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위험하다.
진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멈춘 풍환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 갔다.
진무는 솟구치는 핏물을 집어삼키며 다급히 풍환의 맥문을 잡았다.
맥이 너무 약하다.
이성을 잃어버린 탓에 진원지기를 과하게 사용한 것이다.
“진무……?”
풍환이 흐릿하게나마 돌아온 눈빛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위험합니다. 내력이 흩어지는 것을 막고 운기하십시오. 돕겠습니다.”
진무 역시 힘든 와중에도 풍환을 돌려 좌정시키고 그의 명문에 손을 대었다.
그 역시 내공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풍환을 죽게 할 수 없었다.
그를 제압해 양의심공을 얻으려는 것이었지 죽이려던 것은 아니었다.
내공을 끌어 올리자 단전에 찢어질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우웅…….
기운이 얼마 되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내공을 짜내서 풍환의 몸속으로 밀어 넣자 그의 입가를 타고 검은 핏물이 꿀럭이며 흘렀지만.
살려야 해.
진무는 사력을 다해 자신의 기운으로 풍환의 기혈을 바로잡았다.
“우욱! 웩!”
기어이 진무의 선기가 풍환의 기혈을 따라 일주천하는 데 성공하자, 그가 죽은 피를 완전히 토해 내었다.
잡았다.
흩어질 뻔한 진원의 기운을 막아 내고 미약하나마 선기를 그의 단전에 모이게 만들 수 있었다.
시퍼렇게 변했던 풍환의 안색이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오고, 호흡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하아…… 다행이네…….”
모든 힘을 소진해 버린 진무가 밀려드는 안도감에 희미하게 웃으며 풀썩 쓰러졌다.
“이, 이보게. 진무!”
* * *
흐릿한 빛이 눈을 파고든다.
정확히 사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한다는 것 정도는 인지할 수 있었다.
낯선 천장이 보인다.
어딘가 안락함이 느껴지는 천장이었다.
옅은 연기가 아른거리며 피어오르고 코끝에는 향냄새가 난다.
설마 병풍 뒤? 죽은 건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촤악, 쫙!
무언가를 헹구고, 물기를 짜내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으음.”
일어나려 힘을 주었지만, 온몸의 근육이 욱신거리듯이 아팠다.
“일어났어?”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
“누구긴!”
당세령이지.
그런데 그녀가 왜 여기…….
정신을 차리니 온몸이 쑤시긴 해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진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여긴?”
“천룡각. 의실.”
“아…….”
당세령이 자신을 이곳으로 옮겼구나.
“풍환? 사조님께선?”
진무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묻자 당세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장문인과 술 드셔.”
어? 뭐?
근데 왜 얼굴을 찌푸려?
놀랐잖아, 이 자식아!
“이게 뭐냐? 너 때문에 술도 한잔 못 하고!”
“…….”
진무가 눈을 끔벅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건 또 왜 화를 내고 지랄일까?
진무가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끼이익.
의실의 문이 열리고 운암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
벌써 깨어났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꽤 놀란 눈치였다.
아, 젠장. 어쩌지?
풍환자를 진원지기까지 사용하도록 몰아붙여 놓았는데.
곤륜의 자존심이자 최강의 고수인 그를 꾀어내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일어나셨군요!”
“……?”
운암이 한껏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왜?
“감사합니다. 스승님을 살려 주셔서.”
이건 또 뭔 소리란 말인가?
“스승님께 다 들었습니다.”
뭘?
“두 분이 수련을 하러 가신 청량림에서 스승님의 병증이 도진 것을 진무 도장께서 막으셨다면서요?”
아니, 그건 다 계획이 있어서.
근데 그게 왜 감사할 일이지?
“스승님께선 정신을 잃고 진원지기까지 사용하신 모양이더군요.”
그랬지.
그건 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계획에도 없던 우발적인…….
“감사합니다. 진무 도장께서 목숨을 걸고 살리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스승님께선…….”
“…….”
진무가 다시 눈을 끔벅거렸다.
운암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 다행히 자신의 은밀한 계획은 들키지 않은 모양이다.
“진무 도장께서는 정말이지 우리 곤륜의 큰 은인이십니다.”
운암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절까지 올린다.
그럴 것까진…….
오해해 줘서 고맙긴 한데 좀 찔리네.
