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286)
“버킹엄 시의회의 공식문서이자 전언입니다.”
버킹엄의 인장이 찍힌 고급스러운 용지를 펼친 보좌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문서내용을 읽어내렸다.
벨푸어는 영문을 모르겠는 표정으로 멍하니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
보통 버킹엄시의회의 공식문서는 전달해주는 별도의 인원이 존재하는 법인데, 굳이 보좌관에게 가져다준 저의는 무엇인가.
“본 버킹엄 시의회는 비난한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감히 국가헌병대를 무단으로 남용해 무고한 제국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벨푸어총리의 경악스러운 행패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이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지고 물러남이 맞다고 본 시의회는 발언한다.”
뒤이은 미공개 성명문은 공포스러웠다.
한글자 한글자가 소름끼치는 장문의 이름은 벨푸어의 혼을 탈탈 털어놓았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해외 영국 자치령의 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의 황제이신 에드워드 7세 폐하께서 말씀하셨다.”
안돼.
눈앞이 깜깜해진 벨푸어는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었다.
“국민들을 탄압하고, 황실을 기만하고, 독재를 휘두르고, 안보를 위협하고, 경제를 농단하고, 군대를 남용하고, 언론을 희롱하고, 제국을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총리 벨푸어의 죄는 무겁도다.”
털썩.
벨푸어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다. 자신은 국가헌병대를 남용하지 않았다. 억울하다. 국민들을 무력으로 탄압하진 않았다. 독재를 휘두르지도 않았다.
다들 찬성하고 좋아하지 않았나.
왜 자신에게만 다 뒤집어 씌우지?
‘국가헌병대는 국무장관이 독단으로 벌인 행각이리고 버킹엄에 항의를 해야한다…..!’
벨푸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뒤이은 낭독은 벨푸어를 한번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총리 벨푸어가 남용한 국가헌병대로 국민들을 탄압하는 동안, 이에 반발해 국가헌병대를 억제하고자한 할데인 국무장관의 공로를 치하하는 바이며, 총리 벨푸어에겐 무거운 책임을 묻는 바이다.”
“….뭐!”
벨푸어총리는 벌떡 일어섰다.
이게 뭔 개소리인가. 국가헌병대를 멋대로 휘두른건 할데인 국무장관 아닌가!
수정의 밤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더불어 국민들을 학살하고 탄압한 무자비한 총리가 되었다. 할데인 국무장관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억울하게 뒤집어썼다.
-벨푸어는 사임하라! 사임하라!
-벨푸어를 감옥으로! 감옥으로!
-내 재산 돌려내!
-우리 아들 살려내!
밖에서는 시위대의 끝없는 절규가 울려퍼졌다. 벨푸어는 하룻밤만에 대국민의 공적이 되어버렸다.
“아.”
정신이 하얘지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를 버렸구나.”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할데인 국무장관을 위시한 자유당과 에드워드 7세를 위시한 버킹엄궁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수정의 밤.
이 모든 것은.
벨푸어총리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끌어내리기 위한 대국민 쇼였다.
국왕의 발언을 그 누가 의심하리오.
“끝이다…..”
벨푸어총리는 멍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다음날 그를 기다릴 재앙은 그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라토리엄까지 일주일.] [영란은행 임시총재의 충격발표. ‘3일안에 구제책이 없을 경우, 대영제국은 파산할수도 있다.’] [런던시티경찰의 베어링스은행의 압수수색 명령. 이사회 줄줄이 경찰청 소환.]“안돼….”
버킹엄궁이 벨푸어의 등에 칼을 꽂았다.
이젠 반벨푸어 세력이 수면위로 떠오를 시간이었다. 그들은 벨푸어가 약해진 틈을 타,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왔다.
“안돼….!”
모둔 죄를 벨푸어총리에게 뒤집어씌운채 말이다.
“안돼애애애!!!!!!!”
쾅! 쾅! 쾅!
벨푸어는 피눈물을 쏟으며 지옥불에서 끌어올린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벨푸어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했다.
이제 죗값과 업보를 청산할 시간이었고, 벨푸어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전국으로 번지는 뱅크런.] [자방은행들은 줄줄이 파산위기. 다우닝가 10번지의 침묵.]무책임한 중앙정부.
