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옥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예전, 이런 사단이 나기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간혹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높지는 않은 아프막한 산에 싸여 있고, 도로에서도 꽤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과 나무들, 그리고 도로와 연결 되어 있는 비포장 도로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꽉막힌 공장 안 보다는 옥상으로 올라와서 시간을 보내는 지도 모르겠다.
“어! 저기! 아빠 오셨어요! 문 열어 드려야지.”
지선이나 영감님, 나까지 모두 민수랑 놀아주고는 있었지만, 역시 민수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저 멀리서 인수와 함께 석궁을 메고 정글칼을 한손에 들고 오는 보고는 잽싸게 뛰어 내려갔다.
“인석아! 조심해서 내려가. 넘어질라.”
그런 민수를 보고는 영감님이 친할아버지처럼 걱정스레 한마디를 했다. 나는 난간쪽으로 가서 그들이 오는 모습을 살폈다. 영감님은 옥상에 있으면서 그들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계속 지켜 봤을 것이다.
“오늘도 별일 없이 돌아오는구만. 풀숲에 가려있어서 이 위에선 안보이던 한 놈과 마주치긴 했지만, 무사히 돌아오니 다행이야.”
“예. 다행이네요. 그래도, 이틀에 한 놈 정도는 이쪽으로 오는거 같네요. 자식들, 뭐 좋은 것 있다고 기어 들어오는건지… 한번에 여러놈 들어오는건 아니니까, 그것도 다행이구요.”
“왜. 좋은게 없겠는가. 놈들 좋아하는 것 있잖은가. 바로 우리 말이네. 후…”
“그렇죠… 그렇네요. 빌어먹을… 죄송해요.”
“아니야. 젊은 자네들 아니라면 나도 몇 번을 했을 말이니까 말이야.”
지선이는 이런 말을 주고 받는 우리를 슬쩍 바라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괜히 지선이 심난하게 만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저도 내려가 볼께요. 형님 들어오면 상의할 것도 있고 해서요. 지선아 너도 같이 가자. 창혁 형님이 근처에 총포사 아는데가 있다고 하시거든? 다른건 몰라도 화살은 좀 챙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 화살! 알았어요.”
지선이는 화살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는지, 누워있던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내 곁으로 왔다.
나와 지선이는 돌아오는 창혁 형님과 인수에게 인사를 하고, 주방에서 창혁 형님을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잖아서 창혁 형님이 신변정리를 하고는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총포사에 가는데 걸리는 시간, 경로주변 상황, 가서 챙겨야 할 물품, 준비해 가야할 물품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니까, 최대한 한적할 것으로 생각되는 길로 간다면, 가는데 대략 30분쯤 걸리고… 도로상황은… 뭐 가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네요. 그건 어쩔수 없는 것이고… 가서 무기류는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 오고… 안에 창고나 그런 것 까지 형님이 알고 계시진 못하실 테지만, 그래도 가본 사람이라고는 형님 밖에 안 계시니까요. 형님이 가게 안에서는 나서 주셔야 될 것 같고… 그리고… 그 뭐? 전자충격긴지… 전기충격긴지..”
“전자충격기. 스턴건.”
내가 여태 이야기 한것들을 한가지씩 정리를 하다가 헛갈리는 부분이 나오자 형님이 나섰다.
“예. 그… 스턴건… 짧게 부르는게 좋죠. 하하. 암튼. 그것도 찾아보구요. 가까이 있는 놈들에게서 시간버는 용도로는 쓸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써보기 전까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음… 화살은 가능하면 많이 챙겨야 되고… 갈때는 4명이 전부 가고, 한명은 여길 지키고… 무장은 잔뜩. 그렇죠?”
“그렇지. 그리고, 먼저 도로 사정이나 알아볼 겸해서, 나하고… 누가 좋을까… 동철이 너나 그렇게 둘 정도만 답사를 다녀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차에서 내리진 않고, 그 근처나 암튼 상황을 봐서 그 곳까지 한번 갔다 오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 중간에 어디 도로가 막혀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말이야.”
