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85)
펀드(Fund).
펀드란 투자기관이 운용하는 금융자산이다.
신탁회사들이 점령하던 시대를 공황으로 끝내고, 디트로이트 도 모건이 유행시킨 새로운 형태의 자산운용이었다.
헤지펀드는 혁신이었다.
전세계가 디트로이트의 헤지펀드에 열광했고, 펀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부실한 금융규제로 인해 무방비해진 펀드가 얼마나 환매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는지를 말이다.
환매(換買).
환매란 말그대로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가 ‘돈내놔’를 시전하는 것이고, 펀드가 절대적으로 경계해야할 리스크였다.
“내 돈 내놓으라니까!”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수백명의 투자자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펀드운용사를 점거했다면, 펀드는 환매에 관한 계약사항을 확인하고, 환매를 진행해야한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환매가 불가능하다니까요! 뒤로 가서 저희 약관이나 특약조건들을 확인하고 다시 오세요! 나가라고!”
쓰레드니들(Treadneedle).
영란은행이 위치한 시티오브런던의 금융가. 런던증권거래소를 포함한 증권가와 은행가의 금융기관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최고의 금융거리 중 한곳이었다.
평소에도 만명단위의 유동인구가 북적이는 시티오브런던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차이점이 존재한다면, 정장을 입고 여유를 가장하며 인텔리한 분위기를 뽐내는 재수없는 금융인들의 걸음걸이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왜 뒤로가야돼! 내 재산 내가 찾아가겠다는데! 지금 영국전체가 파산하는 분위기란 걸 누가 몰라?!”
터프하고, 입이 걸걸하며, 매너란 찾아볼 수 없는 하층민들부터 어울리지도 않는 낯선정장을 껴입은 졸부들, 그리고 대부분의 인파를 차지하는 중산층 자산가들이 몰려들었다.
“고객님! 지금 벨푸어총리께서 어제 대국민사과와 함께 런던금융은 안전하다고 공언하셨습니다. 선전에 총리까지 나와서 열올리며 보장한다는데, 왜 이러십니까!”
펀드사 직원은 짜증이 솟구쳤는지, 말투를 사포로 문지르는 듯 점점 어조가 거칠어졌다. 어느덧 손때를 타고 너덜너덜해진 신문지는 직원이 얼만큼의 고객을 상대하고 있는지 가늠하게 만들어주었다.
지친다. 지쳐.
펀드사 직원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너, 너 직원이 말투가 왜그래? 내가 넣은 자금이 얼만줄은 알아?! 너 사장 나오라고 해! 당장!”
“저희는 약관과 특약, 그리고 메뉴얼에 따라 대응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데스크에서 해결하는게 보통이고요. 나가주세요. 가드부릅니다!”
싸늘하게 표정을 굳힌 직원은 으름장을 놓았고, 가드들은 줄세우던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그들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고객들은 눈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에이! 퉷! 어디한번 끝까지 가! 내가 정부에서 확성기로 싸지르는 거짓말 한두번 본 줄 알아?! 나는 내 전재산이 걸려있다고!!!”
갑자기 달려든 고객은 직원의 멱살을 쥐었다.
“으아악!”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 돈 내놔! 내 돈! 내 전재산을 다 휴짓조각으로 만들셈이야! 제발, 제발 좀 돌려달라고!”
다급해진 가드들은 뛰는 속도를 높여 재빠르게 달려와 고객을 직원과 분리해 문밖으로 내던졌다.
쾅-!
입구가 닫혔다.
하지만 그 꼴을 보고도 몰려든 고객들은 움츠러들기는 커녕 환매를 못받을까 더욱더 다급해졌고, 악착같이 펀드사 본점으로 달려들었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자산운용사들이 속출했고, 두건을 두른채 화염병을 든 약탈꾼들에게 털린 근융기관들도 속출했다.
런던시티경찰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허공에 총성을 울렸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런던시내의 은행가들은 불처럼 번지는 뱅크런에 터져나가고 있었으니까.
“환매가 막혔어요! 지금 펀드사들이 뒷골목 용역들까지 매수해서 고객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제1금융권도 철제셔터를 내리고, 런던시티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예금한 돈을 찾아가는게 불법이랍니다!”
“자산운용사들은 심지어 비은행권입니다! 그놈들은 최소한의 은행법의 규제조차 받지 않아서 저희를 내쫒아도 불법이 아니랍니다!”
