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49)
“카이저께서 하사하신 허가증입니다.”
독일 베를린궁에서 파견된 황실대리인은 내게 카이저가 발행해준 허가증을 건네주었다.
나는 공손히 허가증을 받아들었다.
“카이저께서 귀사의 요구에 응답하셨습니다. 앞으로 귀사는 ‘독일투자공사’라는 상호명을 3년간 이용할 권리를 가지며, 갱신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확인했습니다.”
독일투자공사.
내가 라이히스방크의 코흐 총재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독일제국에서 투자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다른 투자세력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싶었고, 공적인 업무수행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싶었다.
한 마디로 독일에서 투자활동할 때 기존의 플레이어들에게 깔보이기 싫다 이 말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외부인이었고 새로 굴러들어온 돌이었으니.
‘하지만 독일황실 카이저와 라이히스방크 총재의 서명이 담긴 허가증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그들은 결코 나를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독일투자공사’라는 상호명은 프로이센 정부의 공공사업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기에 3년간 라이센스를 허가해주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일부러 미국까지 찾아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건 독일황실의 대리인으로서 당연한 업무입니다. 제게 죄송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독일황실의 대리인은 내 사과에 빙긋 웃고는 나와 호쾌한 악수를 나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음?”
“며칠 전 독일정부는 크루프 정상화를 위해 기존 국가지원사업을 일시적으로 대폭 축소했습니다. 국가지원금도 줄일 예정이고요. 이는 문서로 작성되어 전 독일기업들에게 공문으로 뿌려졌습니다.”
이건 또 파격적이다.
“독일황실과 독일정부가 달려들어도 국영화가 부담스러울 만큼 크루프가 좀 많이 큰가 봅니다.”
“하하.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보다 귀사에게 중요한 부분은 이 다음입니다.”
“다음?”
“예, 공문에는 또 하나의 내용이 있습니다.”
대리인은 내 반응이 기대된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독일정부의 국가지원사업은 중단되는 대신, 당분간 ‘독일투자공사’가 그 역할을 계승해 독일정부 대신 투자활동을 진행할 것.'”
“…..!!!”
미친.
독일정부가 그런 공문을 내렸다면 사실상 독일정부가 공인한 투자기관이 된 셈이잖아.
“카이저의 감사인사입니다.”
“…..감사합니다.”
독일황실의 대리인은 웃음으로 인사하고는 헤지펀드 본사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는 영혼이 빠진 얼굴로 대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탁ㅡ
“도련님. 스위스에 투자은행 법인을 신청하려는데, 설마 이번에도 독일결제은행 따위… 커흠. 독일결제은행같은 상호명으로 진행하실 예정은 아니시죠?”
“어, 아니지.”
나는 멍한 얼굴로 제임스의 말에 대꾸했다.
제임스는 내 말에 흠칫했다.
“독일결제은행이 아닙니까?”
“어, 독일제국에 들어갈 때는 다른 상호명으로 들어간다.”
“혹시 제가 상호명을 알 수 있겠습니까?”
“여기.”
촥.
나는 독일황실의 허가증을 제임스의 눈앞에 내밀었다. 현 독일제국은 사실상 프로이센 융커들과 독일황실이 권력을 틀어잡은 왕정국가나 다름없으니 황실의 권위는 무지막지했다.
황실의 허가증은 사실상 끝판왕인 셈이다.
고급진 용지에 흠칫 놀란 제임스는 허가증을 읽었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도, 독일제국 황실의 허가서.”
“내용은 읽었나?”
“…..예, 독일황실에게 독일투자공사라는 상호명을 사실상 하사받으셨군요.”
“그래. 게다가 독일정부가 국가지원사업을 축소하는 대신 ‘독일투자공사’에게 그 역할을 계승하게 한다는 공문까지 독일산업계에 뿌렸다고 하네.”
제임스가 내 말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럼 바이엘사는…”
“좆된 거지.”
“아.”
제약회사는 국가지원금에 목을 메는 사업 중 하나다. 특히, 바이엘(Bayer)처럼 현금이 매말라가는 제약회사에게는 더욱 오아시스같은 존재.
그들에게도 공문이 내려갔을 것이다.
‘독일투자공사’에게 투자를 받으라고.
건전한 투자는 기업을 활성화시킨다.