[자구책에 나선 지방정부.] [자치위원회의 은행휴업령 발표.] [영란은행, ‘외환이 부족한 상황. 국민여러분이 가진 외환을 영란은행에서 파운드화로 교환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할데인 국무장관, ‘시티오브런던의 봉쇄령은 국무성의 권한으로 해지했다. 안심하시길.’] [영란은행, ‘자산매각으로 외환보유고 확보중. 국민들은 우리들을 믿어달라.’]중앙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방정부는 각자도생했다. 대영제국의 식민당국조차 마비된 상황에서 전세계를 덮은 대제국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성난 군중들, 횃불과 총을 들고 시위대에 참여하는 민중의 분노.] [웨스트민스터궁을 수호하는 국가헌병대.] [국가헌병대를 남용하는 벨푸어총리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 지지율 10% 밑으로 추락.] [버킹엄 시의회의 성명문 공개발표. 벨푸어정권에 들어간 치명타.] [횃불의 불길은 거세진다.]이제 시작이었다.
벨푸어의 은폐공작으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 할데인의 자유당이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D-DAY.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절체절명의 시간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
“굉장히 어려운 시기입니다.”
쓰레드니들(Treadneedle).
지하벙커에 위치한 영란은행 이사회실은 대외적으로 희망적인 관측과 구호를 내뱉었지만, 내부적으로 곧 죽을사람처럼 침울한 공기가 내려앉아있었다.
“할데인 국무장관과 버킹엄궁에서 제때 벨푸어총리에게 책임을 다 뒤집어씌웠습니다. 시기적으로 제일 방해되는 때에 벨푸어총리를 치워버린데에는 감사한 일입니다.”
존 베어링.
임시총재는 그림자진 얼굴로 읊조렸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추도문을 읽는듯 슬픔에 잠긴 목소리였다.
그때 손이 하나 조심스럽게 올라왔다.
“저….임시총재님.”
“무슨 일이죠?”
말을 끊긴 베어링은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몇몇 이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그들은 식민지 금융을 책임지는 책임자들이었다.
“혹시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하시죠.”
“감사합니다.”
한명이 대표로 나섰다.
“이런 어려운때에 이런 보고를 올리는것이 매우 죄스럽습니다. 하지만 미뤄둘 순 없는 노릇이니. 매 좀 일찍 맞는다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서류철을 집어들어 펼쳤다.
두꺼운 서류철에는 영국령홍콩기가 세겨져있었고, 검은색 서류철 표지마냥, 불길한 기운이 을씨년스럽게 번지고 있었다.
“현재 홍콩총독부 전체가 연락두절 상태고, HSBC 런던사무소를 압수수색으로 급습했는데, 텅 비어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홍콩총독부가 저희 대영제국의 내부적인 위기를 감지하고 손절한 것 같습니다.”
빠른 손절.
홍콩총독부가 손절을 선언하고 연락을 두절한채 두문분출했다고 방금 이사는 말한 것이다.
HSBC도 탈주했다고.
“이대로 놓쳐버리면 진짜 뼈아픈 손실입니다.”
순간 뇌정지가 왔다.
엊그제까지 본토를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던 홍콩총독부가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감을 느끼고 뒤통수를 때렸다고?
이성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얼어붙은 베어링은 눈을 서서히 크게떴다.
“…..예?”
“일단 해군성으로 본토 연락선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설마 더있습니까?”
베어링은 현기증을 느꼈다.
하지만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른 이사가 또 입을 열었다. 한명이 총대를 메고 포문을 열자, 봇물이 터져 충격스러운 보고들을 쏟아냈다.
“영국령 남아프리카의 총독부도 잠수를 타고 있습니다.”
“예?! 남아프리카도 말입니까? 거기엔 영란은행이 금을 보관한 역외금고가 존재할텐데요?”
베어링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영란은행에 있어서 영국령남아프리카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남아프리카의 도시, 요하네스버그는 골드러쉬로 탄생한 대도시.
남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금광이 개발된 금광지구였고, 영란은행의 역외금고가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지금 아프리카총독부는 역외금고의 금괴들을 꿀꺽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런 썩을 개자식들! 홍콩총독부랑 아프리카총독부랑 미리 짜고친 겁니까?!”
“그….”
“또 있습니까?”
“또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HSBC를 통해 사정을 꿰뚫은 홍콩총독부에서 아예 다른 총독부에게 정보를 흘린 모양입니다.”
또다시 뇌정지가 온 베어링은 입을 쩍 벌렸다.
꿀꺽.
이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식민지들과 지치령들이 미리 짜고치는지, 전부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단체로 파업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아아!”
몸서리가 처진다.
베어링은 눈앞이 샛노래졌다.
고생이 시작된다 싶더니, 지옥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모라토리엄을 토론해야할 시기인데, 식민지들이 입싹 닦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쾅-!
