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169)
“독일해운사들이 백기를 흔들었습니다.”
베이론은 보고를 올렸다.
얼마 전 뉴욕항에서 벌어졌던 연방검찰과 상무부의 불시검문으로 독일해운사들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정확히 항복한 법인명을 알려줘.”
“우선 함부르크-아메리카 라인입니다. 그들의 최대주주인 베렌베르크 은행과 머크은행이 독일결제은행에 가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베렌베르크 가문이면 함부르크의 대가문 중 하나 아닌가? 수확이 꽤 쏠쏠하네.”
함부르크는 북해(Nordsee)의 문.
그곳에 위치한 은행들은 대부분 해운업에 한 발씩 걸쳐있었다. 북독일은행과 더불어 베렌베르크은행은 함부르크 금융계의 패자 중 하나였다.
“독일해운사 입장에선 영업정지, 강제해산명령, 강제처분명령 세 가지가 다 쏟아지니 목숨의 위기를 느꼈겠지.”
“해운사가 망하면 은행도 골치입니다.”
“그렇겠지.”
해운사는 성수기에 최대한 선박을 확보해 운송해야 유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선박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배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다.
“해운사는 부채비율이 어마무시하게 높지.”
“거대한 해운사의 경우는 부채비율이 낮긴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덩치가 커서 부채액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높죠.”
부채와의 전쟁이다.
그들은 강제해산명령까지는 수월하게 받을 것이다. 그냥 담합의 지주회사만 해산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강제처분명령은 다르다.
“강제처분명령으로 가뜩이나 높아진 부채비율이 터지게 생겼지. 이거 터지면 독일해운사 뿐만 아니라 독일은행들도 줄줄이 넘어간다.”
파산이다.
미국철강 90%를 유통독점한다면, 그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독일해운사들은 그 미친 짓을 벌이려고 했던 것이고.
“게다가 영업정지? 미국수출선이 독일해운사에겐 핵심매출원 중 하나인데 영업정지? 절대 안 되지.”
돈 나올 구석까지 사라진다?
진짜 망한다.
해운사뿐만 아니라 은행까지도.
독일해운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상무부까지 달려와 백기를 흔들며 필사의 그랜절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보증으로 묶여있다면 줄줄이 넘어가겠군요?”
“그래, 미국해운사였다면 내가 싸그리 헐값에 인수했겠지만, 상대는 독일해운사다. 해운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베를린궁이 반드시 개입하겠지.”
아무튼.
독일해운사들은 백기투항했다. 옵션을 줄여주는 대신 자신들에게 무엇이든 요구하라고 나왔다.
하긴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이놈들이 망한다.
“현재 함부르크-아메리카라인(HAPAG)와 NDL을 포함한 대형해운사들이 백기투항하고 상무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루프와의 연관성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철강들은 해운사에서 직접 독일 내수용으로 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크루프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었습니다.”
“그래….?”
나는 턱을 쓸었다.
아마도 크루프는 이번 사건으로 미국의 해운망을 전부 다 잃어버렸을 것이다. 연방검찰과 상무부, 백악관이 나서서 뿌리 채 뽑아버렸으니 당연하다.
해당 독일해운사들은 죄다 영업정지 처분과 강제처분 명령을 선고받았다.
“크루프는 아직 포기하지 못할 거야.”
“하긴. 포기하기에 그들에게 걸려있는 철강산업이 너무 크군요.”
“아마 몰트케는 이 사업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그 정도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인사가 아니야.”
“그럼 누구일까요?”
“글쎄.”
그림자무사가 한 명 있을지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걸 계획한 인물은 크루프에 철강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는 점이고, 이를 위해 끝까지 발악할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크루프의 철강사업부가 먹히면.
그들은 이제부터 독점철강회사인 우리들의 허가 없이는 철강공급 조차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마 이번 일로 독일대형해운사들이 해방되면 크루프는 다시 이들에게 저가수입을 요구할 거야. 크루프의 참모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그 자식은 정말 영악한 자식이군.”
독일대형해운사가 저가에 독일로 철강을 수출하는 건 오히려 우리들이 바라는 일이다. 애초에 덤핑으로 독일에 집어넣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 아닌가.
