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한 방 한 방도 커다란 바위 하나를 터트려 놓을 정도로 강한데 수백이라니.
강기를 쏘아 내는 것을 탄강(彈罡)이라 한다. 하지만 강환(罡丸)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조금 위의 경지라고 해야 할까?
무릇 검을 만들 때 쇠를 접고 또 접어 단련하듯.
검사를 응축한 것이 강기,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응축한 것이 강환이다.
그런데 그 안에 뇌기의 속성을 담을 정도라면?
정무칠성? 최소한 그 정도다.
아니, 수백 개로 나누어 쏘아 낼 정도라면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였다. 하나도 어려운데 수백이라니, 융단폭격이나 다름없었다.
망할 영감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젠장!”
욕설이 절로 나온다.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수백 알의 뇌구를 바라보던 진무가 한껏 무릎을 구부렸다.
내력을 아끼고 자시고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머뭇거렸다간 죽는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들이 터질 듯이 부풀어 꾸드득거리는 비명을 질러 낼 때쯤 진무가 온 힘을 다해 검을 던졌고, 동시에 다리가 휘어졌던 활대처럼 펼쳐졌다.
대랑이 있는 위가 아닌 자신이 등졌던 절벽을 향해.
쾅! 콰콰쾅!
진무가 있던 곳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장이 단번에 폭발하며 가라앉고, 먼지구름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대랑은 허공에서 낙하하며 자신이 만들어 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뇌령신기, 뢰진(雷陣).
그의 독문무공이다.
광범위한 지역을 수백의 뇌격으로 일거에 말살하는 초식이었다.
중원 천지에 오직 자신만이 가능한 무공이었다.
“너무 흥분했나? 기운이 과하게 소모되었어.”
일시적으로 단전이 비어 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만하면 되었다. 지금까지 뇌기의 진을 피한 자는 없었다. 조각은 아깝게 되었지만, 놈은 분명 뢰진 안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만 돌아……?”
순간 찡그려진 대랑의 미간.
피윳!
거대한 기운이 먼지를 뚫고 솟구쳐 올랐다.
설마? 그 속에서 살았다고?
대랑은 곧바로 강기를 머금은 손을 날카롭게 세우고 그었다.
따아아앙!
쇳소리.
수강에 부딪힌 무언가가 튕겨 나가고, 이어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막대한 존재감.
“이런!”
뇌진으로 막대한 공력을 허비해 버린 대랑은 피할 여력이 되지 않아 허공에 뜬 채로 무릎을 당겨 방어했다.
쩌어엉!
정강이를 파고드는 충격에 대랑의 몸이 바닥으로 튕겨 떨어졌다.
쿵!
지면에 착지한 대랑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 왔다.
처음 자신이 쳐 낸 것은 강기를 머금은 검이었다.
그것으로 자신의 시선을 빼앗은 뒤, 아주 짧게나마 기척을 감추었다가 자신의 측면을 노린 것이다.
“후우, 후우…… 아깝네. 젠장,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
기운을 둘로 나누었던 진무였기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노인네가 그걸 또 막냐. 눈치는 빨라 가지고, 소싯적에 싸움질 좀 해 봤다 이거지.
“놈. 거기서 살아 나오다니 대단하구나. 그리고 방금의 전략은 매우 좋았다.”
대랑의 눈이 전보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방금의 공격으로 무릎이 시큰거려 왔다. 강기를 뚫고 그의 몸에 고통을 전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아픔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 언제였던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아픔을 약관의 애송이가 상기하게 했다.
“역시 네놈은 방해가 돼. 반드시 죽여야겠어.”
대랑의 몸에서 차가운 한기가 피어나 사방을 짓눌러 왔다.
그럴 줄 알았다, 씨발.
청성에서 얻은 구결을 넘긴다고 살려 줄 리가 없지. 애초에 죽일 생각이었던 게 틀림없다. 비열한 새끼.
“최선을 다해 주마.”
그가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기의 폭풍이 확 밀어닥치더니 옷자락이 칼에 베인 것처럼 찢기기 시작했다.
망할, 어째 타격은 입히지 못하고 화만 돋운 것 같은데.
느껴지는 살기에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무슨 만년 교룡도 아니고 뭔 놈의 힘이 이 정도나 된단 말인가?
십여 장을 폭발시킬 정도로 많은 양의 기운을 뿜었음에도 느껴지는 기운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 이 정돈 돼야지. 그래야 싸울 맛이 나지!”
진무가 손을 뻗자 튕겨 나갔던 검이 저절로 날아와 잡혔다.
허공섭물.
강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술.
진무가 생각하기에는 하등 쓸모없는 내력 낭비였다. 가끔 상대를 주눅 들게 할 때나 쓰는 과시용 기술에 지나지 않은.
