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기분이 좋아진 진무가 자진해서 먹을 것을 사냥해 오겠다고 한 뒤.
타닥, 타닥.
마른 나뭇가지를 쌓아 만든 모닥불을 두고 운암과 당세령이 마주 앉았다.
“당 소저께선 진무 도장과 어떤 인연을 가지고 계십니까?”
한참이나 말없이 적막하던 가운데 운암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운암에게는 말한 적이 없었나?
“목숨을 빚졌습니다.”
“목숨을?”
“뭐 곤륜과 비슷하게 은혜를 입었다고 할까요? 어쨌든 갚아야 할 게 있죠.”
“그렇군요. 어쩐지, 그 은혜 때문에 진무 도장을 연모하시게 된 모양입니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목숨을 구해 준 은인과 사랑에 빠지는.
하지만 당세령은 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거랑은 전혀 상관없는데요.”
“……예?”
“은혜랑 연모는 달라요. 운암 도장.”
“…….”
“목숨으로 빚졌으니 언젠가 그가 원하면 목숨으로 내어 줘야지요. 그게 당가가 은혜를 갚는 법입니다.”
“그, 그런……. 당가는 대단하군요.”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빚지면 그대로 갚아야 한다니 참 대단한 집안이다.
“그럼 좋아하시는 이유가?”
“시원하잖아요. 멋있고, 매력 있고. 마치 세상 혼자 사는 것 같고.”
당세령이 히죽 웃는다.
“그리고 적어도 저를 있는 그대로 대해 주거든요. 진무 녀석. 눈치도 안 보고, 욕해도 얼마든지 욕으로 받아치고, 힘으로 개기면 보란 듯이 사정 안 봐주고…….”
“…….”
“당가에서 태어난 여인은 언젠가 짝을 맺어야 하죠.”
어딘가 처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때론 혈족과 연을 맺어야 하기도 하고, 때론 가문의 영달을 위해 정략적으로 연을 맺기도 하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집안의 강제적인 결정을 거부할 수 없어요. 그게 가법이니 따라야 하죠.”
“음…….”
이해한다.
무림 가문 여인들의 삶은 으레 그러하다 들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네요. 진무 도장께서 항상 옆에 두시니.”
운암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당세령이 피식 웃는다.
“누가요? 진무가요?”
“예?”
“말도 안 되는 소리. 쟤는 여자에겐 도통 관심이 없어요. 약한 척도 해 보고, 전에 다쳐서 불가피하게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는데 속살을 보고도 표정 하나 안 바뀌더라니까요. 자존심 상하게끔 말이죠. 진무는 아마 언제나 절 떼 놓고 싶은 생각뿐일 겁니다.”
“…….”
“무던히 노력하지 않으면 돌아봐 주지도 않아요. 미친 짓이라도 해야 한 번쯤 째려보고 노려봐 주기라도 하거든요. 그래야 그나마 관심을 받을 수 있죠.”
“아…… 그런가요?”
“생각해 봐요. 저 인간 매력 있잖아요. 분명히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을 거예요. 그 전에 쟁취해야죠. 사력을 다해서…… 누가 채 가기 전에.”
“음, 당 소저께선 참으로 힘겨운 연모를 하고 계시는군요.”
“아니요. 힘겹다니요. 오히려 다행이에요. 이상하게 저 녀석한텐 그게 더 잘 어울리더라구요.”
당세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 아닙니까? 지금은 함께할 수 있으니.”
“그걸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저 인간 발목 잡지 않으려고 집안의 가보나 다름없는 물건들을 죄다 훔쳐서 나오고…….”
“…….”
“해장국에 만리추종향도…….”
“…….”
“추향고를…….”
그간 지나온 둘의 인연을 설명하는 당세령의 말에 운암의 낯빛이 허옇게 질려 갔다.
아, 좋아하는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자고로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더니.
집착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보통 미친 도우는 아니었구나. 고문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다, 당 소저. 혹시 사람을 사랑해 본 게 처음이신가요?”
“네.”
참으로 힘찬 대답…….
“그…… 방법을 좀 바꿔 보시는 게…….”
“……?”
* * *
“어?”
사냥을 해서 돌아온 진무가 멀리 모닥불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당세령과 운암을 쳐다본다.