진무가 운암을 보며 어색하게 웃는데 당세령이 벌떡 일어났다.
“자, 일어났으면 대충 옷 입고 나와. 다들 기다리시니까.”
그렇구나.
풍환은 괜찮은…… 뭐? 옷?
진무는 그제야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
이런 젠장! 다 본 거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이불을 걷어 보는데.
“뭐, 딱히 볼 것도 없더만.”
당세령이 피식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새끼…… 야! 이 미친 새끼야! 나를 뭘로 보고!
그래도 어? 그것보단 큰…….
“대단한 여인입니다. 당 소저를 다시 보았습니다.”
넌 또 뭘 다시 봐?
쟤는 백 번을 고쳐 봐도 미친년이야.
“진무 도장이 정신을 잃고 계셨던 이틀간 계속 옆을 지키셨습니다. 열이 펄펄 나는 것을 물수건으로 어찌나 정성스럽게 닦아 내시는지.”
“…….”
“저리 활기차던 분이 한 번도 웃질 않으시더군요.”
“…….”
“좋은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진무 도장.”
진무가 당세령이 닫고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쟤가 그랬다고?
설마. 분명 뭔가 바라는 것이 있었겠지. 분명해.
그래도 조금은 착한 미친년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니까…….
조금 잘해 줄까?
진무가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움직일 만하신 겁니까?”
“뭐, 그럭저럭 움직일 만은…….”
“대단하시네요. 남겨진 흔적을 보면 스승님께서 전력을 다하신 것 같던데…….”
“아! 그건.”
그냥 처음에 지 혼자서…….
하지만 상세한 설명은 당연히 생략했다. 다들 은인이라고 믿고 있고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풍환은 기억을 못 할 테니.
그걸로 족하다.
진무는 진룡 풍환을 구한 곤륜의 은인인 것으로.
“하면, 나가 보시렵니까?”
“…….”
“스승님도 장문인도 진무 도장께서 깨어나시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으나 옷은 곤륜의 것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운암이 옷을 놓고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일이 묘하게 되어 버렸다.
풍환은 살렸으나 구결은 얻지 못했다.
제기랄…….
하긴, 그래도 다행이다. 풍환이 죽었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았으니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후우…… 쉽지 않네.”
진무는 한숨을 내쉬며 운암이 두고 간 학창의를 입었다.
“좋네.”
돈이 많은 문파라 그런지 재질이 너무도 좋다.
피부를 스치는 느낌이 무척이나 부드럽게 느껴졌다.
* * *
의실에서 나온 진무의 모습에 만나는 제자들마다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마치 큰 은혜를 입은 것처럼.
진무는 운암을 따라 천룡각에 있는 풍환의 거처로 들어갔다.
“진무 도장!”
풍환과 함께 있던 장문인이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은 좀 어떤가?”
진무가 웃음을 머금고 다가온 풍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진원지기를 과하게 사용한 때문인지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
청수하던 모습이 주름 가득한 노인의 그것으로 변해 버렸다.
수십 년을 늙어 버린 듯한 그의 얼굴을 보니 괜시리 미안했다.
“이 사람. 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가?”
풍환이 양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
뭐가?
다른 이는 몰라도 풍환에게는 진무가 더 고마웠다.
살아 주어서.
하마터면 도사 살인자가 될 뻔했고 곤륜의 흉적이 되어 쫓길 뻔했다.
양의심공을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파문에 사지근맥까지 잘릴 뻔한 것이다.
“곤륜은 진무 도장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장문인이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 왔다.
“진무 도장 덕분에 사숙께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게…….”
감사의 뜻을 표하자면 당연히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무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찔려서 생각조차 품지 못했다.
몇 번이고 감사하는 장문인의 말이 끝난 뒤.
“장문인, 잠시 둘만 있게 해 주겠는가?”
“예?”
“내 진무 도장과 잠시 나눌 말이 있다네.”
“아! 알겠습니다. 하면 밖에 나가 연회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 주게. 운암도 잠시 나가 있거라.”
“예, 스승님.”
장문인과 운암이 나가고 풍환이 진무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가 나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이 있으리라 생각하네.”
“……?”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왜, 아닌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걸 어찌?”
“허허, 이 사람. 내 그리도 멍청해 보였던가? 내 병증을 앓고 있으나 이성을 잃기 전까지는 전부 기억한다네.”
