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 Druid RAW novel - Chapter (16)
* * *
“하하하하, 속이 다 후련하군.”
판결문을 보면서 율리시즈 백작이 시원하게 웃었다.
황제가 있고, 계급사회라 그런지, 판결이 화끈했다.
공작은 모든 검사비와 비용을 배상하라.
게다가 유족들에게도 많은 돈을 물어줘야 한다.
“무엇보다, 가문의 명예를 되찾은 게 다행이군.”
“신뢰도 얻었고요.”
“이게 다 네 덕이다.”
백작은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눈빛에 무한한 신뢰가 묻어있었다.
백작이 테이블 위로 주머니 하나를 올렸다.
“치료탑 은행 통장이다. 치료탑에 가서 써라.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백작에게 건네받은 통장을 펼쳐본 나는 깜짝 놀랐다.
10억 골드가 찍혀 있었다.
이렇게 많이?
“너무 적다고 섭섭해하지 마라. 학생들 통장 한도액이 거기까지였으니. 부족하면 언제든지 부쳐 주마.”
백작은 내가 치료탑 시험에 당연히 합격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절대로 안 된다며 엄포를 놓던 백작이 맞나 싶다.
“이건 뭡니까?”
주머니에 든 또 다른 통장을 꺼내니.
“네 특허비가 들어있는 제국통장인데. 앞으로 10년 동안 이익금의 1할이 입금될 거다. 숀에게는 5푼을 지급하기로 했다. 누구든, 신제품을 개발하면 보상금이 지급될 거다.”
역시 통이 큰 백작이었다.
흐흐흐, 통장에 돈이 꽂히는 소리가 들리는군. 왜냐하면, 앞으로도 계속 약들을 만들어 낼 거니까.
내가 아는 지식에 치료탑에서 배울 포션 제작법을 더하면 얼마나 굉장히 약들이 나올지, 기대됐다.
* * *
아무리 로이칸을 타고 치료탑에 간다고는 해도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낮에는 로이칸 등을 빌어 날아갔고, 해가 저물면 적당한 곳에서 야영했다.
마나가 몸에 쌓이기 시작하자, 힘도 세졌지만, 이런 것도 가능해졌다.
탓!
“오오, 역시 편합니다. 편해요.”
세이건이 모아온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는 나를 보며 물개 박수치며 좋아했다.
“흠, 이것 정도야.”
나는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지만, 세이건은 그러거나 말거나, 스피카가 잡아 온 토끼를 꼬챙이에 꿰어 불 위에 올렸다.
아무래도 나를 불쏘시개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
[헤헤, 헤헤, 로이칸 머리털이다. 머리털 엄청 부드러워.]그리핀 덕후 팅거는 로이칸 머리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고, 벨라는 스피카 등 위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둘은 이미 과일과 곡식으로 배를 채운 뒤였고, 로이칸과 스피카도 저녁을 해결한 상태였다.
“아주 잘 익은 거 같습니다. 공자님, 드시지요.”
“응.”
“이거 도대체 얼마만의 노숙이냐. 내일은 시장에 가요. 가서 쟤들 먹을 과일도 좀 사고, 우리도 모처럼 사람답게 맛있는 것도 먹어요. 아뜨뜨.”
말을 하면서 꼬치를 한 입 베어 물던 세이건이 뜨겁다고 호들갑을 쳤다.
까만 밤하늘에 빼곡히 떠 있는 별들을 보니, 새삼 여기가 미세먼지 하나 없는 축복 받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울 새도 없이 저런 친구들도 만나고.
“네가 구워 준 꼬치구이도 맛있어.”
“흐흐흐, 제가 한 요리를 합……?”
그때였다. 스피카의 귀가 뒤로 제쳐졌고 로이칸이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기척이 느껴져요.] [저 멀리 사람들이 오고 있다.]“쉿!”
“예?”
되묻던 세이건이 내 표정을 보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평소의 느긋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다섯 놈이 말을 타고 이리로 오고 있다.]언제 날아갔는지, 팅거가 나무 꼭대기에서 말했다. 하여간에 대단한 놈이다. 이렇게 깜깜한 밤에도 훤히 볼 수 있는 걸 보면.
다섯! 나는 세이건에게 손가락을 펴 보였다.
세이건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조용히 일어나 모닥불을 꺼뜨렸다.
이 밤에, 길도 없는 야산으로 들어오는 무리라…….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올리프 공작이 보낸 놈들일 거야.”
나직이 세이건에게 말했다. 알겠다며 눈빛을 보내는 세이건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나 또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 손에 움켜쥐면서 주변을 엄호했다.
이미 놈들은 내 사정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핀을 뒤쫓……, 이런 일이 생기……각도 못 했네.”
“날아…… 어떻게 알았겠나? 그저 남들처럼 마차…… 갈 줄 알았지.
“이번에는 제발 좀 맞으면…… 이렇게 쫓아만 다는 게 도대체 며칠 째인지.”
“이렇게 뒤만 쫓다가 놓치……야? 앨버부르크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놈들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렸다.
”그런데 율리시즈 공자는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놈을 길들였지?”