뭔 이야기를 하는데 참 사이가 좋아 보인다.
기회다.
뒤에서 제압하고 진기로 추향고를 태워 버리면?
눈빛을 음흉하게 빛낸 진무가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추향고를…… 추향고를…….
바스락.
“너 뭐 하냐?”
“…….”
하필이면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
추향고만 생각하느라 바닥에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바람에 당세령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기척을 최대한으로 지웠건만…….
“늑대야?”
당세령이 진무의 손에 들린 늑대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그래, 추향고는……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언젠가 반드시 태워 버리겠다!
진무는 힘차게 타올라 허공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입 안 가득히 고기를 베어 물었다.
“향신료 꾸러미는 가져올 것을…….”
고기를 한 점 뜯어낸 운암이 진무로 인해 챙기지 못했던 짐을 생각하며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이 황량한 곳에서 기껏 늑대를 잡아다 구워 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이런 나약한 놈이 곤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풍환의 제자라…… 어? 잠깐만.
고개를 돌려 째려보던 진무의 머릿속에 낮 동안의 기분 좋은 생각이 이어졌다.
“흐흠…….”
진무가 운암을 바라보며 눈을 음흉하게 뜬다.
그래, 이건 기회다.
아무리 강해진다 해도 모든 조직을 다스릴 수는 없었다.
사패천은 둘째 치고 정무맹을 다스려 줄 충실한 수하가 있어야만 했다.
정무칠성?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네들일 뿐이다.
변하고 있는 시대에 제대로 발맞추자면 구시대의 다 늙어 빠진 유물 같은 그들을 버리고 젊은 피로 수혈을 해야만 했다.
구파와 오대무가, 무수한 중소 방파들을 거느린 정무맹을 다스리자면 한두 명 가지고는 턱도 없는 일이다.
사패천주였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수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사파라면 모를까 정파 놈들은 뜻이 맞아야 함께 한다.
청상과 청우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운암은 곤륜의 촉망받는 기대주이자 의기에 이른 고수였고, 더욱이 풍환의 진전을 이어받은 제자.
발전 가능성과 속도가 누구와도 비교가 안 된다.
만약 그가 강의 경지를 깨닫는다면 단번에 정무맹의 중심으로 성장할지도 모를 위인이 아닌가?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즉, 당세령과 달리 장차 이용할 가치가 충분한 놈이란 뜻이다.
더군다나 그는 진무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인 인물이 아닌가?
마교와의 싸움에서 운암과 곤륜의 제자를 구했고, 제 스승까지 구해 주니 진무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존경심이 흘러넘칠 듯했다.
나이 어린 진무가 반말을 하고 있어도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했다.
즉, 꼬시기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녀석이라는 말이다.
운암은 어느새 진무의 마음속에 귀찮기만 했던 짐짝에서, 장차 자신의 손짓을 따라 움직여 줄 듬직한 꼭두각시로 변해 있었다.
“어찌 그리 보십니까?”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야숙은 처음이지?”
진무가 부하 삼 호로 찜한 운암을 보며 음흉한 마음을 감추고 온화하게 웃었다.
“처음은 아닙니다만, 곤륜산에서 이리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표주란 그런 것이지. 앞으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할 거야.”
“아, 그러고 보니 진무 도장께선 야숙이 처음이 아니시겠지요?”
“당연히. 무당에 있을 때도 꽤나 자주 해 본 것을.”
“정말입니까? 역시, 그만한 무위에 어울리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계셨군요.”
운암의 해맑은 감탄에 진무는 그를 청상, 청우에 이어 부하 삼 호로 내정하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이 녀석, 어쩌면 데려오길 잘한 것일지도.
“술이라도 한 병 있으면 좋겠구만. 야숙은 젠장, 객점에서 자면 좀 좋아?”
닥쳐라. 부잣집에서 자란 너 따위가 감히! 야숙의 낭만을 아느냐?
진무가 고개를 홱 돌려 당세령에게 핀잔을 주려는데.
“그러게요. 침구를 놓고 왔는데 잠을 편히 잘 수 있을지. 당 소저의 말대로 술이라도 한 병 있으면.”
이런, 내 생각이 짧았구나.
우리 부하 삼 호 편하게 침구는 들고 오게 할 것을.
