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521
520화
프로네시스가 보여준 것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에는 두 사람이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강신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야 사진 속 인물 중 하나가 현재 방에서 나오지 않는 권영식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네시스, 이거…. 언제 찍은 사진이야?”
권영식의 외형만 봐서는 그리 오래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강신은 사진이 찍힌 게 그가 방에 틀어박히기 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강신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일주일 전 사진이야, 촬영 장소는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고 아쉽지만, 악수를 하는 이의 정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내진 못했어.
강신은 뭔가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설마 팰로우님도 임상무님처럼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건가?’
이미 임상무 사건으로 극도로 예민한 강신이 이런 사진을 봤으니, 온갖 잡생각들이 난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 모로코로 넘어가셨던 거지? 그리고 어째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 악수를 한 사람은 누구지?’
기간으로 보자면 강신이 한참 초월체의 수확제를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이런저런 고민을 이어가던 강신은 수많은 의문을 잠시 미뤄두고, 가장 궁금한 걸 프로네시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현재 팰로우님은 어디 계신지 알고 있어?”
그리고 돌아오는 프로네시스의 대답은 강신을 한 차례 더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밀 연구소 내에 있는 방에 계시지.
“뭐라고?”
강신은 순간 프로네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되물었다.
언제나 그랬다는 말은 권영식이 계속 방에 있었다는 소리와 같았으니까.
하지만 프로네시스가 보여주었던 사진은 분명 일주일 전에 찍혔던 것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존재했다.
-신아, 팰로우님은 단 한 번도 방 안에서 나오신 적이 없어.
“……그럼 저건 누구야?”
강신은 사진 속에 있는 권영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프로네시스가 곧바로 대꾸했다.
-나도 몰라서 너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거야.
“으음…. 그래, 그럼 일단 팰로우님부터 만나보자.”
강신은 권영식이 모종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면 당사자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르리라 생각했다.
프로네시스가 걱정이 가득한 말투로 강신에게 말했다.
-정말 괜찮겠어?
그녀의 말은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권영식이 안식일을 가진다고 공표한 이후 강신은 권영식과 만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임상무를 잃은 권영식에게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임상무의 숨통을 직접 끊은 게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임상무, 본인이 부탁한 일이라고는 해도 강신은 죄책감 때문에, 권영식은 슬픔 때문에 서로를 마주 보며 이전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게 껄끄러워졌다.
둘 다 현명한 사람이었기에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직 가슴은 그렇지 않았다.
소중한 이를 떠나 보낸 이들이 그가 사용하던 물건을 보고 그를 떠올리며 슬퍼하는 것처럼 둘에게는 서로가 임상무를 떠올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래서 강신은 권영식을 어지간해서는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신이 평생 권영식을 보지 않고 살겠다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처가 아물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강신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었다.
렙틸리언을 쫓고 이전 동료를 구하는 것?
중요한 일이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누가 뭐라 해도 권영식과 관련된 일이 먼저였다.
“괜찮아.”
그러니, 지금은 권영식을 만나야 했다.
권영식은 누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흥미를 갖는 일, 혹은 도움을 요청하는 연구원이 아니면 사람들과 만나는 걸 꺼렸다.
오죽했으면 상부에서도 권영식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으려면 한 달 전부터 따로 약속을 잡아야 했다.
그마저도 권영식의 허락이 필요했고.
평소에도 그랬는데, 안식일을 핑계로 틀어박힌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엄연히 말하자면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해야 했다.
‘옛날에는 그래도 형식상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었지?’
연구 목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에게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고 이수진 선임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사실 권영식이 안식일을 공표했을 때,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인사과뿐만 아니라 몇몇 회사 간부들이 약속을 따로 잡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권영식은 막무가내로 찾아온 그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번복은 없다며 그들을 돌려보냈고, 그날 이후로 권영식을 만나는 건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권영식이 자신이 틀어박힌 방의 위치를 바꾸고, 입구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서 개조했기 때문이다.
“HG에서 운영하는 비밀 연구소를 보는 것 같네.”
강신은 이전에 방문했던 HG 연구소를 떠올렸다.
성신의 비밀 연구소는 나름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인테리어를 추구하고 있었다.
회색이지만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는 바닥 타일부터, 화려하진 않지만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는 조명까지.
누가 봐도 세련되어 보이는 인테리어였다.
반면 HG 연구소는 외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이 사이버 펑크에서나 볼법한 인테리어였다.
연구소 내부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고, 여러 장치가 눈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런 인테리어가 현재 권영식이 지내는 방 입구에 펼쳐져 있었다.
강철과 비슷한 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 닫혀 있는 모습은 마치 권영식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신은 그 문 앞에 서서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초인종으로 보이는 버튼을 눌렀다.
삐이이익-!
그냥 듣기에도 싫은 초인종 소리가 울리길 잠시,
철컥, 끼릭끼릭끼릭.
뭔가 맞물리는 소리 이후 톱니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온 건 이수진 선임이었다.
“오랜만이네요. 강 책임님.”
