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오래 걸리네.”
절차가 원래 그래.
“짐도 엄청 많네.”
그건 좀 그러네.
진무와 당세령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앞의 촌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흑, 사숙. 이리 가시면 언제 또 뵐지.”
천룡각의 일대제자들이 운암을 얼싸안고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한심스럽기 그지없었다.
풍환의 결정에 의해 운암의 표주가 결정되었다.
마도와 오랫동안 전쟁을 치러 왔던 곤륜으로서는 꽤 오랜만의 일이라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절차도 까다롭고 나누어야 할 인사도 많았다.
하긴 오랜 시간 보지 못할 것이니 걱정하는 마음이야 오죽할까.
하지만 표주란 중원을 두루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고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며 깨달음을 얻는 수련의 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건 사냥 도구, 요리 도구, 각종 향신료와…….”
“이것도 가져가거라. 야숙을 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아이쿠, 이걸 빼먹을 뻔했구나.”
장로들이 걱정하는 마음에 저마다 챙겨 온 물건들을 하나씩 건네었고, 운암은 넙죽넙죽 잘도 받아 챙겼다.
그 많은 물건을 하나씩 받아 넣자 처음에는 작은 봇짐만 하던 것이.
“이런, 작아서 안 되겠구나. 다른 천은 없느냐? 보자기로 쓸 좀 넓은 천이 필요하니 가져오너라.”
점점 더 커진다.
“사숙, 사숙. 여벌의 옷도 가져가셔야지요.”
“…….”
보고 있자니 정말 기가 찬다.
도사 놈이 뭔 옷을 다섯 벌이나 챙긴단 말인가?
급기야 운암이 평소 사용하던 침구까지 가져오는 제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든 걸 알차게 보따리 속에 구겨 넣은 운암이.
“웃차,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먼 길 떠나는 우리 사제의 모습이 참으로 장하구나.”
운해가 그의 눈에는 어리기만 한 운암의 어깨를 기특하게 두들긴다.
“자, 진무 도장. 서둘러 출발하시죠.”
모두와 인사를 마친 운암이 진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
진무가 그런 운암을 멍하니 바라본다.
“왜요?”
왜겠냐?
“무슨 문제라도?”
운암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도무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등에 짊어진 거대한 보따리, 양손에 나누어진 사람만 한 보자기 두 개, 그 와중에 비껴 멘 봇짐 하나와 함께.
“하아…….”
어디 전쟁이라도 났냐?
피난이라도 가?
이럴 거면 차라리 곤륜산을 들고 가지 그러냐?
짜증이 물밀 듯이 치밀어 오른다.
“혹시……그거 다 챙겨 가려고?”
“당연합니다. 자고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풍진강호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운암의 말에 장로들이 실로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운암은 마교만 보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전투적인 놈이다.
그리고 그 전에 어디 가서 산적질을 해도 몇 대는 떵떵거리고 살 만큼 강한 놈이 뭔 필요도 없는 짐을 저리도 많이 챙겨 간단 말인가?
자고로 여행객의 짐은 간소할수록 좋은 법이다.
안 그래도 풍환의 부탁으로 떠안은 짐 덩어리인데.
진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다가가 그의 양손에 들린 짐을 빼앗듯이 받아 들었다.
“어?”
‘어’ 같은 소리 하네.
“아니, 이게 왜 필요해?”
진무가 일단 짐에서 침구부터 빼서 던져 버렸다.
“아, 아니, 진무 도장. 혹여 잠자리가 추워 사숙께서 고뿔이라도 드시면.”
일대제자가 내는 우려의 목소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요리 도구들과 각종 향신료 꾸러미를 꺼냈다.
“이건 또 뭐야? 어디 숙수라도 되려고?”
“아니 그건!”
장로들의 우려.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짐을 마구잡이로 헤쳐 놓는 진무의 모습에 장로들과 제자들의 걱정과 탄식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휴, 이제 됐네.”
여벌의 의복 하나를 제외한 모든 짐을 빼 버리자 보자기는 한 손에 들기 편할 정도로 앙증맞게 변해 있었다.
“진무 도장, 아니 이것들을 전부 빼 버리면…….”
