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어서 말해 보게. 내 무당지검의 경지를 보았음인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옳습니다. 앞으로 무당지검으로 인하여 무당의 이름이 더욱 떠들썩해질 터인데 미리미리 잘 보여 두어야지요.”
태허의 말에 태을이 익살스레 돕고 나서고, 나머지 룡, 선, 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햐아! 이게 웬 떡인가?
자식들. 미리 줄 서겠다는 말이구나.
하긴, 그래야지.
일문의 수뇌라면 멀리 내다볼 줄도 알아야지.
진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차라리 잘되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란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아부를 하며 뇌물을 준다는데야 아니 받을 순 없지.
뭘 달라고 할까?
화산의 영단이라는 자소단?
아니면 역대 장문인들이 익히는 자하신공?
아니지, 그딴 게 뭔 소용이란 말이냐?
하나면 된다.
진무가 슬쩍 명진과 진허의 눈치를 살피고는.
“외람된 말씀이오나…… 혹시…… 저…….”
“뭘 주저하는가? 어서 말씀하시게.”
“그…… 흠.”
혹시나 명진이 계율에 어긋난다며 안 된다 하지는 않을까?
양의심공은 십계와는 다르다.
무당의 다음 대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비급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금쪽처럼 아끼는 명진이기는 하지만 그것만큼은 안 된다며 방해할지도 모른다.
진허 저 자식도 그렇고.
그렇기에 스승에게 말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다 들어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장문인에게 양의심공을 뺏어 달라는 이야기를 꺼내 보지 못했다.
도동의 기억이 사라진 듯한 지금 스승이 안 된다고 해도 제재를 받지야 않겠지만 뭔가 껄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 어찌한다.
그냥 달라고 할까?
에라이!
“혹시 무당의 물건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신지요?”
결국, 질러 버렸다.
“응? 무당의 물건?”
태허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혹 무당지검께선 양의심공을 말하는가?”
……어?
되레 진무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음, 무당지검께서 그것을 요구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구만.”
미소를 머금은 태허의 말에 진무의 심장이 거칠게 뛰어 대기 시작했다.
“흠, 하지만 어찌한다.”
“예?”
갑자기 난색을 표하는 태허의 모습에 진무를 비롯한 모두가 의아함을 품는다.
어째서 불안하지?
왜 저리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양의심공의 마지막 조각이다.
길고 긴 여정의 종착역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태허와 장로들이 짓고 있는 표정이 진무의 마음을 너무나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 미처 무당에는 알리지 못하였다네.”
뭘?
이 망할 도사 놈들.
왜 이렇게 입을 떼는 것이 굼뜨단 말이냐!
“자네가 찾으려는 것이 양의심공의 후반부인 것으로 아네.”
태허가 알고 있다.
장로들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앞선 세 곳의 도문에서 양의심공의 후반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풍환뿐이었다.
그런데 화산은 모두가 아는 것 같았다.
“음. 실은 화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있었다네.”
화재?
야! 너 설마?
“서너 달 전에 일어난 그 화재로 인해 장서각의 일부 구간이 불타 버렸지.”
“…….”
자, 잠깐만.
장서각이 불탔다고?
거짓말이지?
그리고 서너 달 전? 그럼 청성이 아니라 화산을 제일 먼저 방문했었다면?
진무가 크게 뜬 눈을 끔벅거리며 점점 입을 더 크게 벌리는데.
“아, 소식은 들었습니다. 제법 큰 화재였다지요?”
“…….”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는 것을 보니 명진도 아는 눈치였다.
정말로 화재가 났단 말인가?
장서각이 진짜로 불에…… 설마? 그 안에?
“양의는 그 가장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네.”
뭐 이 씨발?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란 말이냐?
진무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길은 잡았으나 양의를 지키지 못하였네. 미안하네.”
태허가 미안함을 가득히 머금은 표정으로 사과를 하고 있었다.
“무당에 알렸어야 마땅함이나 선대의 유지가 있었기에 알리지 못하였다네. 따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양의의 후반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지.”
“…….”
“미안하네.”
태허가 난색을 지으며 사과했다.
미안…….
사과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진무의 얼굴은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 뒤였다.
눈은 크게 뜨여져 더 이상 깜박이지 않았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미안하단다.
남의 문파의 그 귀중한 비급 조각을 불태워 처먹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이 무당에 남겨진 전반부의 주해본 중 일부라 알고 있네.”
“…….”
“하지만 내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으니 어떤가? 양의를 대신하여 이것이라도 내어 주겠네.”
