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까드득!
검날의 이빨이 빠져 톱니처럼 변한 지 오래였다.
“젠장.”
밤새, 그리고 해가 뜨고 낮이 되도록 진무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온 청랑대의 무인들이 그의 주위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후우…….”
진무는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크게 숨쉬기를 반복하며 거칠어진 호흡을 가라앉혔다.
딱 여기까지.
해가 떠오르고 비가 그쳤을 때 도주는 끝났다.
전후좌우 어느 곳으로도 도망할 곳이 없었다.
많기도 많다. 밤새도록 죽였는데.
그리고 뭐가 저리도 쌩쌩한지.
이렇게나 힘든데 적들의 얼굴은 피로해 보이기는커녕 쌩쌩하기만 했다.
망할 놈들, 회복제라도 때려 부은 거냐?
있으면 같이 먹지.
밤새 같이 뛰어다닌 인연이라는 게 있는데.
포위한 자들의 칼끝에서 피어오르는 살기에 숨이 막힐 듯 답답함이 느껴져 온다.
진무는 적들을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움직여 절벽을 등지고 섰다.
적어도 반나절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씨발, 좋아. 와 봐, 쉽게 당해 주지는 않을 테니까.”
어금니를 깨문 진무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뿜어진다.
반쯤은 허세지만, 적에게 약해진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호흡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을 끌며 기다려야 했다.
진무는 선 채로 천천히 기운을 돌렸다.
좌정하고 운기할 때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지만 이렇게라도 소모된 기력을 최대한 보충해야 했다.
파앗!
하지만 놈들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진무의 앞에 있던 놈들이 재빠르게 검극을 곧게 찔러 왔다.
네 개의 검격.
고개를 젖히고 허리를 비틀며 검격을 피한 진무의 검이 휘둘러지고, 두 개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어 뻗어진 손이 적의 목을 움켜쥐어 비튼다.
뿌득.
단 한 수에 목이 꺾인 적을 끌어당겨 이어진 공격을 막고, 높이 차올렸던 발이 직각으로 떨어진다.
빠가각!
짓밟힌 적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혀 허연 뇌수를 흘렸다.
한 동작처럼 이어진 간결한 움직임에 넷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었다.
기왕 허세를 부리기로 한 이상 잔인할수록 좋았다.
“이게 다냐? 고작 넷? 걱정 말고 전부 드루와!”
뇌수를 짓밟아 으깨고 용천수처럼 솟구친 핏물을 뒤집어쓴 채 새파란 안광을 토하는 진무의 모습은 악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하면 질릴 법도 한데 적들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지독한 놈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다니. 아마도 수적 우세 때문이겠지만…….
진무는 둘러싼 적들을 바라보며 끊어진 호흡의 흐름을 이어 갔다.
적들이 눈치채지 않게.
그사이 이전처럼 또 넷이 검을 뽑아 공격해 왔다.
감질나게 간이나 보는 것 같아도 딱 그 정도가 최선일 터였다.
진무는 절벽을 등지고 있다.
공격할 수 있는 방향은 전면과 좌우의 빈 공간.
위? 좋지 않다.
허공답보를 하는 전설적인 고수라 해도 허공에서는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적이 자신들보다 고수라면 한 수에 썰려 버릴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허공으로 뛰어들지 않는 법.
딱 넷이 적당하다.
놈들은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공격을 해 왔다. 그것도 연속해서.
힘을 빼려는 것이다.
진무가 지친 것을 알고, 상대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힘을 회복하는 것을 막을 참이다.
취릿! 빠가각!
진무의 검격과 손발짓에 또 네 명이 죽었다.
“개새끼들, 왜? 쇠 그물은 준비 안 해 왔나 보지?”
“…….”
진무를 포위한 청랑대 조장들은 그의 말에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무인들을 내보냈다.
싸우려면 직접 나설 일이지.
동료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냉혹한 놈들.
일월마교의 마두들보다 더한 놈들이다. 그래도 그놈들은 의리라도 있었는데.
마음 같아서는 포위한 적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리고 싶었으나 그리하면 앞으로를 대비할 수 없게 된다.
무월각의 노인. 대랑. 그가 오고 있을 테니까.
내력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들의 포위망에서 천천히 기력을 회복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다.
이깟 서너 명의 공격 따위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었다.
몇 번의 공격이 이어졌을까?
순차적으로 딱 네 명씩 이어져 오던 공격이 끊어지고, 진무의 발아래 스물이 넘는 시체가 겹겹이 쌓였을 때, 포위망이 뒤로 빠졌다.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표정이라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냐?”
포위망을 열고 다가오는 노인.
드디어 범잡이가 등장했다.
“당가의 아이는 잘 숨겨 둔 모양이구나.”
“집에 보냈다, 개새끼야.”
“…….”
진무의 이죽거림에 대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원이라도 불러 볼 참이로구나?”
“왜, 쫄리냐?”
“쯧쯧. 치기는 좋다만 아쉽게 되었구나. 네놈이 얼마나 더 버티겠느냐?”
“그건 해 봐야 알지 않겠어?”
쉬지 않고 뻗대고는 있었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직 내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노인네를 상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예상보다 적들의 조직력이 강해 도주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 버리기까지 했다.
씨발, 뒈지고 나서 오면 말짱 황인데.
이렇게 된 마당에야 당위에게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위험에 처했다는데 당연히 눈이 뒤집혀서 달려오지 않겠는가?
아니 근데 설마 딸내미 구했다고 바로 손절하는 건 아니겠지?
별별 생각이 다 드는 와중이었다.
“벽하.”
“예. 대랑.”