본국의 연락선이 식민지로 파견나가면, 기본적으로 전력유출이 될 뿐만 아니라, 연락선이 도착해서 총독부와 교섭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가뜩이나 자치권을 달라고 울부짖는 식민지들이다. 그들이 이번기회를 놓칠 것 같지가 않았다.
“아예 작정했구나…..!”
힘이 쭉 빠진다.
자치령은 외교권과 군사권을 요구하겠지.
금융위기에 제일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었고, 물리적으로 광대한 식민제국은 그 자체로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식민지와 소통하기전애 본토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
베어링은 눈을 깔았다.
뇌를 촤대한 화전시키면서 해결책을 강구했다. 어떻게든 식민지들을 끌여들여서 부담을 공동으로 져야한다. 어떻게 해야될까.
“방법은 단순하군요.”
이성이 끊어졌다.
눈에 뵈는게 없어졌다.
결국 대영제국은 파운드경제권으로 묶인 스털링지역. 본토가 파산하면 식민지까지 줄줄이 파토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놈들 다 끌어안고 자폭합시다.”
어차피 터질 금융위기.
다같이 지옥불로 관광가자고. 적극적으로 해결이고 나발이고, 외환위기고 자시고 간에, 일단 본토만 죽을 수는 없었다.
단체행동에 빠지는 파렴치한 놈들을 끌여들여서 같이 죽는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틀뒤에 기습적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합시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원래대로라면,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프랑스나 미국, 혹은 제3세계에게 구걸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위기를 해결하려고 했었다. 금태환을 포기하고 금본위제할 금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생각도 있었다.
CDO나 CDS의 폭탄은 너무 컸지만, 적어도 당장의 외환위기는 금본위제를 포기하는 것으로 메꿀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
콜 총재라면 식민지들이 뭘하든 모라토리엄은 절대로 선언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하지만 베어링은 달랐다.
일단 미국망명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어 과감한 판단이 가능했다.
다 죽는한이 있더라도.
같이 죽자고.
벨푸어총리의 헌병대스캔들로 시작된 비리가 줄줄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영국정부는 혼란스러웠지만, 괘씸한 식민지를 조지겠다는 의지만큼은 그들 못지 않을 터였다.
“설령 죽는한이 있어도, 괘씸한 식민지들까지 끌어안은채 죽자는 얘깁니다.”
이글거리는 눈빛에서 불똥이 터졌다.
그날, 영란은행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모라토리엄 선언을 내부적으로 가결하였다.
“우리만 죽을 수는 없잖습니까?”
감히 식민지 따위가 말대꾸를 해?
미국이란 전례가 있는 본토의 금융인들과 정치인들은 식민지들의 반란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인생은 실전이란 걸 보여줍시다.”
꼭지가 돌아갔다.
분노한 베어링 임시총재는 천천히 칼날을 갈았다.
***
“흠.”
뉴욕금융서비스국.
재무부에 근무해야할 국장급까지 전원소환되었고, 국장실 내부로 조용하면서도 비장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뉴욕대형은행의 대관업무자들.
연방준비제도의 의장과 연방준비은행의 총재들도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미국대사관에서 날아온 전보를 읽어내리고 있었다.
“방금 베어링 임시총재로부터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존 베어링.
영란은행의 임시총재.
미국으로 출장온 총재를 대행해서 대영제국 중앙은행의 임시총재직을 맡고있는 영국경제계의 거물이 미국대사관을 통해 내게 전보를 보냈다.
“감이 오시죠?”
내게 보낼 수밖에.
베어링은 미국국무부에서 심어놓은 내부고발자였고, 프락치였으니까. 우리들은 영란은행의 내부정보를 하루, 혹은 이틀 더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영란은행 이사회(the Court of Directors)에서 내부적으로 모라토리엄을 결정했답니다.”
“…..!!!”
모라토리엄.
국장실 내부 온도가 순식간에 5도정도 치솟은 것 같았다. 끓어오르는 금융인들의 희열을 물리적으로 느끼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뒷공작의 성과도 슬슬 나올때가 되었다.
“영란은행의 모라토리엄 공식발표는 이틀뒤, 그동안 모라토리엄을 위한 준비를 한다고 하네요.”
나는 눈웃음을 지었다.
냐가 이세계에 빙의하고 10년.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뭐, 말안해도 아시겠죠?”
대영제국이 몰락하는 날.
그리고 미합중국이 세계제일의 패권국으로 날아오르는 날.
그날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짝.
박수를 쳤다.
“이제 털어옵시다.”
“와아아아아아아!!!”
이제 돈을 벌어올 시간.
지금까지 기다려온 월가 금융인들의 눈깔이 황금으로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