“딱! 요만큼이면! 충분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장로들의 반발에 진무가 고개를 홱 돌려 풍환을 째려보았다.
아무리 모종의 약속(?)을 했지만 이런 식이면 절대 데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눈빛에 절절하게 담아서.
“험험, 그, 그 정도면 충분하지.”
“사숙!”
풍환이 외면하듯이 슬쩍 고개를 돌리자 장로들이 원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잔혹한 마교와 매일을 전쟁으로 보내 온 곤륜의 도사들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스스로 중원의 수호자라 자처하는 놈들이 제자를 이리도 과보호 아래서 기르다니.
“자, 출발!”
더 있다가는 기껏 줄인 짐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어차피 곤륜에서 얻을 것은 얻었고, 이제 감숙성의 공동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이천오백 리 길.
아무리 빨리 달려도 열흘은 족히 걸릴 터였다. 진무는 한시라도 빨리 공동으로 가고 싶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게!”
“……?”
진무가 떠날 준비를 재촉하는데 운해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또 뭘 얹으려고?
“할 건 해야지.”
뭘 한다고?
짜증스럽게 바라보는 진무의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은 운해와 장로들이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강강술래라도 하듯이 그들 주위를 에워쌌다.
아, 뭔지 알 것 같다.
대충 이런 위치를 잡았다면.
“……급급여율령.”
역시나.
마교와 전투를 밥 먹듯 치르는 전투적인 놈들이라 도사임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여행에 액운을 쫓기 위한 주문을 왼다.
마교와 싸우며 제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을 때는 잘도 대범하였구나.
한참의 의식이 끝나고 난 뒤에도 무슨 다섯 살 먹은 애를 혼자 여행 보내는 것도 아니고 뭔 걱정이 그리도 많은지 양풍까지 따라 내려온 풍환과 천룡각의 제자들이 아련한 표정으로 배웅을 하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다.
저 걱정이 뼈까지 사무친 놈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진무가 아까운 웃돈까지 써 가며 운암이 탈 말 한 마리를 구해 왔다.
청해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곤륜에서 감숙까지는 꽤 먼 길인지라 말을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단거리라면 몰라도 장거리에 경공을 사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비효율적이니까.
“그럼 다녀오너라.”
“예! 스승님!”
운암이 스승에게 인사하고 말 등에 오르자 천룡각의 일대제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그만해라. 이제 지겹다.
대체 인사를 몇 번이나 하는 거냐?
누가 보면 평생 안 보고 사는 줄 알겠어, 아주.
“가자!”
또 인사를 할까 봐 짜증이 난 진무가 말채찍을 매섭게 때리자 세 마리의 말이 일제히 양풍의 관도를 내달렸다.
시원스럽게 스치는 바람에 곤륜 놈들에게 받은 정신적인 고통이 조금씩 옅어지고, 지나간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운공의 말에서 시작된 양의심공의 후반부를 찾아 나선 여정.
처음에는 무당을 떠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그다음에는 온전한 양의심공을 익히는 것.
무당지검이 된 이후 요원해졌던 그 꿈이 운공의 말에 다시 이어졌다.
존재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던 양의심공의 후반부 태극본.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고, 운 좋게 청성과 곤륜에서 후반부의 핵심인 태극요결을 얻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라는 것이 진짜로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곤륜의 구결은 풍환이 알고 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청성에서는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만약 동정호에서 백표를 만나지 않았다면? 백표를 백가장에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무혈을 얻지 않았다면? 당세령이 그것이 열쇠임을 추측하지 않았다면?
청성에서 태극요결을 얻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양의심공은 이상하게도 진무의 손에 순조롭게 들어왔다.
진인사대천명이라더니.
이게 다 다시 사는 삶을 열심히 살았더니 하늘이 돕는 게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하필이면 태극요결이란 말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놈들이 그 역사를 어찌 아는지 모르지만, 대랑이라는 자를 만났을 때, 놈은 분명 양의심공이 아닌 태극요결을 내놓으라 말했다.
양의심공을 노린 것이 아니다.
양의심공만 얻으려 했었다면 무당을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빨랐을 테니까.