“…….”
태허의 말에 진무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가 품에서 꺼내 내미는 옥갑.
딱 봐도 뭔지 알겠다.
자소단이다.
도가의 문파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자신만의 연단술을 통해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내는 영단.
화산의 귀보…….
따위…….
평소라면 ‘우와! 감사합니다!’하며 절을 올렸을 것이 분명했다.
자소단 역시 태청신단이나 소림의 대환단과 마찬가지로 배합되는 약재만 해도 수천 종이요.
솥에 물을 넣고 달이기를 반복하는 기간만도 수십 년에 달한다.
거진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자파의 후계도 아닌 외인에게 내어 준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그만큼 미안해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진무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시퍼런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호흡이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점점 더 거칠어지고 옅은 살기가 끈적하게 흘러나온다.
꾸욱.
진무는 천천히 일휘의 손잡이를 잡았다.
“사양치 말고 어서 받게. 내 너무도 미안하여 그런 것이야. 그래도 다행히 양의심공의 전반부는 무당에 남아 있는 것으로 익힐 수 있으니.”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운공의 말에 따라 양의심공의 후반부를 찾기 위해 시작된 여정.
네 쪽으로 나누어져 네 곳 도문에 봉인된 양의심공의 후반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주해본과 태극요결.
청성과 곤륜에서 태극요결을 얻었으나 정작 진무가 필요한 것은 후반부에 담겨 있다는 전반부의 주해본이었다.
그래야만 다시 묵룡혼원공을 익히고 과거의 경지를 되찾을 수 있으니까.
이건 이기어검을 깨달은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목어검의 경지에 있는 철지량조차도 묵룡을 불러낸 진무, 아니 혁련무강을 이기지 못했으니까.
공동에서 주해본의 한 조각을 얻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이제 화산에 남은 하나만 얻으면 된다 생각하며 발걸음 가볍게 달려온 길이다.
그런데 불탔다고.
그럴 수도 있지.
비록 구결본이라고 해도 전반부는 아직 무당에 남아 있으니까.
이제 도동의 기억도 사라진 듯싶으니 스승도 자신의 행동을 제약할 수 없을 터.
가서 무당을 뒤엎은 다음에 장문인 멱살을 쥐고 양의심공을 내놓으라 겁박이라도 하면 될 일이다.
필요하다면 무당에 불을 싸질러 버릴 용의도 있다.
어차피 한번 해 본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말이다.
니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무슨 마음으로 과거와는 달리 열심히 도사처럼 살았는지.
양의심공을 얻기 위해서 되지도 않은 도사 흉내를 내고 도문에 잘 보이기 위해 얼마나 살살거렸는지.
그 모두가 양의심공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 묵룡의 주인이 되어 훨훨 날아오르려 했었다.
그런데 니들이 짓밟은 거야.
앞으로 정사마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서려는 꿈을, 황제를 발아래 꿇리려던 그 꿈을…….
니들은 그러면 안 돼.
자소단 따위?
그딴 건 필요도 없어.
고작 그딴 걸 내놓고 거들먹거리며 늙은 뒤통수나 긁적거리며 어색한 웃음이나 지을 그런 일이 아니야.
진무의 심장이 맹렬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흥분이 아닌, 진짜로 화산 자체를 이 땅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살심으로 가득 채워져서.
그래. 여기서 털자.
도사는 무슨.
어차피 이리된 마당에 뭐가 아쉽단 말인가?
새로운 사패천을 만들려는 마당에 정파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사람이 원래 성격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일휘소탕혈염천하.
백색으로 빛나는 화산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화산에는 붉은 핏빛만이 감돌 것이며 살아 있는 생명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묻는다.
“자, 장문인…….”
“…….”
“정말로 불타 버린 것입니까?”
어지간하면 아니라고 해라.
농담이었다고.
그래야만 한다.
어서 말해라. 그저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려는 농담이었다고.
그래야 니들 모두 살 수 있다.
그게 나의 마지막 아량이다.
“그렇네. 미안하네.”
“…….”
태허의 말에 진무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부릅뜬 눈동자에 핏발이 돋아 오르고 호흡이 짧고 빠르게 거칠어진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치밀어 오른 분노가 살심을 충동질했는지 그의 몸에서 엄청난 투기가 발산되려는 찰나!
턱.
명진?
그가 진무의 어깨에 손을 올려 왔다.
쪼개지 마라. 이젠 안 된다.
스승이 막아도 소용없다.
