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흐흠.”
탁자 위에 놓여진 손가락만 한 소검을 무려 셋이나 되는 사람이 유심히 살펴본다.
한 사람은 혹시나 자신의 손때가 묻을까 백피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만지고.
또 한 사람은 커다란 책을 가져와 소검에 새겨진 문양을 이리저리 분석한다.
칼로 표면을 살짝 긁어낸 이는 본격적으로 재질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확대경에서 시작해 온갖 도구들을 써 가며 소검을 다각도로 살피고 일일이 정교하게 그려 내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역시 이래서 전문가, 전문가 하는 거지.
한 사람씩 고심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너무 전문적인 용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온 결론은…….
“안 빠지네요.”
그건 나도 알거든?
“흠, 거의 일체인데 어찌 이런 문양을 새겼을까요? 특히 소검의 칼집 부분에 뚫려 있는 구멍들이 특이합니다.”
응? 구멍? 문양이 아니고 구멍이었어?
“크기와 깊이가 모두 다릅니다.”
“딱히 어떤 장치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 듯한데.”
“생긴 건 은장도 같고.”
“잘 모르겠군요.”
자기네들끼리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진무는.
‘역시…… 니들도 모르는구나.’
잔뜩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구멍 어쩌고 하길래 뭔가 기대를 했더니.
“혹시 그거 열쇠 아닐까?”
“예?”
가만히 있던 당세령이 끼어들었다.
뭐? 열쇠?
하아, 정말 말이라고. 딱 봐도 소검이구만 열쇠는 무슨.
진무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당천기가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설마 믿는 거야? 쟤 말을?
“특이한 모양이기는 하나 검집 부분에 있는 크기와 깊이가 다른 구멍이 용수철 같은 잠금 장치와 끼워 맞춰지면 열쇠로 작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
글러 먹었네, 글러 먹었어.
지금 그게 학자가 할 말이냐? 니네는 학자의 자존심도 없어?
고작 주인집 딸 말이라고 막 그냥 수긍해 주는 거야?
진무가 눈살을 찌푸리자 당천기가 환하게 웃으며.
“아가씨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겠지요?”
“…….”
“어쩌면 이 물건은 자물쇠의 한 방식인 비틀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틀개?
음, 전문 용어가 나오니 조금 신뢰도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고.
“이렇게 작게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긴 한데……. 이보게, 가서 청강쇄금(靑鋼鎖金)을 가져오게.”
“예.”
대답과 동시에 달려갔던 학자가 묵직한 뭉치 하나를 들고 와 탁자에 내려놓았다.
참 크네. 튼튼하고.
진무가 시큰둥하게 웃자 당천기가 뭉치와 함께 놓인 길쭉한 막대기를 들었다.
손가락 정도의 굵기에 한 뼘은 될 듯한 막대기.
중앙에 여러 개의 돌기가 듬성듬성 솟아 있었다.
“이것이 비틀개입니다.”
“……?”
“이 돌기가 잠금쇠를 푸는 역할을 하지요.”
무슨 말인지 의아했던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당천기의 설명이 이어진다.
“보시면 돌기의 크기와 높이가 다르지요?”
보니 그렇다.
“평소에는 잠금쇠 안쪽에 공간이 꽉 채워져 있다가 비틀개가 맞춰지면…….”
드르륵, 철컥.
어?
진무가 철컥하고 열리는 청강쇄금의 모습에 눈을 끔벅였다.
“이런 방식이지요. 만약 소검이 열쇠라면 청강쇄금과 반대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일 겁니다.”
반대라면?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자 당세령이 진무의 어깨를 툭 치면서 으스대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애써 무시해 버린 진무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이름이 무혈(無穴)인데…….”
“아, 그래요? 구멍이 없다라……. 흐음.”
당천기가 또다시 고민하다가 빙긋이 웃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아마 이 소검이 열쇠라고 가정하면 잠금쇄의 안쪽에는 구멍에 메꿔지는 장치가 있을 것입니다. 해서 소검을 이렇게 집어넣으면.”
당천기가 소검을 열쇠처럼 끼워 넣는 동작을 취했다.
“아!”
구멍이 없어진다.
그래서 무혈?
진무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탁!
당세령이 다시 진무의 어깨를 치곤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으쓱한다.
뭐…… 그래. 그럴 수도.
소의 뒷걸음질에 가끔 지나가는 쥐가 잡히는 예도 있으니까.
“하면 어떤 곳의 열쇠인지 알겠습니까?”
진무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당세령이 히죽 웃는다.
“어이, 식객. 귀가 너무 얇은 거 아냐?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이야, 추측. 우리도 처음 보는 물건인데 어디의 열쇠인지 어떻게 알아?”
“…….”
닥쳐라. 소 뒷발에 쥐 잡은 멍청한 여자야.
“예. 아가씨 말씀이 맞습니다. 일단 열쇠라는 것도 추정이지 확신은 아닙니다. 어쩌면 정말로 잘 만들어진 장신구일 수도 있구요.”
“음.”
좋다 말았다.
하지만 그럼 또 어떠하겠는가?
분명 그걸 노리는 놈들이 있었으니 정말로 어떤 것의 열쇠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놈은 무혈을 들고 분명 청성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청성에 비고라도 있다는 것인가? 막 금은보화가 넘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당가에서 쓰임을 완전히 밝히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진무보다는 생각의 폭이 넓었다.
빠지지 않는 데다 감춰진 장치도 없는 마당에야 그저 장신구로 전락했을지도 모를 물건이 아니던가.
그래 열쇠다, 열쇠.
안 그래도 청성에 가는 길인데 잘되었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일확천금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진무는 벌떡 일어났다.
