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35)
“먼저 경고부터 해야겠네요.”
워싱턴 D.C.
미국 재무부 청사.
국장급들이 모인 회의실에서 프랑스 기만 사태에 대한 토의가 불처럼 뜨겁게 진행되었다. 미국이 받은 외교적 조롱과 모욕에 열받은 국장급들은 오직 프랑스를 조질 생각만으로 뇌를 풀충전한 채 회의에 참석했다.
다들 프랑스 담굴 생각밖에 없었다.
“일단 다들 진정하시고요.”
나는 모두를 진정시켰다.
프랑스는 단순히 주먹지르고 욕부터 박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단 열폭해서 주먹부터 나가기보단, 경고를 해서 기를 꺾어놓아야한다.
경고를 어떤식으로 해야할까.
“러독 불가침조약을 안다고 무지성으로 국무부를 통해 꼽주고 프랑스 결제은행의 돈으로 볼기짝부터 날리면 프랑스가 미국에게 거품물고 발작할겁니다. 그런 흐름은 원하지 않아서요. 경고만 할겁니다.”
“……”
국장급 표정들이 썩어들어갔다.
하긴 나같아도 프랑스에게 고작 ‘경고’따위는 보복행위로서 약하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갑자기 감정이입되네.
“다만 경고에…조금 연출이 필요하겠죠.”
뚝-!
내 손에 쥔 펜대가 부러졌다.
그러자 회의실은 곧바로 조용해졌다.
음.
“뭐, 경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복행위치고 약하다고 싫어하실 것도 없고요.”
나는 쪼개진 펜쪼가리를 손으로 쓸어담으며 웃었다. 국장급들은 더욱 긴장한 얼굴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저희는 자유주의의 횃불인 미합중국이고, 국제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국가입니다. 그동안 제가 해온대로만 해도 됩니다. 충분히 ‘신사’적이지 않습니까. 프랑스 기를 꺾어놓을 경고 정도는 될 겁니다.”
“…..?”
숙였던 고개들이 올라온다.
국장급들은 순간 뭘 들은거지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신사’적이라고?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제가 이상한 말을 했습니까?”
내가 다시한번 묻자, 국장급 중 눈치빠른 이들은 눈을 부릅뜨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눈치가 빠르네. 내가 말한 ‘신사’의 의미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다른 국장급들도 뒤늦게 감탄사를 터뜨리며 웃었다.
그래, 그런 의미다.
지금까지 해온대로. 좋지 아니한가.
“예, 경고부터 날리고 시작하는건 좋은 생각 같습니다! ‘장관님 방식대로’만 경고를 준다면 프랑스애들도 좋아하다 못해 죽지 않겠습니까.”
이제야 프랑스의 골골댈 미래가 그려지는지, 얼굴색이 점점 밝아졌다.
그래, 웃어야 복이 들어온다고.
뉴욕 금융서비스국 국장인 제임스는 진작 뜨거운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상체를 당겼다.
“예,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경고를 날릴 방법을 좀 고안해봤는데 말입니다.”
나는 조삼스레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빨간색 표지로 된 서류철이 끈적이는 핏ㅁ….아니 태양같은 정열적인 포스로 불타오르는 듯했다.
하루동안 밤샘작업을 하며 예술의 혼을 갈아넣은 대프랑스용 경고 기획이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잡숴봐.
내가 요리(?)했지만, 꽤 맛나다고.
초승달처럼 휜 눈으로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
“프랑스 결제은행으로부터 소포입니다.”
며칠뒤.
프랑스 재무부.
델카세 재무장관의 장관실로 소포 하나가 배송되었다. 뜯어보면, 보고서 한부가 들어있었다. 요즘 미국은 보고서를 이렇게 보내나?
델카세는 신기함 반 불편함 반의 표정으로 보고서를 집어들었다.
“미국 재무부가 진짜 발신인이군.”
주소지만 프랑스 결제은행의 주소를 쓴 모양이다. 사실상 미국 재무부에서 보낸 보고서인 셈이다.
“…..하.”
꿀꺽.
