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Mine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일어서 어깨에 패왕부를 척 걸친 염호, 마주 앉은 신응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북검회가 어딨냐?”
“넷?”
반문하는 신응담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눈치 없는 다른 장로들은 몰라도 눈앞의 이 어려 보이기만 하는 태사조가 실제론 검신 태사조가 반로환동 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북검회의 위치를 물어오는 것뿐인데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눈앞의 태사조가 남도련을 어떻게 박살냈는지 너무 잘 아는 탓이었다.
“서, 서안에…….”
“서안?”
염호가 고개를 갸웃하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서안이면 섬서의 성도였다.
화산파가 위치한 화흠현에서도 고작 하루 이틀 걸으면 도달할 정도로 가까운 곳이다.
“쯧,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무시당했던 거냐?”
“…….”
염호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기에 신응담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검신 태사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북검회에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이 제자 된 입장에서 그저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신응담이었다.
염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인상을 살짝살짝 찌푸리다 신응담을 가만히 보더니 입가에 묘한 웃음을 그렸다.
“여하튼 그렇게 가깝단 말이지……, 가자.”
“네?”
“씁-! 자꾸 두 번 말하게 할래?”
“넵!”
신응담은 화들짝 놀라 냅다 대답하고 염호 뒤를 따랐다.
휘적휘적 문밖으로 걸어 나가는 염호를 신응담은 병아리가 어미 닭을 쫓듯 졸졸 뒤따랐다.
“염공자님!”
전각 밖으로 나가자 앞마당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그 가운데서 들뜬 여인의 목소리가 염호를 가장 먼저 맞이했다.
연산홍이었다.
염호의 얼굴이 또 한 번 살짝 일그러졌다.
그 뒤로 모인 이들이 썩 반갑지 않아서였다.
개방의 취성이라는 늙은 거지도 보였고 소림사의 중들도 죄다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 또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염 형님!”
불성과 취성의 공동전인인 소화였다.
그는 해맑게 빛나는 눈과 한없는 존경과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염호를 향해 달려 나왔다.
‘쩝……, 내 나이가 몇 살인데!’
“형님! 사부님의 다비식을 치르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소화는 염호를 향해 두 손을 공손히 합장했다.
소화 뒤에 도열한 소림사의 승려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염호를 향해 반장의 예를 취했다.
“아! 미! 타! 불!”
이제와 그럴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냥 부처나 소림에 관련된 건 가까이만 해도 본능적으로 속이 미식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소화 뒤편에서 중년의 승려 하나가 나섰다.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목함이 들려 있었다.
“다행히 본사 큰 어른의 진신사리를 회수할 수 있었습니다. 숭산의 주지승께서 신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예를 다해 모시라는 전갈이 내려졌습니다.”
중년 승려의 음성에도 절절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했다.
‘허허~. 세상 참…….’
오래 살다보니 별 해괴한 일을 다 겪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백팔나한에다가 소림사 주지승에게 고맙다는 소릴 다 듣게 되었으니까.
‘하긴 뭐, 화산파 태사조도 하는데.’
염호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어찌되었더라도 중들과 말을 길게 섞고 싶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형님! 이 녀석도 형님께 인사를 올리겠다 합니다.”
소화가 혼자 신명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뒤편에서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 반은 큰 덩치가 걸어 나왔다.
쿵! 쿵!
갑자기 바닥이 깨져라 양 무릎을 꿇은 덩치가 목청을 높였다.
“인사 올리겠구만유~. 광치라구해유.”
“…….”
염호가 대답 없이 인상만 더 찌푸리자 광치는 살짝 당황했다.
“평생! 대형으로 깍듯이 모시겠구만유.”
광치가 머릴 땅바닥에 힘껏 찍어가자 염호의 발이 재빠르게 뻗어나갔다.
척!
발등에 이마가 걸쳐진 광치.
염호가 찡그린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뇌맥에 뼛조각이 걸려서 바보가 된 거야. 머리 쪽은 당분간 조심해라.”
염호의 나직한 음성에 고개를 발딱 들어 올린 광치.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눈동자에 순식간에 물기가 차올랐다.
“크윽! 큰 형님! 고맙구만유~. 인자는 지도 글자랑 내공심법 다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구만유.”
광치가 눈물을 글썽글썽 거리자 옆에 선 소화마저 울컥한 모습이었다.
“형님……. 큭!”
그걸 지켜보는 연산홍의 눈동자 역시 별빛을 한꺼번에 쏟아낼 것처럼 빛났다.
“염 공자님께선 정말로…….”
연산홍의 눈망울도 촉촉이 젖어가며 볼까지 발그레 변하는 것을 본 염호가 흠칫했다.
‘얘들아! 니들 왜 그러냐.’
따지고 보면 진짜 별일도 아니었다.
쓸데없는 오해로 덤벼든 소화와 광치, 옛날 같으면 그냥 화딱지를 참지 못해 쳐 죽일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변한 게 있다면 그냥 신분상 성질을 참아야 한다는 것 정도.
‘흠……. 선의(善意)가 결국 선의를 부르고, 세상은 조화 속……, 에잇! 이러다 우화등선하겠다.’
염호가 휘리릭 고개를 내젓는 그때 내내 지켜보기만 하던 취성까지 앞으로 나섰다.
