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73
775화
“변하지 않아 보기 좋구먼.”
할아버지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어르신도 여기에 이렇게 계시네요. 평생 여기에 계셨는데 지겹지도 않으세요?”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가 웃으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내가 죽으면 가게가 어떻게 될까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야.”
“잘 되는 것 같은데요.”
배용수는 가게 안을 보았다. 손님이 몇 없기는 했지만, 10시가 되기도 전에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우리 아들 알지?”
할아버지가 카운터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며느님이 가게를 보시던데 지금은 아드님이 가게를 보시네요?”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아들을 보았다.
“요즘은 도자기를 만드는 것보다 판매에 더 집중을 해.”
“아…….”
아들을 보던 배용수가 물었다.
“그럼 도자기는 누가 만들어요?”
“제자들하고 고용한 직원들이 만들지.”
“직원요? 전에는 어르신하고 제자들이 만들었잖아요.”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무슨 일 있으세요?”
“그냥……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고 있어.”
할아버지는 고개를 젓고는 앉아 있던 곳에서 일어났다.
“내가 골라주는 걸로 사.”
“골라 줄 필요가 있으세요?”
‘골라야’ 한다는 건 좋은 물건과 나쁜 물건이 섞여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배용수의 물음에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 눈에 차지 않은 도자기는 내 공방을 나가지 못했지.”
“그야 마음에 안 들면 다 부숴 버리니까요.”
할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도자기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다 부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운암정에서 주문한 그릇들 일정을 맞추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일반적인 거래라면 문제가 될 일이었지만, 숙수님은 그런 경우에도 재촉을 절대 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라고만 말을 했었다.
맛있는 음식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좋은 물건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근데…… 우리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은 후에는…….”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 마음에 안 드시는 것도 파는군요.”
“부수면 마이너스지만, 팔면 플러스라고 아들이 그러더군.”
할아버지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아들을 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그릇들을 보았다.
“무슨 그릇을 살 거야?”
“그냥 집에서 편하게 쓸 그릇요.”
“그럼 골라 보게. 내가 그중에 괜찮은 걸로 다시 골라 주겠네.”
할아버지의 말에 배용수가 아들 쪽을 한 번 보고는 그릇들을 살폈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할아버지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할아버지도 마주 고개를 숙이더니 말을 했다.
“저승식당 음식이 귀신들한테는 진수성찬이라고 하던데…….”
할아버지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고는 배용수를 툭 쳤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허공에 중얼거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식당 사장 손이 닿으면 최고의 귀신 음식이 됩니다.”
“나도 한 번 가보고 싶군.”
“오시면 좋기는 한데…….”
배용수가 할아버지를 보고는 말했다.
“아드님 수호령이신 거죠?”
배용수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들을 보았다.
“저 녀석이 장사 이렇게 할 줄 알았으면…… 그냥 나 때 접어버릴 것을 그랬어.”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부수는 것이 많아야 오히려 우리 물건이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군.”
할아버지의 말에 배용수가 강진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작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핸드폰을 보았다.
강진은 사진을 찾아보겠다던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처박아 두고 있던 거야?’
사진을 어디 이상한 곳에 박아 두지 않았다면 보통 책장 속 앨범이나 서랍 속에 있을 것이다. 사진을 이불 같은 곳에는 넣어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는 건,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못 한다는 말이었다.
문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강진의 속에선 열불이 났다. 자신과는 한 다리 건넜다고 해도, 아빠는 그들의 형제인데 사진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강진이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핸드폰을 보는 사이, 배용수가 그릇들을 선택하고는 말했다.
“다 골랐어.”
강진이 보자 배용수가 자신이 고른 그릇들을 가리켰다.
“저건 위에서 네 번째 거, 저건 다섯 번째 거.”
같은 그릇인데 꺼내는 위치를 굳이 고르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보았다.
“같은 거 아니야?”
“조금 불량품이 섞여 있대.”
“불량품?”
강진이 작은 목소리로 묻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내 눈에는 불량품이지만, 일반인의 눈에는 그저 같은 그릇이네. 다른 그릇들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는 없지.”
할아버지는 그릇들을 보다가 말을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물건을 사는 게 좋으니 내가 고른 것을 사게.”
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구니를 가져다가 물건들을 담았다. 그러던 중 옆에서 담는 걸 지켜보던 배용수가 말했다.
“갈 때 저 주인 우리 가게 한 번 꼭 오게 좀 해.”
“할아버지하고 친해?”
“운암정에 그릇 대는 곳 어른인데 친하지. 가끔 숙수님이 요리사들 데리고 와서 그릇도 만들고 갔었어.”
“그릇을?”
“예쁜 그릇 만들려는 건 아니고, 우리 음식이 담기는 그릇을 직접 만드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좋은 영감도 생길 거라면서 숙수님이 데리고 왔었어.”
“그래서 좋은 영감이 생겼어?”
“생기지. 좋은 그릇을 보면 거기에 담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니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넌 참…… 대단해.”
“당연히 대단하지.”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구니를 카운터로 들고 가려 하자, 배용수가 말을 했다.
“밀폐용기 사야지.”
말을 하며 배용수가 한쪽 진열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밀폐용기들이 있었다.
밀폐용기들이 있는 곳으로 간 강진은 필요한 사이즈대로 용기를 골랐다.
그렇게 바구니 한가득 물건들을 산 강진이 카운터로 가자, 노트북을 보고 있던 남자가 웃으며 말을 했다.