그럼에도 굳이 쓴 것은 역시 허세를 부릴 땐 이것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자 상대에 대해 보여 주는 자신감이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직 이 정도도 할 수 있다!
“자, 와! 이 차전 시작이야!”
검을 움켜잡는 순간 대랑이 움직였다. 거대한 기운이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콰아앙!
두 기운이 충돌하며 생성된 강기의 폭발음이 사방을 진동시킨다.
“크윽!”
고작 한 번 부딪쳤을 뿐인데 진무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이전과 이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의 차이가 확연했다. 반탄력으로 속이 죄 뒤집히고, 검을 쥔 손목이 부러질 듯 고통스러웠다.
진무의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망할 괴물 노친네 같으니라고!
하지만 잠시도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열을 받을 대로 받아 본 실력을 모조리 뽑아내기 시작한 대랑의 공격은 마치 수백 개의 칼끝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위험했다.
더군다나 그의 기운에 스민 뇌기가 전신을 연신 짜릿하게 울렸고, 공격이 스칠 때마다 돋아 오른 소름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한 방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수십 초의 공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진무는 공격보다는 방어에 집중하고 있었다.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탄력에 충격을 받기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피로감이 그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그래. 죽자고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아주 잠시 멈칫했던 것도 그놈의 피로 때문이다.
그리고 그 머뭇거림은.
퍼어억!
즉시 고통으로 돌아왔다.
이 씨발! 그냥 당해 줄 것 같아?
기절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진무는 사력을 다해 검을 잡아당기듯 그었다.
쿠우웅!
대랑의 일장을 허용해 버린 진무의 몸이 절벽 한쪽에 처박혔다.
“우웩!”
곧바로 엎드린 진무는 검은 선혈을 뿜어냈다.
울혈 정도가 아니라 쉼 없이 치밀어 오르는 피를 토악질하듯이 쏟아 내었다.
그가 엎드린 바닥이 번진 피로 시뻘겋게 물들자 곧장 현기증이 찾아왔다.
막거나 피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제대로 맞으니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고작 한 방이었는데 팔다리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마냥 엎드려 있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또다시 이어질 것이 뻔한 노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진무는 이를 악물고 몸을 세웠다.
하지만 현기증이 유발한 비틀거림에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진무는 핏발이 잔뜩 서 붉어진 눈으로 날카롭게 대랑을 쏘아봤다. 시선을 떼기라도 했다가 그가 그 틈을 타 공격해 오면 이번에야말로 끝장이었다.
하지만 공격해 오지 않는다.
멈춰 버린 대랑의 눈동자는 진무가 아닌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고 있었다.
찢어진 가슴. 그런데 어째서 시야가 붉어지는가?
그의 눈 어귀로 흘러내리는 피.
세로로 길게 베어진 검격이 그의 가슴팍을 자르고 얼굴까지 올라온 것이다.
피가 눈에 스며 따끔거려 왔다.
“…….”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살갗이 흉하게 벌어지기는 했으나, 그 깊이가 얕았다.
만약 깊었다면 가슴의 상처는 둘째 치고 눈 하나를 잃었을 것이다.
대랑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가져가 흐르는 피를 만졌다.
미지근한 느낌.
물과는 달리 끈적함을 가진 자신의 피.
그 기분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그의 일장이 진무의 복부를 때린 순간,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 진무는 검을 세로로 그어 올렸다.
본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 본능이 만들어 낸 운이었을 것이다.
“후욱, 후욱…….”
그사이 몸을 일으키고 또다시 검을 쥔 진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검에 어린 강기가 옅어졌다.
새파랗던 강기의 색이 투명한 하늘빛을 띠며 그 내부에 갇힌 검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아까의 일장으로 내상을 입은 탓에 기운이 약해진 것이다.
그가 토해 낸 핏자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상으로 인해 기혈이 뒤틀리고 핏물이 목구멍으로 솟구치고 있으리라.
지금도 그의 입가를 타고 끊임없이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있지 않는가.
분명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그런데 저 눈빛은 뭐란 말인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독기?
“놈…….”
악다문 대랑의 턱 언저리에 근육이 짙게 드러났다.
죽여 주리라.
놈의 머리통을 부수고 사지를 뜯어내리라.
“크큭, 쓰라리지? 상처가. 와 봐. 다음에는 좀 더 깊이, 그 늙은 뼈다귀까지 베 줄 테니까.”
당장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큼 지쳐 있으면서도 끝까지 이죽거린다.
그를 바라보는 대랑의 한쪽 눈이 쓰라려 왔다.
핏물이 자꾸만 흘러 시야를 붉게 만든다. 반은 맑게, 또 반은 붉게 보이는 세상에 참기 힘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모가지를 뽑아 주마!”
