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creature capture team RAW novel - Chapter 697
696화
지면에 세 개의 모노리스가 박히자 촉수 생물들이 일제히 작게 몸을 떨어대며 행동을 멈췄다.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바닥을 기고 있던 촉수 생물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신체를 빼앗았던 촉수 생물도 멈춘 것은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작은 촉수 생물들보다 더 심했다.
마치 괴질에 걸린 인간이 몸을 심하게 경련하는 것처럼 떨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저 생물체들이 어째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촉수 생물이 검은색 기둥, 모노리스에 반응해 저렇게 되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노리스의 주인들이 나타났다.
쿵! 쿵! 쿵!
기둥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떨어진 세 개의 인영.
“우리가 많이 늦었군.”
인간은 아니지만 유려한 인간의 언어를 내뱉는 존재.
그들은 지구의 축이 더는 틀어지지 않도록 무거운 모노리스를 등에 지며 오랜 세월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고행을 선택한 순교자들인 태초의 존재들이었다.
강신의 소설에서는 기둥을 짊어진 자들이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찾을 때는 그토록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이고르.”
“인간, 오랜만이군.”
그는 강신을 보며 덤덤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의 발밑에는 방금까지 강신과 일행들을 괴롭히던 촉수 생물들이 밟혀 있었다.
촉수 생물은 이고르에게 직접 닿고 있음에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고르 뒤에는 이전에 지니즈 랜드에서 강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도 함께였다.
“아, 어디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했더니.”
콰직!
이고르와 다르게 여성체인 그녀는 잔뜩 짜증이 나 있었고 그 짜증을 풀기 위해 촉수 생물을 그대로 발로 짓이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았던 촉수 생물이 녹색 체액을 뿜어내며 찌부러졌다.
그 모습을 본 강신과 일행들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어떻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거 아니었어?”
일행들이 동요해 수군댈 정도로 어떻게 촉수 생물을 죽였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구역의 입구에서 새로운 촉수 생물이 튀어나온 것이다.
물론, 구역에서 나온 촉수 생물은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촉수 생물들처럼 그대로 무너져 내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 둘이서 이곳을 맡아주게.”
이고르가 인간의 청각으로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신의 일행들에게 부탁했다.
그 모습을 본 강신은 옛날 일이 잠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고르라는 이름도 나에게 부르라고 알려준 이름이었지.’
이고르는 자신의 이름은 인간이 발음하지 못한다며 강신에게 다른 이름을 알려주었다.
“괜찮겠어? 한 명이 여길 지키고 둘이 들어가는 편이 낫지 않겠어?, 나도 같이 들어가서 그 자식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은데.”
그녀가 말하는 그 자식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그녀는 그 존재에게 꽤 악감정이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고르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옛날 같지 않을 거다. 어쩌면 이제는 우리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대해졌을 수도 있어. 그러니, 내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둘은 이곳에 남아 그 이후를 도모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칫, 그래 알았어. 나랑 이 녀석은 여기서 그 자식이 만든 생물이나 처리하고 있을게.”
그녀는 뭔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괜히 심술부리듯 발치에 있는 촉수 생물들을 무자비하게 밟아 죽여댔다.
콰직! 콰직!
그러면서 그녀는 이고르에게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대신, 실패하더라도 내 몫까지 확실하게 때려줘.”
“그래, 나에게도 원한이 있으니, 네 몫까지 확실하게 때려주지.”
이고르는 그 말을 끝으로 바닥에 박혀 있는 모노리스 하나를 뽑아 자신의 등에 짊어 멨다.
그러자, 꼼짝도 못 했던 촉수 생물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무심히 바라본 이고르가 조금 떨어진 강신에게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지. 지금이라면 자네들도 저 벌레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따라오게.”
이고르가 바닥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촉수 생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으며 구역의 입구로 이동하자, 대열의 선두에 선 이들이 강신의 눈치를 살폈다.
“따라가죠.”
강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그제야 대열의 선두가 이고르를 따라 움직였다.
강신과 함께 있는 이들은 상황 자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강신과 일면식이 있으며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고르를 뒤따르던 선두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전혀 공격이 통하지 않아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촉수 생물이 지금은 이고르가 앞서 말한 것처럼 공격이 통하고 있었다.
그것도 애를 먹던 이전과 다르게 아주 쉽게 말이다.
퍽! 콰직! 푸직!
무기를 쓸 것도 없었다.
그저 강하게 밟거나 방패로 쳐내기만 해도 촉수 생물들이 무참하게 터져나갔다.
그 덕분에 강신과 일행들은 아주 쉽게 이고르를 따라 구역 입구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고르라는 인원이 늘어나 인원 제한이 걱정됐다.