도동의 기억이 아니어도 평소라면 참았겠지만.
스윽.
명진이 온화하게 웃으며 진무에게 서책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또 뭐…… 어?
“……!”
잘못 본 건가?
너무 화가 나서 환상이 보이는 걸까?
이거 제목이…….
“양의심공이니라.”
그러니까.
어째서 이게 이름이 양의심공이냐고?
“내, 네가 다른 도문에서 그것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느니라.”
“…….”
“양의심공의 전반부다. 비록 후반부의 주된 내용이라는 태극요결은 빠져 있어 아쉬우나…….”
“……스, 스승님?”
“허허, 이 녀석 어서 받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명진이 웃는다.
그 웃음에 극한까지 끌어 올랐던 진무의 살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양의는 분명 대제자만이…… 이건 계율에 어긋나는?”
“허허, 걱정 말거라. 아무 문제도 없느니라. 내 이미 장문인께 허락을 받았고, 다른 궁주들과 논하여 앞으로는 대제자가 아니어도 양의심공을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장서각에 두어야 할 것이나, 내 특별히 너를 위해 운공 어른께 부탁해 한 부 더 필사하여 가져왔느니라.”
대제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필사를 해?
그렇게 쉽게 막 계율을 바꿀 수 있는 거였어?
진무가 눈을 끔벅거렸다.
“사숙께서 얼마나 설득을 하셨는지 아느냐? 무공을 익히는 것은 제자들의 선택이라 하시며 고집을 피우시는 통에 회의만 장장 이틀을 했어.”
“…….”
진허가 무당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주었다.
“결국 장문인께서 장고 끝에 직권으로 명하셨다. 그동안 대제자만 익힐 수 있었던 양의심공을 장서각에 비치하기로 하신 게야.”
아…….
“네게 선물을 주실 생각에 어찌나 안달하시는지. 해서 이 사형이 직접 모시고 온 것이다.”
그랬구나.
그럼 화산에서 처음 봤을 때 좀 주지.
이런 의뭉스러운 스승 같으니라고. 그걸 이때까지 참고 있었어?
화산에 온 지 벌써 며칠째인데.
투덜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진무는 참지 못하고.
와락!
곧장 스승의 품에 달려들었다.
명진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푸근한 미소를 머금고 진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녀석…… 진작에 이 스승에게 말하지 않고. 얼마나 홀로 고민이 많았을 것이냐.”
그러게, 진작 말할걸.
뭔가 더럽게 억울하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 알았으면 그 개고생을 안 해도 됐잖아.
태극요결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고.
내가 사천에서 당위랑 당세령이 아니었으면 그 대랑이라는 새끼한테 뒈질 뻔한 적도 있다니까?
아, 이 어린 스승아.
너를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고마워서, 감사해서 어찌한단 말이냐?
자칫하다가는 화산파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뻔하지 않았더냐.
아,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는구나.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이냐?
아, 아, 고마워라. 어버…… 응?
여하튼 진무는 지금 이 순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 이 녀석? 우는 게냐?”
그래 다 늙어서 어린것들 앞에서 우는 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참으려고 하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허허, 이 녀…… 진무야?”
조금만 더 있자.
좋아서 그래. 내가 너무 좋아서 그래.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
“코 묻는다…… 비단 도포에…….”
명진이 근엄한 표정으로 진무를 떼어 내었다.
그리고 진허와 운암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겨우 떼어진(?) 진무는 자신의 손에 들린 양의심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승을 바라보았다.
그때 살려 두기를 잘하였구나.
고기를 먹여서 체력을 회복하게 한 것이 너무도 잘한 일이었구나.
단강구 우가장의 후원(?)을 받아 오룡궁을 다시 지은 것은 정말로 대단히 잘한 일이었구나.
도동의 기억?
이젠 그딴 거 필요 없다.
너는 나의 은인이다.
평생!
“허허, 다행이군. 무당지검께서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다행이야.”
“…….”
한참을 훌쩍거리다가 진정이 된 진무를 향해 태허가 환하게 웃는다.
놀고 있네.
니들은 스승님께 감사해라.
화산에 일어났을지도 모를 참변을 막아 주신 분이다.
니들도 나처럼 평생 은인으로 모셔야 한단 말이다.
“이거 참, 내 뭐라 할 말이…….”
태허가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자소단을 담은 옥갑으로 손을 가져간다.
어이! 동작 그만!
이 새끼가 어디서 옥갑 빼기를 하고 있어?
손모가지 날려 줘?