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01)
‘말도 안 돼!’ 귀를 의심했다. 아니, 감각 전부 의심스러웠다. 왼팔에 닿은 것이 분명 보였다. 그런데 살을 베기는커녕 쇠에 부딪친 것처럼 튕겨져 나갔다. 슥. 유령 가라사대, 암살에 중요한 건 적을 방심시키고 속이는 것이라 하였다. 그 말대로다. 소령은 잠영방주의 흔들림을 귀신같이 포착했다. 유령공으로 몸을 깃털처럼 만든다. 발과 지표면이 부딪치는 소리를 줄였다. 호흡은 끊긴 지 오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항상 눈을 천으로 가리고 다니는 유령이다. 몸에 달라붙으면서 면적이 좁은 옷차림이 도움이 됐다. 옷자락이 바람에 부풀려져 휘날리는 걸 막았다. ‘아뿔사!’ 잠영방주가 뒤늦게 제정신을 차렸다. 뇌가 명령도 내리기 전에 몸이 반응한다. 과연 고수다웠다. 동시에 오감이 적의 정보를 캐낸다. ‘숨소리나 발걸음 소리는 물론이고, 기척도 없다고?’ 알 수 없었다. 살필 수 없었다. 그러나 있었다.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잡히지 않았다. ‘마치 실체하지 않는 것 같……’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번개같이 스쳐 지나갔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어 대기 시작했다. 감정의 분수가 콸콸 넘쳐흘렀다. “이제야 나타나다니, 그럴 리 없단 말이다!” 잠영방주가 목이 터져라 외치며 현실을 부정했다. “아아아아아악!” 고함인지 괴성인지, 절규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괴성조차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시선 끝자락에 장갑이 닿았다. 촉감의 판단은 천이나 가죽, 실이 아닌 철이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보호구라 생각하지만 무언가가 틀렸다. 손가락 부위가 맹수의 발톱처럼 뾰족하고, 조금 길었다.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덮인 건 확인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은 무리였다. 잠영방주는 소령에게 머리째로 손아귀에 잡혔다. 소령은 잠영방주의 외침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감정은 물론이요 적을 향한 살의조차 없다. 체내의 기맥에 내공이 고요하게 순환한다. 피부 위에 새겨진 주술문이 음침한 빛을 내뿜었다. 콰직! 외마디의 비명조차 없었다. 마치 손에 사과를 쥐고 힘을 줘서 부순 것처럼 머리통이 박살 났다. 뇌수와 핏물이 뒤섞여 끈적하게 뚝뚝 떨어졌다. 털썩. 목의 살점이 뜯겼다. 머리와 연결된 몸이 분리되며 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바, 방주!’ ‘방주가 순식간에 죽었다!’ 여태껏 곁의 동료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잠영객 무리 사이에서 동요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적을 쫓던 이들도 뒤를 돌아보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다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윽!” “아악!” 무너진 평정심의 대가는 목숨이었다. 수십에 이르는 유령들은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주변의 동요를 확인하자마자 슬쩍 접근해 암살했다. 화려함은 없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순했으며, 고요했다. 근처에 숨어 있다가 유령보로 접근해 비수로 동맥에 꽂는다. 턱을 잡고 돌려 목 뼈를 부러뜨렸다. 악몽이었다. “으아아악!” “크악!” “케헥!” 유령곡은 적의 입을 막지 않았다. 도리어 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도록 때로는 일부러 살려 두었다. 딱딱딱! 잠영방의 무리 중 누군가가 최초로 몸을 떨었다. 턱뼈가 서로 부딪치면서 소리를 냈다. 복면 위로 보이는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무지는 공포가 된다. 사람들이 귀신 등의 미신을 두려워하는 건……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데다가 어찌할 수도 없다. 무지이자 공포는 곧 자신들, 잠영방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우위를 가지지 못했다. 무언가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있으나 없다. 실체하지 않는 무언가가 목숨을 앗아 갔다. 사방팔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정신적인 압박을 받았다. “도대체……?” 팽자호, 그 외에 북상군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도움을 받는 건 좋았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싸우는 도중에 적이 갑자기 쓰러졌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와중이었는데 추격자가 사라졌다. 