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423)
“그동안 돈을 악착같이 긁어모은 이유가 실은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서라는 말이 사실입니까?” “물론이지요. 제가 돈에 영혼을 팔았다고 말하는 건, 절 시기하는 경쟁 상단의 음모일 뿐입니다.” “역시나! 자산의 대부분을 기부하신다는 것도 사실이었군요!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으, 으응? 기부?” “저희는 상단의 규모가 작아 어찌할지 고민했는데…… 괜한 고민이었습니다. 저희 역시 물심양면으로 전란에 의한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 없……” “금의상단 만세! 상왕 만세! 이의채 만세!” 이후, 상왕이 자산의 팔 할 이상을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했다는 게 알려졌다. 또한 그를 필두로 하여 여타 상단들도 단체로 기부에 나서 보다 빠르게 피해를 복구할 수 있게 됐다. “자네, 그거 들었나? 최근, 상왕이 밤마다 대성통곡을 한다고 하네. 역시 기부금이 너무 많았나?” “어허, 이 사람! 아무리 자네라 해도 그분을 모욕하지 말게. 사돈의 친구의 동생의 친척의 벗의 말에 의하면 상왕께서 밤마다 우는 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서라 하더군. 정말 감동적이지 않나?” “미안하네…… 내 그런 줄은 몰랐군.” 기룡, 제갈승계. 현 무림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까아아악, 공자님!” “공자님, 얼굴 한 번만 보여 줘요!” “기룡께서 아직 홀몸이라 들었소! 내 딸의 얼굴을 한 번만 봐 주시오!” “사부님! 절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무림인은 물론이요 일반인 등 많은 사람들이 제갈승계를 만나려 했다. 하루에 무려 수백 명씩이나 방문했다. 제갈승계는 미칠 지경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제갈승계는 인맥이나 배경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화려했지만, 개인적인 능력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순수한 명성만 봐도 군사나 모사미봉에 지지 않을 정도였다. 전란에서 보였던 활약을 생각하면 이상치 않았다. “미, 미친!” 친구의 이름을 대라면 열 명도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교류가 어색한 제갈승계는 기겁할 일이었다. 제갈승계는 산동의 제남 지부, 금의상단에서 준비해 준 거처이자 공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후, 세가에서 어떻게든 해 보라고 사람까지 보내오다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무림의 영웅, 제갈승계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공자님, 어서 오세요. 몇 가지 도움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새로운 장치를 구상 중이거든요.” 무선화가 살짝 웃으면서 제갈승계를 반겼다. “새로운 장치?” “물론입니다!” 제갈승계가 눈을 반짝이면서 협조를 받아들였다. 무선화는 보이지 않도록 입가에 웃음을 그려 내면서, 제갈승계의 품 안에 안겼다. “이러면 됩니까? 그런데 이게 무슨 장치입니까?” “네, 네. 훈련용 목인에게 다가가면, 그 몸이 열리면서 적을 안에 가두는 용도에요.” 무선화가 얼굴을 비비적거리면서 답했다. 만면에는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여우일세, 여우야……” 초련이 그 광경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오호, 과연……” 제갈승계가 여러 가지를 떠올리고 있을 참이었다. “서, 선화야……?” “앗, 아버님.” 무선화가 제갈승계에게 안긴 채 머리만 옆으로 빼선 활짝 웃더니만, 손까지 흔들어 무곡을 반겨 줬다. “응?” 제갈승계가 고개만 돌려 무곡을 봤다. “오, 어르신. 어서오……” 제갈승계가 인사를 건네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곡의 표정이 악귀처럼 물들더니만, 이마에 뿔 같은 것이 솟아냐면서 용처럼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른손과 왼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마치 검을 든 것처럼 손을 쥐고 있었다. “교두, 진정하십시오.” 초련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무곡은 종종 금의검문의 교두로서 무공을 가르쳤다. 그녀는 무곡이 얼마나 괴물인지 알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다아!” 무곡이 심상구현을 펼쳤다. 섬서, 화산. “거절했다고?” 장서은이 목소리를 높였다. 낙소월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서천, 내 이놈을 그냥!” 장서은이 씩씩거리면서 소매를 걷었다. 상천육좌, 아니 상천오좌이자 천하제일인을 보고 이럴 수 있는 사람은 무림을 뒤져도 몇 없을 것이다. “오늘은 마음껏 마서라.내가 허가하마.”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었던 매화검수, 담향이 술병을 건네면서 낙소월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신경 쓰지 마라.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매화검수의 경우, 혼인할 수 없으니까.” 도사라고 연애나 혼인을 못 하는 건 아니다. 연애는 물론이요 자식까지 낳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일반 제자에나 해당하는 경우다. 화산의 장로, 그 밖의 요직에 앉아있는 자들은 무공의 유출을 우려해 혼인이 제한되어 있다. 화산에 스물네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매화검수 역시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주서천의 경우, 무림의 대영웅이자 천하제일인이지만 사실 화산 내에선 보통의 사대제자일 뿐이다. 낙소월은 담향이 따라 준 술잔을 시원스럽게 넘기더니,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무슨 소리세요? 이제부터인걸요.” “……응?” “화산파의 규정상, 이십사수매화검법처럼 절기를 알고 있을 경우 자식을 낳을 수 없어요. 혼인도 무척 제한되고요. 사형은 이십사수뿐만 아니라, 일대신공인 자하신공의 구결을 알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자, 잠깐…… 너, 설마……” “자하신공이 화산오장로에게 전달된 경우야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 외에는 지켜야죠.” 안 그래요? 하고 눈을 빛내는 낙소월. “설사 사형의 경우가 특별하다고 한들, 아내로 맞이할 사람의 신분이 높으면 더욱 힘들고요. 예를 들어, 오대세가의 직계 혈통이라거나 하면 서로의 비전 무공이 유출될 수도 있으니 더더욱 문제가 크지 않겠어요?” “사, 사매. 진정해. 네 말대로라면 매화검수인 너도……”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잠깐 다녀올 곳이 있어서 그만 일어나 볼게요.” 낙소월의 눈이 야망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 * * 음과 양이 교차했다. 어슴푸레하게 빛나던 햇빛은 점차 강해지면서 창궁을 가득 메웠다. 