삐이이익!
다른 종류의 호루라기소리.
런던시티경찰의 호루라기보단 울림이 크고, 귀에 때려박는 공격적인 음질이 런던시내로 터져나갔다.
“헌병대다!”
왕립 육군헌병대.
런던시티경찰으로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위해 동원된 육군헌병대는 소총을 메고 길거리를 순찰하기 시작했다.
폭도들을 향해 총격을 쏘진 않았지만, 진압봉과 방패를 들고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뼈가 부러지고, 피가 철철 쏟아지는 보도블럭은 절규가 울려퍼졌고, 검붉게 물들었다.
퍽! 퍽!
“으아아악!”
“도망쳐! 도망쳐! 육군헌병대가 폭도들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다! 휩쓸리기 싫으면 도망쳐! 도망치라고!”
전시내각.
전시의 특수권한을 손에넣은 총리는 강력했다. 전시내각은 정책결정이 평시내각보다 훨씬 빠르고 신속했으며, 범위도 넓고 권한도 막강해진다.
“총리가 사람들을 죽인다! 다들 도망쳐!”
자산운용사들, 신탁기금들, 펀드들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환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환매를 해줘야긴 하니, 채권들은 줄줄이 시장으로 쏟아져나왔고, 쏟아진 채권들은 곧바로 투자부적합 판정의 채권들마냥 헐값에 매매되었다.
“저, 저 이사님, 아무래도 시장상황이 이상합니다. 우량채권들도 지금 시장에 쏟아내면 쓰레기채권(정크본드)처럼 거래되고 있습니다! 제값은 커녕 휴짓조각으로 나락가고 있습니다!”
“암스트롱 휘트워스와 비커스까지 흔들리니까 당연하겠지! 지금 영국엔 우량채권따윈 존재하지 않아! 미국신용등급으로 치면 C, D 투성이라고!”
우량기업들의 선두주자들이 다 파산하거나, 파산위기에 내몰렸다. 영국령 남아프리카의 은행들이 파산하면서 해운업계는 전멸했다.
큐나드해운은 사실상의 휴업상태에 놓여있었고, 나머지 우량회사들은 부도위기에 노출되었다.
“지금부터 환매를 중지한다! 펀드자금들을 싸그리 동결해. 재무부와 영란은행에 동결한다고 서류올리고, 대관부서를 통해 로비스트들 돌리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한다!”
결국 자산운용사들은 환매를 중지했다.
자산수익률는 마이너스로 전환되었고, 매시간마다 처참하게 무너져내렸지만, 시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100파운드 자산이 10파운드로 하락해도, 환매를 할 수 없으니, 발을 동동 굴릴 수밖에 없었다.
퍽-!
“아아아악!”
뒤늦게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은 국가헌병대와 경찰병력에 진압당하고, 임시구치소로 끌려들어갔다.
야심한 밤.
국가헌병대는 더욱더 강력한 진압으로 시민들을 시티오브런던 외곽으로 추방했고, 도시의 도로들을 걸어잠군채, 봉쇄조치를 단행했다.
“이게 다 벨푸어총리의 짓거리다!”
국가헌병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군중들은 분노를 성토했다.
쾅-!
“대체 누가 국가헌병대를 동원하라고 했어!”
다우닝가 10번지.
벨푸어총리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자신이 지시하지도 않은 국가헌병대가 독자적으로 진압명령을 받고 시위대와 군중들을 과잉진압했기 때문이다.
마치 벨푸어총리에게 엿이라도 먹으라는 듯, 진압봉으로 인한 피해는 처참했다.
[지난밤 국가헌병대의 학살.] [사상자만 231명. 군병원으로 압송된 환자들의 생사여부는 확인할 수도 없어.] [진압당한 시민들의 다다수는 중산층. 벨푸어총리의 지지율 30%대로 하락.] [길거리 곳곳에 깨진 유리창 파편들은 핏물로 얼룩져있었다.] [수정의 밤.]일부 두개골이 함몰된 시민들은 길거리에 질질 끌려가다 군병원에 입원당한뒤, 쥐도새도 모르게 처리당했고, 그와중에 헌병대들은 기자들은 물론이고 외신기자들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전세계로 널리널리 퍼지라는 듯이 말이다.
“대체 누구야! 누가 이런 짓거리를 한거야!”
