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Mine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슈슉슈슈슈슈슉!
돌풍에 낙엽이 휩쓸리듯 사파 무인들의 잘린 몸뚱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우후죽순처럼 휩쓸리며 쓰러져 가는 전열의 선두를 보며 사파인들은 완벽한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들 사파인보다 더욱 놀라고 당황하는 쪽은 뒤편으로 물러선 정파 무인들이었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눈이 튀어나오고 턱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얼굴을 지우지 못했다.
이전까지 강호 위에 군림하던 용천장을 화산파가 바로 이곳 천야평에서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이미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아예 상황 자체가 달랐다.
당시의 싸움에선 누구 하나 죽어 나갔다는 이야기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저 정파 간 힘겨루기 정도에서 사태가 끝난 것이 전부였고, 약세를 보인 용천장이 물러남으로써 종결지어진 사건으로 알려진 정도였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달랐다.
피분수가 사방으로 솟구치고 잘린 팔다리는 물론이며 나뒹구는 머리통과 시체가 첩첩이 들판 위로 쌓여갔다.
지켜보는 정파인들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 못하고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반면 쌓여가는 시체의 숫자만큼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이들이 있었다.
유령곡과 혈총의 주인들이다.
“대체 뭣들 하느냐! 네놈들도 당장 나갓!”
유령곡의 주인 유사의 노기충천한 목소리가 토해지며 그의 등 뒤에 시립해 있던 이들이 바람처럼 쏘아져 나갔다.
유령십이사(幽靈十二士)라 불리는 유령곡의 핵심 고수 열두 명. 그 하나하나를 곡주인 유사가 직접 키웠으며 그들만 있으면 어지간한 문파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이들이었다.
새하얀 장포로 온몸을 두른 유령십이사가 시산혈해로 변해가는 전장으로 날아가는 그때, 혈총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혈총의 주인인 사효귀 주변에 도열해 있던 이들이 일제히 치솟아 오른 것이다.
시뻘건 장포를 걸치고 있는 열 명의 사내. 혈묘십객(血墓十客)이라 불리는 사효귀의 호위들이었다.
날아오른 혈묘십객이 허공에서 붉은 장포를 벗어 날리자 사위를 압도하는 강렬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촤라라락!
후아아악!
핏빛 장포가 거칠게 펄럭이며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향해 날아들자 오히려 화들짝 놀라 피하기 바쁜 것은 혈총과 유령곡의 사파인들이었다.
여태 사파인들을 유린하던 화산파 장로들의 눈이 치떠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열 개의 붉은 장포가 맹렬한 기세로 장로들을 향해 쇄도하는 것은 물론이요, 연이어 날아드는 유령십이사와 혈묘십객의 살기가 만만치 않음을 한눈에 느낀 것이다.
여태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사파인들이 허둥지둥 물러서고 그 틈을 뚫고 붉은 장포들이 날아들었다.
우웅! 우우우웅!
찌이이이익! 찌지지지지직!
장로들의 검에서 뿜어진 빛이 장포를 그대로 절단 낸 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연이어 거친 쇳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철그렁! 촤라라라랑!
유령십이사의 공격이 연이어진 것이다.
그들의 새하얀 옷소매 사이에서 길게 떨어져 내린 쇠사슬과 그 끝에 매달린 주먹만 한 추(錐)가 연달아 장로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카캉! 카카카카카카캉!
장로들의 검이 쇠사슬 끝에 매달린 추를 튕겨낼 때마다 사방에서 수많은 불꽃이 튀었고, 그 불꽃 사이로 장포를 벗어 던진 혈묘십객이 쇄도해 들어왔다.
양 주먹 끝에 삼지창 모양의 기대란 응조(鷹爪)를 낀 혈묘십객의 움직임은 날짐승 저리 가라 할 만큼 표홀하고 쾌속했다.
슈슈슈슈슉! 슈슈슈슈악!
거미줄처럼 빽빽한 유성추의 공격 사이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날카로운 공격을 가하는 혈묘십객의 연환 공격이 잠시 동안 화산파 장로들을 연신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진무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회(回)!”
뿔뿔이 흩어져 싸움에 임하던 장로들이 팽이처럼 휘돌며 진무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휘리리리릭!
만개했던 꽃잎이 모이는 듯 장로들이 진무를 향해 응집했고 그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진무의 웅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탄(彈)!”
순간 장로들의 신형이 쇠뇌에서 쏘아진 화살처럼 엄청난 속도로 비산했다.
쐐애애애애액!
서서서서서서서석!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끔찍한 절삭음이 장로들이 지나간 자리자리 토해졌다.
직후 곳곳에서 피분수가 치솟기 시작했다.
“피햇! 큭!”
“컥!”
“크아악!”
누군가는 단발마를 뱉었지만 고작 서넛이었다. 유령십이사와 혈묘십객 대부분이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몸통에 구멍이 난 채 삽시간에 널브러져 버린 것이다.
유령곡과 혈총 최강의 정예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황천의 고혼이 되어버렸다.
잠시 뒤편으로 물러났던 사파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아예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실로 압도적인 신위였다.
삽시간에 전의가 완전히 꺾이며 더 이상 싸워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파인들이 여기저기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흩어졌던 화산 장로들이 다시 한 자리로 모여들었다.
파라라라락!
갑자기 밀어닥친 전장의 무거운 침묵 사이로 장로들의 도포 나부끼는 소리만 가득했다.