여기에 크루프는 자신을 끼워서 유통독점을 한번 더 꾀할 셈이었다.
이번에는 독일 본토에서.
재밌네. 이거.
아마 이 자식만 잘라낼 수 있으면 크루프도 나락으로 보낼 수 있다.
“영악한 쥐새끼다.”
데려올 수 있다면, 데려와야겠다.
“그럼 이사님, 크루프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무부 장관실로 직접 연락 넣어.”
나는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독일대형해운사들에게 블랙리스트를 넘기라고.”
블랙리스트.
독일대형해운사가 고객으로 받아선 안되는 법인과 개인들. 크루프와 연관된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이면거래다.
오직 독일대형해운사만이 미국과 해상무역망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걸 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크루프 제철사업부의 유일한 목숨줄을 끊는다.”
하지만 내 목적은 독일철강산업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티센을 중심으로 독일 철강얼라이언스를 맺는 것이지.
“독일대형해운사들에게 이것도 전해. 철광석을 대량으로 수입해 티센철강에게 전달하라고. 티센철강으로 덤핑을 시작한다.”
“예!”
전방위로 조인다.
크루프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아참.”
중요한 걸 까먹었다.
“베이론.”
“예, 이사님.”
“런던의 발틱해운거래소라고 알고 있나?”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해운거래소 아닙니까. 대부분의 선박거래가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상운송은?”
“아마 해상운송도 어느 정도 핸들링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물계약도 발틱해운거래소의 주요업무 중 하나니까요.”
발틱해운거래소.
전세계 대형선사(해운사)들과 선주(배주인)들이 모여 해상운송에 관련된 거래를 체결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대부분의 선박 관련 거래는 이곳에서 일어난다.
“발틱해운거래소에 US스틸 명의로 블랙리스트 하나 띄워.”
“블랙리스트요?”
“그들도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해운’거래소’다. 블랙리스트 정도, 저들도 하나씩 가지고 있어.”
“그건 그렇겠지만…”
“미국의 90%를 독점한 철강독점회사가 요구하는 블랙리스트다. 발틱해운거래소도 거절하긴 쉽지 않을걸.”
발틱해운거래소.
이놈들은 향후 US스틸의 덤핑사업으로 해운업의 전성기를 맞이할 거란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집단 중 하나다.
US스틸과 신일본제철.
대량의 철강으로 대량의 해상운송을 창출한다.
향후 대서양과 태평양의 해상운송을 지배할 철강괴물들을 발틱해운거래소가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20세기 초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시기인 만큼, 발틱해운거래소도 의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향후 해상운송을 틀어쥐고 흔들 내가, 미친 척 미국에 국제해운거래소라도 설치한다면.
발틱해운거래소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게 되겠지.
그들은 나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블랙리스트는 미국상무부를 통하지 말고 직접 전달해. 국가적으로 끼어들어서 압박하면 오히려 역효과난다.”
일종의 상도덕이자 매너지.
자유무역의 발틱해운거래소에겐 국가가 아닌 기업으로 다가가는 것이 호감포인트일 것이다.
굳이 적대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리고 블랙리스트는 일단 전세계 대형해운사들에게 다 뿌려. 큐나드해운은 우리랑 친하니까 바람잡이 역할을 잘해줄 거야.”
“예, 그런데 블랙리스트에 올릴 법인들은 정해져 있습니까?”
“어.”
나는 블랙리스트를 집어들었다.
“1번 타자는 크루프다.”
난 한 번에 한 놈만 팬다.
크루프 뒤질 때까지 이악물고 뒤지게 팰 것이다.
“이 시간부로 크루프(Krupp)는 전세계 해상운송을 이용할 수 없다.”
락(Lock).
우선 바닷길부터 철저하게 막는다.
“재미없게 벌써부터 쓰러지지 말라고.”
***
“이런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게야!”
와장창!
몰트케가 집어던진 집기들이 허공로 비산했다. 와장창 깨지며 관저 내부가 엉망진창으로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우리 크루프의 무역망이 죄다 삭제되어버린 건가!”
몰트케의 몰골은 최근 며칠만에 매우 수척해졌다.