21세기, 스타트업을 양성시키는 투자기관. 엑셀러레이터라는 단어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투자기관은 투자활동으로 기업에게 현금을 불어넣을 수도 있지만.
투자기관 그 자체에게도 인맥, 컨설팅, 시장분석, 업계커넥션 등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오히려 투자기관이 더 장려한다.
자신들이 투자한 사업체가 번성해야 투자성공률이 높아지니까.
독일투자공사.
특히 헤지펀드와 각종결제은행, 트러스트들을 보유한 ‘디트로이트 모건’은 굉장한 메리트를 지닌 투자자이자 투자기관이다.
“반대로 말하면 목을 졸라 죽일 수도 있는 위치라는 것이지.”
라이벌기업을 인수해 합병시키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
게다가 간혹 지독한 엑셀러레이터 중에서는 자신이 투자한 라이벌 기업을 죽이려고 드는 독종들도 있었다.
선한 얼굴로 투자를 제안하고 경영권을 얻어내 사업부 단위로 해체시키는 것이다.
왜 엑셀러레이터로서 접근하느냐.
그래야 지분을 얻을 수 있으니까. 단순한 원리다. 엄한 데서 투자받았다가 눈뜨고 코베이는 거지.
소송이 일상인 미국은 더욱 험하다.
“도련님은 바이엘(Bayer)을 해체시켜서 화이자(Pfizer)에 흡수시킬 생각입니까?”
“아니, 내가 독일정부와의 계약 때문에 그런 악랄한 짓은 못하게 되어있어.”
독일제국도 바보는 아니다.
기술유출제한에 기업사냥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걸어놓았다.
투자기관으로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경영실적이 악화된 기업의 경영권에 간섭하는 건 허용되어있단 말이지.”
우선 바이엘의 경영권을 장악한다.
JP모건은행의 모건회장.
아버지는 바이엘이 개털이라는 내 정보에 눈깔이 돌아가 소송전의 폭풍공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법기술자들과 혐의란 혐의는 다 적용시켜 바이엘을 조지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고 있었다.
바이엘은 이거 못 버틴다.
너덜너덜해진 바이엘을 내가 집어삼킨다. 악화된 경영실적을 명분으로 경영권을 장악한다.
“그렇게 되면 ‘독일투자공사’는 부실해진 제약회사 바이엘의 사업부를 매각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최고의 타이밍.
아스피린의 개발이 끝나가는 시점, 바이엘은 소송전에 휘말렸다. JP모건의 폭풍같은 소송공세에 바이엘은 전역량을 소송에 집중해 인적자원과 자본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다.
아스피린 사업부는 당연히 중단.
매출이 없는 사업부. 그것도 연구가 중단된 사업부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매각할 수 있다.
나는 ‘아스피린’ 사업부를 화이자로 흡수시킬 생각이었다.
“솔직히 바이엘(Bayer)은 가죽껍데기만 남긴 채, 내장을 죄다 뜯어내 자산들을 매각해버리고 유상감자와 배당금으로 호로록 빨아먹고 싶긴 해. 주요 사업부는 다 화이자에 매각해버리고. 어차피 화이자도 독일계니까 연구진들도 잘 적응하겠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독일정부와 계약상 기업사냥은 제한되어있으니, 얌전히 아스피린 사업부만 팔고 화이자와 입수합병을 추진할 생각이다.”
“그럼 굳이 아스피린 사업부를 팔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반드시 화이자에 먼저 팔아치워야한다. 독일기업과 미국기업이 인수합병하는데 잡음이 얼마나 많겠냐. 파토나면 아스피린 사업부는 영영 못 먹을 수 있어.”
“그런데 도련님은 왜 아스피린 사업부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아스피린 사업부가 돈이 됩니까?”
아스피린.
제약계의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약물들이 있다. 제약회사에 매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벌어들이는 효자상품을 일컫는다.
그중 명예의 전당에 항상 손꼽히는 약품이 바로 이 아스피린이다.
진통제.
사실상 바이엘의 돼지저금통이다.
“뭐, 나중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저는 도련님을 믿습니다.”
“고마워.”
나는 구겨진 정장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이엘을 조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 화이자를 인수하러 가볼까?”
***
화이자(Pfizer)
235 이스트 42번가, 뉴욕.
“저희 화이자는 투자를 받을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
찰스 화이자.
화이자 제약회사의 오너가 직접 협상테이블로 나왔다.