심지어 부상자 몇몇은 치료까지 받았다. “누, 누구요?” “어디서 온 원군이요?” “이보시오.”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어봤으나 유령은 대답 대신 퇴로의 방향만 알려주고 사라졌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으슬으슬하군.” 주변에선 비명이 끊이지 않았을 땐 깜짝 놀랐지만, 자신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음 같아선 좀 더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으나 아직 독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등 뒤로는 잠영방, 그리고 칠성사병의 절규가 간간이 울릴 뿐이었다. * * * “아군이다! 아군이 살아 돌아왔다!” 북상군 후미에서 반겨 하는 목소리가 터졌다. “워, 원군이 있는 것 같소!” 최초로 빠져나온 생존자가 외쳤다. ‘원군이라고?’ 당명인이 적잖게 당황했다. “가자!” 주서천이 당명인의 틈을 찔렀다. “와아아아아!” 북상군이 함성을 쏟아 내며 움직였다. 반격을 알리는 진군이었다. “쯧!” 당명인이 혀를 차면서 후위로 내뺐다. 근접전을 못하는 건 아니나 검신과 맞붙는 건 자살 행위였다. 쿠구구구! 대군이 적진을 향해 세차게 나아가자 땅이 흔들렸다. 먼지구름이 누렇게 피어올라 낮게 깔렸다. 선봉에 선 주서천은 거침없었다. 얼굴에 두려움이 묻어나는 칠성사병에게 접근해 날뛰었다. ‘화우선형!’ 쿠르릉! 머리 위에 든 검을 아래로 내리긋자, 천둥이 친 것처럼 굉음이 터지고 시야가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검에 실린 기가 부채꼴로 넓게 펴지더니, 암천군의 정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크아악!” “으악!” 경천동지할 위력이 끝난 뒤로는 매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아군에겐 향기요, 적군에게는 악취였다. 주서천 앞은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북하군에서 마주친 암천회주와 다를 것 없었다. 대군 한가운데 떨어졌는데도 피해는 없었다. 그저 흐르는 대로, 춤을 추듯 움직이면 적들은 피를 흩뿌리며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에 자하검결. 괜히 화산파의 절기와 일대신공이 아니었다. 항우이자 여포였다. “퇴각이다!” 당명인이 결국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검신의 등장에 원군까지 나타났다. 만약 독인운무 속에서 천 명의 정사인이 뛰어나오면 답도 없다. 원군을 잡고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비명이 귀청이 떠나도록 참혹하게 울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당명인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떨어져 가는 암천군을 전력으로 퇴군시켰다. 그 본인도 혹시라도 주서천이 날아올지 몰라 후위로 빠졌다. ‘후미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여차하면 무형지독을 쓸 수 있도록 준비한다.’ 당명인이 눈에 띄지 않게 후미로 이동했다. “적을 쫓아!” “놓치지 마라!” 부관인 당혜를 비롯해 주요 인사의 명령이 들렸다. “검신을 따르라!” 북상군도 암천군도 전력을 다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개미 떼 같았다. 수천에 이르는 무림인들은 안간 힘을 쓰며 싸웠다. 해가 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싸웠다. ‘주서천이 생각과 달리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 낙소월처럼 사문이 신경 쓰이는 게 분명하다.’ 주서천의 성격 정도야 조사했다. 바로 얼마 전에 천기가 삼악검파로 그 습성을 이용했다. ‘이대로 추격전이 계속될 경우, 어떻게든 빠져나가 주서천의 주변 인물을 인질로 삼아야 한다.’ 당명인은 주서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현재 이 전장에서 가장 위험하고 변칙이니 온 신경이 집중됐다. 그리고 밟고 있는 대지가 붉게 달아오를 무렵, 북상군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천추남 적군의 속도가 줄어듭니다. 아무래도 멈추려는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군.” 당명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기가 올랐다고 하지만, 결국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저들은 이미 지칠 때로 지쳐 있으니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어찌할까요?” “싸움이 장기화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거리를 벌린 뒤에 마주 본 채로 주변에 진지를 세워……” 흠칫. 