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뭣이? 무당지검이라고? 그가 목숨을 걸고 본산의 제자들을 구했단 말인가?”
“예. 그리 연락이 왔습니다.”
구원대를 이끌고 나섰던 공동의 장로 정문이 제자가 건네는 전서를 읽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첫 번째 연락을 받고 급히 천웅방을 향해 달리던 길이었다.
그런데 한참이나 끊어졌던 연락이 다시 날아왔다.
무당지검이 그들을 구했다고.
지금 그와 함께 무사히 도주하고 있다고.
“허, 무량수불. 무당지검이 본파에 그토록 큰 은혜를 베풀었구나.”
정문은 도호를 외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로님. 그래도 서둘러야 합니다. 천웅방이 필시 계속해서 추격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무공이 입신에 이른 무당지검이라 해도 적의 수가 많으면 큰 고초를 겪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네 말이 실로 옳다.”
일대제자 중 가장 손위인 종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정문이 이내 굳은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종오!”
“예!”
“도주하는 이들이 우리가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방향을 잡을 수 있게 십 리마다 신호탄을 쏘아 올려라!”
“예!”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첫 번째 신호탄이 쏘아져 허공에서 터졌다.
적들에게도 이쪽이 드러날 수 있어 위험하기는 했으나, 그것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아군이 알게 해야 했다.
정문이 끌고 온 제자는 일백을 헤아린다. 모두가 보검으로 무장한 공동파의 정예였다.
무당지검의 무위가 그들의 손에서 도주하던 자들을 구해 낼 정도로 대단하다 했으니 당장의 위기는 어느 정도 벗어났을 것이며, 그에 더해 자신들이 제때 그들과 합류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능히 반격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쫓기는 처지에서 벗어나, 천웅방의 추격대와 자웅을 겨뤄 볼 수도 있을 터였다.
“속도를 높이거라! 제자들의 구명도 구명이거니와, 본산의 은인이 혹여라도 놈들의 손에 털끝만큼도 상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공동의 자존심을 넘어 정파가 간직한 대의와 직결된 문제니라!”
반드시 구해야 했다.
공동과 개방의 제자들이 죽었다면 임무 중에 일어난 일이니 복수를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진무에게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그는 스스로를 희생해 사람들을 지켰다. 그리고 그것은 곧 말은 쉬우나 행하기는 어려운 정파의 대의(大意) 그 자체인 것이다.
누가 타인을 위해 스스럼없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 하나만으로 진무는 추앙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응당 정무맹 전체가 들고일어날 일이며, 그런 이를 눈앞에 두고 구하지 못한다면 이는 오랫동안 공동의 치욕으로 남을 것이 틀림없었다.
피융! 퍼엉!
세 번째 신호탄이 쏘아졌을 때.
“장로님!”
숲을 뚫고 나온 인물들이 정문을 향해 외쳤다.
“아…… 종려야.”
그들이 누구인지 정문은 대번에 알아보았다.
천웅방의 추격을 피해 도망친 종려와 이대제자들, 그리고 개방도들.
“다행이구나. 정말로 다행이다.”
정문이 제자들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는 같은 말을 수도 없이 연발하며 부산을 떨었다.
“모두가 이분 덕택입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종려는 자신의 옆에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제자들은 주변을 경계하라!”
정문이 혹시나 쫓아올 추격대를 대비해 명을 내린 뒤, 종려의 옆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분이?”
“예. 무당지검이십니다.”
“아!”
짧은 감탄사에 이은 공손한 인사.
“공동의 정문이 당대의 무당지검을 뵙소이다.”
역시 은혜를 입힌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장로씩이나 되는 자가 이리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 오지 않는가?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가 공동의 정문 사숙을 뵙습니다.”
공손한 답인사.
은혜를 입혔다고 거들먹거려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며, 첫인상은 매우 중요한 법이니까.
잘났다고, 잘 산다고, 힘 좀 있다고 함부로 굴면 앞에선 웃더라도 뒤에서 욕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 아니던가?
