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Mine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섬서의 성도 서안은 이전 시대 수많은 나라의 국도(國都)로 자리매김 했던 도시다.
주나라와 진나라부터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까지 모두 서안을 도읍으로 정했을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도시 서안.
그 서안에 북검회가 자리잡은 것이 벌써 수십 년 전이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증축되기 시작한 전각들은 지금에 와서는 장원의 규모를 넘어 거대한 성곽처럼 보일 정도였다.
방원 수천 장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담장과 그 위로 삐죽 솟은 전각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압도될 만큼 위용이 넘쳐나는 곳이 북검회였다.
용이 구름을 타고 오르는 듯한 황금빛 서체가 새겨진 거대한 현판과 마차 서너 대가 너끈히 지나가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정문.
그곳을 통과해야 하는 수많은 북검회 소속 문파와 무인들은 언제나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정문을 양 옆에서 지키는 위사들은 모두가 기골이 장대한 사내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특별히 싸울 일도 시비도 일지 않는 곳이지만 검성 엽무백은 위압적인 덩치와 인상을 풍기는 이들만을 가려 뽑아 그곳에 배치했다.
처음엔 그 의중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린 이들도 많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타난 그 효과를 이제는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무인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이 정문의 위사들을 보고 수많은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북검회는 정문을 지키는 무사들만 봐도 오줌이 지릴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이야기.
그렇게 퍼져나간 소문들은 북검회 소속 문파들의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고, 실질적으로 장강 이북의 상권을 장악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검파 연합이기에 언제나처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북검회 정문, 평소와 다름없이 기골이 장대한 위사들 수십 명이 은빛 수실이 달린 관상용 검을 패용한 채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응? 뭐? 뭐냐?”
정문에서 쭉 뻗은 서안대로를 바라보던 수문위사 둘이 고개를 갸웃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기다란 행렬이 정문 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본 것이다.
그 행렬이 뿜어내는 기백을 느낀 이들이 썰물처럼 길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백 명이 훌쩍 넘는 숫자의 행렬.
“조, 조장님!”
수문 위사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자 안쪽에서 자그마한 체구에 눈이 쫙 찢어져 꼭 쥐상을 닮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정문의 진짜 경비를 책임지는 방검대 소속의 무인이었다.
“으응?”
쥐상의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옆에 덩치만 큰 허수아비들이야 거리가 멀어 확인할 수 없다지만, 쥐상의 사내는 대번에 행렬 가운데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한 것이다.
“어, 어, 헉!”
굴비 꿰듯 포승줄에 단단히 묶인 채 걸어오는 이들.
그 앞쪽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천룡검 장강옥이고 그 옆에 사대무단 단주들이 보였다.
그 주위로 다시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는 새하얀 능라의를 입은 도사들까지.
땡! 땡! 땡! 땡! 땡!
쥐상의 사내가 정문 뒤에 매달린 커다란 쇠 종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곧이어 비상과 위급을 알리는 타종소리가 북검회를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가장 먼저 여덟 개의 월동문을 지나 쏜살같이 날아온 이는 북검회의 부회주 천예검군 조문신이었다.
그를 뒤따라 사방팔방에 산재한 전각에서 수십, 수백의 그림자가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촤촤촤촤촤촥!
좌측 담장으로 뚝 떨어져 내린 이들 백여 명은 모두 어른 몸통만큼 거대한 쇠뇌(석궁)을 등에 멘 이들이었다.
그 반대편 담장을 빽빽하게 메운 이들은 한손에는 단창을 또 다른 손에는 둥그런 쇠방패를 든 이들이었다.
각기 참룡대(斬龍隊)와 방검대(防劍隊)로 적의 침입을 대비해 북검회 본거지를 지키는데 특화된 무인들이었다.
그때 다시 일단의 무리가 땅바닥을 스치듯이 밟으며 정문 안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조문신 뒤에 부채꼴로 포진한 무인들, 백색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의 분위기는 참룡대나 방검대와는 또 달랐다.
북검회 십이검천 중 서열 삼좌를 차지하고 있는 천강검대(天罡劍隊)의 무인들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허억!”
뒤늦게 천강검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군사 좌문공의 눈이 쏟아져 나올 것처럼 커졌다.
좌문공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줄줄이 엮인 장강옥이나 사대무단이 아니었다.
새하얀 능라의.
그것만 보고도 경기를 일으킨 것이다.
푸르르르!
좌문공의 볼 살이 투레질을 치는 말 머리처럼 떨리자 조문신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군사?”
“화… 화산파가 왜 여길……?”
좌문공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두 눈으로 직접 용천장과 화산파의 싸움을 똑똑히 지켜봤으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천하제일세 용천장을 무릎 꿇린 화산파의 힘, 그들이 온 것이다.
남도련의 명견혜도 사마군과 더불어 강호 제일의 책사를 다툰다 알려진 좌문공의 그런 얼빠진 모습에 조문신의 표정은 말도 못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조문신이 재차 물었지만 좌문공은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조문신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마교를 직접 처단하겠다고 선언한 검성이 보무도 당당하게 사대무단 전체를 이끌고 서안을 떠난 것이 달포 전이었다.
그러다 며칠 전 검성 혼자 딸랑 되돌아오더니 불쑥 칩거에 들어가 버렸다.
안색이 창백한 것이 암만 봐도 내상을 깊게 입은 모습이었다.