정무칠성에 비견되는 대랑과 그 수하들의 실력이라면 힘없는 무당을 무너뜨리기는 쉬운 일이었을 터다.
어쨌든 태극요결을 얻은 이상 여유가 생겼다.
그들이 혹여 공동과 화산에 남아 있는 나머지 조각, 즉 전반부의 주해본을 노리고 있고, 진무보다 먼저 얻는다 해도 이제는 상관없다.
얻지 못한다면 무당에 남아 있는 양의심공의 전반부를 익히면 된다.
설마하니 무당지검인 진무가 사정하는데 주지 않을 리는 없을 테니까.
차라리 무당으로 돌아갈까?
아니다. 그건 최후의 방법이다.
원하는 것은 스스로 얻는다.
공동과 화산을 둘러보고 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데, 도대체 대랑이라는 이가 몸담은 ‘궁’이라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조직이란 말인가?
무슨 목적으로 태극요결을 찾는 것이며, 또한 무슨 목적으로 구야자의 허상을 만들어 마교와 곤륜을 싸움 붙이려 했을까?
자신이 사패천을 만들었던 것처럼 무림에 혼란을 야기하고, 그 틈을 타서 또 하나의 세력을 만들려는 것일까?
그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굳이 모습을 숨기고 은밀히 움직일 필요가 없다.
필시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리라.
“내 참, 뭔 걱정이야.”
한참을 생각하던 진무가 피식 웃었다.
고민을 거듭해 봐야 괜히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놈들이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이미 진무의 꿈은 장마를 버텨 낸 풀처럼 크게 자라나 있었다.
어차피 나중에 전부 발아래 꿇릴 놈들이다.
일단 양의심공을 얻고, 그 후 묵룡혼원공을 다시 익혀 과거의 힘을 되찾는다.
만약, 정말 만약에 태극요결의 뜻을 깨달아 몸 안에 자리 잡은 선기(仙氣)와 묵룡혼원공의 사기(邪氣)를 합일하면?
고금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절대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올해 그의 나이 스물.
벽에 똥칠을 할 때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창창하리만큼 긴 세월이 남았다.
비록 망할 차사 놈의 주술로 인해 남의 몸을 뒤집어썼다곤 해도 불로초의 영기가 남았다면 영생을 누릴지도 모르고.
여튼 정무맹을 차지하고, 사패천을 다시 손에 넣고, 마교까지 집어삼킨다.
궁이라는 자들이 새로운 세력으로 득세하면 그들까지.
그리고 언젠가 황제의 머리맡에 서서…….
흐흐흐.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진무 도장! 진무 도장!”
“야!”
“……어?”
한참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운암과 당세령이 몇 번이나 진무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야?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그랬냐?
하도 기분이 좋아서.
“왜?”
“날 다 저물었어. 대체 언제 쉴 거야?”
당세령의 짜증스러운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서산 너머로 해가 붉은빛을 뿌리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기분이 그래서 그런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이다.
“아!”
“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언제 쉴 거냐고!”
당세령이 짜증이 잔뜩 스민 눈으로 진무를 째려보았다.
이놈 계집애는 하여간 싸가지가 없다.
당세령이 처먹은 추향고만 아니면 당장에 떼어 버리고…… 어 잠깐!
추향고?
저거 원래 몸 안에 진기를 주입해서 태워 버릴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진무가 퍼뜩 깨달은 듯이 당세령을 쳐다보았다.
아씨, 왜 전에 치료해 줄 때 깨닫지 못했던 거지?
그래! 태워 버리면 되는 거잖아?
만리추종향이야 내가 처먹었으니 힘들 테고, 당세령 몸속에 있는 추향고를 태워 버리면?
흐흐흐, 그 쉬운 방법을 이제야 생각하다니!
“왜 쪼개? 언제 쉴 거냐니까!”
당세령이 신경질적으로 째려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미 머릿속에 기분 좋은 생각들로 가득하니 니가 째려본들 어떠하리.
눈빛이 싸가지 없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참아 주마.
“쉬자, 쉬어. 저기서 야숙하자.”
진무가 이해심 가득한 표정으로 웃으며 황량하기 짝이 없는 바위 아래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