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14
513화
정해진 시간이 지나자 강신은 수사본부를 둘러봤다.
그리고 숫자가 줄지 않은 인원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원…… 참가군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긍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의외로 그런 사람은 꽤 많았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소방관들이 그러하며, 일반인 중에서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채연 또한 그랬다.
“장비도 동료도 단련된 육체도 상관없는 것이라면 앞으로 저도 함께할 수 있겠군요.”
수사본부에서 대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만큼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작전에 참여하려고 했다.
강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본부는 장대리님과 맥스 일행이 맡아 주실 테니, 상관없겠죠.”
상황이 달라졌으니, 작전도 그것에 맞게 바뀌어야 했다.
강신의 허락이 떨어지자, 비장한 이채연의 표정이 눈에 띌 정도로 밝아졌다.
“후, 그럼 두 번째 방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초월체의 수확제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야겠군요.”
초월체의 수확제.
어떠한 초월체가 자신의 미식을 위해 인간을 수확하는 현상이다.
수확 당한 인간은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웃는 귤’이 되며 수확제가 끝나는 동시에 그 귤들은 모두 초월체에게 넘어갔다.
“그런 초월체의 수확제에는 중요한 게 두 개 있습니다. 바로 테마와 트리거.”
“테마와 트리거라고요?”
“네, 수확제는 매번 테마가 바뀝니다. 그리고 그 테마를 지정하는 것은 초월체죠.”
초월체가 지정하는 테마를 예측하기란 어려웠다.
그 무엇도 테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봄이나 여름처럼 계절이 될 수도 있었으며 서울이나 부산처럼 지역이 될 수도 있었다.
구체적인 물건이 테마가 될 수도 있었고, 추상적인 무엇인가가 테마가 될 때도 있었다.
테마는 오로지 초월체의 그때 기분에 따라 정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한번 정해진 테마는 수확제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겠지만 수확제에서 테마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만큼 중요하죠.”
현세에 초월체가 간섭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이라도 그 매개체가 있어야 했다.
이는 초월체의 수확제라도 다를 게 없었다.
“초월체는 수확제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간 자신의 힘을 응축한 씨앗을 지정된 테마에 심어 현세에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걸 반대로 말하면 초월체가 심은 씨앗이 없다면 현세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소리죠.”
강신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특이 실종자, 귤이 되어버린 이들을 조사해 이번 수확제의 테마를 알아내고 심어진 씨앗을 찾는 것입니다.”
“음…. 쉽지 않겠군요.”
이순자가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테마라는 개념은 이해했지만, 그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했다.
그리고 테마가 무엇인지 알아내도 씨앗을 찾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씨앗은 정해진 테마와 가장 밀접한 것에 심겨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단순히 씨앗을 찾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면 강신도 이번 일이 위험하다는 말을 일행들에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위험은 테마가 아닌 트리거에서 시작되었다.
트리거, 방아쇠나 어떤 일의 계기가 되는 무언가를 뜻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트리거는 수확의 계기가 되는 부분을 말했다.
“수확제에 맞는 트리거를 건드리면 그 사람은 특이 실종자들과 마찬가지로 수확 당하게 될 겁니다.”
“수확 당한다는 게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웃는 귤이 된다는 소리죠?”
“네.”
“으음…. 그래서 구체적으로 그 트리거가 뭔데요? 저희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거죠?”
이채연이 묻자 강신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네?”
“모른다고요. 어떤 행동이나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트리거가 발동될 수도 있고, 지금 나누는 말 자체가 트리거가 될 수도 있죠.”
테마가 무작위인 것처럼 트리거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다만, 트리거는 테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예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팀장님이 처음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웃는 귤을 봤을 때, 그런 행동을 한 거군요.”
그제야 신하린이 이전에 강신이 보였던 행동들을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웃는 귤은 이미 초월체에게 수확을 당한 인간이었으니, 어떤 행동이 트리거를 건드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강신은 그곳에서 모든 행동을 자제한 것이었다.
“흠….”
툭. 툭,
송기덕이 손가락으로 회의 테이블을 두 번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저희는 뭔지 모를 트리거를 피해 특이 실종자들을 조사해야 하고, 수확제의 테마에 대해 알아낸 뒤 어디 있는지 모를 씨앗을 한시라도 빠르게 찾아내야 한다는 거군요?”
그의 설명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건 매우 난해해 보였다.
“하…. 강책임이 방관하고 싶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군요.”
이순자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눈은 포기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진짜 막막하긴 하네요, 그래서 구상한 작전은 있으신 거죠?”
카밀라가 강신을 보며 묻자 강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행히 저희는 현재 상황에서 쓸만한 패를 가지고 있더군요.”
