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평범한 일상은 며칠간 계속 이어졌다.
강신이 좀처럼 나갈 미확인 현장을 고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신도 그 시간 동안 마냥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는 습관처럼 오전에는 현장 요원들과 비슷한 수준의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미확인 현장을 탐색하며 틈틈이 떠오르는 영감들을 데이터로 정리했다.
그동안에도 많은 사람이 개인 큐브를 거쳐 갔다.
마치 대학가의 자취방처럼, 휴게소를 들리는 것처럼 개인 큐브를 찾아왔지만 강신은 크게 불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개인 큐브가 너무 넓어지는 바람에 혼자 쓰기 너무 크다는 이유도 있지만, 최근엔 다른 이유가 생겼다.
“도대체 뭔데….”
바로 강신을 보고 시끄럽게 떠드는 인형 때문이었다.
인형은 오늘도 어김없이 중앙 탁자에서 강신을 보며 스페인어로 떠들고 있었다.
인형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위치에 있는 것도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개인 큐브를 방문한 사람들이 인형을 선반에서 꺼내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강신이 인형을 불쾌하게 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니, 분명 볼 때마다 전원을 끄는데, 누가 자꾸 다시 켜는 거지?”
인형의 외모는 자주보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개를 돌리며 눈을 깜빡이고, 입술이 들썩이며 움직이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불쾌했다.
세계의 모든 언어를 모국어처럼 들을 수 있게 된 강신이지만, 인형이 말하는 스페인어는 왠지 모르게 오싹하게 느껴졌다.
“아…. 안 되겠어. 그냥 배터리를 뽑아놓던가 해야지.”
인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할 일이었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강신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 인형을 잡아 등 쪽에 있는 배터리 팩을 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허억! 이…. 이게 뭐야.”
강신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은 채, 인형의 배터리 팩에서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어째서 강신이 이렇게까지 놀란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인형을 움직이게 만드는 배터리 팩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hola(안녕).”
“우악!”
강신은 인형이 움직이며 말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고, 인형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이전까지는 듣기가 조금 불편했던 목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Encantada(반가워).”
빈 배터리 팩으로 스페인어를 내뱉는 인형의 모습은 기괴했다.
“꿀꺽….”
강신은 자신도 모르게 공포심을 느껴 마른침을 삼켰다.
딱…. 딱……. 딱…….
인형은 고개를 돌리기 위해서 움직였지만, 바닥에 걸려 제대로 고개를 넘기지 못했다.
바닥에 걸려 눈을 깜빡이는 인형이 그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강신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Yo te conseguiré la felicidad.(내가 너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게).”
“흐익…!”
강신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비명이 흘러나왔고, 그와 동시에 큐브의 입구가 열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등장에 강신이 더 크게 놀라자, 그런 강신의 모습을 보고 김대리가 좋아하며 웃었다.
김대리가 머리보다 작은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를 든 사람들에게 으스댔다.
“거봐요! 이거 아무리 강선임님이라고 해도 놀란다고 했죠?”
그렇게 으스대는 김대리 옆에서 장웨이가 턱을 쓸고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걸 본 것처럼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이 젖은 강신에게 말했다.
“U.M.A가 아니면 평범하게 놀라시기도 하는군요.”
“다들 그만 하세요. 축하하려고 이런 일을 꾸몄다고 해도, 계속 놀리면 기분나쁘실 거예요.”
카밀라가 김대리와 장웨이를 나무랐다.
그녀는 바닥에서 움직이는 인형을 들어 스위치를 껐다.
최태준은 강신의 겁먹은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 강선임님…. 많이 놀라셨습니까?”
그때야, 강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지압했다.
“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표정이 좋지 않은 강신을 보며 큐브로 들어왔던 사람들의 표정 또한 굳어졌다.
그들 틈에서 척준신이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김대리에게 말했다.
“카밀라 양의 말이 옳군. 강선임이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분 나빠하지 않나.”
“으…. 강선임님을 위해서 특별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는데…. 조금 과했나 보네요…. 기분이 나쁘셨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서프라이즈요? 갑자기 그걸 왜 준비하신 거죠?”
“그야…. 축하하기 위해서죠….”
자신을 놀라게 하면서까지 그들이 무엇을 축하해 주려고 하는 건지 강신은 알 수 없었다.
강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개인 큐브를 찾아온 사람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황당한 표정으로 강신을 바라봤다.
“……?”
“강선임님…. 혹시 사내 메일 확인하신 지 며칠이나 되셨습니까?”
보통 업무 내용이나 회의록, 프로젝트의 진행도, 주요 공지 사항들을 사내 메일을 통해 주고받았다.
비밀 연구소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사내 메일을 확인하지만, 강신은 조금 달랐다.
“으음…. 저에게 오는 메일들이 너무 많아서 직접 확인하지 않은 지는 조금 됐죠….”
강신은 연구소장 직할 소속이기 때문에 비밀 연구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연구와 부서들의 정보를 메일로 전달받고 있었다.
