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진무는 감탄했지만, 딱히 외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빠, 그나저나 무슨 문제라도 있어? 밖으로 나오시는 장로님들의 안색이 밝지 않던데.”
이년은 지 애비한테도 반말을 한다. 나이가 오십이나 차이 나는데.
당세령이 묻자 당위가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무슨. 지극히 사소한 일조차 처리 못 해 야단을 맞은 게지.”
“그들 때문에?”
“더 묻지 말거라. 손님이 들어 좋을 것이 없다.”
당위가 눈치를 주자 당세령이 입을 삐죽거렸다.
“이거 손님을 앞에 두고 내 과하게 화를 낸 모양일세. 밖에까지 들린 것을 보면.”
“아닙니다. 그저 쥐새끼 떼가 귀찮아 게으름을 피우는 장로들에게 합당한 꾸중을 내리신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진무의 모습에 당위가 묘한 눈빛을 했다.
“쥐새끼라? 어찌 그리 생각했는가?”
“답을 원하시는 겁니까?”
“…….”
당위가 그냥 쳐다보기만 하자 진무가 나지막이 말했다.
“원래 쥐새끼라는 것이 힘없는 미물입니다. 하지만 귀찮다고 방치를 하면 곡식을 갉아 축내고 말죠. 또 금세 새끼를 쳐서 순식간에 수가 불기도 하니 귀찮기는 해도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진무의 대답에 당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옳은 말이다.
지금 사천에 들어온 자들은 당위에게 있어 그저 쥐새끼에 불과했다.
아량을 베풀어 적당히 놔둘 수 있음에도 장로들을 다그친 이유는 바로 진무의 대답과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부상자도 모자라 사망자까지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당가의 명예는 크게 실추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이야 그저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앞으로도 타 문파의 영역에 숨었다 하여 손을 쓰지 않고 방치한다면 당가에 죄를 지은 놈들은 그것이 구명줄인 듯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실로 재미있는 녀석이군.’
간단한 이치다.
하지만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남들 위에 있어 본 자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일문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부분이기에 그렇다.
일례로 지금 당가의 장로들조차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가?
“자네는 무당의 도사 같지 않군.”
“제가요? 설마요. 저는 무당의 일대제자입니다.”
짐짓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진무를 향해 당위가 피식 웃고 말았다.
과연 호기심이 느껴지는 인재였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마음에 이렇게까지 깊이 들었던 자가 있었던가?
무당은 어떻게 이런 자를 길러 내었을까?
당위는 진무와 조금 더 가까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면 혹, 잠시 머물며 쥐새끼를 잡는 고양이가 되어 보겠는가?”
“제가요?”
“안 되겠는가?”
“꽤 비쌀 텐데요?”
“당가의 재력을 무시하지 말게.”
장난스럽게 말하는 당위의 표정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하긴 딸년에게 그 비싼 약초를 아침마다 처먹일 정도니.
“저런, 안타깝게도 저는 도사입니다. 돈에는 움직이지 않지요.”
“그래 보이지 않는데?”
“종종 그런 오해를 사기도 하죠. 하지만 축생을 상하게 하는 일은 사문에서 엄하게 금하는지라.”
“저런, 어제의 내 딸은 꽤 많이 상했었다네.”
“먼저 시비를 걸어 온 것은 별개입니다. 다행히 아침에는 말짱하던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양이가 다 뭡니까? 저는 남의 집에서 길러질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
호기심만 느끼게 하는 줄 알았더니 제법 입심도 있었다.
확실히 도사로 썩기에는 아까운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이거 또 내가 큰 실례를 했구먼.”
“괜찮습니다. 설마하니 당가가 제집에 든 쥐새끼를 잡기 위해 남의 집 고양이 손을 빌리겠습니까? 그저 저를 치켜세우려 공연한 말씀을 하신 것이겠지요.”
“눈치가 꽤나 빠르구먼, 하하핫!”
진무와 당위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에 당세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쥐새끼는 뭐고 고양이는 또 뭔지.
게다가 자신의 아비가 저렇게 웃은 적이 있었던가?
큰오빠이자 소가주인 당태현에게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아침부터 만병당에 들렀다고?”
“소식이 빠르시네요.”
“당가에서 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 도움받고자 했던 것은 잘 해결되었던가?”
“……예.”
“잘되었다니 다행일세.”
진무가 적당히 대답하며 당위를 바라보았다. 묻기는 했으되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까지는 묻지 않은 것이다.
만병당에 들렀음을 알고 있다면 도움을 얻고자 한 이유며 결론까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당위의 시선이 사방에 깔린 당가니까.
“그나저나 예까지는 어쩐 일인가?”
“도움도 받았고 모처럼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으니 이만 나가 보고자 합니다.”
“응? 벌써 말인가?”
“예.”
“흠, 잠시 머물며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지 않고.”
“술이요?”
술이나 한잔하자는 말에 혹했지만, 옆에 있는 당세령을 보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표주 중이라 마음만 받겠습니다.”
“어허, 마음만 받아서 되겠는가? 딱 하루만 더 묵고 가게. 더는 잡지 않을 테니.”
“으음.”
당위의 부탁에 진무가 살짝 표정을 찡그리며 고심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하루만 더 묵겠습니다.”
“알겠네. 그리하세.”
진무와 당위가 찻잔을 비우며 이야기를 마치는데.
“아빠.”
“응?”
“나도 따라갈래.”
“뭐?”
“…….”
당세령의 말에 당위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진무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졌다.