당혜는 주서천을 배웅하면서도 탐탁지 않은 듯,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두드리면서 불만을 표했다. “왜 그래?” “……” 주서천의 물음에 당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시 한번 물으려던 찰나, 당혜는 특유의 표독스러운 눈초리를 옆으로 돌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으니까.” “허미……” 주서천이 진심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혜의 입에서 달콤한 말이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놀라움도 놀라움이지만, 생각 이상의 귀여움이라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죽고 싶어?” 당혜의 손가락에서 독기가 흘러나왔다. “농담이야, 농담.” 주서천은 ‘하하하’ 하고 웃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날…… 사랑해?” 당혜는 주서천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물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됐다. “그래.” 걱정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스러웠다. “……” 당혜는 주서천의 품 안에 안겨 머리를 기댔다. “어떤 점이?” 꽃에는 가시가 있다지만, 당가의 꽃은 독을 품고 있다. 건들면 다치는 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다. 당혜는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름답다고 한들, 성격이 좋지 않으니까. ‘그날이었나.’ 한 번, 꽃에 품은 독기가 사그라졌던 적이 있었다. 당가의 진실을 알게 되던 날. 당혜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거짓을 고했을 때였다. 평소의 독기 어린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강하기는커녕 툭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여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하고도 애잔했다. “오라버니에게…… 지고 싶지 않아.” 당혜가 거짓이 아닌 진실을 고했던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의 등을 좇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좇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걸으며, 넘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입가에 웃음이 절로 걸렸다. 달빛에 비춰지는 아름다움, 낯설지 않은 익숙함, 평소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 노쇠한 마음을 키웠다. 소매를 놓칠 듯 말 듯 잡으면서 도와 달라는 말을 꺼낸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흠흠, 뭐. 여러 가지.” 주서천은 헛기침으로 얼버무리려고 했다. “주……” ‘주서천, 죽고 싶어?’ 당혜의 다음 말이 예상이 갔다. 그러나 그다음 말은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주, 주…… 주 가가(哥哥)…… 부탁할게. 알려 줘.” 주서천이 순간 숨을 쉬지 못했다. 빙백신장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얼어붙었다. 당가의 가신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당장 가주님을 내놔라! 이 가짜 년아!’ 라면서 외쳤을 것이다. 쨍그랑! “응?” 주서천이 당혜를 껴안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나타나면서 무언가가 깨졌다. 깜짝 놀란 두 남녀는 서로 떨어지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제갈 소저?” 무림 연합의 모사로 이름을 날린 절세미녀, 제갈수란이었다. 발 밑에는 항아리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약 향이 나는 걸 보면, 의식을 차리지 못한 주서천을 위한 약이었던 모양이었다. “아, 무림맹에서 마중을 나오셨…… 제, 제갈 소저?” 주서천은 도중에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했다. 제갈수란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서 있다가, 갑작스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흑흑……”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성이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흑, 읏…… 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주 공자가 절 필요로 했던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하니까요.” “예?” 주서천이 두 귀를 의심했다. “죄송, 해요. 울지 않으려고 해도…… 누구도 저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라서…… 흐윽!” 공기가 얼어붙었다. “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분명 제가 부족해서 주 공자의 마음이 변한…… 것……” 제갈수란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무슨…… 아!” 주서천이 무언가 떠올린 듯 탄성을 흘렸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 으악!” 주서천이 화들짝 놀라면서 물러났다. 치이익! 방금 전 서 있던 자리가 독기에 녹아내렸다. “다, 당혜?” “입 닥쳐라, 색마.” 당혜가 서릿발을 날리면서 표독스럽게 째려봤다. 오른손에는 당가의 절기인 독접이 쥐어져 있었고, 왼손은 숨이 막힐 정도의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방금 전에 가가라 부르면서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어젯밤에는 자기도 처음이라고 잘도 지껄이더니만, 뭐? 누구를 필요로 했다고?” “기, 기다려 진정…… 잠깐 설마 무형지독?” 주서천이 새파랗게 질린 낯빛으로 떨었다. “죽어!” 당혜가 주서천에게 독장을 날렸다. “흠.” 약 향에 무심코 따라 나온 신의가 턱을 긁적였다. 신의의 눈초리는 대지를 적신 약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약물에 적신 소맷자락,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모사미봉의 표정을 언뜻 볼 수 있었다. “허어……” 신의가 감탄사를 흘렸다. “모사(謀事)구먼.” 〈완〉 * * * (특별편) “헉!” 믿을 수 없다! 하루를 알리는 운기조식이 끝난 뒤의 소감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볼을 꼬집었다. 뺨이 화끈해지는 고통. 현실이 분명하다. “얼른 이 소식을 사부님께 알려야 해!”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머리 위에 쌓인 매화의 꽃잎이 바닥에 떨어졌다. “헥, 헤엑!” 숨이 가빠 온다. 심장이 죄여 왔다.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희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달렸다. 그러나 한껏 부풀었던 감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