“디트로이트 연준의장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저희는 현금이 넉넉하기에 자체적으로 성장할 동력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화이자는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주십시요.”
완강하네.
화이자는 굳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절하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투자’만 하러 온 것이 아니다.
21세기 실리콘벨리의 엑셀러레이터들처럼 그들을 성장시킬 의도로 접근한 것이다.
그야말로 바이엘과는 전혀 다른 의도로 말이다.
“화이자 씨.”
“예, 의장님.”
“혹시 화이자 씨의 비전은 뭡니까?”
“비전?”
아.
시기엔 비전이란 단어가 생소했나.
하긴 나도 뜬구름잡는 얘기는 필요 없었으니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그야, 모든 기업들처럼 해외진출입니다.”
“그렇죠?”
나는 깍지를 끼었다.
“하지만 화이자 씨도 알고 계실 겁니다. 독일제약회사들의 독점벽이 얼마나 높은지 말입니다. 스웨덴의 경우가 가장 심각한 경우라고 볼 수 있죠.”
“으음.”
화이자는 침음했다.
“디트로이트 의장님 말씀대로 입니다. 저희 화이자도 제약업계에서 독일제약회사들이 쌓아올린 독점벽에 대해선 인지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제약회사들도 한팔 거들어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하지만 독점벽을 쌓아올린 것은 독일-스위스계만이 아닙니다.”
“…..”
화이자는 조금 놀란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제약업계를 어떻게 이렇게까지 꿰뚫어보고 있는 건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나는 화이자의 심정을 납득했다.
‘하긴 투자자들도 시장에 대한 조사를 이렇게까지 하는 곳은 별로 없지.’
투자업계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많다.
화이자도 허접한 애들과 대거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럼 아까의 거절도 일종의 방어기제인가?
일리 있다.
애초에 투자를 받기 싫다면 협상장까지 나올 필요도 없이 문전박대했을 것이다.
이건 화이자가 내게 투자받을 의향이 있다는 신호.
이거, 잘하면 투자 받겠는데.
“프랑스의 파스퇴르와 벨기에의 솔베이도 만만치 않죠?”
솔베이 회의의 그 솔베이다.
아인슈타인과 세기의 과학자들이 집결해 토의하는 국제적 학술의 장.
솔베이는 벨기에의 거대 화학-제약기업이다.
파스퇴르 연구소는 워낙 유명하니 넘어가고.
“맞습니다. 업계에 대해 이렇게까지 통달하신 분은 처음 뵙는군요. 저희들도 정확히 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화이자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점점 얘기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스위스 제약회사들이 가장 버겁습니다. 그들의 막대한 자본력을 저희는 이길 수 없어요.”
제약회사가 연구자금 1조, 10조를 쏟아부어 신약을 연구하는 이유가 뭘까. 당연히 신약을 개발하면 연구자금보다 훨씬 큰 이득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제약회사들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몇번 신약개발 실패하면 개털돼서 문제지.’
문제는 이런 대규모 자본을 가진 독일제약회사들이 독점벽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화이자같은 신생기업은 이길 수가 없었다.
“저희는 막대한 투자금과 더불어 3가지 대형사업을 제안하려고 찾아왔습니다.”
손가락 세 개를 세웠다.
“꽤 솔깃하실 겁니다.”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세 가지나 됩니까?”
화이자는 눈을 껌뻑였다.
“예, 세가지 입니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사업계획서다.
하지만 내가 입으로 내뱉기 전, 화이자는 다급하게 나를 막아세웠다.
“잠, 잠시만요. 디트로이트 의장님, 만약 제가 의장님의 사업계획을 훔치려든다면 어쩌려고 제게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훔치셔도 괜찮습니다.”
“예?”
화이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들어도 따라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유출해도 이런 정신나간 사업계획, 저밖에 실행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화이자 씨가 제게 투자를 받아야할 차별성을 어필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니까요.”
“…..그건 그렇긴 하지만 대체 무슨 사업계획이길래.”
“화이자씨. 저는 말입니다.”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사업을 할 때는 국가와도 대거리하는 사람입니다.”
미안한데,
스케일이 좀 클 거야.
“국가….?”
“예, 독점벽을 깨뜨리고 사업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마 들어보시면 감이 좀 잡히실 겁니다.”
탁.
나는 3개의 사업계획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럼 제 IR을 시작해볼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