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35)
넓게 펼쳐 바람을 불렀다. 뻗어진 주먹 끝에서 바람이 불면서 날아오는 검기 다발과 부딪쳤다. 퍼퍼퍼펑! 검기의 수는 적지 않으나 그렇게까지 막기 힘든 건 아니다. 공력이 분산된 만큼 권풍에 흩어졌다. ‘삼 초를 전부 양보했다!’ 매화토염으론 부족하다. 사초식인 매개이도까지 이어져야 방금 전의 공격이 가능했다. 제한이 풀어진 홍고가 재빨리 움직였다. 자존심은 상하나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위험한 걸 알았다. ‘단숨에 끝내야 한다!’ 홍고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강호 바깥에 나가서도 이러한 불안과 위험을 느낀 적은 드물었다. 그래서 지금 만큼은 힘을 숨기지 않도록 했다. 승려답게 살의를 담지는 않았으나 투기는 상당했다. 금강석처럼 잘 단련된 몸을 미세하게 움직인다. 움직임은 적었지만 하나하나에서 강맹함이 느껴졌다. 발을 내디디고, 주먹을 내지른다. 법복 위에서도 잘 보이는 우락부락한 근육들이 움직이며 힘을 냈다. 금강석을 연상시키는 그 굳건한 주먹이 나아갔다. 지나간 곳은 공기가 터지면서 폭음을 내려 했으나, 그것조차도 주먹의 강맹함에 짓뭉개졌다. 금강권(金剛拳)! 금강권 자체로는 최상승 무공은 아니다. 권을 일절로 하는 홍고의 최고 절기도 아니었다. 그러나 금강부동신법을 운용 중일 때는 어떠한 권법보다도 최고의 효율을 자랑했다. 그 강맹함은 몹시 단단하여 마치 금강석과 같아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고, 속도는 느리지만 몹시 강했다. 무엇보다 지금같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탐색전이 아닌 전력전을 하고 있을 때는 그 용도가 몹시 탁월하였다. 먼 거리라면 사정거리가 짧아 닿지 않고, 그렇다고 근접한다면 동작이 워낙 커서 제대로 펼칠 수 없다. 거리가 적당하다 할지라도 탐색전 도중이라면 동작이 느릿한 탓에 피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에다가 상황이 탐색이 아니라면 이보다 적절한 무공은 없었다. ‘이것이, 신권인가.’ 날아오는 주먹을 본다. 주먹 뒤에 신권이 있었다. 날아오는 주먹을 살폈다. 과거가 연상됐다. 날아오는 주먹을 담는다.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 일권에는 어떠한 마두나 사마외도도 버티지 못했다. 이 주먹은 훗날 무림을 구하는 데 쓰이게 된다. 전혀 보지 못했던 주먹인데, 눈앞에 보였다. 멀리서 그 그림자만 훔쳐봤는데 이젠 아니다. 비록 이젠 없었던 사실이 된 역사임에도 어째서인지 그 기억을 떠올리자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아아! 그야말로 숭산의 주먹이로구나!’ 그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낸다는 것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입꼬리가 슬쩍 올랐다. 주서천은 살짝 웃었다가, 표정을 되돌리면서 몸을 움직였다. 그제야 세상도 움직인다. 발걸음은 유령신공의 영향인지 기척이 적지만, 그래도 발걸음부터 몸놀림은 화산의 신행백변이었다. 피하진 않는다. 그저 응수를 위한 자세를 취했다. 주먹을 감싸 안은 권압에 맞춰서, 검에 실린 기의 압을 높인 다음 주변을 베어 갈랐다. 검에서 피어오른 매화는 만개하였고, 곧 홍고의 후각을 자극하면서 매화 향을 뿜었다. 그 향이 무엇인지 인식했을 무렵, 검과 권이 부딪쳤다. 콰-앙! 그 충격이 고스란히 검과 권에 전해졌다. 주서천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았지만 홍고는 그 충격이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향했다. 금강권이 비록 최고 절기는 아니라도, 그 주먹에는 홍고의 일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굳건히 서 있어야 하며, 모든 걸 압도할 강맹함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실제로 그 주먹에 무릎 꿇은 자들도 상당했다. 고수들 또한 눈살을 찌푸리면서 대다수가 물러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주서천은 눈살 찌푸리긴커녕 왠지 모르게 흡족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더더욱 충격적인 건, 스무 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청년이 그 주먹을 받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또한 전심전력을 다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아직이다!’ 홍고는 팔을 힘껏 휘두르면서 뒤로 물러났다. ‘나무아미타불!’ 머릿속에서 잡념을 떨쳐 내려 했다. 