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60
561화
“가정의 달이라서 오신 거군요.”
식사를 하며 강진이 말하자, 이진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버이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고……. 그렇다고 우리 같이 식당 하는 사람이 어버이날하고 스승의 날에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 온 거지.”
맞는 말이다. 음식집은 남 쉬는 날이 대목이다.
그래서 그날들을 피해 온 것이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니 김봉남에게 인사도 하고 식사도 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왜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점심시간이잖아. 점심시간 끝나면 인사드려야지.”
이진웅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숙수님이 아직도 주방에서 일을 하시나요?”
“그럼 당연하지. 숙수님은 요리사시니까.”
이진웅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입을 닦았다. 그러고는 음식을 보다가 웃었다.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았네.”
“싸달라고 해서 가져가려고요.”
강진의 말에 이진웅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직원이 다가왔다.
“어떻게, 음식은 평소와 같으신가요?”
직원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진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와 같은 맛이라 아주 좋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음식 좀 싸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직원의 답을 들은 이진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인사 안 하시고요?”
“후원에서 좀 쉬다가 점심 끝나면 그때 인사드리려고.”
이진웅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강진은 그 뒤를 따르다가 직원을 보았다.
“저기, 계산할게요.”
강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 숙수님께서 이미 하셨습니다.”
“이 숙수님이요?”
미소로 답한 직원은 카트를 가져와서 남은 음식들을 챙겨 주방으로 갔다.
그 모습에 강진은 이진웅이 간 곳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제가 계산해야 하는데.”
“용수도 먹고 내 가족도 먹었으니 내가 내야지. 앉아.”
이진웅이 자리를 가리키자 강진이 그곳에 앉았다.
“뭐 마실래?”
이진웅이 메뉴판을 내밀자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암정 후원이 보이는 이곳엔 식사를 한 손님들이 차를 마시거나 다과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로는 나무들과 잔디들이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었다.
후원을 둘러보던 강진이 한쪽을 보고는 물었다.
“저기는 뭐예요?”
낮은 돌담장 너머로 장독대들이 셀 수 없이 펼쳐져 있었다.
“운암정의 근본.”
“운암정의 근본요?”
“전국 팔도의 간장과 고추장, 된장들이 있어.”
“전국 팔도요?”
“너도 알겠지만 전국 팔도의 장들은 모두 각지의 특징이 있어. 어디는 조금 더 짜고, 어디는 향이 있고, 어디는 단맛이 있지.”
“그렇겠죠.”
“그래서 음식에 맞게 지방의 장을 가져다 쓰는 거야.”
“그럼 이걸 다 여기에서 만드는 건가요?”
이진웅은 고개를 저었다.
“팔도에서 오는 장은 사 오고, 운암정에서 쓰는 장은 여기서 담그지. 그리고 전국에 두 군데 이런 장 보관하는 곳이 더 있어.”
“그럼 저곳만 한 게 두 곳이나 더 있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근데 왜 나눠서 보관을 하세요? 나눠서 보관하면 관리하기 힘들 텐데요.”
강진의 물음에 이진웅이 웃었다.
“장 보관해 둔 곳에 사고가 나면 장을 한 번에 다 못 쓰게 되잖아.”
“아!”
“그래서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서 저장고를 나눠서 둔 거야. 한 곳이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한 곳이 남으니 거기서 가져다 쓰면 되니까.”
“대단하네요.”
“숙수님이 대단하신 거지. 이런 시스템은 다 숙수님이 생각해내신 거니까.”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이진웅은 “아.” 하더니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차 뭐 마실 거야?”
강진은 그제야 다시 메뉴판을 보다가 말했다.
“저는 매실차 시원하게요.”
고개를 끄덕인 이진웅이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숙수님.”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여직원의 모습에 이진웅이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자주 오세요.”
“알았어요. 오미자차, 아이스커피 두 잔, 매실차 주세요. 차는 둘 다 시원하게요.”
주문을 하던 이진웅이 문득 여직원을 보았다.
“초코우유 있습니까?”
“네.”
“그럼 초코우유도 한 잔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진웅이 주문하는 것을 듣고 있던 이소연이 환하게 웃었다.
“와! 초코우유다!”
이소연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소연이는 초코우유 좋아하지.”
“응!”
배용수와 이소연의 대화에 강진이 이진웅을 보았다.
‘소연이 주려고 산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한 강진은 문득 뒤에 있는 여자 직원들을 보았다. 그 시선에 여자 직원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괜찮아요.”
“그래요. 저희는 가게 가서 차 마시면 돼요.”
“우리는 여기 구경이나 할게요.”
“맞아. 여기 경치가 좋은 것이 걷기만 해도 힐링되고 좋겠어.”
“귀신 되니 이건 좋네. 어딜 가도 아무도 안 막으니까.”
귀신 직원들은 웃으며 스윽! 난간을 뚫고는 장독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을 구경하려는 모양이었다.
“장독대에는 못 들어가요!”
배용수의 외침에 이혜미가 그를 보았다.
“왜요?”
“금줄이 쳐져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못 들어가요.”
“아…… 그럼 밖에서 구경할게요.”
배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금줄?”
“원래 장독대가 있는 곳에는 잡귀 오지 못하게 금줄 치고는 해.”
“너?”
잡귀라는 말에 강진이 살짝 입모양을 하자, 배용수가 눈을 찡그렸다.
“이게 죽을라고.”
그 반응을 보고 웃던 강진은 장독대를 보았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
귀신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미신이라 생각했겠지만, 귀신이 있음을 아니 금줄을 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귀신이 장독대에 머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일단 귀신은 음한 존재이니 말이다.