진무가 속을 들킨 듯한 기분에 눈을 내리깔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풍환의 얼굴에는 탓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저 주름진 얼굴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으며 진무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설곡에서 자네가 청무, 그분의 이야기에 보인 반응도 그렇고, 청량림까지 나를 데려가서 같은 이야기를 새삼 다시 물어본 것도 그렇고.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네.”
“……전부 눈치채신 모양이네요.”
“허허. 그렇네. 분명 자네라면 무당의 이야기에 내가 병증을 보이는 것을 알 것인데 어찌 그랬을까? 그리고 어째서 청무 어른의 이야기를 물어본 것일까? 자네가 정신을 잃은 동안 깊이 생각해 보았지.”
“…….”
“구결 때문이겠지?”
맥을 정확히 짚어 내는 풍환의 말에 진무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죄송합니다.”
“죄송이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진원지기를 사용한 것은 매우 위험했으나 되레 복이 되기도 하였네.”
“예?”
“병증이 완화되었어.”
“아, 다행입니다.”
“어쨌든 후반부의 구결이 어찌하여 나뉘었고, 우리 곤륜에 전해진 것인지는 모르네. 하지만 당대의 무당지검이 찾아왔고, 나를 만나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인연이라. 또한, 원래 무당의 것이니 당연히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생각했네.”
나지막하게 말하는 풍환의 모습에 진무는 더없는 감동을 느꼈다.
모든 것을 알았다면 자신으로 인해 죽을 뻔했다는 사실도 알 터다.
그런데도 저리 훈훈하게 이해해 주다니.
역시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오행(五行)이 서로 보하고 상하며, 천양하고 곤음하라. 천(天)은 백회(百會)니 뜨겁고 곤(坤)은 곧 회음(會陰)이니 차가우라. 고저(高低)는 그저 구분이며 마음(心)에 음양이 닿아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이는 곧 태극(太極)이라.”
“…….”
후반부의 또 다른 구결이 풍환의 입을 통해 진무에게 전해졌다.
“내가 아는 구결은 그게 다라네.”
풍환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이고 곱씹었다.
청성에서 얻은 구결과 풍환에게서 얻은 구결.
무극이태극, 양동하면 음정하라.
오행상충, 천양곤음. 고저는 무관하며 음양의 이치가 마음에 모이면 태극이라.
‘다함이 없는 것이 곧 태극이고, 양이 움직이면 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오행은 서로를 지키기도 하고 해치기도 한다. 하늘에는 뜨거움이 있고 땅에는 차가움이 있다. 높고 낮음에는 의미가 없으니 음양의 이치가 마음에 닿으면 태극으로 돌아가리라.’
아직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얻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진무가 곱씹는 와중에 풍환이 물었다.
“목적한 바를 이루었으니 이제 공동으로 갈 참이겠군?”
진무의 행로를 이미 예상한 듯이 묻는 그의 말에 진무는 따로 속이지 않았다.
“예. 공동으로 갈 참입니다.”
“흐음. 하면 구결을 얻은 대신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는가?”
“말씀하십시오.”
“자네의 표주에 운암을 데려가게.”
“예. ……예?”
고개를 끄덕이던 진무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짐을 또 안으란 말인가? 이미 하나가 붙었는데?
“그, 그건…… 좀…….”
“왜? 불편한가?”
“……예.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놔두게.”
이해해 주니 참으로 고맙…….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자네가 구결을 얻기 위해 일부러 나를 청량림으로 데려가고 내력을 소진시킨 다음 진원지기까지 뽑아내게 했지만 어찌어찌 살려 놓았다, 라고 무당에 감사를 전하면 되지.”
“…….”
“아, 정무맹에도 전하고.”
풍환자가 돌처럼 굳어 버린 진무를 바라보며 자애롭게 웃었다.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뭐, 허허허.”
“…….”
“뭐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저 정무맹의 한 축인 곤륜의 최고수였고, 정무칠성의 한 사람이지만 어차피 병증에 시달리고 다 죽어 가는 노인네였는데. 허허허.”
“…….”
이, 이 노인네…….
저런 담담한 표정으로 협박을 하다니. 이해심은 개뿔이!
밀물처럼 몰려왔던 존경심이 썰물보다 빠르게 사라져 간다.
역시 늙든 젊든 도사 놈들은 최악인 게 맞다. 완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