그도 그럴 게 베를린궁의 명령을 받고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크루프로 영전해왔는데, 하필이며 자신이 맡았을 때 저가경쟁으로 크루프가 흔들리는 것이란 말인가.
앉아있는 상태로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란 말이다!”
“저… 준장님.”
“자네는 좀 닥쳐!”
쾅-!
“크아악!”
쿠당탕!
굵직한 지시봉이 부관의 얼굴을 향해 전력으로 휘둘러졌고, 얻어맞은 부관이 널부러졌다.
핏물이 한 차례 쏟아졌다.
퍽! 퍽! 퍽! 콰직! 퍽!
몰트케는 무아지경으로 부관을 개처럼 두들겨팼다. 광기어린 눈빛으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그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부관을 내려다보았다.
“…..내게는 이딴 무능한 자식만 부관이랍시고 주어지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몰트케는 주먹을 으스러질 듯이 꽉 움켜쥐었다.
“대체 왜 내 창창한 앞길을 막는 건가.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란 말이야! 카이저 폐하를 어찌 뵙는단 말인가! 으아아악!”
콰직! 콰직!
부관을 향해 의자를 집어던졌다. 부관은 이제 경련을 일으키며 움찔움찔 떨었다.
“허억….. 허억…..”
몰트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부관을 불렀다.
“부관.”
“으으으… 으으윽….”
“부관!!!”
“예, 예에!!!”
부관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절뚝이는 다리로 몰트케 앞으로 다가갔다.
“보고해.”
“보고는… 방금…”
콰직-!
“으아아악!”
“보고하라고 이 자식아! 도대체 어떤 개자식이 나를 이 꼴로! 이런 몰골로! 크루프를 이 몰골로 만들고 있냔 말이다!!!”
멱살을 쥐고 퍽퍽 흔들었다.
부관은 실 끊어진 인형 마냥 몰트케의 손에 흔들어졌다.
“이 사실이 베를린궁의 카이저 폐하께 들어가면 나는 그날로 끝이다. 빨리… 빨리 수습해야 해.”
몰트케는 불안감에 휩싸여 손톱을 물어뜯었다.
“유능한… 유능한 인재는 없나? 나를 도와줄… 그런 유능한 인재가 필요해……”
벌컥.
“크, 큰일입니다!”
그때 몰트케의 집무실로 크루프 임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국연방정부의 상무부에서 독일대형해운사에 대한 처분을 발표했습니다! 독일무역협회가 뒤집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 모든 일의 배후엔 US스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희 크루프가 인수한 무역망이 전부 삭제되었습니다. 해당 중소형 선사들은 죄다 영업정지를 당했고, 강제처분명령을 당해 베를린은행권에서 독촉전화가 쏟아집니다…!”
“발틱해운거래소의 움직임도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이쪽도 미국상무부나 US스틸에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그만…… 그만!!!”
몰트케는 어지러운 정보들의 홍수에 정신을 못 차렸다. 광기어린 눈빛에 임원들은 숨을 들이켰다.
“핵심만 말해….핵심만….”
“예, 예.”
“주종자는 누구나. 적의 수괴가 누구냔 말이다.”
“예?”
“우리 크루프의 적을 통솔하는 적장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디, 디트로이트….”
물어뜯을 듯한 몰트케의 광기에 임원들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디트로이트 모건입니다!”
몰트케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눈에 핏줄이 올라오며 실핏줄이 터지고, 핏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주르륵.
“디트로이트….?”
몰트케의 눈알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로 피가 쏠린다.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디트로이트….디트로이트….이…이….!”
핏물이 찬 눈에 광기가 번들거린다.
뒷목이 순간적으로 꽈악 당겼다.
“으…으윽…으아아아악!”
우당탕.
몰트케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뒷목을 붙잡고 졸도했다.
“회장님!!!”
***
“칩거하셨다고?”
베를린.
독일철강협회(VDEStl) 본부.
동북부 지부 이사회.
루르지방의 철강산업 이사들이 한자리에 집결했다. 베를린궁에서 꽂은 융커가 크루프를 지배하는 만큼, 독일철강협회 동북부지부의 이사회는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하지만 몰트케가 불참했다.
그는 자신의 관저에 칩거한 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부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격이 크신 모양입니다.”