“응? 왜?”
당세령의 물음에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아, 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더 이상 당가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더 있어 봐야 추가로 알아낼 것도 없지 않은가?
청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소검, 아니 열쇠에 맞는 것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청성으로 가야겠다.
양의심공은 주목적이니 당연하고, 덤으로 비동의 보물까지 챙길 수 있을지도.
딱히 챙길 것도 없으니 지금 그대로 당가를 떠나기만 하면 될 일이다.
또한, 청성산은 당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어디 가게?”
당세령이 따라 일어났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끈질김? 집요함?
까짓것 당가를 나가는 순간 최선을 다해 경공을 써서 튀어 버리면 지가 어떻게 따라온단 말인가?
당위를 찾아가서 간다고 인사만 하고 나가면 그만이다.
“야! 같이 가!”
당천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만병당을 나가는 모습에 당세령이 오랫동안 기른 개인 양 쫄래쫄래 뒤따라왔다.
* * *
사천 당가 내성의 가장 깊숙한 곳.
다른 곳과 구분하기 위해 별도로 쌓아 올린 담벼락의 안쪽.
계단을 올라서서 만경문(萬景門)을 지나면 거대한 뜰이 나오고, 그 중심으로 청석을 깔아 만든 길이 일직선으로 펼쳐진다.
그 끝에는 다른 건물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거대한 삼 층짜리 대전각이 보였다.
당가의 모든 회의가 열리고 오랫동안 사천 당가의 상징으로 존재해 온 삼양전(三陽殿)이다.
“아직도 찾지 못하였단 말인가?”
이른 아침부터 근래에 없었던 심각한 분위기의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역 밖에서는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대장로 당가정의 말에 당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영역 밖? 그게 지금 대장로가 할 소리인가?”
“…….”
“이 사천 모두가 나의 영역이다. 우리 당가의 영역이란 말이다.”
당위의 목소리에 은은한 노기가 어리자 장로들이 침중한 표정으로 눈을 찌푸렸다.
“감히 당가의 식솔을 해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사천을 활보하는데, 뭐? 영역 밖이라 조사하지 못해? 꼬리를 잡기 힘들어?”
노기는 점점 더 거세졌다.
“대가주님. 하지만 너무 깊이 조사를 했다가는 타 문파들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만!”
당위의 노성이 삼양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금 당가가 사천에서 무엇이 무서워 머뭇거린단 말인가!”
“대가주님.”
“그만하라 하지 않던가!”
당위가 당가정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얼마 전.
당가의 영역에서 작은 마찰이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 의해 당가의 무인들이 부상을 입은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장로들은 당가 예하의 무인대인 단혼대(斷魂隊) 스물을 급파했다.
결과는 참패.
적의 종적을 놓친 것도 모자라 두 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당위는 크게 분노했고 당가의 영역 전체에 그들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얻어 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하늘로 솟구친 것처럼 종적을 감추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장로들이 언급한 영역 밖은 청성산 인근, 아미산 인근, 사천 외곽에 위치한 사패천 소속 문파들의 영역을 말함이었다.
다른 문파들과 마찰을 우려한 때문에 소극적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사천의 제왕이라 천명한 당위로서는 그 사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 조사단과 추격대를 다시 편성하라!”
“…….”
당위의 명령에 장로들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아무리 당위라고 해도 그것은 무리수였다.
사패천은 둘째 치고 청성과 아미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
도가와 불가라고는 하나 그들 역시 무림의 문파였다.
같은 정무맹 소속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협조부터 구하고 그들의 승낙을 얻은 뒤에야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대가주님, 재고해 주십시오.”
“무엇을 재고하란 말인가?”
당위의 목소리가 좌중을 무겁게 짓눌렀다.
“이런 한심한 것들. 이러니 근래 사천에서 당가의 위세가 낮아졌다느니 하는 말들이 있는 것이다!”
“…….”
“고작 타 문파와의 마찰이 두려워 이 당가가 머뭇거리고, 당가의 식솔들에게 해를 입힌 자를 찾아내지도 못한다면. 세인들이 어찌 생각할 것이며, 당가에 적을 둔 이들은 또 어찌 자부심을 느낄 것인가!”
당위의 진노에 장로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모두 직접 나서라! 빠른 시일 안에 놈들을 잡아서 내 앞에 데려다 놔! 만약 궁둥이가 무거워 앉아 있는 놈들은 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서슬 퍼런 그의 고함에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로들이 잔뜩 움츠린 거북목을 해서 대전을 빠져나간 후였다.
“대가주님, 아가씨와 무당지검이 찾아왔습니다.”
호법대주 구척의 목소리에 당위가 노기로 흐트러진 호흡을 가라앉히며 온화하게 말했다.
“들어오라 하라.”
허락이 떨어지자 진무와 당세령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게.”
“대가주님을 뵙습니다.”
진무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자 당위가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이 씨익 웃었다.
“허허, 미리 와 있었던 모양이구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진무의 대답에 당위가 싫지 않은 듯 웃음으로 화답했다.
눈치 빠른 시비가 다과를 준비해 내오자 당위는 자리를 옮겨 대전 한편에 놓인 탁자로 그들을 안내했다.
진무는 대전 안으로 들어서며 본능적으로 그 안을 살피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차를 따르는 시비와 당위의 옆에 선 호위 무인뿐이었으나 곳곳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대전각을 호위하는 이들.
언뜻 느껴지는 것만 서른 명이 넘는다.
과연 당가의 대전각이라 할 만했다. 멋모르고 들어왔다가는 조각조각 썰려 나갈 판이었다.
‘역시 당가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