델카시 장관은 또 무슨 폭탄이 들어있을까 긴장하며 서류철을 열었다. 재무장관회의에서 본 모건장관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프랑스대표로 참석해 재무장관회의에서 난동을 부려도 동요한번 없이 상황을 파악하고 손익을 따지는 인물은 결코 예사위인이 아니다.
솔직히 당시 모건장관의 감정을 싹 제거한 계산적인 눈빛은 좀 소름이 돋았다.
“또 무슨 내용으로 나를 놀래키려고….”
눈감고 심호흡을 하고 눈을 다시 떴다.
서류철로 시선을 내리자 빼곡한 글씨들과 그래프들이 편집증적으로 정돈된 보고서 양식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얄밉게도 읽기 너무 수월했고, 단숨에 끝까지 속독으로 읽어버렸다.
“음?”
델카세는 서류철을 덮고 한번 뒤집어보았다.
하지만 보고서는 그것으로 끝이었고, 다시 읽어봐도 미국 재무부가 발송한 보고서였다.
왜 하필 보고서 양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는 수월했으니….뭐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문제는 내용이지.
“조건이 너무…후한데?”
델카세는 안경 속으로 눈을 비비며 의심했다.
보고서는 사실상 프랑스 결제은행에게 지불해야할 프랑스정부의 대금청구서였고, 물자들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거래조건이 후했다.
……좀 호구라고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다.
탕-!
손바닥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델카세는 비장하면서도 긴장감에 경직된 표정으로 보고서를 내려보았다.
이건 아니다.
“이상하다.”
너무 이상하다.
미국 재무부의 수장인 모건장관은 월스트리트 금융가를 제패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다. 시티오브런던의 금융가들조차 모건장관에 대해선 엄지를 치켜세우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자본주의 악귀들이 우글거리는 복마전을 제패한 인간이란 뜻이다.
인간? 아니, 대악마지.
‘그런데 이렇게 후한 조건으로 물자를 공급한다고?’
사탄이 크리스마스에 선물배송하는 소리가 따로 없었다. 독을 탔겠지.
장담한다.
이 청구서 겸 보고서에는 모종의 위험한 함정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없으면?
없으면 없는대로 그게 더 무섭다.
“……”
하지만 무려 프랑스 결제은행과 미국재무부에서 보낸 소포다. 이 보고서를 상부에 알리지 않고 커트할 방법은 없었다.
“…..커트를 쳐야되는데.”
커트치지 않고 엘리제궁까지 올라간다?
결과는 안봐도 뻔하다.
대통령은 잔뜩 흥분해서 재무부에게 당장 받으라고 지시하겠지. 거부하면 프랑스 중앙은행으로 압박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갈 인간이었다.
안돼.
안된다.
안되는데…
커트할 방법이 없다.
델카세는 눈을 꽉 감았다.
“…..보내자.”
애초에 애국심따위 아침밥에 말아먹고, 미국의 호구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지 않았나. 전쟁이 일찍 끝날수만 있다면 델카세는 과정이 어떻든 상관었다.
하지만 델카세가 모르는 점이 있었다면,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미국을 등쳐먹으러 했다는 사실이었고.
만약 델카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절대로 엘리제궁에 넘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뭔가 걸리는데…이 불길한 예감은 대체…뭐지?”
한손을 꼼지락 거렸다.
델카세는 왠지모를 음습한 기운이 전신을 옮아메는 불길함을 느끼며, 대통령의 엘리제궁으로 입궁할 채배를 갖추기 시작했다.
“….잘 되겠지.”
잘 되야된다.
제발.
***
엘리제궁.
대통령이 기거하는 프랑스 궁전으로 온갖 부처들의 보고서들이 제출되고 취합되어 정책을 결정하고 대계를 꾀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기관이었다.
고위공직자들과 장관들도 들락거리는 엘리제궁은 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고, 계엄령이 선포된 현재는 고위급들과 보좌관들로 복도가 바글거렸다.
“오! 낭보로군!”
대회의실.