“다음에는 객점이 보이면 그곳에서 쉬도록 하지.”
진무가 당세령을 흘기던 눈을 돌려 운암을 포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 *
“하암.”
밤새 혹시나 운암이 추위를 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잠자리를 살피며 밤을 보낸 진무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풀었다.
“너도 잠 설쳤냐?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간밤에 한숨도 못 잤네.”
당세령이 투덜거렸다.
거짓말하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안 배웠냐?
어찌나 코를 고는지 마른 밤하늘에 천둥 치는 줄 알았다. 혹시나 비라도 내려 운암이 맞을까 봐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그래요? 흠, 이상하게도 저는 편하게 잘 잤습니다. 희한하지요? 몰랐는데 야숙이 체질인가?”
당세령의 말에 운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다행이다.
내 밤새 너의 잠자리를 돌봤느니라.
잘 잤다는 운암의 말에 진무가 또다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왜 처웃고 그……러니……?”
당세령이 짜증을 내려다가 운암의 눈치를 살피며 뒷말을 흐린다.
하지만 진무가 그 작은 변화를 눈치챌 리 없었다.
남이야 웃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부하 삼 호가 잘 잤다는데.
“그래도 오늘부터는 객점에서 잘 거지?”
“그래.”
“역시 내가 불편할까 봐 걱정되었구나?”
되지도 않는 오해를 하며 배시시 웃는 당세령의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돌려 피식 웃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자는 모습을 봐선 나무에 걸어 놔도 숙면을 취할 여자가.
진무의 시선은 여전히 운암을 향해 있었고, 당세령은 그것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라 멋대로 착각했다.
“운암, 일단 옷이나 갈아입어라.”
“예? 옷을 왜? 아직 도포를 빨 시기가 되지 않았는데요?”
“더러워져서 그런 게 아니고 괜한 시비에 휘말릴까 봐 그런 거야.”
“시비요?”
“그래. 앞으로는 곤륜의 영역권 밖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파의 영역을 지나가기도 해야 해. 괜히 신분을 들켜 봐야 쓸데없는 시비만 생긴다고.”
“아! 역시, 진무 도장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군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녀석, 감탄하기는.
운암이 자신의 짐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며 진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
“어디 가서 갈아입지?”
“넌 됐다.”
“왜? 당가라고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도 팔자다.
중원 천지에서 녹의경장을 당가만 입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당가라는 것을 들켜도 아무 상관이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그 독한 가문의 성격은 중원의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일부러 시비를 걸 생각이 아니라면 당가를 건들지 않는다.
그것이 정파든, 사파든.
“자, 그럼 출발해 볼까?”
다시 말에 올라 감숙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달리고, 또 달렸건만.
운암을 위해 객점에서 쉬려던 생각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청해성 자체가 황량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지 마을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해 봐야 목축업을 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라 쉴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또다시 야숙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닷새 만에야 작은 소도시라고 불릴 만한 합적현(哈赤懸)에 도착했다.
크지 않은 마을이라 객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허름하기 짝이 없었으니…….
“이게 뭐야?”
입고 있는 옷이며 머리카락마저 먼지에 뽀얗게 변해 버린 당세령이 객점의 닫힌 문에 걸린 패찰의 문구에 눈을 부라렸다.
만원(滿員).
꽉 찼다는 말이다.
안에서는 씹고, 뜯고, 맛보며, 즐기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런 제기랄!”
패찰을 움켜쥔 당세령의 눈에 핏발이 섰다.
“야, 왜 그래? 자리가 없다잖아. 딴 데 가자.”
“딴 데? 딴 데? 딴 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무의 말에 극도로 신경질이 난 당세령이 냅다 객점 문을 열어젖혔다.
하여간에…… 뭐,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진무가 사천을 출발해 곤륜파로 갔던 경로와 곤륜을 출발해 감숙으로 가는 경로 자체가 달랐다.
이틀 차에는 조금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밤하늘의 별을 벗 삼아 잠을 청했다.
사흘 차에는 밤새도록 객점을 찾다 지쳐서 잠들었고, 나흘 차에는 살인이라도 할 정도로 곤두선 표정을 짓고 있어서 말도 붙이지 못했다.
