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29
730화
집안에 들어간 강진은 깨끗한 실내를 볼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깔끔한 성격이에요. 어지럽히면 바로 등짝이었는데.”
이혜미가 살짝 떨리는 눈으로 집을 보는 사이, 아주머니가 강진의 손을 잡았다.
“우리 혜미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그전에 반찬들을 먼저 냉장고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래요.”
아주머니가 쇼핑백을 들고 주방으로 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 사이 이혜미는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집안 곳곳을 보았다.
한편 최호철은 긴장된 눈으로 집을 보고 있었고, 여자 귀신들은 조용히 한쪽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혜미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서서들 뭐해요. 소파에 앉아 계세요.”
귀신이기는 해도 자기 집이라고 소파를 권하는 이혜미의 모습에 귀신들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쇼핑백을 식탁에 올리고는 반찬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계란말이, 숙주나물 무침, 계란 옷을 입은 핑크색 옛날 소시지, 어묵볶음…….
특별한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정갈한 모습이었다. 반찬을 보던 아주머니가 강진을 보았다.
“혜미가…… 이야기를 해 줬다고요?”
“누나가 부모님이 이 반찬을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특히 아버님께서 이 옛날 소시지에 맥주 한잔하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강진의 말에 아주머니가 반찬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방금 전만 해도 강진이 한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었다.
딸이 죽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 딸과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사기꾼인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강진을 집에 들인 것은 혹시라도 딸과 아는 사이라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문전박대를 당한다면 저승에 있는 딸이 얼마나 서운해할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반찬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이 반찬들은 정말 자신과 남편이 좋아하던 반찬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특히…….
아주머니는 분홍 소시지가 담긴 반찬통 뚜껑을 열었다.
달칵!
그러고는 가만히 분홍 소시지를 보다가 하나 집어 입에 넣고는 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남편이 계란 옷 입혀서 소시지 구워 주면…… 그렇게 좋아해요.”
잠시 말이 없던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혜미가 처음으로 차려 준 밥상에 있던 반찬이라 그런가 봐요.”
“내가?”
아주머니의 말에 이혜미가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아버지 밥을 차려 준 적은 꽤 되지만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이혜미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저도 일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교대할 친구가 출근이 늦어서 저녁에 혜미 보고 밥 차려서 아빠랑 같이 먹으라고 했거든요.”
“그렇군요.”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보니 남편이 싱글싱글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렇게 웃느냐고 했더니…… 혜미가 계란 옷 입혀서 소시지를 구워 줬는데 너무 맛있다면서 이제 시집보내도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주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는 듯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그때는 ‘그래서 좋겠네.’하고 말았는데…… 남편은 그게 기분이 좋았는지 자주 혜미에게 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아주머니는 다시 계란 옷 입은 핑크 소시지를 보며 웃었다.
“혜미가 해 준 소시지에 맥주 한잔하면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좋아했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이혜미가 반찬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아빠가 이걸 좋아했던 거야?”
자신이 처음으로 해 준 요리, 아니 요리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간단한 음식이 아빠에게는 즐거움이었나 보다.
그저 아빠가 좋아해서 해 줬던 것뿐인데…… 아빠는 딸이 처음으로 해 준 음식이라 좋아한 것이었다.
이혜미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아주머니는 다른 반찬 뚜껑들을 열었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먹고는 미소를 지었다.
“맛이 아주 좋아요.”
“입에 맞으세요?”
“제가 좋아하는 맛이에요.”
“다행이네요. 혜미 누나가 어머니 식성을 말해 줬던 것이 생각이 나서 비슷하게 해 보려고 했는데…… 비슷하게 잘 만들어졌나 봐요.”
아주머니는 강진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강진에 대한 불신은 없었다. 이제 완전히 강진이 자신의 딸과 정말 친하게 지낸 사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여기 앉아요. 음료 좀 드릴게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주머니는 서둘러 냉장고에서 시원한 주스를 꺼내 컵에 따르고는 과일을 씻어 접시에 담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식탁 위로 옮겨 놓고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 혜미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십 년 전이면…… 내가 고등학생일 때니까.’
“누나가…….”
강진은 평소 이혜미의 성격을 고려해서 적당히 짜낸 그녀와의 만남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 내 혓바닥…….’
거짓말을 하는 동안 자신의 혀에 펼쳐질 농장을 떠올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어디 불편해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러고는 강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스 잘 마셨습니다.”
“벌써 가게요?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제가 식당을 해서요. 식당에 식재 들어올 시간이라 가 봐야 합니다.”
“식당?”
강진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작게 하고 있습니다. 한번 들러 주세요. 맛있는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아주머니는 명함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젊은 분이 강남에서 식당을 다 하고 성공하셨네요.”
“아닙니다. 정말 아주 작게 백반집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
“남편하고 한번 찾아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리자, 아주머니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오늘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할 뿐입니다.”
“아니에요. 아직도 우리 혜미 기억해 주고 있어서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아주머니의 말에 재차 고개를 숙인 강진은 몸을 돌려 집을 나가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머니.”