외무부 고위급들과 대통령이 자리한 회의실로 불려온 델카세 재무장관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대통령은 보고서를 빠르게 속독하더니, 얼굴이 활딱 펴졌다.
‘젠장. 이럴 줄 알았지.’
“각하, 죄송하지만 이곳엔 함정이….”
“프랑스의 외교적 승리입니다!!!”
델카세의 말을 끊고 외무장관이 시끄럽게 외쳤다. 마치 자신의 공이란 듯 어깨가 치솟으며 대통령에게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각하, 역시 되지 않습니까! 이런 ‘호의’적인 조건을 줄 것이라고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하, 외무장관의 계획대로 미국이 움직여주었군. 시민들은 프랑스를 위해 헌신하는 그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할 걸세.”
“아닙니다! 다 조국을 위한 제 사랑일 뿐입니다.”
외무장관은 외교관답게 곧바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았다.
겸손함을 챙기고 싶어하는 듯 보였지만, 이 자리의 유일한 외부인 재무장관은 공감해주고 싶어도 문맥 자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각하.”
“어, 재무장관 무슨 일인가.”
“외무장관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의 헌신이 프랑스를 구원했다는 뉘앙스로 들립니다만, 제 추측이 맞습니까?”
“아, 그대는 모르겠군. 우리끼리만 들떠서 미안하네.”
“…..예.”
불길함.
델카세는 소포를 처음 받았을 때처럼, 살떨리는 불길함을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외무장관이 무슨 꾀를 내어 미국의 양보를 이정도로 호구처럼 받아냈다?
외무장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델카세가 봤을 때 외무장관은 결코 모건장관을 이길 수 없는 깜냥이었다.
자본주의의 화신같은 그 인간에게서 ‘돈’을 뜯어왔다고?
제정신인가.
설령 진짜 뜯어왔더라도, 기겁을 하며 되돌려줘야하루판에 좋아하고 있는 꼴이 가관이었다.
‘……설마.’
미국을 등쳐먹거나…막 그런 일은 아니겠지.
설마…아니겠지만, 모건장관이 그딴 얄팍한 수에 넘어갈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외무장관도 모건장관의 평판을 알고 있다면 조심했겠지.
델카세는 현실을 부정하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미국은 러독 불가침조약을 알지 못할테니, 전쟁리스크를 고려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했습니다. 프랑스 결제은행의 허가와 권한확대를 조건을 추가해, 담보가치를 높게 불렀더니, 덜컥 물어버리는군요.”
마치 어린 동생을 골려줬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외무장관.
델카세는 당장이라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 새끼의 얼굴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을 수 없었다.
‘……실수다.’
이딴 머리꽃밭의 엘랑비탈들에게 기대를 한 델카세가 바보였다. 애초에 프랑스를 탈출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탈출하고 싶다.
빨리 전쟁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런데 이 미친놈들이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미국이 과연 모를까?’
제발 몰랐으면 좋겠다.
그래야 수습할 시간이 생긴다. 미국이 알기전에 우리가 먼저 수습해야 그나마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대통령과 외무장관은 그런 현실도 모른채 하하호호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훈훈한 대화를 이끌어갔다.
물론, 델카세에게는 지뢰밭에서 춤추는 꽃단 미친놈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델카세는 들뜬 분위기에 빨리 찬물을 붓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각ㅎ…..”
똑똑.
대회의실의 문으로 노크소리가 들렸다.
시끌벅적하던 내부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대통령은 보좌관에게 속삭였고, 보좌관으 곧바로 문으로 달려가 살짝 열어 밖에온 인물과 속닥거리더니, 작은 소포 하나를 들고 왔다.
‘……소포?’
이 타이밍에?
델카세는 슬쩍 소포의 주소지를 흘겨보았고, 쫙 소름이 끼쳤다.
발신인은 프랑스 결제은행.
주소지는 정확히 이 방을 가르키고 있었다.
지금 이공간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개다가 우체국의 특성상 소포를 배달하는데 몇일은 걸린다. 그런데도 이 회의실에 정확히 소포를 꽂아넣었단 소리는…..
‘….조작되었다!’