첫 만남 때부터 고약하기만 했던 개방의 늙은 거지가 나오자 염호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자기야 지가 제일 늙은 줄 알지만 염호의 입장에선 반 토막밖에 살아오지 않은 어린애였다.
그런데 코앞에서 온갖 늙은 척을 하는데 좋게 보일 리가 있겠는가.
“고맙습니다. 태사조님.”
“……?”
취성은 더없이 공손한 태도와 음성으로 염호를 대했고 그게 또 당황스러운 염호였다.
“이 일로 평생의 벗을 둘이나 잃었습니다. 그 복수를 해주셨으며, 하나뿐인 적전제자를 멀쩡하게 만들어 주시기까지 했으니 어찌 개방파의 은인이 아니겠습니까?”
“뭘, 그 정도 가지고 은인씩이나……”
“개방은 앞으로 이 땅의 거지가 전부 사라지는 날이 오기까지 화산파를 영원한 맹우로 대할 것입니다. 태사조님.”
“…….”
취성의 더없이 공손한 태도.
“아미타불! 소림 또한 개방과 뜻을 같이하며 강호의 안녕을 위해 화산과 뜻을 같이할 것입니다.”
“…….”
기다렸다는 듯이 소림의 승려가 나서자, 가장 탄복하고 가슴 벅찬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신응담이었다.
“아!”
신응담은 터져 나오는 기쁨의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맹우(盟友).
서로 다른 문파 사이에 맺는 최고의 협약을 말하는 것이다.
서로의 항렬까지 공유한다는 것.
다시 말해, 다른 문파 제자들에게도 장문인은 장문의 예우를 받으며 장로들은 또한 장로들의 예를 받는 것이다.
이는 화산의 태사조 역시 소림과 개방의 모든 제자들에게 태사조가 된다는 의미였다.
‘쩝……, 세상 참…….’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염호는 그냥 입맛만 다셨다.
***
관사를 벗어나 난주의 포구까지 걸어오는 동안 염호는 엄청난 환송을 받아야 했다.
지휘사 병력 오천과 황성에서 파견된 어림군 이천이 완전한 무장을 한 채 관사부터 포구까지 길을 만든 것이다.
번쩍번쩍한 갑옷을 입은 어림군과 날카로운 창병을 높이 세운 지휘사 병사들 뒤로 몇만에 달하는 난주 주민들이 죄다 몰려 나와 염호의 이름과 화산파의 이름을 열렬히 외쳤다.
“귀청 떨어지겠다.”
그 사이를 통과해 나루터까지 이른 염호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응담을 노려봤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퍼져나갔기에 이 정도 까지 난리냐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뒤따라온 연산홍이 먼저 꺼냈다.
“소문이 그냥 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거든요.”
“?”
“옥문관 넘어 돈황은 물론 오로목제, 천산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요.”
“흠…….”
염호가 대충 사정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소문만 무성한 것과, 실제로 죽을 위기를 넘긴 것과는 천지 차이일 테니.
“그래서 가보려구요.”
“?”
때마침 뒤편에 있던 소화가 나섰다.
“저랑 광치 사제는 여기 연장주님과 함께 십만대산을 수색해 보려 합니다. 혹, 이런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으니…….”
순간 염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럴 필요 없어.”
“?”
“?”
“흑제는 죽었다.”
“네?”
“흑제라니요?”
연산홍과 소화가 동시에 다른 질문을 했고 염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깊이 알 필요 없다. 만약 흑제, 그 인간이었다면……, 세상이 절단 났을 거니까.”
“…….”
“…….”
***
새하얗게 빛나는 대리석이 층층의 돌계단이 되어 산 위로 쭉 뻗어 있었다.
우뚝 솟은 연화봉은 운무로 가득했고 신록이 우거진 산길은 풀벌레 소리나 간혹 들릴 만큼 조용하기만 했다.
연화봉 아래 위치한 화산파 역시 너무나 고요했다.
꽉 닫힌 산문, 그리고 그 앞에 적힌 두 개의 글자.
봉문(封門).
화산파가 통째로 외유중인 터라 지금 경내에 인적 하나 없는 것이다.
대장로 손괴가 꼬꼬마 제자들까지 자부심을 심어 주겠다며 모조리 이번 외유에 데려간 것이다.
때문에 너무도 깊이 잠든 것처럼 보이는 화산파.
그렇듯 고요함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때였다.
슈-아-아-앙!
천지가 찢기는 소리가 하늘 끝 어딘가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콰쾅!
한줄기 시꺼먼 섬전이 그대로 화산파 산문 앞에 내리꽂혔다.
온몸이 새까만 인물이 그곳에 나타났다.
드러난 눈동자의 흰자위만 새하얗게 빛날 뿐, 입고 있는 옷도 심지어 피부색도 죄다 칠흑의 빛깔이었다.
그 새하얀 눈이 화산파의 산문을 보더니 희번덕거렸다.
“본좌가 왕림하였으니 경배하며 나를 맞으라.”
화산 전체가 뒤집어질 것 같은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온 숲의 짐승들이 놀라 한꺼번에 날뛰기 시작했고 우짖던 풀벌레마저 일시에 숨을 죽였다.
천래궁주 요천이 화산에 도착했다.
그때 화산파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