물론 딱히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 이득을 본다는 측면에서라도 겸손해서 나쁠 일이 없다. 까놓고 말해, 겉으로야 뭘 못 하겠는가.
지금도 이 몸이 현명하게 대처한 결과로 눈앞의 정문이 더없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 무당지검을 만나 반갑기 그지없으나 적들의 추격이 어찌 이어질지 모르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예.”
“호위들을 편성해 본산으로 모실 터이니 서둘러 가시오. 뒤는 우리가 맡겠소.”
“예? 뒤를요?”
“당연하오. 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설사 저들의 추격대에 천웅방주가 끼어 있다고 해도 반드시 이번 일의 책임을 물을 것이오.”
분기를 숨김없이 내보이는 정문을 진무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참, 꿈도 크다.
천웅방주 원공후가 그리 만만해 보이는 것인가?
정문은 물론 끌고 온 제자들의 모양을 보니, 도포 안에 빛이 번쩍이는 갑의(甲衣)을 입고 제법 비싸 보이는 보검으로 무장한 게 단단히 준비를 해 온 모양이다.
물론 그 정도면 본래 가진 것보다 반 배 이상의 실력을 보이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정문? 지원대로 온 공동의 제자 일백?
장담하건대 추격대에 원공후가 있었다면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아 한낱 피육이 되어 숲속을 장식할 것이다.
단죄 좋아하네. 분수부터 알아라.
“장로님.”
“말씀하시오.”
“응당 옳은 말씀이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은 추격대만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
진무의 말에 정문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실은 난주를 거쳐 오며 천웅방과 철검단의 전투를 보았습니다.”
“아, 종려가 보낸 전서구를 통해 이미 들었소.”
들었다고?
들었는데 그딴 생각을 했다고?
공동의 장로는 목숨이 뭐 서너 개쯤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부러운데?
“전투는 천웅방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철검단이 사패천에게서 등을 돌려 천웅방에 붙어 버린 듯하더군요.”
“뭣이? 그, 그런 일이?”
진무를 구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걸음이라 아직 전서구에 쓰여진 내용 외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철검단이 합류해 버린 이상 지금의 천웅방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아무리 장로님이라 하여도…….”
더 말하면 괜히 정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진무는 뒷말을 슬며시 흐렸다.
“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다행히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혁련무강을 따라다니며 모든 전투의 선봉에 섰던 천우명이다.
정무맹이나 일월마교에 가장 잘 알려진 사파인이 있다면 바로 그일 것이다.
또한, 진무가 보기에는 한없이 모자라고 멍청해도 다른 이들에게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 강하고 잔인한 고수였다.
“오며 보니 신호탄을 쏘아 올리셨더군요.”
“아, 그건.”
“명민하신 판단입니다. 덕분에 저희가 장로님이 계신 방향을 찾아 도주할 수 있었으니까요.”
“…….”
“물론 그것이 천웅방의 추격대에게도 경고가 되었을 것이니, 이번에는 반대로 저들이 지원대를 부르게 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만약 제가 추격대의 수장이라면 즉시 추격을 중단하고 천웅방에 지원을 청했을 것입니다.”
“음, 내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구려.”
“당연합니다. 아마도 장로님께서는 저희를 구할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우고 계셨을 테니까요.”
슬쩍 치켜세워 줬기 때문인지 정문이 민망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듯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만약 천웅방주가 직접 나서거나 천우명이 철검단을 이끌고 오기라도 하면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악재가 됩니다.”
원공후와 천우명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자 정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전멸이다.
천웅방주와 철검단주.
사패오왕이라 불리며 정무칠성과 이름을 나란히 해 온 자들.
그들 중 하나만 와도 자신이 끌고 온 일백 제자들은 힘도 못 써 보고 전멸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정무맹과 인근 문파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며칠은 족히 걸릴 터.
“그들이 작정하고 공격해 온다면……?”
“음.”
진무의 예상대로 진행되면 공동산은 피로 물들 것이 틀림없다.