그녀는 권태감에 찌들어 있는 표정으로 아무 감정 없이 강신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네, 안녕하세요. 이 선임님.”
강신도 그녀에게 인사하자, 그녀는 곧장 강신의 용무를 물었다.
“팰로우님을 만나러 오신 겁니까?”
“네.”
강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수진은 고개를 까닥이고는 몸을 돌려 강신을 방 내부로 안내했다.
강신은 아무 말도 없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권영식의 새로운 방은 이전에 그가 쓰던 방과는 전혀 달랐다.
이전 그의 방은 임상무의 사무실이나 강신의 개인 큐브처럼 주거 공간이 있었지만, 위치를 바꾼 방의 내부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기계는 물론이고, 방 내부에서는 기름 찌든 냄새가 진동했다.
‘도대체 뭘 하고 계시는 거지?’
강신은 이미 권영식이 방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권영식이 말해주지 않기도 했지만 강신도 묻지 않았다.
권영식이 임상무를 잊기 위해 뭔가에 몰두하겠다는 걸 말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강신은 방 내부를 보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방이 아니었어…. 내부를 아예 작은 연구소처럼 만들었어.’
남이 찾아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명목으로 방을 바꾸었지만, 지금 보니 넓은 방을 위해 한 일인 것 같았다.
지금 강신이 들어온 방 내부만 봐도 비밀 연구소에 있는 일반적인 연구소 두세 개를 합친 것과 같은 넓이였으니까.
이수진 선임은 그렇게 한참이나 앞장서서 걸으며 강신을 안내하다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권영식이 용접 마스크를 쓰고 뭔가를 용접하고 있었다.
권영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강책임, 무슨 일인가.”
조금 쌀쌀한 말투였지만, 강신은 섭섭해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꽤 급한 용건이 있습니다.”
강신이 급한 용건이라고 말하자, 용접을 멈춘 권영식이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고는 몸을 돌려 강신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에는 아직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급한 용건이라면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겠군. 이 선임 미안하지만, 이곳 정리 좀 부탁하지.”
“네, 팰로우님.”
“그럼 따라오게.”
권영식은 강신을 데리고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보는 것처럼 꼴이 이래서 마실만 한 것이 없군.”
“괜찮습니다.”
애초에 뭔가를 마시며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기에 강신은 그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어쩐 일로 나를 찾아왔나?”
권영식이 바로 본론을 묻자, 강신은 미리 프로네시스에게 받았던 사진을 권영식에게 보여주었다.
“이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강신이 건넨 사진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으음? 이건 나인가? 언제 적이지?”
“일주일 전이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일주일 전이라니? 나는 이곳에서 나간 적이 없는데?”
권영식은 암만 생각해도 사진 속에 나온 인물과 악수한 기억이 없었다.
아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심지어 이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럼 이 사진에 있는 사람은 팰로우님이 아니신 겁니까?”
“물론이지.”
권영식이 대답하자 혹시나 권영식도 임상무처럼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강신이 그제야 안심했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서 이 사진은 뭔가? 자세하게 설명 좀 해보게.”
강신은 프로네시스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권영식에게 알려주자, 그는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내 모습으로 변장한 것인가, 그게 아니면 U.M.A인가? 그보다 나를 어떻게 알고?”
국내라면 모를까, 해외를 잘 돌아다니지 않는 권영식의 특성상, 그는 단연하건대 모로코와 전혀 접점이 없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 곳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이가 나타났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칭범 같은 건가? 나를 사칭하려면 모로코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사칭하는 편이 더 나을 텐데?”
모로코보다 더 큰 국가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 굳이 모로코에서 자신을 사칭할 이유가 없었다.
“으음, 아무리 생각해도 변장이나 사칭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신종 U.M.A 같은 건가?”
사람의 외관을 따라 하는 U.M.A는 종종 존재해왔다.
실제로 성신에서 포획한 틈새 동거자 또한, 사람의 외형을 따라 했으니까.
하지만, 모로코에서 나타난 존재가 틈새 동거자였다면 권영식이 이곳에 멀쩡하게 있을 리가 없었다.
틈새 동거자의 의태는 자신이 따라 한 존재를 잡아먹음으로 완성되었으니까.
“아무리 봐도 모르겠군…. 그래서 자네는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나?”
“글쎄요, 저도 사진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변장한 게 아니라면 ‘흉내쟁이’나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강신이 작성한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이름이었기에 권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날 찾아왔군? 어디도 나가지 말라고?”
만약 상대가 U.M.A라면 권영식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아다니는 순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네, 제가 이번 일을 해결할 때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뭔, 그 정도로 부탁씩이나…. 어차피 나는 이곳에서 당분간 나갈 생각이 없네.”
“감사합니다.”
모든 용건을 마친 강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권영식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이 남았으니, 마중은 못 해주겠군. 멀리 안 나갈 테니 잘 가게나.”
그렇게 강신은 권영식과 헤어지고 곧장 자신과 함께 모로코로 향할 사람들을 물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