장독대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직원이 음료를 들고 왔다.
차를 두고 고개를 숙이며 돌아서는 직원을 보던 이진웅이 말했다.
“먹어 봐. 여기서 직접 담가서 만든 거라 맛이 괜찮아.”
이진웅의 말에 강진이 매실차를 마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매실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
“매실은 독과 화기를 없애니 여름에 먹기 딱 좋지.”
말을 하던 이진웅이 초코우유를 옆자리에 놓았다. 그러고는 강진의 옆자리에 아이스커피를 놓았다.
‘이건 네 건가 보다.’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웃으며 아이스커피를 들고는 마셨다.
그 사이 이진웅은 배용수와 이소연이 앉아 있는 자리를 보다가 미소를 짓고는 오미자차를 마셨다.
“어떻게, 장사는 잘 돼?”
“제 인건비 정도는 나오고 있어요.”
“요즘 적자 보는 자영업자들 많으니 그 정도면 선방이네.”
가게 이야기를 나누던 이진웅이 시간을 보았다.
“이제 슬슬 인사하러 가야겠군.”
“저도 인사드려야 하는데…….”
“여기 있어. 주방은 외부인 출입 금지라 내가 인사드리면서 너 왔다고 전할게.”
“알겠습니다.”
이진웅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후원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고 나자 테이블에는 강진과 임수령만이 있었다. 물론 옆에 배용수와 이소연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임수령이 강진을 보며 말했다.
“용수 씨하고는 많이 친했어요?”
“형제였습니다.”
강진의 말에 임수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셨구나. 다행이에요.”
“뭐가요?”
“형제라고 말해 주는 친구가 용수 씨한테 있어서요.”
웃던 임수령은 슬며시 초코우유가 놓인 자리를 보고는 말했다.
“용수 씨가 우리 딸을 무척 예뻐했어요.”
그러다 고개를 돌려 장독대가 있는 곳을 보고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 딸이 라면을 참 좋아했어요.”
“애들은 라면 좋아하죠.”
“근데…… 저나 남편이나 못 먹게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운암정에 놀러 오면 용수 씨가 저기 장독대 뒤에서 라면을 끓여 딸에게 주고는 했어요.”
임수령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형수님이 말은 안 하셨지만 나 되게 많이 싫어하셨을 거야. 주지 말라는 것을 그리 주니 말이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용수가 싫었겠어요.”
“그때는 참 싫었어요. 라면이 몸에 안 좋잖아요.”
“이상하게 맛있는 것 중에 몸에 안 좋은 것이 많더라고요. 특히 불량식품요.”
“불량식품이 맛이 있기는 하죠.”
잠시간 웃던 임수령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용수 씨가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용수가요?”
“얼마나 건강하게 키우겠다고 먹고 싶다는 것을 그리 못 먹게 했는지. 그냥 먹고 싶다는 것 자주 먹게 해 줄 것을……. 저희도 어렸을 때 불량식품 먹으면서 컸지만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말이에요.”
“아. 따님 돌아가신 것은 이야기 들었습니다.”
“남편이 그래요?”
“그건…… 아니고요. 우연히 들었습니다.”
살짝 놀란 듯하던 임수령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용수 씨가 고마워요. 우리 대신 우리 딸 먹고 싶은 것 많이 해 줘서요.”
말을 하던 임수령이 피식 웃었다.
“저희 집은 아침마다 라면하고 김밥을 먹어요.”
“아침마다요?”
“우리 딸 먹고 싶어 했던 음식…….”
말을 하던 임수령은 말끝을 흐리더니 손으로 눈가를 닦았다.
“먹고 싶다고 할 때…… 그냥 먹게 해 줄걸.”
그런 임수령을 보던 강진은 입맛을 다시며 이소연을 보았다. 이소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임수령을 보고 있었다.
“엄마 울지 마. 나 엄마가 해 주는 라면 매일 먹어서 진짜 좋아. 그러니까 울지 마.”
이소연의 말에 강진이 재차 입맛을 다셨다. 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매일 아침을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강진이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실 때, 이진웅이 김봉남과 함께 다가왔다.
“다들 오랜만…….”
말을 하던 김봉남은 임수령의 눈가가 촉촉한 것에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어깨를 손으로 토닥였다.
“힘들지?”
“아니에요.”
임수령이 급히 눈가를 닦자 김봉남이 장독대 쪽을 보았다.
“용수하고 소연이가 저기서 라면 끓여 먹던 것이 생각나는군.”
김봉남의 말에 임수령을 보던 이진웅이 장독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소연이가 여기에 오면 용수를 데리고 장독대 구경하고 싶다고 그랬지요.”
장독대를 보던 이진웅이 피식 웃었다.
“그때 숙수님이 화를 많이 내셨죠.”
“후!”
김봉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암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장독대가 있는 곳이다. 한식의 기본인 장이 모여 있는 곳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곳에서 배용수가 이소연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배용수는 정말 크게 혼이 났었다. 이소연은 혼나는 배용수 옆에서 울었고 말이다.
장독대를 보며 그때를 떠올린 김봉남이 입맛을 다셨다.
“그냥 김치나 가져다줄 것을 그랬어. 장도 먹는 것일 뿐인데…… 화를 낼 것이 아니었는데.”
김봉남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머리를 긁었다.
“제가 잘못한 거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암정의 근본이라는 곳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네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할 때, 김봉남이 강진을 보았다.
“오랜만이네.”
김봉남이 먼저 손을 내밀자, 강진은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