최악의 타이밍이다.
벨푸어총리는 간밤에 지하벙커에서 24시간 회동을 가지고 있었다.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에서 하기 어려운 대화를 지하벙커로 옮겨서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분명히 이건! 우리 총리관저의 일정에 정통한 놈이 저질렀어! 대체 어떤 새끼야!”
쾅-!
내던져진 재떨이가 산산이 터졌다.
움찔거린 장관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를 의심스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중 누군가 반동이 있다.
“나는 단 하룻밤만에 자국국민들을 학살하는 악마가 되어버렸어! 내가 지껄인 모든 안심하라는 연설들은 휴짓조각이 되어버렸고!”
포효를 내질렀다.
광기충만한 벨푸어총리는 눈을 충혈시켰고, 손가락으로 한명씩 지목했다.
“너야? 너야?”
제정신이 아니었다.
보수당 장관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CDO란 마약만 믿고 전시내각의 권한을 벨푸어에게 몰아준 후폭풍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CDO란 마약파티는 이제 막을 내렸고, 살인적인 금단증세와 중독증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 젠장.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취급을 받아야되는건가. 총리의 권한이 너무 막대해.
– 전시내각을 시작하고 거국내각의 권한까지 총리가 휘어집았습니다. 새롭게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사실상 수권법이란 말입니다.
– 다들 동의하던 내용 아니었소?! CDO란 기적으로 독일제국을 짓누를 수 있다고 좋아할땐 언제고 이제와서 발뺌이시오!
내각불신임을 터뜨리고 싶어도, 그 누구도 이런 정국의 영국을 이끌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가되었든 공황의 불명예를 지고 역사책에 기록되어 후대 대대로 비난을 한몸에 화살받이처럼 받게 되겠지.
명예롭지 않다.
이는 불명예를 감수할 수 있는 인간만이 감당가능한 일이었다.
– 그래서, 지금 내각불신임이라도 터뜨리잔 말씀이오?
-…….
불행히도.
자유당에도 보수당에도 이를 감당하려는 이는 없었다. 벨푸어총리가 다뒤집어쓰고 죽어버리길 바라는 자들만이 도처에 널려있을 뿐이었다.
“총리님.”
베어링스은행장이 손을 들었다.
그에게 짐작되는 인물이 있는 모양이었다. 침착한 어조로 차분하게 읊조렸다.
“왕립 국가현병대는 할데인 국무장관의 통솔을 받는 조직입니다. 해군장관의 왕립 해군헌병대와는 별개로 존재합니다.”
“…..할데인.”
자유당의 내각장관.
국무성을 총괄하는 권한과 육군의 관할권을 가진 할데인 국무장관이라면, 왕립 육군헌병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영국원정대를 제외한 영국육군은 본토를 수호하고 있었고, 국가헌병대의 운영도 한결 수월했을 갓이다.
“런던시티경찰과 국가헌병대가 같이 움직였으니, 자치위원회와 국무성은 한패인건가?”
할데인 국무장관.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하극상으로 벨푸어총리를 찌른 셈이다. 하지만 알아챈 이상, 잡음을 무시하고 정면돌파해 국무장관에게 뒤집어씌우고 꼬리를 잘라내면 그만이었다.
“당장 기자회견을 소집-”
쾅-!
“초, 총리님!”
다급히 열린 문으로 총리실 보좌관이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 들린 문서는 신문지나 전보 따위가 아니었다.
“갑자기 누군가!”
벨푸어총리는 이성이 끊어졌다.
부글거리는 얼굴표정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그게. 잠깐 와서 봐보셔야합니다. 이거 보통일이 아닙니다.”
“대체 뭔데!”
“지금 급합니다!”
빼액.
신경질적인 벨푸어의 대답에 보좌관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괴성을 질렀다. 보좌관은 눈을 질끈 감고 종이를 척 내밀었다.
“버킹엄에서 총리실로 전송한 공식문서란 말입니다!”
버킹엄(Buckingham).
위대한 대영제국의 고귀한 핏줄께서 기거하고 계시는 신성하고도 명예로운 천상계의 궁전. 전세계를 호령하고, 대제국을 통치하는 군주가 머무르는 관저.
찬물이리도 뒤집어쓴듯, 조용해졌다.
벨푸어총리에 단숨에 제정신을 되찾았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