정말이지 막무가내로 똘똘 뭉친 성격이었다.
“나도 진무 도장 따라 표주 나갈래.”
“…….”
이 미친 딸이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도사들이 행하는 표주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나 말하는 것일까?
“이봐, 딸. 표주는 말이야. 도사들에게 수행의 여정이란다. 얼마나 걸릴지, 어떤 고초를 겪을지 몰라.”
“갈 거야.”
“아니 그게…….”
“걱정 마. 난 괜찮아. 갔다가 너무 힘들면 중간에 돌아올 테니까.”
당위는 당세령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진무를 걱정하고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다. 하지만 워낙에 사고뭉치에 제멋대로인 것을 아비인 자신이 제일 잘 알지 않는가.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
당위가 눈살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진무에게 관심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내에게 이 정도의 관심을 보인 것조차 처음이었다.
당가의 관례상 벌써 혼례를 올려도 모자랄 나이였으나 제 눈에 차는 사내가 없다는 이유로 여태껏 그 많은 혼처를 차 버린 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뭘 어찌할까?
상대는 무당의 도사다.
다른 도문과 달리 무당의 도사들은 파문당하지 않는 이상 결혼을 할 수가 없는 신분임을 알고 있었다.
‘쯧쯧,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구먼.’
당위는 딸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저 표정만 봐도 그녀가 지금 얼마나 작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안 된다고 하면 자진하겠다며 발광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수차례 당해 온 경험이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진무와 당위는 당세령 몰래 은밀히 전음을 주고받았다.
* * *
다음 날 아침.
당위와 밤새 술을 마신 진무는 늦은 시간에 깨어났다.
전날 밤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당가의 자제들을 소개받느라 술자리가 길어진 통에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올 지경이었다.
안 왔나?
당세령이 어제처럼 새벽 댓바람부터 찾아와 귀찮게 하지 않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뭐, 안 오면 다행이지.
피식 웃은 진무가 당가를 떠나기 위한 채비를 갖추고 문을 여는데.
“밥 먹고 가.”
“…….”
당세령이 시비와 함께 밥상을 들고 왔다.
“이게 뭐냐?”
“해장국.”
“아……. 근데 이걸 왜?”
“우리 당가가 설마 손님 아침밥도 안 챙겨 주고 보낼 줄 알았어? 나 생각보다 참한 여자야.”
그……렇다 치자.
안 그래도 밤새 마신 술 때문에 해장국 냄새가 뱃속을 들끓게 했다.
“고맙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앞으론 자주 해 줄게.”
자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진무는 당세령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해장국을 한술 떴다.
“오!”
맛있다.
“나, 신부 수업도 받은 여자야.”
약초를 으적이며 생긋 웃는 모습에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장국을 국물까지 싹싹 비워 버린 진무는 속이 편안해짐을 느끼며 인사를 했다.
“다 먹었네?”
“생각보다 맛있네.”
진무의 말에 당세령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설마 이제 본격적으로 따라오려는 건가?
“가자, 정문까지 배웅해 줄게.”
“어? 어, 그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쉬운데?
어제는 분명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나?
하긴, 따라온대도 떼 버릴 거니까 상관은 없지만.
정문을 나서는 순간 진무는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당세령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뭣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
그래, 많이 좋아해라.
진무가 슬쩍 몸을 돌리고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뭔 안 하던 지랄이야? 손뼉이라도 쳐 달라고?”
당세령이 싸가지 없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진무는 못 들었다는 듯 씩 웃었다.
“안녕.”
“……?”
살짝 굽힌 다리.
꾸우우우.
접힌 허벅지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진무가 단전의 모든 기운을 용천혈에 때려 박으려는데.
“잘 가!”
어? 뭐?
파……쉬쉬쉬.
진무가 놀라 몸을 비틀자 굽혔던 다리가 펴지고 튀어 오르려던 흙더미가 잠잠해졌다.
해맑게 마구 손을 흔들고 있는 당세령.
“안 따라오는 거냐?”
당세령은 그저 웃기만 했다.
정말 배웅이라는 듯 손만 흔들고 있었다.
거참, 알다가도 모를 여인이다.
뭐 저렇게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 다 있는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편하게 말이라도 한 필 달라고 할 것을.
진무는 완전히 김샌 표정으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자, 그럼 이제 출발해 볼까?”
당세령이 히죽 웃으며 진무가 사라진 방향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당위가 당세령이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가져갔다고?”
“천잠보의와 피독주, 폭우천심사(暴雨穿心射)와 검저유혼(劍低遊魂), 염왕소(閻王笑) 등 다수의 암기와 은유검(銀柳劍)입니다.”
“크으……. 이년이 당가의 보물이란 보물은 죄다 털어 갔구나.”
“그리고 만독전에도 들렀다고 합니다.”
“만독전이라면?”
당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만독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뭘 가져갔는지 알 것 같았다.
“해장국에 넣었겠지?”
“예.”
“망할 년.”
당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구척.”
“예.”
“은밀하게 따라붙거라. 들키지 말고 지켜보기만 해.”
“알겠습니다.”
“한 오십 장 이상은 거리를 둬야 할 게야. 저 녀석 제법 뛰어나거든.”
“예.”
대답과 함께 당위의 호법인 구척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휘이잉.
세찬 바람에 깃발이 쉴 새 없이 나부끼는 성벽 위에 선 당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었구먼.”
어쩌겠는가?
모두가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고 애지중지 키워 버릇을 나빠지게 한 자신의 책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