당명인이 입을 도중에 다물었다. “뭐……하고 있는 거지?” 당명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의문에 찬 눈동자에 비치는 건 약 이 리 밖, 창을 사선으로 지면에 힘껏 박는 금의검문 무사들이었다. 그옆으론 주서천과 당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설마!” 당명인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발아래를 살폈다. “네 이놈!” 당명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숙적의 이름도 아니었으며 피를 나눈 여동생도 아니었다. “제갈승계!” “그래.” 주서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뒤늦게 도착한 원군도 장기말에 불과했다.” 주서천은 이 장소까지 쉴 새 없이달려왔다. 도중에 어딜 들러 유령을 집결시키기 힘들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근처에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관의 설치 및 감독에 필요한 건 금의검문의 무사도 당혜의 조율도 아닌, 인부들이었던 유령곡이었다. 금의상단의 자금력, 유령곡의 인력, 변칙 그 자체인 제갈승계의 기술력, 천군사의 지력, 주서천의 무력이 지금 이 순간 하나가 되어 한 가지 결과물을 냈다. “기관이다.” 쿠구구구! 평원이 요동쳤다. 진동이 먼 곳까지 전해졌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 당명인이 뒤늦게 소리쳤으나 이미 늦었다. 현세에 지옥이 펼쳐졌다. 쿠웅! “으아아악!” 시작은 위로 솟구친 돌기둥이었다. 거목 정도는 아니나 웬만한 나무만큼 두꺼워 넓은 범위를 자랑했다. 지상 위에서 어찌할 줄 모르던 칠성사병 무리는 밑에서 솟구친 돌기둥에 후려 맞고 나가떨어졌다. 쾅! 콰광! 콰앙! 주변의 들판은 더 이상 넓고 평평하지 않았다. 사방 곳곳에서 수맥을 건든 것처럼 봇물 터지듯 돌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조금만 느렸어도 신비로운 광경에 경건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돌기둥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도망쳐!” “으악!” “벗어나라!” 칠성사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반격을 가하려 해도 실체가 없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냥 소리만 내지르며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뭐야, 왜 멈춰!” “뭐하고 있는 거야!” 암천군의 외곽, 전위 및 후위가 멈춰 섰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단 말이다!” “벽이다!” 콰아아아. 바다도 아닌데 해일이 일어났다. 모래와 자갈, 풀과 꽃이 갈라지면서 흙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집어삼키고 뒤덮었다. 생명체이건 뭐건 간에 쓸어버리는 흙도 문제였으나 발걸음을 막은 건그 뒤로 모습을 나타낸 벽이었다. 몸집이 워낙 크다 보니 돌기둥보단 위로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렸으나, 그런데도 쉽게 넘지 못했다. 자그마한 마을 따윈 가뿐히 쓸어 버릴 것 같은 해일 탓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무려 사 장에서 오 장 높이까지 올라오는 걸 손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이다! 벽이 없는 곳까지 뛰어라!” “제기랄, 무리다! 여기저기 죄다 벽이라고!” 쿠구구구! 고함과 비명인 와중임에도 벽은 계속해서 올라온다. 그 위용에 칠성사병은 몸을 절로 떨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질 수가 없었다. 돌기둥에 맞고 날아가 떨어져도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설사 넘을 정도로 높이 올랐다 할지라도 그만큼 센 충격을 맞은 것이 되니 몸이 성하지 못했다. “허어……” 정사의 무림인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전 개요를 들은 주요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은하노사가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 발동한 장본인인 당혜도 마찬가지였다. 놀람을 넘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상군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동서남북으로 하나씩 세워진 벽이 있었고 그 길이는 약 일 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