장로들이 허공에서 튕기듯 신형을 비틀어 진무의 옆으로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선광우사와 화산팔선.
그들이 담담하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사파 무인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일천 명에 달하는 사파 무인이 그 기백에 완전히 압도당해 버린 상황.
진무의 눈이 오연히 그들을 향했다.
“여기는 화산이다.”
웅후하게 흘러나온 진무의 목소리가 사파의 무인들을 완벽히 짓눌렀다.
“본 파는 그 누구라도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연이어진 대장로 손괴의 음성에 사파인 모두가 경련하듯 떨기 시작했다.
“미친!”
“죽여주마!”
그때서야 유령곡주 유사와 혈총의 주인 사효귀가 노기충천한 목소리를 토하며 뛰쳐나왔다.
사파무림을 양분하고 있는 유사와 사효귀가 뿜어내는 살기는 무시무시했다.
그때였다.
두 사람의 코앞으로 연기처럼 솟아오른 그림자가 있었다.
퍼퍽! 퍽!
“컥!”
“크억!”
유사와 사효귀의 몸뚱이가 실 끊어진 연처럼 둥실 떠올랐다 바닥에 처박힌 뒤 퍼덕거렸다.
낚싯줄에 입에 꿰인 물고기처럼 핏물을 한가득 머금고 부들부들 떠는 두 사람의 모습에 좌중은 넋이 나가 버렸다.
유사와 사효귀는 수십 년간 사파무림의 거두로 군림해 온 절대 강자들이었다.
한천 연경산과 용천장이 그 두 사람을 경계하며 수십 년 세월 동안이나 사파무림의 준동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을 정도였다.
그런 유사와 사효귀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좌중의 시선이 경악에 빠진 채 불쑥 솟아난 초로인을 향했다.
더구나 그의 행색은 화산파의 도사도 아니었다.
“암향… 표!”
상황을 지켜보던 취성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그 곁에 나란히 선 검성의 얼굴은 이제 표정 관리가 안 된 채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어쩔 셈인가? 이제 저들을…….”
취성의 질책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검성은 입이 꿰매진 것처럼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불과 몇 달 전 북검회 앞마당에서 싸운 화산파와 지금의 화산파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시만 해도 황군이 개입하지만 않았어도 화산파를 끝장낼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전력에다 명분까지 자신 쪽으로 넘어와 있는 때였다.
그런데 첫 시작에서 완벽히 압도당해 버린 것이다.
더구나 화산파 본산은 그저 미끼라고 여겼던 이들이었다.
천살마군이란 대어를 낚아내기 위한 미끼. 그런데 그 미끼가 너무나 사납고 흉포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화산파의 전력에 검성의 머릿속은 쥐가 날 지경이었다.
애초부터 사파 따위에 기대한 것은 첫 교전의 방패막이며 서로서로 상잔하여 전력이 약화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눈앞의 결과가 너무 참혹했다.
끌어들인 사파인들은 전의를 완전히 잃었고 화산파의 기세는 하늘을 뚫고 오를 정도였다.
더불어 정파인들 역시 화산의 힘을 직접 보고 난 뒤 이 싸움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아채 버린 모습이었다.
그런 것들 가운데 무엇보다 신경을 거슬리는 것은 유사와 사효귀를 단번에 쓰러뜨린 초로인이었다.
이름도 없이 그저 철노(鐵老)라 불렸던 인물, 북검회 소회림 안에 있을 때부터 늘 꺼림칙하게 여겼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워낙 뛰어난 검을 수시로 만들어 바치는 재주가 있어 내치지 못했던 이였다.
일전에 그가 감춰준 무공을 펼치며 화산파를 돕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유사와 사효귀라면 검성 본인도 천 초를 싸워야 간신히 제압할 정도의 고수라 여기는 이들인데 어떻게 그들을 단 일 수에 쓰러뜨린단 말인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불과 몇 달 전, 자신의 검에 가슴을 꿰뚫렸던 이가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강해질 수 있는 것인지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
그 모든 상황이 검성을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말로 무공을 단번에 증진시키는 영단이나 속성의 마공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 화산파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였다.
“허! 이러고 있을 땐가?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취성이 더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때였다.
화산파 장로들의 뒤편에서 누군가 섬전처럼 뛰어나왔다.
스릉!
비매절영 신응담이었다.
그는 기 사형 옆으로 신형을 날리며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서걱! 서걱!
“……!”
“……!”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신응담의 검이 나뒹구는 유사와 사효귀의 목을 쳐버린 상황.
툭! 데구르르르.
“…….”
“…….”
너무 깔끔하게 잘려 버린 두 개의 목이 사파인들 앞을 굴러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코앞에서 이를 지켜본 사파인들도 멀찌감치 떨어진 정파 쪽 무림인들도 모두 얼음덩이가 되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 전장을 지배한 것이 진무와 장로들이었다면 그 짧은 순간 완벽히 바뀌었다.
그곳에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오직 기 사형과 신응담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수장의 목을 촌각의 망설임 없이 쳤다는 의미, 이는 타협을 불허한다는 명백한 의지였다.
“본산을 침범한 사파 따위를 살려둘 줄 알았더냐?”
신응담의 나직한 목소리가 천야평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사파인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으으으!”
“이놈!”
“죽여랏!”
신응담과 기 사형을 향해 사파인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 사파인들 또한 무인, 두려움보다 복수를 택할 정도의 의기를 지닌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