파앙!
대랑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쳐 있음에도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있었다.
적중하겠다 싶으면 피하고 스친 것은 그대로 두며, 간간이 공격까지 해 오고 있었다.
“이놈!”
거칠게 대기를 가른 대랑의 주먹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진무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를 가까스로 피해 낸 진무가 고개를 쭉 뻗어 내밀며 핏물을 확 뿜듯이 토해 내었다.
철벅!
제법 많은 양의 피를 고스란히 얼굴에 맞아 버린 대랑은 잠시 멈칫했으나 곧바로 그의 턱을 차올렸다.
그 멈칫거림으로 공격이 느려진 틈에 재빨리 허리를 젖힌 진무의 턱 언저리를 대랑의 발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쳤음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충격.
‘크윽!’
뒤이어 찾아오는 고통에 다리가 풀려 버렸다.
악착같이 버티며 굳건히 바닥을 짚어 중심을 잡는 순간 강기를 머금은 대랑의 손가락이 짐승의 발톱처럼 진무를 할퀴어 왔다.
트드득!
옆구리의 살점이 한 움큼이나 뜯겨 나간다.
동시에 진무의 검이 횡으로 그어졌다.
스걱!
이번엔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펼친 검이기에 조금 더 깊었다.
대랑이 복부에 전해지는 짜릿한 고통에 살짝 물러나며 곧게 발을 뻗었다.
퍼억!
대랑의 발에 맞은 진무의 몸이 바닥에 몇 번이나 튕겼다가 구른다.
물러난 대랑이 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복부를 움켜잡았다.
“……네놈.”
그의 복부에서 흐르고 있는 피.
길게 이어진 상처가 이번엔 살갗을 자르고 근육까지 상하게 했다.
대랑은 눈가를 씰룩거리며 진무를 노려보았다.
“씨발…… 이젠, 일어날 힘도…… 없네.”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고 서서 지껄이는 진무의 모습에 대랑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감히, 네놈이 나를 상대로 육참골단(肉斬骨斷)을 해 보려는 것이냐?”
“…….”
분노한 대랑의 모습에 진무가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피식 웃었다.
입 안이 온통 피범벅이 되어 웃는 모습마저 기괴했다.
“하아, 하아…… 말했지. 뼈다귀…… 벤다고…….”
“…….”
“와, 씹새끼야. 아직 멀었으니까.”
검에 기대 간신히 서 있으면서도 다른 손을 들어 까닥거린다.
사실 마지막이었다.
이젠 힘이 없다.
겨우 두 번이 전부였다. 다시 공격이 시작되면 피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 갈가리 찢겨 죽지 않을까?
후회가 막급이다. 그냥 당세령 혼자 죽게 내버려 두고 멀리멀리 튀었으면 되었을 것을, 무슨 영웅 행세를 하겠다고 스스로 미끼가 되었단 말인가? 불로초로 겨우 살아난 주제에.
하지만 이제 늦었다.
염병, 이놈의 인생. 팔자 한번 사납기도 하지.
진무는 서서히 흐려지는 정신을 겨우 다잡고 대랑을 향해 웃었다.
그래. 와 봐.
그냥은 안 간다.
반드시 한 번쯤은 더 상처를 남겨 줄 것이다.
가까이만 오면…….
진무가 웃었다.
이빨이 부서지도록 깨물면서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 올렸다.
언뜻 보기에 오만하기까지 한 그 미소가 대랑의 가슴에 불안감의 씨앗을 심어 놓았다.
우연이다. 하지만 우연이 겹쳐지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대랑은 자신의 기운을 이용해 복부와 가슴에서 흐르는 출혈을 막았다.
“그래.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래 죽이나 저래 죽이나 매한가지인 것을.”
싸늘하게 웃은 대랑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어느새 백색의 뇌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뇌기를 더한 강기의 구슬.
강환을 포탄처럼 던져 진무의 존재 자체를 없애 버릴 작정인 것이다.
아, 이러면 곤란하지. 피할 힘도 없는데.
진무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고, 대랑의 손이 휘둘러졌다.
그 순간.
퍼어엉! 퍼퍼펑!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거친 폭음과 함께 소요가 발생했다.
설마 지원군?
거참 다행…… 어?
고개를 돌렸던 진무의 눈이 찌푸려졌다.
청랑대의 포위망을 뚫고 예의 그 기다란 백색 검을 휘저으며 달려오는 반가운 얼굴.
당세령이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진무를 향해 날아온 강기를 향해 뛰어들었다.
콰아아앙!
대지를 뒤흔든 폭발음과 함께, 당세령의 몸이 길게 미끄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