하루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몇십 통씩 날아오는 메일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보낸 사람들과 제목을 확인하고, 필요한 메일들을 추려서 확인했었다.
그러나 프로네시스와 함께하게 되면서 필요하거나, 중요한 내용의 메일들은 모두 프로네시스가 강신에게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하지만 근래에 프로네시스가 따로 알려준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김대리님이 서프라이즈라고 해서 숨기고 있었습니다만….
개인 큐브 스피커에서 프로네시스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대리가 기가 찬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 분명 협력을 요청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강선임님이 진급한 것까지 숨기면 어떻게 해!”
-그게 더 효율적인 서프라이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니…. 당사자가 축하받는 것도 모르면….”
김대리가 프로네시스와 말싸움을 하자, 척준신이 나서서 강신에게 설명했다.
“보아하니, 정말 몰랐나 보군. 내가 말해주지. 며칠 전 사내 메일로 특별 진급 대상자들의 명단이 공개되었고, 거기에는 자네를 선임에서 책임으로 진급시킨다는 내용이 있었네.”
“책임이라고요? 제가요?”
강신의 물음에 이곳에 온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척준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허….”
선임 연구원의 다음 직책인 책임 연구원.
선임 연구원으로 시작한 강신에게 있어서 첫 진급이었다.
방금까지 기분 나빴던 것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성신에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강신은 빠르게 진급할 수 있었다.
최태준은 강신의 표정이 풀리는 걸 보고, 다가와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진급 축하합니다. 정확한 진급 날짜는 한 달 뒤입니다.”
“어…. 감사합니다.”
강신은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최태준의 말에 대꾸했다.
사람들은 강신을 축하하기 위해 큐브 내부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준비했다.
김대리가 가지고 온 케이크는 테이블 중앙에 놓여졌으며, 식당 층에서 만들어 온 음식들이 테이블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는 동안 김대리가 강신에게 쭈뼛쭈뼛 다가왔다.
“그렇게까지 불쾌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자신을 축하하기 위해 꾸몄던 일이라는데, 언제까지 속 좁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강신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놀란 건 사실이지만 저 인형이 정말로 이상한 인형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네요.”
강신은 배터리 팩이 비어있던 인형을 보고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 그럼 저 인형은 세그레드 조라에서 보낸 게 아니라 김대리님이 따로 준비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 인형은 세그레드 조라에서 보낸 것이 맞습니다. 단지 제가 그곳에서 받아서 임상무님에게 전달했을 뿐이죠.”
“그럼 사전에 따로 조작해둔 겁니까?”
“저건 따로 조작하지 않아도 되는 인형입니다.”
조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강신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인형은 페루에서 유명한 인형입니다. 등 뒤에 노출된 배터리 팩 말고도 머리 쪽에 배터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
김대리는 어느새 인형을 가져와 인형의 머리카락 속에 숨겨진 작은 배터리 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AAA형 크기의 배터리를 꺼냈다.
“하…. 진짜 제대로 속았네요. 그럼 인형을 제가 보이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 스위치를 켜놓은 것도…?”
“네, 전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
“어쩐지…. 이쁘지도 않은 인형 뭐가 그리 좋다고 꺼내 놓았나 싶었습니다. 어느새 네시스까지 포섭하시고…. 정말 철저하게 준비했네요.”
-네가 기뻐할 일이라고 했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거든.
“그래…. 너 답네….”
“그것뿐만 아니었죠…. 개인 큐브로 자주 놀러 오는 소은이도 포섭했었습니다. 강선임님이 없을 때, 머리 쪽에 배터리를 넣어달라고 부탁했었죠.”
이곳에 없는 사람들까지 대부분의 사람이 서프라이즈를 함께 준비한 공범이었다.
그때, 대뜸 척준신이 말했다.
“그래도 강선임이 내 예상보다는 빨리 배터리 팩을 확인했군.”
모든 게 김대리의 계획대로 움직인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이번 일에 가장 핵심은 바로 강신이 크게 놀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신이 배터리 팩을 여는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계속 인형을 강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 놓았고, 개인 큐브에 혼자만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강신은 한동안 인형의 전원을 끄기만 했을 뿐, 배터리 팩을 확인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개인 큐브에 들려 인형을 선반에서 내려놓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요?”
“다들 자발적으로 강선임님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거니까요.”
카밀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혈액 냉장고에서 꺼낸 피를 와인잔에 따라놓은 상태였다.
강신은 카밀라의 웃음을 맞받아치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지금 마시려는 혈액 팩은 다음 달에서 제외할 겁니다.”
“앗…. 치사해….”
카밀라가 울상을 짓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 같이 웃어버렸다.
그리고 조촐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파티는 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 * *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개인 큐브.
강신은 이번 일의 원인이 된 인형을 다시 원래 있던 선반 위에 올려놓고 개인 큐브를 나왔다.
강신이 나가자, 적막이 흐르는 개인 큐브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던 여자아이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Yo te conseguiré la felicidad. (내가 너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