“네?”
자신을 보는 아주머니를 보며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염색을 해 보세요.”
“염색요?”
“어머니는 검은 머리에 살짝 웨이브 지게 파마하시면 고우실 것 같아요.”
이혜미가 아까 엄마의 염색 안 한 머리를 보고 슬퍼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아…… 좀 늙어 보이나요?”
아주머니가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는 것에 강진이 말했다.
“누나가 어머니 지금 염색 안 한 머리를 보면 속상해할 것 같아서요.”
“아…….”
아주머니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다가 미소를 지었다.
“하긴, 혜미가 꿈에서라도 나 보러 왔을 때 이런 모습이면 많이 속상하겠네요. 말을 해 줘서 고마워요.”
아주머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집을 나서자 귀신들도 그 뒤를 따라 나왔다.
현관문을 닫은 강진은 의아한 눈으로 이혜미를 보았다.
“혜미 씨는 왜 나왔어요?”
“집주인이 손님 가는데 나와 봐야죠.”
싱긋 웃은 이혜미가 강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엄마한테 염색하라고 해 줘서 고마워요.”
“육십 대면 한창인 나이잖아요. 그리고 젊게 사셔야 젊어지시죠.”
강진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는 말했다.
“가족하고 편하게 있으세요. 출근은 마음 편해지면 그때 오시고요.”
“감사합니다.”
이혜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밑으로 내려왔다.
밑으로 내려온 강진은 차에 타서는 강선영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힐끗 백미러로 뒤를 보고는 말했다.
“정숙 씨도 집에 가고 싶을 텐데…… 제가 장사 때문에 오늘 데려다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괜찮아요. 일요일에 집에 다녀오면 돼요.”
“그래도요.”
“정말…… 괜찮아요.”
정말 괜찮다는 말이 더 안 괜찮다는 말로 들리는 듯해 입맛을 다신 강진이 운전에 집중했다.
***
다른 사람들은 다 은퇴할 육십 대의 나이에 이혜미의 아버지 이걸용은 아직도 정정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했던 터라 풍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노년을 지낼 수 있었지만, 이걸용은 따로 일을 구해서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을 해야 딸 잃은 슬픔이 조금이라도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일을 하다가도 가끔 딸의 얼굴이 생각나서 잠시 멍하니 있을 때도 있었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한 이걸용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찌개 냄새가 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식을 하나?”
딸이 죽은 후 못 먹고 산 것은 아니지만, 아내나 자신이나 딱히 음식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 혹은 딸이 좋아하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딸이 생각이 나서 말이다. 그래서 그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었다.
그나마 두 사람을 걱정한 아들 내외가 자주 반찬을 해다 주니 반찬이라도 있는 거지, 그것이 아니라면 그냥 대충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집에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혜강이가 왔나?’
이혜미의 오빠인 이혜강이 왔나 싶어 집으로 들어가던 이걸용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아내가 검게 머리를 염색하고 파마까지 한 채 음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왔어요?”
“당신 머리했네?”
“어때요? 오랜만에 해서 좀 어색하기는 한데…….”
아내가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는 것에 이걸용이 미소를 지었다.
“잘 했네.”
이걸용의 말에 어머니 옆에서 웃고 있던 이혜미가 급히 말했다.
“아빠는 ‘잘 했네.’가 뭐야. 예쁘다고 해야지.”
이걸용은 이혜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기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걱정이 어려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쁘고 착한 딸이 죽은 후…… 자신을 치장하는 것에는 관심도 주지 않던 아내가 갑자기 머리를 하고 살짝 화장까지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여보…… 괜찮은 거지?”
걱정스러운 남편의 목소리에 아내가 웃었다.
“그럼 괜찮지. 어서 씻고 와요.”
이걸용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내를 보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이걸용은 식탁에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탁 한쪽에는 맥주도 하나 놓여 있었다.
“여보…… 정말 괜찮은 거야?”
이걸용의 말에 아내가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짓고는 맥주를 땄다.
타앗!
뚜껑이 떨어지며 소리를 내자 아내가 잔을 내밀었다.
“한 잔 받아 봐요.”
아내의 말에 이걸용이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고는 잔을 받았다.
쪼르르륵! 화아악!
시원한 소리와 함께 잔을 채워가는 맥주의 황금 거품을 보며 이걸용이 작게 침을 삼켰다. 어쩐지 무척 시원해 보였다.
침을 삼키는 이걸용을 보며 아내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 술 오랜만이죠?”
“그런가?”
술잔을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에 이걸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걸용을 보는 아내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어렸다.
딸이 죽고 얼마 동안 이걸용은 술을 옆에 끼고 살았다. 너무 슬퍼서 그러는 것이겠거니 하고 아내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아들이 이혜미의 사진을 들이밀며 말을 했었다.
-지금 아버지 이렇게 술 드시면서 울고만 있는 거…… 혜미가 보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죽은 딸이 슬퍼할 거라는 말에 이걸용은 그날 이후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니……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