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498
499화
“돌아와서 안쓰럽구나.”
장태풍의 말에 차달자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외롭지 않아서 좋답니다.”
차달자의 답에 장태풍이 고개를 돌려 차연미와 이호남, 그리고 변대두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왔다.”
“감사합니다.”
잔을 나눈 장태풍이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서 좋은 소식도 듣고, 좋은 사람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장태풍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자네도 가끔은 지리산을 나와 세상 구경도 좀 하게나.”
“저는 지리산이 좋습니다. 밖에 나와 보면 시끄럽고 삭막한 콘크리트만 널려 있고…….”
장태풍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에 비하면 지리산은 무척 좋지요. 푸른 자연에 동물들도 많고.”
“지리산의 기운이 좋기는 하지.”
“그럼요. 아가씨도 지리산에 자리 하나 잡으십시오. 제가 기운 좋은 곳 몇 자리 봐 둔 곳 있는데 아가씨께서 오신다고 하시면 제가 잘 정리해 놓겠습니다.”
“나는 되었네.”
“마음 변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장태풍이 강진을 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할 만한가?”
“좋습니다.”
“좋다니 잘 됐군.”
고개를 끄덕인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지리산 한 번 놀러 와. 내가 산삼 농사를 많이 지었으니 오면 몇 뿌리 주겠네.”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되물었다.
“산……삼 농사요?”
“지리산이 기운이 좋아서 그런지 산삼이 잘 자라.”
“그런데…… 산삼 농사를 어떻게?”
“그게 뭐 어렵나? 사람들 안 오는 심산에 산삼 씨 뿌려 놓으면 그게 산삼 농사지.”
“하지만 씨를 어떻게 뿌리세요?”
장태풍은 “어험.”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큰 비밀을 알려 준다는 듯 말했다.
“바람을 살랑살랑 불게 해서 산삼 씨를 날리는 거지. 산삼은 하늘이 내리는 거라 사람이나 귀신 손을 타면 약효가 크게 떨어지거든. 그래서 바람을 일으켜서 씨를 날려 보내는 거지.”
“아…….”
“그리고 짐승들이 못 먹게 잘 지키면 돼. 그럼 알아서 잘 자라더라고.”
웃으며 장태풍이 말을 이었다.
“다음에 한 번 와. 산삼 좋은 놈으로 몇 뿌리 줄 테니까.”
“그럼 감사하죠.”
장태풍의 말에 강진이 웃다가 문득 물었다.
“혹시 오래된 도라지도 있나요?”
“젊은 친구가 산도라지가 몸에 좋은 건 아나 보네?”
“이야기를 들어서요.”
“후! 오기나 해. 내가 한 가마니 캐 가게 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야기는 적당히 하고, 일단 배부터 채우자고.”
웃으며 장태풍이 소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신음을 토했다.
“크윽! 좋…….”
좋다는 말을 하려던 장태풍은 자신을 보며 눈을 찡그리는 김소희의 모습에 웃었다.
“아직 여기까지는 편하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장태풍은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화아악!
그녀의 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태풍이 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제가 농이 심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장태풍이 사과하자 그를 보던 김소희가 검을 스윽!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나한테 가장 편한 것은 역시 검인 것 같군. 그렇지 않나?”
그 모습을 보며 안색이 나빠진 장태풍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장태풍이 거듭 사과하자 김소희가 검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
“편히…… 아주 편히 먹게.”
“아, 알겠습니다.”
작게 답을 한 장태풍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조심히 집어서는 입에 넣고 작게 씹었다.
그러고는 소주를 한 잔 따라서는 조용히 마셨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강진이 속으로 웃었다. 겉으로는 장태풍이 김소희에게 완전 겁을 먹어서 조심하는 것 같지만, 그의 눈에 어려 있는 장난기를 보니 이것 역시 즐기고 있었다.
마치 김소희의 이런 반응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강진은 한 가지 더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장태풍이 김소희를 무척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방식이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는 것이 조금 문제지만 말이다.
‘조선 제일 귀신에게 이렇게 장난도 치시고…… 죽어서 무서울 것도 없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장태풍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
음식을 다 먹은 귀신들은 1시가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또 맛있는 음식으로 모시겠습니다.”
김소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가게를 나섰다.
그 뒤를 장태풍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저와 저 녀석들은 한 잔 더 하고 가겠습니다.”
“더 마실 생각인가?”
“좀 편히 먹으려고요.”
장태풍의 말에 김소희가 눈을 찡그리며 그를 보았다.
“나와 먹는 것이 불편했던가?”
“그럴 리가요. 아주 편했습니다. 그저 남자들끼리 술 한 잔 더 하려는 것입니다. 아가씨와 마시는 술도 무척 편했습니다. 무려 동석까지 하고 마신 술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크게 웃는 장태풍을 보던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이 사장 내일 영업도 있으니 적당히 마시고 가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김소희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처녀귀신들이 그 뒤를 따라나섰다.
그 모습에 오진수가 소리쳤다.
“지선 씨! 다음에 같이 한잔해요!”
이지선의 기분이 취기가 오르면 합석을 하려고 했는데 전혀 취하지를 않다 보니, 결국 합석을 할 수가 없어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오진수의 외침에 처녀귀신들이 힐끗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지선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걸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오진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실 때, 장태풍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파이팅이다.”
