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88
989화
“……월북을 한 남편이 있다고 하더군요.”
윤복환의 말에 정복립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게 사실이십니까?”
윤복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명절마다 부산에 내려와서 남편 소식을 찾다가 가셨습니다.”
“그분 이야기 좀 해 주십시오.”
“찾는 분이 그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이런 사연들이 아주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정복립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보자, 윤복환이 말했다.
“그분은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오셔서 고향에 들렀다가 가기 전에 저희 가게에 오셨습니다. 북한에 있는 남편이 언젠가 고향에 왔을 때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오신다고 하더군요.”
윤복환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소윤을 보았다.
“남편은 꼭 돌아올 거라 했습니다.”
윤복환의 말에 소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윤복환이 지금 자신을 도와주려고 화제를 그쪽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알았다.
귀신한테 들었다면서 당산나무로 가자고 할 수 없으니, 윤복환이 그에 맞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는 정말 자신을 이렇게 기다렸을 것 같았다. 자신이 꼭 돌아올 것이라 믿고…….
“혹시 그분 연락처를 아십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 오신 지도 오래되셨습니다.”
“아!”
연락처도 모르고 안 온 지도 오래라면 다시 단서가 끊긴 것이다.
정복립이 실망감을 드러내자, 윤복환이 말했다.
“그래도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떤?”
“자기 고향 마을에 아주 큰 당산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당산나무? 당산나무!”
눈을 크게 뜬 정복립이 말했다.
“제가 찾는 분의 마을에도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그러세요?”
“네.”
잔뜩 흥분을 하던 정복립은 작게 숨을 고른 뒤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열자 에어캡에 싸인 담배 케이스가 나왔다.
바로 소윤의 아내가 쓴 편지가 들어 있는, 잔뜩 녹슨 담배 케이스였다.
“대장님…….”
담배 케이스를 보던 정복립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분이 사모님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들었으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복립의 중얼거림에 소윤이 그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여기 사장님들이 도와주실 거다. 그러니 너는 이 두 분 말만 잘 들어.”
그러고는 소윤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윤복환을 보았다.
그 시선에 윤복환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소윤을 보았다. 그러다가 정복립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때 그분이 했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어떤 말이었습니까? 혹시 사는 곳…… 아니, 지역이라도 들은 것이 없으십니까?”
동네를 모르더라도, 전국 팔도 중 어디인지 만으로도 큰 단서였다.
정복립의 말에 윤복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기억에 당산나무에는 남편과 자신만이 아는 공간이 있다고 하더군요.”
“공간?”
“그곳에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기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편지를 남겼다…….”
이야기를 하던 정복립이 급히 일어났다.
“저 죄송하지만…….”
“괜찮습니다.”
윤복환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정복립이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그에 윤복환이 웃으며 말했다.
“식대는 다음에 제대로 드시고 난 후에 내십시오.”
“하지만 이 음식들은…….”
“몇 십 년 만에 만난 지인에게 음식 한 번 대접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요.”
윤복환이 웃으며 하는 말에 정복립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고는 정복립이 상자를 급히 가방에 챙기자, 강진이 말했다.
“당산나무 가시려는 거죠? 저하고 같이 가시죠.”
“아닙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늦었으니 같이 가야죠. 해도 떨어져서 혼자 가시는 것보다는 저하고 같이 가서 찾는 것이 좋을 거예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윤복환 뒤에 있는 창문을 보았다. 창밖으로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여름 해가 길다고 하지만 저녁 여덟 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해가 떨어진 것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돕고 싶습니다.”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자, 강진이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윤복환이 도마 앞에 놓인 그릇들을 챙겼다. 그 순간, 주방에 있던 귀신들이 서둘러 나와서는 그를 도왔다.
“우리 사장님도 말 꾸며내는 거 잘하시는데 사장님도 참 잘하시네요.”
이혜미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귀신이 아니었으면 정말 그분이 오시던 손님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배용수의 말에 윤복환이 두 귀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어낸 거 아니네.”
“네?”
윤복환은 소윤이 앉아 있던 곳을 보았다. 그러던 윤복환이 미소를 지었다.
“은자 여사…… 기다리던 분이 정말 오셨습니다. 내가 좀 더 빨리 기억을 해서 말을 해 줬어야 했는데. 나도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잘 나지 않더이다. 미안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소윤의 자리를 보던 윤복환이 말을 이었다.
“강진이가 같이 갔으니 은자 여사가 남긴 마음, 그리고 이야기들 남편분이 잘 볼 겁니다.”
윤복환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다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럼 설마?”
윤복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으로 간 남자들이 많고, 이산가족도 많았다 보니 은자 여사가 기다리던 분이라 생각을 못 했는데…… 당산나무에서 편지를 교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았네.”
“하긴, 당산나무에 편지를 나누던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
배용수의 말에 윤복환은 가게 문을 힐끔 보았다.
“조금, 한 십 년만 일찍 왔어도 좋았을 것을.”
“십 년요?”
“십 년 전에는 바다식당 손님이었고, 그 후에는 저승식당 손님으로 오셨으니.”
“아! 그럼 혹시 만나실 수도?”