놀라움을 지워 내고 평정심을 되찾아 온몸에 힘을 주었다. 꿈틀거리는 건 근육 뿐만이 아니다. 피부 위로 돋아난 퍼런 핏줄만이 아니다. 사부에게 전수받았던 역근(易筋)을 근원으로 한 내기가 기맥을 타고 흘러 힘을 준다. 이 다음으로 펼칠 것은 검보다 긴 것 백보(百步) 내외로 타격할 수 있는 신권이었다. “홍고!” 혜만이 흥고의 분위기가 바뀌는 걸 보고 급히 외쳤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력으로 펼친 백보신권을 받는다면 위험했다. 제자를 다치지 않게 제압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에서 상대가 필사적으로 덤벼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혜만도 설마하니 홍고가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비무가 순식간에 생사결이 됐다. ‘질 수 없다!’ 홍고에게 었어 패배란 건 용납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닌 사문을 욕하는 것이기에. 소림의 무공은 천하무적이어야 하고, 그 상대가 구파일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홍고라는 사람 자체를 구성시키는 근원이 거부하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모든 것이 부서지기 전의 일촉즉발의 순간. 주서천은 그저 담담히 맞이하며, 감격에 젖었다. ‘아!’ 자신에게 있어 홍고는 먼 나라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백보신권은 이름만 들은 무공이었다. 마치 오래된 이야기를 적어 둔 역사서에 있는 기분이다. 혹시 이것이 꿈이며 실은 어떠한 힘도 없는 화산오장로가 책을 읽다가 잠이 든 게 아닐까. 그러한 심심찮은 생각을 하며, 검을 든다.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분명히 늦게 반응한 건 주서천이었다. 홍고는 백보신권을 펼치기 전이었다. 설사 몸을 날린다 할지라도 그땐 늦는다. 백보신권이란 그러한 무공이다. 거리를 두고도 적을 격타할 수 있는 권법. 상천십좌가 아닌 이상 그 전에 공격할 수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검은 매화가 춤추듯이 너울거리면서 나아가 홍고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크읏!” 푸픗! 법복에 기다란 선이 그어졌다. 천이 열리며 그 안에 있던 피부가 갈라져 피가 튀었다. 이제 막 백보신권을 날리려던 홍고의 몸이 멈칫했다. 고통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대로 주먹을 뻗으면 어찌 될 지였다. 홍고의 머릿속으로 주먹을 그대로 내질렀다가 검에 베여 날아오르는 팔이 지나갔다. “이럴 수가……” 공수에 응하기도 전에 당하다니! 만약 어깨가 아니라 목, 혹은 사혈을 노렸다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했다. 홍고는 방금 전의 일격에 섬뜩해하면서도 손도 못 댄 채 당했다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상념을 깨우는 것은 스승인 혜만의 목소리였다. “그동안 네가 얼마나 오만방자했는지 깨달았느냐.” 홍고의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살짝 벌린 다리의 무릎을 굽혔다. 정권을 내질러 주먹에 실린 공력을 분출하려던 순간, 백보신권이 펼쳐지기도 전에 제지받았다. 중년에 이르는 승려의 얼굴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입이 벌려져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주먹을 뻗을 것 같던 그 자세는 혜만이 다가와 엄중한 목소리를 내서야 풀렸다. “아미타불. 정중지와(井中之崩圭)라는 말이 따로 없구나. 소림이 전부라고 생각하니 견문이 좁아서 드넓은 세상을 모르고 있던 기분은 어떻더냐?” “이, 이건 소림의 무공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다 못난 이 소승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흥고가 뒤늦게 정선을 차리면서 반발했다. “어허, 이 못난 제자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혜만이 혀를 차면서 홍고를 엄히 꾸짖었다. “노승이 언제 소림의 무학이 화산의 무학보다 떨어진다고 하였느냐.” “하, 하오면……” “애초에 공부란 다름이 있어도 위아래 같은 것은 없느니라. 네놈은 그동안 불학 외의 공부를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같은 중임에도 소림 외의 사찰을 우습게 보는 경향도 보였다. 그야말로 우치(愚擬)가 아니더냐!” 우치, 어리석은 마음. 