보통 소포가 아니다.
하지만 엘리제궁도 생각이 없는건 아닌지, 소포는 한차례 뜯어져있었다. 대통령은 소포를 받아들었다.
“프랑스 결제은행으로부터 온 소포인가보군.”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외무장관이었다.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외무장관이 이 판을 설계했으니, 그가 열어보는게 맞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었다.
델카세는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이정도로 치밀한 정보조직력을 갖춘 정보기관이 러독 불가침조약을 모를리가 없지 않나!’
델카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결코 입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았다. 아니, 입이 바싹 말라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저 소포상자엔.
외무장관은 익숙해보이는 보고서 서류철을 꺼내들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검은색 서류철이었던 이전 소포와는 달리, 이번엔 소름끼치는 빨간색 서류철이 담겨있었다.
이건 외무장관도 좀 불길하게 보였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붉은색 서류철?”
고개를 갸웃하더니, 외무장관은 보고서를 활짝 열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 보고서를 읽는 듯 싶었지만…
곧 돌처럼 굳어버렸다.
“장관?”
대통령은 돌처럼 굳은 외무장관을 보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빳빳하게 굳은 외무장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점점 혈색이 사라지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우당탕.
새된 비명소리.
외무장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보고서를 떨어뜨렸다. 덜덜 띨리는 손으로 주우려고 하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델카세 자리까지 들렸다.
피가 차갑게 식었다. 식은땀이 흐른다.
대체 무엇이 적혀있길래.
외무장관이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란단 말인가.
벌벌 떤다.
실금까지 지리는 것을 보니, 그는 진심으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길래.’
외무장관의 패닉에 모두 정신이 날아간 사이, 델카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걸어가 외무장관이 떨어뜨린 서류철을 주워들었다.
델카세는 서류철을 펼쳐 슬쩍 제목을 흘겨봤고, 눈이 찢어질듯이 부릅떴다.
“…..미친!!!”
[러독 불가침조약]소름끼치는 제목.
델카세는 순간 서류철을 떨어뜨릴 뻔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럴수밖에. 이건 그냥 러독 불가침조약에 대한 보고서 따위가 아니었으니.
무려 러독 불가침조약의 사본이 동봉되어있었다.
차르의 서명과 카이저의 서명.
두 황제의 서명사진까지 친히 동봉되어있었다.
아무런 경고도.
아무런 욕도 없이.
사본과 사진만 보냈다.
하지만 그게 더 공포스러웠다.
“…어으…어으아…”
쿵.
외무장관은 그자리에서 혼절했다.
델카세도 혼절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너무도 충격적이라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갔다.
삐이이…..이명이 고막을 찢는다.
덜덜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다.
“…..알고 있었다.”
미국은 알고 있었다.
러독 불가침조약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프랑스가 등쳐먹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프랑스 결제은행 명의로 이런 소포를 두개 보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아…아아….”
보고 말았다.
델카세는 떨리는 손으로 보고서 마지막장을 뒤집었고, 그곳에는 성경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최후의 만찬.
예수의 대사로 알려진 복음의 구절. 하지만 원래 예수의 뜻과는 정반대로 들어맞는 소름끼치는 구절. 대체 서류철은 왜 핏빛의 붉은색인가.
하필이면 왜 성경구절 중에서도 피의 구절이 적혀있는 것인가.
반어법이다.
델카세의 떨림은 점점 심해져갔다.
서류철이 점점 강해지는 악력에 찌그러질 정도로.
끈적-
온몸의 털이 삐쭉 솟아올랐다.
서류철을 집은 엄지손가락으로 소름끼치는 촉감이 들었다. 끈적이는 무언가가 엄지손가락에 달라붙었다.
델카세는 정체불명의 점착물에서 천천히 엄지손가락을 떼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엄지손가락을 뒤집어보니,
피.
마지막 종잇장 끄트머리엔 질척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으..으아…으아아아아악!!!!”
탕-!
델카세는 비명을 지르며 서류철을 벽에 집어던졌다.
이는 악몽이다.
깨어날 수 없는 최악의 악몽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