무려 나흘 동안 흙먼지 가득한 땅바닥에서 잠을 잤고, 소금기도 없이 그저 불에 익히기만 했을 뿐인 텁텁한 고기로 배를 채웠으니.
청상이나 청우라면 그조차 맛있다며 먹었겠지만, 그 비싼 약초를 매일 아침으로 처먹고, 날마다 산해진미로 배를 채운 당세령에게는 어지간히 힘겨운 일이었을 터다.
채식주의자만 해도 순 거짓부렁이 틀림없다. 고기 먹는 걸 좀 봤어야지.
어젯밤에는 늑대 고기도 먹고 말야.
그나저나 누가 그렇게 마을이 없을 줄 알았나.
“주인장!”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외친 당세령으로 인해 객점 안에 침묵이 흐르고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기 손님, 죄송한데 자리가…….”
“저건 뭐요?”
“그게 예약석인…….”
“예약석?”
당세령의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이 떠오른다.
분노는 실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슬픔으로.
겨우겨우 찾아온 객점에 하나 있는 빈자리가 예약석이란다.
“주인장, 그러지 말고 우리한테 내주면 안 될까요?”
이제는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웃돈이라도 드릴 테니, 자리 주인이 오면 곧바로 비켜 줄 테니까. 제발 여유롭게 앉아서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그런 음식과 술만 한잔할 수 있게…….”
“아니, 그게…….”
“제발요. 부탁이에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당세령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품을 뒤져 전낭을 꺼내려 했다.
“어이, 거기 여자. 뭐 하는 거야? 거긴 우리 형님들이 앉으실 자리라고.”
때맞춰 다가오는 털보 사내와 그 일행들.
옷차림이며 손에 든 낭아도까지.
얼굴에 가득한 검상을 보지 않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어 온 낭인들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아, 그래요? 자리 주인이시군요? 잠시만 제게 팔면 안 될까요? 다리가 아파서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당세령이 이번엔 털보 사내에게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근데 다리가 아프다고? 여지껏 말 타고 왔는데?
“밤새 한숨도 못 잤어요.”
니가 제일 잘 잤거든?
저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숙면을 취했고, 업어 간다 해도 모를 정도였다.
“얼마 줄 건데?”
“얼마 드릴까요?”
협상이 되려는 듯하자 당세령이 들뜬 표정을 했다.
“황금 한 냥.”
하, 한 냥?
저런 미친놈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줄게요.”
뭐! 준다고!
이런 고생이라고는 해 보지 않은 미친 부잣집 딸내미가? 고작 잠시 자리를 빌리는 데 한 냥을 쓰겠다고?
진무가 둘의 말도 안 되는 흥정을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는데.
“웃기는군. 한 냥은커녕 한 푼도 없어 보이는 몰골을 하고서는.”
털보 사내가 당세령과 진무 등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음흉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같이 다니는 꼬맹이들이 비실비실해 보이는 게 학사 놈들 같은데. 어때? 술 시중이라도 드는 게. 그만하면 얼굴도 제법 반반해 보이고.”
“…….”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의아하기만 한 당세령이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안 그래도 형님들 기다리느라 적적한 참인데, 술 시중을 든다면 같이 온 꼬마들은 몰라도 너는 앉혀 줄 수도 있어. 술이랑 음식도 공짜로 주고.”
털보 사내가 당세령의 한쪽 팔 안쪽을 슬며시 잡아 주무르며 당기자.
“거 형님, 너무 괴롭히지 마시오. 허여멀건 학사 놈들을 따라다니는 년이 어찌 진정한 사내 맛을 알겠소? 괜히 겁부터 먹겠소.”
“난 너무 순한 년들은 별로더라. 앙칼진 게 좋더라고.”
털보 사내가 당세령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자 그의 일행들이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시시덕거렸다.
아마도 진무와 운암이 갈아입은 옷이 학창의였기에 그리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모습에 며칠째 씻지도 못했으니 어디서 마적 떼라도 만난 듯한 모습이리라.
“저자들이!”
운암이 발끈하며 나서려 하자 진무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무 도장?”
아니야.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지금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란다. 부하 삼 호야.
그녀는 지금 극도의 피로와 짜증으로 눈이 반쯤 돌아가 있거든.
괜히 도우러 갔다가 너까지 봉변을 당할지도 몰라.
빠가각!
거봐. 저런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