“많이 사셨네요.”
“도자기 보러 왔다가 필요한 용기들도 있어서 온 김에 샀습니다.”
“잘 하셨어요. 저희 물건이…….”
말을 하며 도자기 그릇들을 들던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강진이 고른 그릇들을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을 했다.
“혹시 도자기 공예 같은 것 하세요?”
“안 하는데요.”
“그럼 그릇 보는 눈이 좋으신가 보네요.”
“왜요?”
“좋은 물건을 잘 고르셨어요.”
남자의 말에 강진이 가게를 둘러보며 말을 했다.
“그릇들이 다 좋은 것 같던데……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섞여 있습니까?”
강진의 말에 남자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일종에…….”
잠시 말을 멈췄던 남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같은 공장에서 나온 물건이라고 해도 천 개가 나오면 그중에 하나 정도는 더 좋은 물건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로 말을 한 겁니다. 저희 물건들은 저희가 직접 구워서 만드는 것이라 다 좋습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을 했다.
“혹시 운암정에 있던 배용수라는 요리사 기억하세요?”
“운암정의 배용수…… 배용수…… 아! 용수!”
반가운 얼굴로 남자가 웃으며 강진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젊고 능력 있는 친구였는데…… 아쉽게 됐어요.”
“제가 용수 친구거든요.”
“용수 친구세요?”
“용수가 여기 그릇 좋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한번 와 봤습니다.”
“그렇군요.”
남자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용수를 참 예뻐했는데…….”
고개를 젓는 남자를 보며 강진이 말을 했다.
“할아버님이 무척 대단한 도예 장인이라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용수가 저희 아버님 이야기를 했습니까?”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음식을 담고 싶은 그릇을 만드는 분이시라고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배용수가 한 말을 살짝 바꿔서 하는 강진을 보며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좋은 말을 해 줬네요. 음식을 담고 싶은 그릇이라…….”
말을 하던 남자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좋은 그릇을 사람들이 좀 알아주면 좋을 텐데요.”
“장사가 잘 안 되세요?”
강진의 물음에 남자가 한숨을 쉬고는 그릇을 들었다.
“일반 가정집에서 쓰기에는 무겁기도 하고 잘 깨지기도 해서…… 쉽고 편하게 쓰기는 어렵죠.”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그래도 우리 그릇의 멋이 있는데…… 아쉽습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명함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다음에 저희 가게 한번 찾아 주세요. 제가 좋은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서 대접하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남자가 명함을 보고는 웃으며 말을 했다.
“강남에서 가게를 하시는군요.”
“네.”
남자도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내밀었다.
“한번 찾아가 인사드리겠습니다.”
“인사라고 할 것이 있나요. 그냥 식사하러 오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제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진열장에 놓여 있던 술잔 세트를 꺼내 놓았다.
“서비스요?”
강진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했다.
“식당 그릇들 바꾸실 때 되면 한번 찾아 주세요. 저희 그릇들을 사용하시면 가게 품격이 한층 올라갈 겁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나한테 영업을 하려고 하시네.’
식당이면 그릇들을 많이 사용하니 영업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강남 식당이라고 하니 아마도 규모가 클 것이라 생각을 하는 것 같고 말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럴게요. 저희 가게도 찾아와 주세요.”
“알겠습니다. 꼭 한 번 가겠습니다.”
강진이 계산을 하고는 몸을 돌리려 하자, 남자가 웃으며 말을 했다.
“이거 가져가셔야죠.”
남자가 술잔 세트를 들어 보이는 것에 강진이 아차 하고는 그것을 받았다.
“그거 아십니까?”
강진이 보자, 남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릇에 어울리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이런 술잔에도 어울리는 술이 있습니다.”
남자의 말에 강진이 잔을 보다가 웃으며 말을 했다.
“운암정 김 숙수님께 이야기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진은 잔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 하얀 잔에는 색이 있는 술을 담아 마시면 색감이 살아 좋고, 여기 살짝 청색 빛이 도는 잔에는 소주 같은 것을 담아 마시면 좋고, 여기 작은 잔은 도수가 높은 술을 따라 마시면 좋죠.”
“김 숙수님도 아시는군요.”
“저희 가게에 몇 번 오셔서 식사하고 가셨습니다.”
“음식이 좋은가 보네요.”
“맛있게 하는 편입니다.”
강진은 잔을 보다가 문득 말을 했다.
“그런데 잔이 운암정 술 세트에 있는 잔하고 비슷해 보이네요.”
“그 잔도 저희가 만드는 것입니다. 디자인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흙에 같은 사람이 만드니 내면은 같다 할 수 있죠.”
남자의 말에 강진이 술잔 세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 잘 쓰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웃는 남자를 보며 몸을 돌리던 강진은 할아버지 귀신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배용수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선 강진은 술잔 세트를 보다가 말했다.
“아가씨 드리면 좋아하시겠다.”
예쁘게 생긴 술잔을 보니, 술 좋아하는 여자 귀신이 한 명 생각난 것이다.
술잔 세트에는 색깔별로 두 개씩 잔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총 여섯 잔의 술잔이 있었다.
술잔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아가씨가 어떤 잔을 좋아할까?”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술잔을 보며 말했다.
“아가씨는 소주를 좋아하시니 청색 술잔 좋아하시지 않을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술잔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이걸 가장 좋아하실 것 같다. 색감이 예뻐.”
강진의 말에 배용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색감이 진하지도 않으면서도 은은한 것이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