“자네 그 말 못 들었는가?”
“무슨 말을?”
“율리시즈가의 막내 공자가 우리 제국 최고의 공신이신 바트롱가 율리시즈의 현신이라더군,”
“히익! 그런 대단한 분을 우리가 죽이러 가는 겁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실수하면 안 돼. 한 번에 끝장을 내야 해. 알았나, 랑스? 아니면 우리는 캡틴그리핀 부리에 뚫려 죽을 거다.”
“밟혀 죽을지도 모르지. 일단 캡틴 그리핀부터 공격한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준이나 잘해.”
조준? 총은 아닐 거고 그렇다면 화살?
로이칸을 한 번에 죽일 생각을 했다면 분명 독화살일 거다.
으드득, 감히 우리를 노리다니!
-저놈들이 로이칸, 너를 먼저 제거하려고 해.
[놈들이라면 날 괴롭혔던 놈들을 말하는 건가?]-응.
[클흘흘, 잘됐군. 이참에 밟아 주지.]로이칸이 눈을 번득이며 기뻐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해. 놈들이 궁수를 데리고 온 거 같아.
[흥, 그깟 화살 몇 촉으로는 내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아무래도 독화살…….
[독화살? 하여튼 네 주변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일만 꼬이냐?]나무 위에서 경계 하던 팅거가 빽, 소리쳤다. 그때였다. 스피카가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 제가 가서 놈들을 물어 죽일까요?]스파카야! 그런 상냥한 목소리로 살벌한 말을 하니 더 공포스럽잖아.
-그러지 말고, 그냥 궁수 놈이 활을 못 쏘게 만들기만 해.
[네, 그럴게요.]-말들은 건드리면 안 된다!
[네, 주인님.]-그리고 로이칸, 너는 스피카가 궁수를 해결한 다음에 움직여. 궁수가 널 노린다는 거 알지? 그리고 팅거 너는 밤눈이 밝으니, 스피카에게 놈의 위치를 알려줘.
[쳇, 명령하기는. 알았어.] [로이칸, 넌 여기 있어라. 내가 궁수 놈의 숨통을 끊어놓고 나서 신호를 보내겠다. 그런 후, 행동해라.]내게 상냥하게 말하던 스피카는 어디로 갔는지, 음습하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러지.]두 녀석의 대답과 동시에 스피카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시커먼 녀석이 발소리도 없이 사라지니, 어디로 갔는지 짐작도 안 된다.
“아니 저 녀석이!”
놀란 세이건이 낮은 신음을 끝맺기도 전에.
“으아아아!”
“크어억!”
“히이이이잉!”
“쿠웨에엑!”
사람의 비명과 말들의 비명이 혼재했다. 로이칸이 순간적으로 날아올랐다.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놈들은 짓이긴 상태가 될 거다.
동시에 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금 당장 도망쳐! 등에 사람들은 떼어놓고.
[히이이잉! 도망?]-시간 없다. 캡틴그리핀이 너희들 쪽으로 날아갔다.
[히익! 캡틴그리핀, 무섭다. 도망친다.]“아니, 이놈들이 미쳤나?”
“으어억!”
“으악!”
말들이 힝힝 울부짖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신음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여기 계십시오. 제가 상황을 보고 오겠습니다.”
“갈 필요 없…….”
대답도 다 듣지 않고 세이건이 사려졌다.
잠시 후, 소리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로이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왔는지, 스피카도 내 옆에서 뒷발로 귀를 긁고 있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스피카아아! 너무너무 멋있었어!]파란 날개를 파닥거리며 스피카 어깨 위로 내려앉은 벨라가 통통통 두 발을 굴러댔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네 말이 맞은 거 같다. 궁수놈이 로이칸을 제대로 노리고 있더군. 흥!]팅거가 내 곁에 와서 보고한 후 로이칸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귀여운 자식! 지금 제가 한 게 보고라는 걸 모르겠지?
[헤헤헤, 주인님.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드시던 걸 마저 드세요.]포악하고 냉철한 스피카가 평소 순한 스피카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저쪽, 로이칸이 있는 곳에서는.
[크허엉! 얍얍얍! 끝내주게 멋있었어! 로이칸!]팅거가 로이칸 머리 위에서 짧은 두 다리를 번갈아 앞으로 옆으로 쳐들면서 신나 했다.
두 녀석의 어이없고도 귀여운 세레모니가 끝날 때쯤 세이건이 나타났다.
“놈들이 다 죽었습니다. 한 녀석은 목이 뜯겨 죽어 있었고, 다른 놈들은 발기발기 찢겨 있었습니다.”
“말들은?”
“아, 음…… 그러고 보니, 말들이 안 보였던 거 같아요.”
“도망갔겠지.”
“그랬나 봐요. 아주 처참하게 죽였더라고요. 그걸 본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내 생각은 다른데?”
“네?”
“올리프 공작이 보통 사람이냐? 부하 몇 명이 죽었다고 신경이나 쓰겠냐?”
“하긴, 그럴 사람이 아니죠.”
“또 보낼 거야.”
법정에서의 공작의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를 노려보던 그 눈빛은 살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를 죽이려는 암살 시도는 이어졌다.