궁금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물어볼 여유조차 주지 않고 소회림(所懷林)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검성.
그리고 지금 눈앞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대무단 전체와 장강옥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 화산파 도사들의 손에 끌려오고 있으니…….
“엽무백은 나서라.”
북검회 전각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정문 앞 오십 장의 거리를 두고 멈춰선 화산파 도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였다.
“선광우사 장진무…….”
좌문공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나직하게 뇌까렸다.
부회주 조문신의 굳어있던 얼굴에 넘실거리는 노기가 덧씌워졌다.
“감힛!”
선광우사 장진무의 이름은 조문신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새로운 천하십강으로 불리는 화산파의 당대 장문인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정도 이름값으로 검성의 존성대명을 함부로 부른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검성은 누가 뭐래도 현 강호의 가장 큰 어른인 중원삼성 중 한 명이었다.
한천 연경산이 천하제일로 불릴 때도 그랬고, 천하십강이란 이름 붙은 고수들이 그 명성을 얻었을 때도 논외로 칠 정도로 존경을 받아온 이 시대의 진짜 거물이 바로 검성인 것이다.
조문신 스스로 한 번도 언급조차 해보지 못한 이름을 함부로 외쳐 부른다?
그것도 북검회 앞에서, 그 후계자와 사대무단을 인질로 붙잡고서?
이는 절대로 용서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놈들이 천지 분간을 못하고 날뛰는 구나.”
조문신의 두 눈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기 시작한 분노와 살기에 휩싸였다.
그런 분위기는 결코 조문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등 뒤로 도열한 천강검대나 담장 위 참룡단과 방검단 모두 명백한 적의와 살기 띈 눈빛으로 북검회를 침습하려는 이들을 노려봤다.
더 이상 대화고 뭐고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대치가 시작되려 했다.
오십 장이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명령만 떨어진다면 당장 뛰쳐나가 사생결단을 내고 말겠다는 눈빛들이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화산파 도사들 뒤편으로 사대무단과 장강옥이 인질 비슷하게 붙잡혀 있다는 사실 뿐.
그때 맞은편 화산파 쪽에서 노도사 한 명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풍채가 좋고 기백이 범상치 않은 노도사였다.
“화산의 대장로 손괴다.”
우뚝 걸음을 멈추고 토해진 손괴의 말은 너무 짧았다.
일대제자들과 장로들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전해들은 손괴 역시 분노를 참지 않는 것이다.
“이놈들! 화산파 따위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구나.”
짧은 말에 거친 응대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
조문신이 당장이라도 검을 빼들고 달려 나갈 것처럼 이를 갈았다.
그때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군사 좌문공이 조문신의 한쪽 팔을 재빠르게 붙잡았다.
“?”
“검군, 제가 맡겠습니다.”
좌문공이 조문신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북검회의 군사 좌 모라 하외다. 명성이 자자하신 화산팔선의 첫째 손 장로를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좌문공은 더없이 공손한 태도와 꿀을 바른 듯한 목소리로 손괴를 대했다.
지금은 감정을 상한 상태로 응대할 때가 절대로 아니란 판단이었다.
전후 사정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더불어 사대무단이 붙잡힌 일이나 저들이 찾아온 목적을 알애내는 것이 우선일 것, 북검회의 머리인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잘 아는 좌문공이었다.
그러면서도 화산파 진영 쪽을 두루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좌문공을 그 무엇보다 불안하게 마드는 존재, 화산파의 어린 태사조가 어디 있는지 찾아 보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어느 때 허공 어디선가 뚝 떨어져 내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괴물이 바로 그 어린 태사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탓이다.
“본파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
“마교와 대적 중 중한 상처를 입고 귀환하는 본산의 매화검수들을 북검회가 습격했다.”
“!”
“!”
“저들 입에서 그 모든 것이 엽무백의 명령에 따른 것이란 실토를 받았다.”
손괴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한 듯 북검회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무슨 수작이냐!”
꾹 감정을 눌러 참고 있던 조문신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인질로 잡고 고문을 가한다면 무슨 자백인들 못 받아낼까.
조문신 뿐 아니라 뒤쪽에 도열한 북검회 무인들 모두 더욱 더 살기를 짙게 피어 올렸다.
하지만 손괴는 그런 북검회를 보며 더욱 싸늘한 목소리를 뱉었다.
“말 길게 나눌 필요가 없겠구나. 엽무백을 불러라. 그에게 직접 들을 것이니.”
“이놈!”
차창!
조문신이 더는 참지 못하고 검을 빼들었다.
천예검군 조문신.
그 또한 천하십강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검의 대가였다.
그의 검에 시퍼런 예기가 너울거리기 시작하자 손괴 또한 두 말 없이 검을 뽑았다.
우우웅! 우웅!
수십만 마리의 벌떼가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가 거세게 검 주변으로 모이더니 시퍼렇고 눈부신 빛살이 검에서 쭉 뻗어 올랐다.
검 위로 다섯 자나 치솟아 올라온 시퍼런 검강.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무지막지한 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무려 다섯 자 길이의 검강이란 건 그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뛰쳐나갈 것 같던 조문신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삐질.
식은땀이 몇 방울 얼굴에 어린 조문신이 슬쩍 좌문공을 쳐다봤다.
“군사……, 일단은 대화를 좀 더 나눠 보시게.”
“…….”
“흠흠, 나는 검성을 모시러 다녀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