저승식당 손님이라면 귀신이다. 살아 있을 때 만나도 좋았겠지만, 아내가 소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귀신이라도 서로를 보고 만날 수가 있었다.
배용수의 말에 윤복환이 고개를 저었다.
“승천을 하셨네.”
“아…….”
끝내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니 안타깝지만, 그래도 승천을 했다니 다행이었다.
귀신으로 떠도는 것보다야 저승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도 이승에선 결국 만나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안 좋은 배용수가 소윤이 있던 자리를 보자, 윤복환도 같은 곳을 보았다.
하지만 배용수와 달리 윤복환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여사님께서 남기신 마음이 잘 전해졌으면 합니다.’
이렇게라도 소윤에게 은자 여사의 마음이 전해지니 다행이라 여긴 것이다.
***
정복립이 모는 차를 타고 강진은 한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산을 뒤로하고 있는 마을은 꽤 컸다. 집들도 많고 산에는 아파트들도 여럿 늘어서 있었다.
“부산 길이 되게 복잡하네요.”
강진이 오는 동안 본 길을 떠올리며 말하자, 정복립이 웃으며 말했다.
“전쟁 때문입니다.”
정복립의 목소리는 조금은 들떠 있었다. 소윤의 가족에 대한 행방을 찾았으니 말이다.
“전쟁요?”
“전쟁 때 전국 피난민들이 다 이곳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이 부산에는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했습니다. 그러니 땅만 보이면 사람들이 판자라도 올려서 비 피할 곳을 만들었는데 그게 집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이 복잡해진 겁니다.”
“그렇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복립이 당산나무가 있는 곳을 보았다.
“저게 당산나무입니다.”
나무를 본 강진은 살짝 놀랐다. 마을에 이렇게 큰 나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사람 다섯이 손을 잡고 감싸야 할 정도의 둘레였다.
“나무가 엄청 크네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보니 도시 개발을 할 때 몇 번 자르려는 시도는 있었다는데 마을 사람들이 결사반대를 해서 잘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 정도 나무면 마을 사람들이 지키려고 할 만하네요.”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잠시 기다리세요.”
정복립은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는 작은 손전등 두 개를 사서 나왔다.
“핸드폰에 손전등 기능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핸드폰보다는 손전등이 찾기 쉬울 겁니다.”
정복립은 손전등 하나를 강진에게 건네고는 당산나무로 다가갔다.
옛날에는 당산나무에 색색의 천을 달거나 돌을 쌓아 놓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었다.
대신 당산나무 주위에 의자들과 평상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마을 사람들이 휴식처로 쓰는 모양이었다.
“저는 이쪽으로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정복립이 손전등을 들고 나무에 다가가자 강진이 반대로 돌며 소윤을 보았다.
“어디예요?”
강진의 말에 소윤이 냉큼 나무 한쪽으로 가서는 밑동을 보았다.
“여기 어디인데…….”
소윤은 조금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무 밑을 살폈다. 바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나무도 조금은 변한 것이다.
그런 소윤의 모습에 강진이 그의 곁에 와서는 손전등으로 밑을 비추었다.
귀신이라고 밤눈이 좋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살펴볼 때, 한 바퀴를 돌은 정복립이 다가왔다.
“어떠세요?”
“나무 밑동 쪽에 있을 것 같아서 그쪽을 자세히 보고 있습니다.”
강진의 말에 정복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뭔가 숨기기 좋은 곳은 나무 밑동인 것 같습니다.”
정복립은 손으로 나무 밑동 쪽을 살피며 말했다.
“아마 나무 밑동에 난 구멍 같은 곳에 넣고 흙이나 돌로 가렸을 것 같은데…….”
“맞아. 나도…….”
말을 하던 소윤이 나무뿌리 한쪽을 보다가 말했다.
“여기다.”
소윤의 말에 강진이 그가 가리키는 쪽을 손전등으로 비추고는 몸을 숙였다.
“뭐라도 찾으셨습니까?”
“여기가 좀…….”
얼핏 보면 그냥 뿌리와 흙이었다. 하지만 소윤이 여기라고 말을 하니 강진이 손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파지지 않자 강진은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나뭇조각을 하나 집어서는 그것으로 땅을 쑤시듯 파냈다.
스윽! 스윽!
흙을 어느 정도 파자 밑에 있던 돌들이 나무에 걸렸다.
“맞아요. 입구를 돌로 막고 그 위에 흙을 깔았어요.”
돌을 본 소윤이 급히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정복립이 급히 몸을 숙였다.
“혹시…….”
“안에 구멍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말을 하며 강진이 돌을 꺼내고는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강진의 손에 비닐이 잡혔다.
강진은 그것을 조심히 꺼냈다. 비닐은 지퍼백으로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주 많은 편지들이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두툼한 편지들을 보고 소윤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스윽!
비닐을 손으로 쓸어내린 소윤이 입을 열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리도 많았던 거요?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당신의 잔소리를 이렇게 글로서 보게 됐구려. 미안하오…….”
소윤은 한숨을 쉬며 작게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하오. 내가…… 너무 늦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