“흐흐흐, 드디어 사람 다운 밥을 먹게 되는구나.”
울퉁불퉁한 땅바닥에서 자는 야영과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는 것에 지친 우리는 하룻밤 여관에서 자기로 했다.
세이건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좋아했다.
“흐흐흐, 드디어 사람 다운 밥을 먹게 되는구나. 여기 아투벡이 소고기가 그렇게 유명하대요. 고기 먹으러 가요, 고기!”
“지금까지 우리 매일 고기 먹었다.”
“그거랑 소고기랑 같아요?”
신이 난건 세이건 뿐만이 아니었다. 팅거가 괴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우오오! 드디어 아투벡 쿠키를 먹어볼 수 있겠군.]-아투벡 쿠키라니?
[여기 우유가 고소하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거든, 그거로 만든 과잔데 그렇게 맛이 있대.]벨라가 말을 받아 설명해 줬다.
그러니까 근방에 소 목장이 많다는 말이네.
-먹고 싶어?
[말이라고 하냐? 아투벡에 에 온 이상, 꼭 먹어봐야 한다. 야, 마커스. 가서 사와!]-말이라도 못 하면, 그런데 과자를 먹어도 돼?
[당연하지. 우릴 뭐로 보고!]-새로!
[뭐라고? 우리는 새가 아니다.]-그래, 그래. 너 새 아니다.
[흥! 아무튼, 올 때 그거 꼭 사와!]-알았다. 스피카, 로이칸 너희들은 먹고 싶은 거 없어?
[크흐흠, 나는 야들야들한 송아지 고기가 먹고 싶다.] [……전 괜찮아요.]안 괜찮은 거 같은데? 한 템포 늦춰가며 말하는 스피카의 입에서 침이 주르륵 흘렀다.
-기다려. 저녁 먹고 후딱 사서 올게.
로이칸이 마을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이 놀랄 게 뻔해서 세이건과 나만 가기로 했다.
스피카도 함께 가려다가, 세이건이 말렸다. 이런 작은 도시에서는 코호드가 나타나면 다들 두려워한다나?
그래서 할 수 없이 로이칸과 스피카는 산에 있기로 하고 우리는 마을로 향했다.
* * *
“율리시즈 공자님, 아투벡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충!”
그리핀 휘장을 본 경비병이 경례를 올렸다.
경비병을 지나쳐 성문으로 들어서면서 세이건에게 물었다.
“경비가 삼엄한 거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 전에 성벽도 상당히 높은 거 같고.”
“다슈타 산이 가까워져서 그런 겁니다. 날이 추워지면 먹을 게 떨어진 몬스터들이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습격하기도 하니까요.”
“몬스터?”
“예, 여기가 목장이 많다 보니, 놈들이 자주 출몰한답니다.”
그래서 성벽이 저렇게 높은 거로군.
“그러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라도 하면, 이글나이트가 출동하기도 하죠.”
“여기까지?”
“우리 이글나이트가 아니었다면, 여긴 지금쯤 아무도 못 사는 폐허가 되어 있을 겁니다.”
“공자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공자님 신분증을 본 경비병 태도가 달라진 것을요. 그리고 저길 보십시오. 율리시즈 문양이 그려진 상점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리핀 문양이 그려진 간판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는 율리시즈라면 다들 끔뻑 죽는다니까요.”
아투벡은 괴물들이 쳐들어오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번화한 도시였다.
“자, 자 드셔 보십시오. 따끈따끈한 쿠키가 방금 나왔습니다. 아투벡의 명물, 우유 쿠키입니다!”
“가죽 팝니다. 소가죽, 양가죽은 물론이고 가고일, 고블린 가죽도 팝니다. 가죽 보고 가세요.”
우리는 번잡한 거리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여기! 소 등심 한 접시 추가요!”
“주인장! 술, 술을 가지고 와.”
“예, 예, 갑니다.”
문을 열자마자 시끌시끌한 소리가 가득했다.
“공자님, 여기 냄새가 끝내주는데요? 제대로 찾아들어온 거 같습니다. 주인장!”
세이건은 신이나 주인을 부르면서 벽에 쓰여 있는 메뉴판에 눈을 돌렸다.
“공자님, 뭐 시킬까요?”
“네가 먹고 싶은 거 시켜.”
“앗, 그러면 제가 먹고 싶은 데로 시키겠습니다.”
곧 테이블로 다가온 주인에게 세이건이 주문을 하는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저기 창가에 앉은 놈 하나, 입구에 한 놈, 그리고 밖에 두 놈이 있군.
우리가 성문을 통과할 때부터 우리를 따라온 놈들이다. 분명 올리프 공작이 보낸 놈들일 거다.
스피카와 로이칸이 없을 때를 기다려 우리를 해치울 생각인 거겠지.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생각이 정리됨과 동시에 입구에 있던 놈이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창가에 앉아있던 놈도 일어났다.
식사를 기다리며 즐거워하는 세이건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식당 입구 쪽 놈은 내가, 창가 놈은 네가 맡는다.”
“흐어…… 옙!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