“청랑대 일 조를 데리고 삼백 장 주변을 경계하라. 적의 지원군이 나타나면 곧바로 연락하라.”
“알겠습니다.”
명령에 반문이 없다.
그만큼 대랑의 실력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미추, 별한.”
“예!”
“아이들을 오십 장 밖으로 물려라.”
“직접 하실 생각입니까?”
미추의 물음에 대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이 여물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범이다. 포위된 채로 나를 기다린 것은 힘을 회복하기 위함이었겠지.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놈이다. 예우는 해 주어야지.”
“……알겠습니다.”
미추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 손짓을 보내자 포위망이 넓게 퍼진다.
대랑이 뒷짐을 지고 진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런 적은 없었다만 네게 딱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
“…….”
“어떠냐? 지금이라도 청성에 있었던 태극요결을 내놓거라. 그럼 목숨은 살려 주겠다.”
회유하려는 것이다.
그 말에 진무의 눈이 가늘어졌다.
병신, 지랄을 한다.
두 번이나 권하는 것을 보면 조각이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그럼 더더욱 줄 수 없다.
남들이 욕심내면 더 주기 싫은 법이다. 또한, 진무는 기본적으로 제가 가진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다.
“늙어서 기억력이 닭대가리가 됐냐?”
“…….”
“이미 똥 된 지 오래라고 했잖아.”
진무는 천천히 검을 양손으로 잡고 사선으로 비껴들었다. 톱니처럼 변해 버린 검이었으나 아직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싸움이다. 버티는 수밖에 없다.
대랑과의 싸움을 최대한으로 이어 가야 했다.
그러나 혹여 그를 죽이는 데 성공해도 남은 것은 백여 명에 가까운 적의 수하들.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무리 따져 봐야 일 할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X 같은 영감탱이. 죽더라도 그때의 복수는 꼭 하고 만다.”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한 진무의 눈동자에 시퍼런 불길이 타올랐다.
쑤욱.
곧바로 뿜어진 푸른 빛의 검강이 검날의 톱니를 감추었다.
“쯧, 기회를 주었건만.”
대랑이 혀를 차며 한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슈아악! 쾅!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코앞으로 나타난 주먹에 진무가 급히 고개를 꺾으며 검을 사선으로 올려 베었다.
넘실거리는 강기의 꼬리가 검격을 따라 허공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콰아앙!
절벽 면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돌 부스러기가 튀어 진무에게 쏟아졌다.
동시에 자세를 낮춰 검격을 피했던 대랑의 일장이 솟구쳐 올랐다.
쩍!
검의 손잡이를 내려 일장을 막은 진무는 반탄력을 이용해 솟구치며 수직으로 검을 그었다.
까드득!
대랑의 잔영이 지면과 함께 반으로 잘렸다가 흩어지고, 진무의 측면에서 막대한 기운이 짓쳐 왔다.
쩡!
재빨리 강기를 돌려 만든 기운의 방패에 무지막지한 충격이 전해졌다.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 절벽 면을 수직으로 밟으며 달리는 진무를 대랑이 곧장 뒤쫓았다.
쾅! 콰쾅!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수가 쉬지 않고 오갔다.
강기가 부딪힐 때마다 생겨난 폭발이 절벽을 허물고 허공을 진하게 울려 놓았다.
비슷한 경지를 가진 고수들의 싸움에 있어서 누가 세고 누가 약하다는 판단은 무의미하다.
강과 강의 싸움이다.
한순간의 주춤거림이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고, 그것이 승패의 결정적인 지점이 된다.
그렇기에 경험이라는 놈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콰아앙!
둘의 부딪힘은 충격을 만들고, 그 여파에 공기가 터져 나가며 용의 포효와 같은 소음이 만들어진다.
한 식경이 채 흐르지 않은 시간 동안 백여 초의 공방이 지나가 버렸다.
열 몇 번까지는 세었는데 이젠 몇 합을 나누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크으…….’
부딪힘에 이은 반탄력이 몸을 울려 올 때마다 진무는 온몸이 들끓어 오르는 듯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과할 정도로 많은 이전 생의 전투 경험이 있다고는 해도 지금의 진무는 아직 커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같은 강의 무인이라고 해도 내력의 차이가 극명하다.
대랑의 강기는 진무보다 훨씬 더 순도 깊고 강력했다. 최상의 상태에서 싸워도 쉽지 않을 만큼의 고수였다.
대랑은 충분히 쉬었지만, 진무는 밤새 달린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최선을 다해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원래 내력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놈! 실로 대단하구나! 그사이에 무촌경을 익혔더냐!”
대랑은 진무의 움직임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공수를 번갈아 나누며 겪은 진무의 움직임은 궁의 무인들에게 익히게 한 무촌경이었다.
진무는 너무도 능숙하게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씨발! 내가 천재라서 그런다!”
대랑의 공격을 악착같이 피하면서도 진무의 입은 쉬지 않았다.
그거라도 안 하면 너무 밀리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다.
“오냐! 그럼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별안간 몸을 솟구쳐 거리를 벌린 대랑이 양손 가득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의 온몸에서 전격이 튀어 오르듯이 파지직거리고, 양손에 거대한 뇌기를 머금은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두 손을 활짝 펴자 뇌기가 새끼 치듯 수백으로 나누어졌다.
고개를 들어 대랑을 올려본 진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위에 뇌구를 띄워 놓은 그는 흡사 벽력(霹靂)으로 세상을 쪼개 놓는 뇌신 같은 모습이었다.
젠장, 이 정도였으면 진작 말하지. 그냥 알려 줄 수도 있었는데.
“죽어라!”
노인이 손가락 다섯을 활짝 펴 아래로 뻗자 뇌구(雷球)들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