“아니, 그보다 자네는 괜찮나? 얼굴이 완전 걸레짝이 되지 않았나!”
“실패의 대가로 ‘체벌’을 좀 받았습니다.”
체벌.
그 단어에 이사회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현 독일철강협회와 크루프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부관만큼 훌륭한 인재는 없다는 것을.
이번 작전은 완벽했다.
다만 상대방이 너무 거대한 괴물이었다.
90%를 독점한 미국철강회사와 백악관, 연방검찰, 상무부가 손을 잡고 작정하고 쳐들어온 거다.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이걸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우선 없다.
“독일무역협회도 자신들이 당장 받은 피해가 너무 커서 괜히 독일철강협회에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너무 침울해있지 말게.”
“죄송합니다.”
“쓰읍. 사과 말게. 우린 당장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해. 몰트케처럼 무책임… 큼큼. 시류와 조금 먼 사람보다는 말일세.”
몰트케는 그래도 프로이센의 융커다.
함부로 험담해도 될 인간은 아니었다. 후환이 두려웠다.
“하지만 당장 쌓여있는 문제가 한가득입니다! 베를린은행권에서 독촉전화가 쇄도하고 있습니다. 자들은 우리들의 사정 따위 봐주고 있지 않습니다! 몰트케 준장께서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독일철강협회 동북부지부는 크루프가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국유화까지 된 탓에 최종결정권자가 몰트케가 되어버렸다.
최종결재를 몰트케에게 받아야하는 것이다.
부관은 한숨을 쉬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몰트케의 전언을 전했다.
“…..국유화된 회사는 베를린궁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감히 은행따위가 추심할 자격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뭐?”
독일철강협회의 이사회는 방금 자신들이 무엇을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소름끼치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쾅-!
“그게 뭔 헛소리야! 베를린은행권이 고작 국영기업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독촉을 하지 않을 것이란 건 도대체 어떤 꽃밭인 겁니까! 몰트케 준장은 현실을 보려하지 않고 있어요!”
“백번 양보해서 국유화된 크루프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칩시다! 그럼 우리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국유화된 국영기업 크루프를 제외하고는 전부 민간의 철강회사들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쾅-!
“우린 그동안 크루프를 신뢰하고 그대들만을 믿고 따라왔소! 그런데 그 신뢰에 대한 보답이 토사구팽입니까? 장난해요?”
“이보게. 부관은 열심히 하지 않나. 몰트케 준장이 나쁜 것이지.”
“그 인간 지금 칩거했다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독일철강업계에 대한 크루프의 배신입니다! 이래서야 누가 크루프를 믿어주겠습니까! 나만 살면 된다니, 내 두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군!”
철강협회 이사들은 얼굴을 붉게 붉히고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들은 지금껏 크루프를 믿고 따라왔는데 날아온 답변은 너네가 알아서 하세요다.
이 이상 크루프가 독일철강협회를 주도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문제는 더 있었다.
“여러분. 지금 그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독일무역협회로부터 저희 독일철강협회에게 비밀리에 밀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꿀꺽.
참을 삼켰다.
“발틱해운거래소에 독일철강업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합니다. 특히 크루프의 경우는 블랙리스트 최상단에 위치해 앞으로 발틱해운거래소에 발도 못 대게 생겼다고 합니다.”
“블랙리스트?”
부관은 멍해졌다.
크루프가 블랙리스트 최상단에 올랐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 잠시만요. 대체 무슨 블랙리스트 입니까? 발틱해운거래소가 막힌다는 건 무슨 농담이십니까? 그곳은 전세계 해운거래가 발생하는 곳이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한 이사가 무뚝뚝하게 답했다.
“당분간 크루프는 해상운송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봐야겠군. 이젠 크루프에게 오직 육상수송만 남았다는 것이다.”
부관의 동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사회의 그 누구도 크루프를 동정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토사구팽을 당했는데 누가 크루프를 동정할까. 역으로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속출했다.
하지만 곧 자신들의 사태를 깨달았다.
“이보시오, 부관. 이 계획을 입안한 사람은 당신 아니오?”
“예?”