“일단은 물러나시지요. 제자들을 전부 구했으니 물러나 정무맹을 통해 정식으로 항의 요청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면 저들도 생각이 있으니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진무의 말을 곱씹으며 제 생각을 정리한 정문이.
“무당지검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오. 내 미처 거기까지 생각지 못했소이다.”
“아닙니다. 저라도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적들의 포위망에 갇혀 있는 공동의 제자들을 보는 순간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으니까요.”
진무가 가증스럽기 그지없게 대답하며 슬쩍 몸 곳곳에 생긴 생채기를 보여 주자 정문이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고작 생채기일 뿐인데.
“저런! 내 그것도 모르고…….”
“내상도 조금…….”
그런 적은 애초에 없지만.
“그, 그런.”
정문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 어린다.
헤아리는 것이 늦었다.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낌없이 스스로를 내던졌던 진무였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상처를 입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 이를 앞에 두고 생각 없이 노기만 드러내었으니.
“가, 갑시다. 서둘러 본산에 올라 치료부터 해야겠소.”
진실 따위 알 길 없는 정문이 호들갑을 떤다.
“괜찮습니다. 공동의 제자들을 구했는데 이 정도 상처쯤이야 대수겠습니까?”
진무의 의기 넘치는 말에 정문은 물론 공동의 제자들이 일제히 감탄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봤다.
“자, 그럼 서둘러 본산으로 돌아갑시다.”
“예.”
진무가 물러나자 정문이 공동의 제자들을 향해 힘껏 외쳤다.
“제자들은 들어라! 종오와 종학은 후미를 경계하고, 나머지는 무당지검을 호위해 본산으로 간다!”
“예, 장로님!”
경계는 무슨.
천우명과 원공후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그저 위협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아마 지금쯤 추격대는 천웅방에 돌아간 지 한참일 터였고, 천우명이건 원공후건 이쪽으로 올 리는 죽었다 깨나도 없다.
요는 진무가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사기 행각이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하나.
원래 사기는 사파의 전유물이 아니던가?
이놈을 속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앞에 앉혀 놓는 순간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예상했던 대로 공동의 은인이 되어 산에 오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결말인가.
보아라, 천하 사파인들아. 이것이 사기니라!
* * *
“와!”
벌써 무당까지 네 곳의 도문을 거쳐 온 진무였음에도 공동의 산문 앞에서는 감탄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무당이야 전생에서부터 인연이 있어 새롭지 않았으나, 나머지 세 곳의 도문은 모두가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소박했던 청성, 웅장하고 품위 넘치던 곤륜에 이어 세 번째.
공동은 일단 산문부터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문. 산 아래 절벽 면을 통째로 깎아 내서 만든 칠 층에 달하는 산문은, 그 자체가 바위에 새긴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맨 아래층이라 할 수 있는 절벽 면 좌우에는 악귀를 쫓는 신장을 새겨 넣고, 그 사이를 통으로 뚫어 놓았다.
참…… 대단하다.
도사 놈들이 서로 같지 않으려고 연구라도 하는 건지.
뭐가 이리 눈 돌아가게 각양각색이란 말인가? 이쯤 되면 재능 낭비 아닌가?
어쨌거나 간에, 이러니까 천웅방이 그 긴 역사 동안 감숙성 전부를 차지하지 못했지.
웬만큼 뛰어난 경공을 가졌다 해도 이 깎아지른 절벽 면을 오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천혜의 요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곤륜만큼이나 이놈들도 본산을 털려 본 적이 없을 게 틀림없었다.
“대단하군요.”
혀를 내두르는 진무의 감탄에 정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문파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 누가 기분이 좋지 않을까? 더욱이 은인이 그렇게 말하니 정문의 어깨가 자연히 으쓱거렸다.
“아, 저기 장문인께서 나와 계시는군요.”
진무가 정문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정문이 가리킨 산문 입구에서부터 청수한 차림의 도사 하나가 날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모양새가.
덥수룩한 장비 수염에 짙은 송충이 눈썹이 하늘을 향해 뻗은…….
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