강신은 그렇게 말하며 멀뚱멀뚱하게 눈을 뜨고 있는 이한울을 바라봤다.
“……에? 저요?”
강신의 시선을 느낀 그가 당황해하며 두 눈을 끔뻑였다.
“네, 한울 씨, 아까 차에서 귤을 만졌을 때, 사이코메트리가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했었죠?”
“아…. 그렇긴 한데요….”
원래라면 무작위로 과거 장면을 사진처럼 보여주는 사이코메트리가 어째서인지 귤을 만졌을 때는 주마등처럼 귤이 되기 전, 그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한계를 뛰어넘은 건 틀림이 없었다.
다만, 그로 인해 엄청난 두통과 헛구역질이 동반됐으며 다음에도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다른 물건을 사이코메트리 했을 때는 다시 사진처럼 한 장면만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초월체의 힘이 한울 씨의 재능을 자극한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시도는 해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도 늦지 않습니다.”
귤이 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다면 이번 일의 난이도는 비교적 쉬워질 것이다.
귤로 변한 이들의 인생을 보다 보면 그들이 건드린 트리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와 관련된 테마를 알아내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씨앗을 찾는 건 테마를 알아도 난해한 일이겠지만, 테마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이번 사건의 반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손가락으로 귤을 만지는 건 트리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 당시 이한울의 행동은 경솔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았다.
이한울은 귤을 만지고도 멀쩡했고, 재능의 한계를 넘게 되었으니까.
‘현장 요원 중에서도 수확 당한 이들은 없었어.’
현장 요원들의 행동들도 트리거가 아니라는 게 검증됐다는 소리였다.
“지금 중요한 건 한울 씨가 사이코메트리로 봐야 할 침대 위에서 굴러다니는 웃는 귤입니다. 그러니, 그 귤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확보라고 했지만, 귤을 가지고 오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강신과 이한울이 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그 장소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강신의 목적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특이 실종자 구분이 간단해졌으니, 판별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강신의 말대로였다.
이전에는 집의 상태, 그가 사용하는 물건들까지 조사해야 했다면 현재는 집에 들어가서 침대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누군가가 귤을 치웠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이미 특이 실종자로 구분된 이들이 13명이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채연과 울프팀 요원들이 새로운 실종자들의 집에 들어가 판별 작업을 시작하면 그 수는 계속 늘어날 게 분명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서 움직이죠.”
그렇게 일행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강신도 이한울을 데리고 판별이 끝났던 특이 실종자가 있던 집으로 향했다.
이미 세 곳을 방문했지만, 귤을 발견하기 위해 다시 한번 방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로 방문했던 차현욱 대리의 집에서 침대 사이에 끼어있는 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한울은 차현욱의 귤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사이코메트리를 시도했고, 강신의 예상대로 그는 다시 한번 재능의 한계를 넘을 수 있었다.
“우욱…. 확인 끝났습니다.”
한계는 넘었지만 밀려오는 정보량이 워낙 많아서 속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기에 이한울은 속이 좋지 않아도 꾹 참아냈다.
강신이 확인을 끝낸 이한울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미리 준비했던 태블릿을 넘겼다.
이한울은 그곳에 자신이 사이코메트리로 봤던 차현욱의 인생을 최대한 적어 넣고는 강신에게 넘겨주었다.
이한울이 적은 내용을 쭉 한번 흩어본 강신은 손으로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회사에서 알려준 차현욱과 본인의 기억은 조금 다르군요.”
차현욱은 회사에서 나쁘지 않은 평을 듣고 있었고, 인간관계도 무난한 편으로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한울이 적은 내용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차현욱이 어렸을 때, 그의 집은 꽤나 풍족했다.
하지만 차현욱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따돌림을 당하게 됐고, 아버지의 정년퇴임이 겹치면서 그의 부모님은 그를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귀농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귀농이라는 게 막상 해보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텃세, 농사의 고단함을 견디기에는 그들은 너무 도시 사람이었다.
보통 이 정도로 힘들면 귀농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겠지만, 차현욱의 부모님은 조금 달랐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버티고 버텼다.
그리고 부모님의 그런 결정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져 차현욱은 일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일까, 차현욱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걸 어려워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인간관계는 모나지도 않고 너무 친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인간관계였다.
그는 귤이 되기 전까지 항상 자신이 불우하다고 느꼈으며 고독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흐음….”
“뭔가 아시겠습니까?”
표정이 파리해진 이한울이 묻자 강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더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으으….”
“자자, 서둘러 다음 장소로 향하죠.”
첫날, 그렇게 이한울은 총 6개의 기억을 봐야 했다.
이한울은 이를 악물고 6번째 기억을 요약해 적어 놓고는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