홍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팔정도(八正道)에서 정어(正語)를 조심하여야 하고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가 부족하니 앞으로 너는 이를 정념(正念)하여 공부에 정진해야 할 것이니라.” 팔정도라 하면 번뇌와 고통을 해탈하여 열반에 들기 위한 수행의 여덟 가지 길을 말한다. 홍고는 행동으로선 부족하지 않다. 반대로 중으로서 누구보다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다. 고통을 받는 빈민 등의 백성들을 구휼하고, 어려움에 빠진 중생들을 돕기 위해서 강호에 나섰다. 위 배분들에게는 무승이건 아니건 간에 존경하고 겸손한 태도를 배우며, 아래 배분에겐 친절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림 외의 공부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언제나 소림이 제일이라 여겼다. “너는 너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고 노력하고 있으나, 꼭 스스로를 낮춘다고만 하여 자만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네가 포함되어 있는 소림이 유아독존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것 또한 자만이다. 아미타불.” 혜만이 불호를 외며 염주를 매만졌다. “세대의 교체도 얼마 남지 않아 소림 내도 어수선한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계속 이런 식이라면 너한테 어찌 마음 편히 자리를 건넬 수 있겠느냐.” 소림의 일대제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이대제자인 혜자 배분도 슬슬 물러날 연령이 됐다. 참고로 홍고가 혜만의 진전을 이을 수 있는 건 단순히 제자여서가 아니었다. 홍고의 소림에 대한 과한 자부심이나 자만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기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 무공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민초의 구휼에 힘쓰고 협의를 위해서 발 바쁘게 뛰어다녔으니 당연하다. “……” 홍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악감정을 잠재우려는 듯, 불호를 외웠다. ‘괜찮겠지?’ 주서천은 머리를 들지 못하는 홍고를 보고 약간의 불안을 느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 신권이라 불릴 홍고의 과한 자부심은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다만 그것이 어떠한 연유로 사라지는지는 모른다. 공덕과 더불어 연륜을 쌓아 저절로 사라졌을지도 모르고, 혹은 어떠한 일이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못난 제자를 생각해 주시고 가르침을 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홍고가 힘없는 목소리로 합장하여 인사했다. 비아냥거린 것이 아닌, 순수한 감사의 인사였다. 그걸 본 주서천이 속으로 감탄했다. ‘괜히 다음 대 방장으로 추대받는 게 아니구나.’ 불혹에 이제 막 강호에 출두한 청년의 앞에서 꾸짖음을 받으면 불쾌할 텐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아무리 승려라 하여도 무림인, 특히 고수라면 자존심이 대단할 텐데 저런 반응이 신기하기만 했다. 만약 남들이었다면 아무리 스승이라 할지라도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주 시주, 그동안의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 못난 중을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저야말로 오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저 역시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연 소림사, 덕분에 식견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홍고의 사죄에 주서천도 포권으로 답했다. ‘다행이다,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는구나.’ 주서천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신승도 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다.’ 혜만대사가 입적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신승이 있으니 괜한 걱정은 덜기로 했다. 하물며 전란이 일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