“너무 위험하지는 않을까?”
지선이는 창혁 형님과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을 턱을 괴고는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한마디를 했다.
“평소에 하던 것 보다는… 위험하긴 할거야. 하지만, 화살이 없다면 그게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 할거야.”
“그건 그렇지만…”
“괜찮을거야. 4명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 지더라도 대처할 수 있을거야.”
나도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믿기로 했다. 칼이나 몽둥이 만으로 놈들을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총을 사용하기에는 그 뒤가 걱정이었다.
다들 모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또 그때 반대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실행에 옮기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각자 자기 할 일을 찾아갔다.
사실 공장에서의 생활은 지루하기 그지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특별히 할만한 일이 없었다.
한사람씩 옥상에서 경계를 서고, 하루에 한번씩 공장 주변을 두 명이서 순찰을 돌았다. 그 이외의 시간은 정말 지루했다.
그나마 옥상에서 사람들과 싱거운 농담을 하고, 창혁 형님과 영감님이 장기 두는 것을 보면서 훈수나 두고… 가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건물을 보강하고, 수리하는 작업을 하긴 했지만, 그것도 모든 사람이 매일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이상하게 될 것 같아서, 다들 사소한 일이라도 뭔가 만들어서 하려고 기웃기웃 거렸다. 총기 손질하고, 활이나 석궁을 손보고… 그렇게 하기 싫던 청소도 하루에 몇 번씩 하고 말이다.
하루에 한번씩 나가는 순찰이나 가끔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나갈때는 그나마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하긴 했지만-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안에 있으면서 좀비로 부터는 그나마 안전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또 다른 것이 나를 좀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 보강하고 하는거… 좀 놔둘걸 그랬나… 이젠 뭘할까… 창고에 물품 정리 되있는거나 다시 확인할까… 그냥 옥상에 올라가서 같이 경계나 설까… 미치겠네… 아… 오늘은 지선이 방에나 가서 시간을 보내야 겠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지선이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나야.”
노크를 하자, 지선이가 문을 열고는 나를 향해서 활짝 웃어 보였다.
“어! 오빠. 무슨일 있어?”
“무슨일 있어야 오나? 갈까?”
“에이~ 싱겁긴. 들어와.”
솔직히 지선이와의 관계가 조금은 나도 헛갈리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정말 세상의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또 어떤 때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매개체 정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이런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무엇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후자일 경우에는 내가 생각해도 불순한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지선이와 관계하지 않으면, 내가, 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들어서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지선이의 입술을 내 입술로 완전히 덥어버렸다.
“흡”
우리 둘은 서로의 입술에 탐했고, 서로의 입속 여기 저기를 탐했다. 내 양손은 지선이의 몸 여기 저기를 파고 들었고, 그것은 그녀의 손 또한 마찬가지 였다.
내 손에 닿는 그녀의 몸을 느꼈고, 내 몸에 닿는 그녀의 손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키스를 나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서 그녀를 살며서 내게서 떼어 놓았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서로의 눈을 보면서 우리는 사랑을 속삭였다. 이 방으로 들어 올 때의 마음은 불순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공장 안이고, 사람들도 다 있을 때라서 좀 그렇네.”
“응. 알았어. 오빠. 쬐끔 아쉽긴 하진만… 뭐… 좀 그렇긴 하니까…”
잠시 지선이가 밖으로 나갔다가, 잔 두 개를 들고서 다시 돌아왔다.
“인스턴트인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요즘 같아선 이건도 감지 덕지 해야할 테니까. 자. 오빠.”
지선이가 주방에서 인스턴트 믹스 커피를 두 잔 타와서는 나에게 한잔을 내밀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 보면서, 한손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서, 그렇게 커피를 한모금씩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