조선의 백성을 구하고 지키는 검이었네.”
김소희가 검을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같은 검이지만 누구의 손에 들리며, 그자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휘두르는지에 따라 결과는 다르네.”
말을 하며 검을 가볍게 쓰다듬자, 검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우우웅!
그에 강진이 호기심과 놀람이 어린 눈으로 검을 보았다.
“검이…… 우는 건가요?”
“이 아이도 나와 오백 년이니…….”
검을 아련한 눈으로 보던 김소희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 아이는 검이네.”
“검요?”
“남을 해칠 수도 있는 검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검이기도 하네.”
“그 말씀은…… 학생이 나쁜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인가요?”
“삶이 힘들면 여러 유혹이 생기는 법이네.”
말을 하며 김소희가 검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스르륵!
그러자 검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강진이 새삼 놀란 눈으로 김소희를 보았다.
‘확실히 조선제일 처녀귀신이자 무신.’
다른 귀신들은 이런 것을 흉내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제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도와줄 것인가?”
김소희의 눈빛이 미세하게 바뀌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냥 도와주라 하시면 될 것을…… 내가 못 미더우신가?’
김소희가 이때까지 한 말은 모두 그 학생을 도와달라는 부탁인 것이다.
“그저 도와달라 하시면 됩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그럼 제가 어떻게 도울까요?”
“그건 자네가 생각해 봐야겠지.”
“제가요?”
“못 하겠는가?”
김소희의 물음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만나보고 도울 방법이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주전자를 들어 내밀었다. 그러자 강진이 급히 양은그릇을 들어 술을 받은 뒤 그것을 마셨다.
아까 받은 것을 마시지 않았기에 양이 상당했다. 그에 강진이 몇 모금으로 나눠 마시고는 그릇을 내밀었다.
강진의 빈 잔을 채워주며 김소희가 말했다.
“자네 그거 아나?”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자네는 좋은 사람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아가씨가 더 좋은 분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런 말을 한다고 내가 좋아할 것 같은가.”
김소희는 짐짓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지만, 강진은 보았다. 찡그려진 눈과 달리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는 것을 말이다.
‘좋으시면서.’
속으로 웃은 강진이 막걸리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