다행히 설야와 초코가 인원 제한에 걸리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고르가 걸리지 않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강신과 일행들은 부상자인 박동팔까지 모두 챙겨 구역 내부로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강신과 성신 요원들에게는 두 번째로 진입한 구역이었지만, 구역 내부를 보고는 처음 들어오는 이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이전에 들어와서 봤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장소 자체가 바뀐 건 아니지만….’
한때 빛으로 가득했던 찬란한 초원은 사라지고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장소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초원의 파릇했던 풀들은 갈색으로 시들어서 바스러지고 있었으며 튼튼해 보였던 게르들은 대부분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신과 일행들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처럼 지상을 내리쬐던 빛이 사라져 아름다웠던 초원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당연히 하늘에 태양 따위는 없었고 뭐든 빨아들일 것처럼 어두운 공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어두웠음에도 이상하게 사물을 보지 못할 정도로 시야가 제한되지는 않았다.
분명 어두운 것은 맞는데, 주변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나온다니.
이 무슨 모순 같은 상황인지 강신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구역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현실의 법칙을 뒤트는 장소였으니 그다지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쿵!
“크윽…. %#$@”
가장 먼저 구역에 진입했던 이고르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분명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지만, 그의 상태와 억양을 봐서는 결코 좋은 뜻은 아닐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릎을 꿇은 이고르는 인상을 찌푸리며 보이지 않은 공격에 당한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크으…. 관음증 환자 같은 놈…. 벌써 이 구역도 잠식해놨군.”
관음증 환자.
강신은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고르가 어째서 지금 저런 상태인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느꼈던 그 시선을 이고르도 느낀 건가?’
그 압도적인 시선이라면 단단해 보이는 이고르가 저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강신은 이고르를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잠깐 정비하고 움직이고 싶었지만, 구역 입구를 지키는 촉수 생물들이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꼼짝도 하지 못했던 외부의 촉수 생물과 다르게 구역 내부의 촉수 생물들은 모노리스의 영향을 적게 받는 것인지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그것들은 무방비하게 노출된 이고르를 향해 덤볐고, 그 모습을 본 강신은 다급하게 일행들에게 외쳤다.
“전열! 촉수 생물이 이고르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주세요!”
“네!”
짧게 대답한 이들이 방패를 들고 바로 뛰쳐나가 무릎을 꿇고 있는 이고르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다가오는 촉수 생물을 방패로 쳐내자,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충격에 촉수 생물이 터져나갔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은 이고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에는 충분했다.
“크으…. 고맙군.”
이고르가 몸을 일으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강신이 바로 이고르에게 다가갔다.
“이고르,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시간이 없으니, 제가 알아야 할 것들을 먼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 우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짚고 넘어가지. 이 빌어먹을 공간에 구멍을 뚫은 존재를 막기 위해 이 공간을 무너트리려고 했다지?”
“네.”
“발상은 나쁘지 않았네. 실제로 가능했을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지.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다는 말에 강신이 얼굴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네들의 첫 번째 작전은 실패했다는 말이지.”
실패.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미 이 공간을 유지하는 힘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구멍을 뚫은 존재가 가지고 간 것 같군. 그래서 이 공간의 상태가 이런 것이지.”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구역, 그 이유가 밝혀졌다.
강신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의 표정도 굳어졌다.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 마음이 꺾일 만도 했지만, 강신은 그저 입술만 강하게 깨물 뿐이었다.
“멸망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강신이 묻자, 이고르가 흥미로운 눈으로 강신을 바라봤다.
‘그래, 너는 이런 인간이었었나.’
강신과 이고르의 만남은 고작 몇 시간이 전부였다.
그러니, 이고르는 강신이라는 인간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다.
그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고만 생각할 뿐,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에게는 절망스러운 순간일 텐데도 눈앞에 있는 강신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고르는 이런 인간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이런 이들을 나중에 위인이라고 부르던데….’
어디를 가나 눈에 띌 정도로 반짝이는 이들.
강신 같은 인간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있었기에 인간들은 빛나게 발전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이라…. 있긴 하지. 하지만 그 방법은 매우 위험하지.”
“지금 상황도 매우 위험한 것 똑같습니다.”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는 촉수 생물을 쳐내는 일행들을 보며 말했지만 이고르는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을 걸세.”
죽는 게 더 낫다는 말에도 강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 혼자만 편해지자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당장 자신을 믿고 이곳에 들어와 준 이들이 뭐가 된단 말인가.
그 길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해도 강신은 이들의 믿음에 보답해야 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강신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방법을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