장태풍의 농기 가득한 목소리에 오진수가 한숨을 쉬고는 멀어져 가는 이지선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선 씨! 다음에! 꼭 한잔해요!”
***
처녀귀신들이 가고 난 자리를 치우기가 무섭게 가게 안에는 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강진은 정말 시끌벅적한 귀신들의 술자리를 볼 수 있었다.
김소희와 처녀귀신들이 있어서 조용히 마셨던 총각귀신들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것이다.
물론 현신한 것과 달리 귀신 상태에서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를 않는다. 하지만 취하든, 취하지 않든 상관없다는 듯 총각귀신들은 술을 마실 뿐이었다.
탁자 세 개를 붙인 곳에서 강진은 총각귀신들과 합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양반인 김소희의 영향으로 조금은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처녀귀신들과 달리, 평민인 장태풍이 이끄는 총각귀신들은 격의가 없어 비교적 편히 어울릴 수 있었다.
강진은 장태풍과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소희 아가씨께 농을 많이 하시던데.”
“후! 재밌으니까.”
“재미로 그랬다 쳐도……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장태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따라 마시고는 말했다.
“그게 또 별미인 게지.”
“목숨 걸고 하는 장난이요?”
강진이 묻자 장태풍이 작게 웃고는 말했다.
“소희 아가씨의 반응은 목숨을 걸고 볼 만큼 재미가 있지. 자네도 봤겠지만…… 속은 여린 분께서 강한 척하며 하는 반응이 재미가 있지 않은가.”
“그야…… 조금 그런 감이 있죠.”
강진의 말에 장태풍이 손을 들었다.
부들부들!
손을 살짝 떠는 장태풍의 모습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중독이야.”
“중독요?”
“벌써 금단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지. 어서 아가씨께 장난을 치라고 말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장태풍이 옆에 놓인 통에 잔에 있던 소주를 부었다.
쪼르륵!
“이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병이야 병.”
그러고는 장태풍이 강진의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쪼르륵!
그 모습에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보통 귀신들은 이런 물건들 못 만지던데요?”
“우리가 보통 귀신은 아니지.”
장태풍의 말에 총각귀신들이 웃으며 소주잔을 들어 보였다.
“그럼요. 우리가 어디 보통 귀신입니까?”
“살아서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봤는데…… 죽어서 이런 물건이라도 만져야지.”
“총각귀신을 위하여!”
총각귀신 하나가 외치자 다른 총각귀신들이 잔을 높이 들고 후창한 뒤 반투명한 상태의 소주를 마셨다.
그러고는 그대로 남아있는 소주를 통에 부어 버린 뒤 새로 따랐다.
일반적으로 현신하지 않은 귀신이 술을 마실 때, 강진이 그들의 잔을 비워주고 새로 따라주곤 했다. 귀신은 같은 잔의 술을 두 번 마시지는 못하는 데다 술병을 들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데 총각귀신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병을 잡아 술을 따르는 것이다.
“그 처녀귀신 분들은 이런 물리력을 행사 안 하시던데요.”
“그건 소희 아가씨가 힘을 함부로 쓰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렇지.”
“그럼 총각귀신들은요?”
“술을 따라 마시는 것 정도는 자기 손으로 해야지. 산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나?”
장태풍은 강진의 잔을 채워주며 말을 이었다.
“못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지. 안 그런가?”
장태풍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잔에 따라지는 소주를 보았다.
‘산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힘을 쓰는 것에 망설이지 않는다. 처녀와 총각…… 단어도 정반대지만 기질도 정반대구나.’
힘이 있어도 필요한 곳,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 않는 김소희와 처녀귀신.
반면 자신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힘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총각귀신.
서로 기질이 많이 달랐다. 그리고 그 기질의 차이는 아마도 수장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걸 우선시한다는 건 같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문득 장태풍을 보았다.
“소희 아가씨와는 오래 알고 지내셨죠?”
“이래저래 사백 년 정도 알고 지냈지.”
“장태풍 씨가…….”
강진의 말을 듣던 장태풍이 잔을 들었다. 그에 강진도 잔을 들자, 잔을 가져다 댄 장태풍이 웃으며 말했다.
“씨가 뭐야. 형이라고 해.”
“네? 아니,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형이라고 해.”
싱긋 웃는 장태풍의 모습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럼 형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뭐야?”
“소희 아가씨 옛날에는 어땠어요?”
“옛날이라…….”
장태풍은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허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 아가씨는 무척 날카로웠어.”
“그래요?”
“임진왜란 때 목숨까지 버리면서 지킨 나라가 정신을 못 차리다가 30년 후 정묘호란을 겪고 또 10년 후에는 병자호란을 겪었어. 40년 동안 난을 세 번이나 겪었으니 아가씨께서 무척 날카로웠지.”
장태풍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아가씨는 한 자루 날카로운 검이나 다름없었어.”
이야길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문득 그를 보았다.
“그런데 아가씨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강진이 묻자 장태풍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어서 처음 본 분이었지.”
“네?”
“말 그대로야. 죽고 나서 눈을 떴을 때…… 나를 보며 울고 있으셨어.”
-가여운 아이야. 오랑캐와의 싸움도 이겨낸 네가…… 어찌 조선의 관군에게 목숨을 잃더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