“막말로 당신이 짠 이 계획들 때문에 우리까지 엮여서 다 죽을 판 아니오! 발틱해운거래소가 해운을 금지하고! 미국독점철강회사가 덤핑으로 쏟아내면! 독일철강회사들은 다 굶어죽을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데 이게 다 당신이 입안한 작전들 때문 아니오!”
“……아니.”
“책임지시오!”
부관은 멍해졌다.
이 자식들 지금 무슨 헛소리지.
분명 작전을 입안한 것은 자신이었다. 몰트케가 제멋대로 구니 자신이 크루프의 업무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당 작전은 독일철강협회의 모두가 만장일치로 찬성하고 입안한 작전이다.
‘지금 와서 꼬리를 자르겠다고?’
부관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몰트케가 칩거로 배신함에 이어 독일철강협회가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아예 책임을 뒤집어 씌워 담가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여러분도 다 동의하시지 않았습니까!”
“몰트케 준장이란 뒷배를 우리가 어떻게 무시하나. 다 강압에 의한 처사였네. 생각해보면 자네는 그 몰트케의 앞잡이 아닌가? 배신당한 건 우리겠지!”
“하! 아니 지금 뭐라고…”
“미안한데 자네가 다 책임을 뒤집어 써줘야겠어. 우리는 더 이상 크루프를 신뢰할 수 없어. 협회를 꾸리고 몰트케 준장에게 최종결정권을 넘겨줬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네.”
험악해진 분위기.
독일철강협회의 이사들은 아예 원망 섞인 표정으로 부관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탈퇴하겠네.”
“예?!”
“독일철강협회를 탈퇴하겠다고. 더이상 못 어울려주겠군. 사실 자네는 이제 갓 사회초년생들이 된 청년 아닌가. 우리가 경험도 없는 자네의 말을 따를 이유가 있나? 게다가 철강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군인 아닌가. 못 믿겠어. 더이상.”
독일철강협회.
구성원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루프와 깊게 얽힌 철강회사들은 차마 엉덩이를 띄지 못했지만 대신 눈에 핏줄을 세우고 노려보았다.
“이….이….!”
부관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그간 몰트케에게 온갖 고초와 모욕, 체벌을 참아가며 독일철강협회와 크루프를 어떻게든 상생시키려고 노력했던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이딴 소인배들의 뭐가 좋다고 자신의 한몸 불사르고 있었던 것인가.
책임을 씌우겠다.
이것은 손해배상청구고 무엇이고 간에 독일법정에 세워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겠다는 선언이었다.
베를린궁의 처벌이 오직 자신에게만 떨어지도록 뒤집어씌우고, 내 희생 하나로 책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였다.
나만 담구면 저들은 살아날 수 있다.
미국도 디트로이트도 베를린궁도 용서해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있었다.
그 환상 탓에 자신은 버려진다.
쾅-!
독일철강협회 이사회실 문이 거칠게 닫혔다.
“이 개자식들아!!!”
부관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렸다.
“흐음. 디트로이트 모건이 말한 크루프의 그림자무사가 저녀석인가.”
독일철강협회 동북부 이사회의 구석.
티센회장은 잔잔한 미소를 띄운 채, 구석에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뭐, 좋아. 일단 계획대로 크루프의 텃밭. 독일철강협회가 분열되었군. 지금은 이걸로 만족이다.”
크루프계열 철강회사들이 담합을 깨고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이 갈 협회나 집단은 더이상 독일 철강얼라이언스밖에 없었다.
독일철강협회를 제외하고 제일 큰 철강연합이 이곳이었으니.
조금 소름끼치지만.
다 디트로이트 모건의 말그대로였다.
“회장님, 철광석들이 함부르크항에 대량으로 도착했다고 합니다.”
“타이밍 기가막히는군.”
하하.
때마침 덤핑을 위한 재료들까지 모였다.
티센회장은 즐거운듯 작은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할까요?”
“당장 티센으로 돌아가서 경영진에게 전해주게.지금부터 제철소 풀타임으로 돌리고, 덤핑을 쏟아내라고.”
본격절인 파멸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황금같은 기회를 틈타, 티센은 독일의 독점철강회사로 우뚝 올라선다.
철강얼라이언스(VST).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다 쓸어버리고, 다 먹어치워.”
이제 크루프(Krupp)의 시대는 끝이다.
“우린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